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구간입니다.
출발지 버스정류소 이름은 ‘우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번으로는 복죽동.
그런데 택시운전사는 마을이름으로도 동명(洞名)으로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추측하건대, ‘도농복합시’ 체제로 바뀌던 무렵(1995년경) 죽산면에 인접한 작은 마을들을 김제시로 편입시키면서 죽산면의 ‘죽’에 엉뚱한 ‘복’자를 붙여 복죽동이라 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명박정부 때 도로명으로 바꾸면서 또 한 번 ‘복죽로’라는 길 이름을 붙이고 복죽동의 모든 집들이 ‘복죽로 ○번’이라 이름이 바뀌어버린 황당한 사례.
실제로 이 동네 인근의 마을들은 ‘방죽안’, ‘이문안’ 등 정겹고 친숙한 고유의 이름을 가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래서 지명을 바꾸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는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할 일인 겁니다. 어떤 이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변경은 문화적·역사적 맥을 끊어버리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엉뚱하게 바뀌곤 하는 것은 거의 행정의 독주 때문으로 봅니다.
중앙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일에 지방행정은 열심히 따라갈 수밖에 없고
행정의 불합리하고 졸속한 결정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관심이 없거나 저항할 역량이 없습니다.
결과, 누구도 모르는 ‘밀실결정’, ‘이상한 결정’이 되어 버리기 십상입니다.
22년 동안 만경읍에서 택시를 몬 운전사조차 들은 적이 없는 마을이름, 우성.
들은 적이 없다는 동(洞)이름, 복죽동.
이상한 길 이름, 복죽로.
발음하기도 거북하군요.
출발합니다.
내가 차를 세운 바로 그 자리 간선수로 위에 작은 다리가 걸렸는데 이름이 ‘우독교’입니다.
한글로만 썼으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牛犢’이었습니다. 독(犢)이라는 한자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글자가 되었습니다. 삼례 ‘독주항’의 바로 그 ‘독’(송아지 독).
하지만 소와 송아지가 나란히 함께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고 당연히 그런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웃돍’의 와전일까? 이리저리 추측해보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리 이름은 동네 이름을 따서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 동네(버스정류장) 이름도 ‘우성’이 아니라 ‘우독’이 아닐까?
혼자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보아도 마을사람에게 직접 물어봄만 못한데 도무지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간선수로는 거의 말라 있습니다.
지난 번 마지막 걸었던 지점에서 1킬로미터 정도를 건너뛰어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는 참이어서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어제까지 강력한 태풍(링링)이 있었던 탓에 큰 비가 내릴 것을 예상하고 상류에서부터 물을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역시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요.)
아무튼 수로 바닥은 다 드러나 있고 풀이 하류를 향해 쓰러져 누워있는 모습이 처참합니다.
둑길을 잠시 걷자 한 컨테이너 건물이 보이는데 그 앞에 「선암·우독 내수면어업계」라 쓰였습니다.
드디어 답이 나왔네요.
‘우독’마을과 ‘선암(선바우 또는 섬바우)’마을을 합하여 ‘우선(또는 우섬)마을’이라 했을텐데 정류소에 마을 이름을 쓴 사람(업체?)은 ‘우선(섬)’을 ‘우성’으로 잘못 알아듣고 그렇게 썼을 것이라는 것.
이런 실수인지 무신경인지에 대해 이젠 분노는커녕 쓴 웃음마저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독'의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 어업계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내수면 양어장이 바로 지척에 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의 고가교를 아래로 통과하여 얼마 걷지 않아 신평천으로 물을 빼내는 방수문이 나타납니다. 이름 하여 ‘복죽’방수문.
이 방수문이 열려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태풍 피해를 염려하여 상류에서는 물을 보내지 않았고 하류인 이곳에서는 방수문을 모두 개방해버렸을 거라는 추측이 점점 더 강하게 듭니다. 어차피 흘러나가는 물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
수로도 만드는 것만큼 운영하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진안고원길’과도 같군요.
그런데 금방 또 신평천을 아래로 통과하는 암거가 나타납니다.
이곳의 암거는 마치 내버린 자식처럼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점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물론 며칠 동안의 일시적인 현상이겠지만, 물을 통과시키고 있지도 않습니다.
입구 출구 모두 물의 움직임이 전혀 없이 고여 있습니다.
(위, 아래 : 입구쪽 암거.)
(위 사진: 출구쪽 암거.)
신평천을 건너는 다리 이름은 신등교.
길이 80미터 가까운 다리를 건너 양수장이 있습니다. 이 양수장은 신평천의 물을 퍼올리는 기능을 하는 것 같은데 이 '하수천'의 물을 퍼올려서 어디에 쓰는 걸까요?
수로의 물을 암거로 통과시키는 양수기는 분명 가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터 소리가 나지 않고 있거든요.
신평천 암거에서 약 5백미터를 더 걸어 북서향하면 대석리입니다.
먼발치에서 보아도 꽤 큰 마을입니다. 높다란 정미소 지붕도 보이고 쌀을 내려붓는 긴 호스도 보입니다.
마을 안을 좀 둘러봅니다.
역시 정미소 집은 동네에서 가장 부자입니다. 깔끔하게 단장한 집이 단연 돋보이는군요.
(아래 사진들은 마을의 가장 뒤쪽에 자리잡은 빈집. 비워놓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다섯칸짜리 집입니다.)
(2-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