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 카빈(Carbin)소총
미군이 기존에 사용하던 M1903 스프링필드 소총을 대체하려 1936년에 제식화한 소총이 바로 M1 개런드(Garand)였다. 미군은 세계 최초로 반자동소총을 주력 제식 소총으로 채택하였고, 이것은 이후 2차대전에서 승리하는데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반자동소총은 구시대의 유물 정도로 취급 받지만, 적어도 2차대전 당시에는 이에 필적할 만한 소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미군 병사들이 M1 개런드에 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군인이라고 반드시 총을 들고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어서 행정, 군수 등의 지원병과 뿐만 아니라 전투병과라도 포병, 기갑 같은 경우는 총을 들고 직접 교전을 벌이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이들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당연히 총을 보유해야 했는데, 무겁고 전장이 긴 M1 개런드는 휴대가 불편했고 너무 과했다.
반면 권총은 너무 사거리가 짧고 화력도 약했다. 기관단총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2차대전 초기에 미군이 사용하던 톰슨 기관단총은 비싼데다가 무겁기까지 했다. 결국 휴대하기 편리하고 웬만큼 화력도 좋으며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새로운 보조 소총이 필요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미군 당국은 새로운 경량 소총 개발에 나섰고 그 결과 M1 카빈(Carbine)소총이 탄생하였다.
기병대가 사용하던 총에서 유래
원래 ‘카빈’은 말을 타고서, 혹은 말을 이용하여 목적지까지 기동하여 싸우는 기병대가 사용하던 총을 의미한다. 인간이 말을 사용한 것은 약 1만 년 전인데 말보다 빠른 교통수단을 확보한 것이 불과 200년 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히 말을 군용으로 사용한지도 오래되어서 일부 국가에서는 2차대전 당시까지도 기병대를 전투병과로 운용하였다.
그래서 기병대에 적합한 무기가 별도로 제작되었던 것이었고 이것은 총도 마찬가지였다. 말에 탑승해서 사용하므로 일단 휴대가 간편해야 했다. 그래서 대개 카빈은 기존 소총의 총신을 짧게 만드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사거리가 짧아지고 그만큼 파괴력 떨어지고 정확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카빈도 기병의 퇴조와 더불어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미군 당국은 새롭게 개발된 소총이 비록 기병대용은 아니지만 마치 예전에 휴대성을 강조하던 카빈과 목적이 비슷하다고 판단하여 이름을 ‘M1 카빈’으로 명명했다. 그렇다 보니 M1 카빈을 대개의 카빈 소총들처럼 비슷한 시기에 제식화 된 M1 개런드를 단축시킨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자동소총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 둘은 전혀 다른 별개의 소총이다.
M1 개런드와 M1 카빈. 반자동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둘은 전혀 별개의 소총이다.
탄으로 귀결된 해법
30구경 카빈탄(.30 Carbine) <출처: (cc) Dean Grua>
이처럼 새로운 소총에 대한 일선의 요구가 계속되자 군 당국은 유효사거리가 200~300미터 정도인 가볍고 다루기 쉬운 자동화 소총 개발에 나섰다. 결론적으로 총탄이 문제였다. 휴대하기 편리하게 크기를 기존 소총보다 작게 하면서도 권총탄을 사용하는 기관단총보다는 강한 화력을 발휘하려면 그에 맞는 새로운 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윈체스터(Winchester) 사가 탄약 개발에 나섰는데, 1906년에 시험 삼아 만들었던 .32WSL 탄을 바탕으로 했다. 반자동이나 자동 총기는 사격 시 발생하는 가스의 일부분을 노리쇠를 후퇴시키는데 사용하는데, 특히 WSL은 이에 적합하게 개발된 탄이었다. 윈체스터 사의 엔지니어인 퍽슬리(Edwin Pugsley)는 이를 조금 축소한 .30WSL을 1938년에 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30구경 카빈탄(.30 Carbine)이다.
그런데 현재 사용 중인 대부분의 자동소총용 탄은 기존 소총탄을 단축한 방식이지만 이와 달리 30구경 카빈탄은 권총탄을 늘린 형태였다. 그 이유는 원래 .32WSL이 톰슨(Thompson)이나 M3처럼 기존에 권총탄을 사용 중인 기관단총의 화력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적을 일격에 쓰러뜨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고 일선에서 불평이 있었을 만큼 권총탄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해병대와 궁합이 맞다
그런데 이 새로운 탄은 녹이 쉽게 슬지 않는 장점이 있어서 바다나 해안가에서 싸우는 해병대에게 적합했다. 육중한 군장을 둘러맨 체 상륙작전을 펼치고 경우에 따라 습한 밀림 속에서도 교전을 펼쳐야 하는 해병대에게 휴대하기 간편하고 총탄의 내구성도 좋은 M1 카빈은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그래서 M1 카빈은 제작 단계부터 해병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M1 카빈의 이전 모델이 윈체스터 M2(이후 1944년 개발된 M2 카빈과 별개임) 소총이었는데, 1940년에 실시된 미 해병대의 자동소총사업에 참여했다가 모래투성이의 환경에서 고장이 잘 나는 결함이 드러나 채택을 거부당한 상태였다.경쟁에서 탈락한 윈체스터는 틸팅 볼트(Tilting Bolt)대신 M1 개런드에 적용된 회전노리쇠 방식으로 구조를 변경하고 때마침 개발한 .30WSL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M2를 개량했다.
이렇게 탄생한 개량형은 때마침 새로운 보조 소총을 원하던 육군을 만족시켰고 1941년 10월 ‘M1 카빈’이란 정식 제식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면서 대량생산에 들어가 1942년 중반 유럽 원정군에게 지급이 완료되었다. 가볍고 교환이 편리한 대용량 탄창이 일선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보조 병기로써 소요를 제기한 육군보다 처음부터 관심을 보인 해병대에서 더 많은 활약을 선보였다..
박격포처럼 중화기를 담당하는 병사들에게 휴대하기 편리한 M1 카빈은 상당히 훌륭한 제식 소총이었다. | 이오지마 전투 당시 M1 카빈을 사용하는 미 해병대의 모습. 습기가 많고 이물질이 많은 장소에서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 해병대에서 평이 좋았다. |
맹활약 하지만 급속한 도태
이름처럼 M1 카빈은 작고 가볍기 때문에 밀림이나 시가전에서 상당히 유용했고, 특히 권총탄을 사용하는 기관단총에 비교한다면 파괴력이 월등히 좋았다. 이후 M1 카빈은 다양한 개량형이 등장했다. 주요한 것만 살펴보면, 완전 자동(Full Automatic) 사격 기능을 추가한 것이 M2이고, M3는 야간투시경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다. 완전 자동인 M2 카빈은 새로운 제식 소총의 대안이 될 만했다. 그렇다 보니 M2 카빈(M3 카빈 포함)의 성격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기관단총과 달리 M2 카빈이 사용하는 카빈탄은 비록 권총탄을 늘린 형태지만, 생각하기에는 소총탄을 축소한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돌격소총의 범주에 넣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파괴력이 부족하고 원래 탄생 목적이 성능을 강화한 일종의 기관단총이기 때문에 카빈이 맞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제작사나 책자 등에서 굳이 세세히 분류를 했다 하더라도 정작 이를 들고 다니며 싸우는 당시 병사들에게는 그런 구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탄약의 차이로 말미암아 살상력이 차이가나지만 기본 제식화기인 소총은 병사가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군에서 일방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므로, 돌격소총이니 카빈이니 하는 구분은 전혀 불필요했다.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를 사용하는 이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M1 카빈과 그 파생형 소총들은 2차대전은 물론 이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완전 자동인 M2 카빈은 돌격소총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화력이 부족하여 더이상 진화를 할 수 없었다. <출처: (cc) Joe Mabel> |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가 저격용으로 사용한 M3 카빈 <출처: (cc) Curiosandrelics> |
아직도 살아있네
그러나 이를 기점으로 M1 카빈은 일선에서 급속히 도태했다. 총신이 짧다 보니 사거리가 짧고 명중률도 떨어졌지만, 무엇보다 화력이 부족하다는 결정적 단점은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더구나 별도의 전용탄을 사용한다는 점도 군축 시기에 가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러한 가운데 돌격소총이 제식 소총의 대세가 되자 M1 카빈은 더 이상 일선에서 사용하기에 부족한 화기가 되어버렸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신뢰할 만한 기관단총이 없었던 미군 특수전 병력이 M16을 도입하기 전까지 M1 카빈을 일부 사용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 들어서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M1 카빈은 수많은 물량이 우방국에 공급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전쟁 동안 100만 정이 넘게 공여 받은 우리나라는 현재 최대 보유국이다. 그렇다 보니 2015년까지 완전 대체하기로 예정되었지만 한국에서 M1 카빈은 현재도 예비군 훈련에 일부 사용 중인 역전의 노장이다.
제원
탄약 7.62×33mm (.30 카빈) /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회전노리쇠 / 전장 904mm / 중량 2.36kg / 발사속도 분당 50발 / 유효사거리 20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