기타지마시보리의 한 사원이 선반을 고속으로 회전시키면서 헤라시보리 가공을 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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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감의 손기술… 컴퓨터보다 정확프레스에 밀려 한때 사양길… 다품종 소량 시대 맞아 각광
‘오차 0.01mm’ 초정밀 가공… 우주-전자산업서 주문 쇄도공장 안에 미처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날카로운 소음이 귀청을 따갑게 자극했다. 날붙이로
금속을 자르거나 금속과 금속을 마찰시킬 때 나는 소리였다.
도쿄(
東京)의 관문인 하네다(
羽田)공항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2km도 떨어지지 않은 게이힌지마(
京浜島). 약 1km² 넓이의 인공섬인 이곳에는 철강, 전기, 비철금속 분야의 중소기업들이 모여 작은 공장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헤라시보리 가공업체인 기타지마시보리제작소는 섬 외곽에 위치한 전형적인 동네기업이다. 종업원은 20명에 불과하지만 일본 외무성이 자국의 기술력을 자랑할 때 외국 귀빈들을 자주 안내하는 곳이다.
○ 헤라시보리의 선두주자
일본어에서 ‘헤라’는 주걱, ‘시보리’는 쥐어짜기를 뜻한다. 말뜻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낱말풀이로 헤라시보리가 무슨 기술인지 유추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장을 직접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회사 도미나가 사토시(
富永聰) 상무가 기자를 안내한 곳은 지름 20cm 안팎의 금속 전등갓을 만드는 작업장이었다.
작업 공정은 크게 보면 3단계였다. 직원은 우선 네모난 알루미늄 판을 원형으로 잘랐다.
다음으로는 알루미늄 원판을 선반의 ‘틀’에 고정시킨 뒤 고속으로 회전을 걸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길이 1m가량의 금속 봉, 즉 헤라가 등장했다. 헤라를 겨드랑이에 낀 직원이 헤라의 끝부분으로 세게 밀자 알루미늄 원판은 순식간에 전등갓으로 변신했다.
도미나가 상무는 “우주선 연료탱크 앞부분에 사용되는 제품이나 지름 3m가 넘는 대형 파라볼라 안테나도 만드는 원리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헤라시보리 기술을 이용해 만든 제품(왼쪽)과 개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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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 고급화… 까다로운 일감 늘어
헤라시보리는 과거 세숫대야나 냄비 등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된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야는 점차 대량생산이 가능한 프레스가공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사양길에 접어든 헤라시보리 기술이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최근 들어서다. 우주항공산업이나 전자산업에서 정밀도가 높은 다품종 소량부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다만 헤라시보리 기술로 만든 부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지는 기타지마시보리의 기술자들도 잘 모른다.
기업의 신제품 개발과 관련될 때가 많아 발주업체들이 주문할 때 재질과 규격 외에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도미나가 상무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수요의 고급화에 따라 어느 산업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품종 소량생산이 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타지마시보리로서는 점점 까다로운 일거리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오차를 0.01mm 수준으로 줄여 달라는 주문도 적지 않다고 한다.
○ “1년 반 도전 끝 납품한 경우도”
헤라시보리 가공에서 오차를 줄인다는 것은 두께를 가급적 일정하게 유지하고 원통형 제품의 이지러짐을 최대한 막는 것을 뜻한다.
금속의 성질을 조금만 안다면 오차를 0.01mm로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금속은 부위에 따라 강도나 밀도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압력이 줄어들면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도 있다.
이 때문에 컴퓨터가 달린 수치제어(NC)선반을 사용한다고 해도 오차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NC선반보다 오히려 수작업의 정밀도가 월등히 높을 때가 많다.
금속의 빛깔과 소리를 통해 각 부분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손끝의 압력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만이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