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태초에 우주 전체가 매우 무질서하고 엔트로피가 높았어도, 현재 우리가 보는 우주로 발전한 작은 티끌은 그 높은 엔트로피의 극히 일부분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우주가 확률적으로 극히 희박해 보이는 상태인 극저의 엔트로피에서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급팽창 이론은 아직 완전히 완성된 이론은 아니고 지금도 활발한 연구 주제이다. 하지만 여러 관측을 통해 이 이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작년에 유럽에서 쏘아 올린 플랑크인공위성(오늘의 과학, [세게 던진 뉴턴의 사과] 참조)의 실험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더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약력의 시간의 화살
지금까지 설명한 시간의 화살들은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로 귀결된다고 하였다. 저번 글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이러한 시간의 방향성은, 근본 물리법칙이 시간되짚기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무관하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 물리이론의 수준에서 물리학자들은 시간되짚기 대칭성이 물질-반물질 대칭성 그리고 좌우대칭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에 의하면 상대성이론과 모순이 없는 모든 이론은 세 변환을 모두 했을 때 반드시 본래의 이론과 같아져야 한다. 즉, 어떤 이론에서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고(T), 물질과 반물질을 바꾸며(C), 또한 왼쪽과 오른쪽을 바꾸면(P) 항상 대칭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CPT 정리라고 한다.
예전 글 [CP대칭성 깨짐]에서 약력을 제외한 모든 이론은 C와 P에 대해 대칭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들은 자동적으로 시간되짚기(T) 대칭성도 가지고 있다. C와 P에 대해서 대칭인데, CPT대칭이려면 T에 대해서도 대칭일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원자보다 더 작은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력의 경우에는 CP 대칭성이 약간 깨져 있다. 그러므로 CPT 정리에 의해 약력은 시간되짚기 대칭성도 약간 깨져 있다. 시간되짚기 대칭성의 깨짐이 CP대칭성의 깨짐을 정확하게 보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약력의 시간되짚기 대칭성의 깨짐으로 인해서 시간의 흐름에서 과거 방향과 미래의 방향에 차이가 나는 것을 약력의 시간의 화살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여러 실험을 통해 검증되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약력의 시간의 화살은 다른 시간의 화살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 시간의 화살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의 방향성과는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차별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우주에 존재하기 위한 또 하나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우리 우주에 반물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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