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냉정과 열정사이
저자 : 에쿠니 가오리
역자 : 김난주
출판 : 소담출판사 2003년판
1
무대는 유럽, 일본인과 일본인 그리고 미국인, 그리고 유럽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 첫사랑을 못 잊는 일본 여자의 유럽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 혹은 빛깔.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의 생활 영역에서 자란 일본 여자의 정체성. 그리고 그녀가 사용하는 일상중 여러 언어의 다중적 의미와 그 내포-영어, 이태리어, 일어의 혼합 사용에서 오는 현란한 사랑의 빛깔.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가 원하는 삶-게으른 일상, 소비 지향적이며 자극적인 예술 문화, 사랑에 대한 간구, 그리고 여느 평범한 생활 추구 등의 욕망이 유럽식 고급 문화와 더불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데 누구라도 일상중에 자칫 빠져들 수 있는 분위기가 자못 몽환적이다.
2
아오이는 일본을 대학 시절 처음 방문한다. 어릴 적부터 유럽 문화에 젖어살고 유럽 친구들과 자란 탓에 모국이지만 일본은 낯설다. 그리고 한편으로 무궁무진하다. 모든 것이 새롭다. 주거, 학교, 도로, 일본의 대학생들, 유럽의 문화가 곳곳에 자리하지만 새로운 수용방식, 그리고 사랑스러운 일본 남자들. 이때 만난 일본 남자 쥰세이는 아오이의 오랜 시간 잊지 못할 첫사랑으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유럽에서 망령처럼 아오이의 일상을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3
마빈은 남자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로 미국인 사업가다. 낮이면 한 번도 빠짐없이 헬스클럽에서 운동으로 몸을 다지며 물 흘러가듯 번창하는 사업 탓에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는, 그래서 아오이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관대하며 때로 많은 시간 아픔을 삭여가며 기다릴 줄 아는 신사. 마빈으로 인해 아오이는 풍요로운 물질적인 생활 속으로 빠져들 수 있지만 마빈이 채워주지 못하는 갈증이 아오이에게 그에게로 다가갈 통로를 막음으로 인해 결국 결합하지 못한다.
4
쥰세이는 사실상 허구적인 소설이라는 작품 안에서 마저 허구에 가깝다. 주인공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도 전작을 통해 쥰세이의 이미지는 잡히지 않는다. 작가의 과대포장된 듯한 카리스마에 가려졌다고 할까. (참고로 이 작품은 잡지 연재 소설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같은 제목 하에 만들어진 공동 집필 작품이다. 아오이는 에쿠니 가오리가, 쥰세이는 츠지 히토나리가 주인공으로 그려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만 읽었을 뿐이었다.
5
잡지나 신문 연재 소설이 흔히 그러하듯 독자들의 흥미와 즐거움을 유발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이 당연하듯 이 작품 역시 빠져드는 즐거움쪽이 강하다. 흡인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지루한 삶을 즐겁게 만들도록 가르쳐주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한다고 할까. 무의식중에 따라해보고픈 삶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소설이 주는 흥미는 작품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도 모방하고픈 사례들의 제시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허영심 많은 여성들에게 습게 빠져들게 하는 매력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것은 역시 여류 작가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6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작가의 작품-쥰세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남성 작가의 소설-이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독후감을 쓰는 지금 알게 됐다. 도서관에 들러 우연히-책을 읽은 지는 한달 반 정도 지난-책을 뒤적이던 중 <2권>이라는 출판관련 기록이 적힌 페이지를 열람하던 중 알게 되고 아랫칸에서 급히 파란색 표지로 된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급기야 찾아낸다.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 미미한 쥰세이의 캐릭터에 대한 의문이 자동스레 풀리게 되고 이 독후감은 여기에서 마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