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뉴욕의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Cho Slade Architecture)’와 서울의 ‘매스 스터디스(Mass studies)’는 각각 어떻게 운영하는지? 조민석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는 컬럼비아 건축 대학원 동기였던 제임스 슬레이드와 파트너십으로 설립한 소규모의 설계 사무소다. 1998년 뉴욕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서 시작했는데 내가 99년부터 경기 대학교 건축 대학원 겸임 교수로 서울을 빈번히 찾게 되면서 한국에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전체 구성원은 여덟 명으로 서울과 뉴욕에 각각 네 명씩 흩어져 있었는데 지난해 말 제임스와 나는 각기 별개의 사무실을 운영하기로 동의, 제임스는 뉴욕에서 독자적으로 ‘슬레이드 아키텍처’를 내고 나는 두 달 전 서울에서 매스 스터디스를 열었다. 물론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는 그대로 존재한다. 다만 뉴욕과 서울 사이의 어딘가에 부유하면서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선택적으로 구성되는 떠돌이 게릴라식의 조직이다. 다른 소규모 사무실과 더불어 기생하면서 뭉쳤다가 흩어지는 식이다.
maison 굳이 별도의 사무실을 가질 필요가 있었나?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의 이름으로 서울과 뉴욕 사무실을 두는 게 더 유리할 것 같은데…. 조민석 건축이 손쉽게 프랜차이즈 사업처럼 되는 게 싫었다. 각자의 색깔을 살리면서 필요에 따라 협력 관계를 이루는 것이 더욱 이상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maison 앞에서 선보인 ‘호크하우저 레지던스’를 비롯해 뉴욕에서 작업한 네 채의 아파트 프로젝트가 특히 관심이 간다. 모두 주거 공간이고 리노베이션인 만큼 일반적인 건축 작업과는 접근 방식부터 달랐을 텐데…. 조민석 네 채의 뉴욕 아파트는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의 지난 5년간의 활동 중에서 가장 맨해튼적인 성격이 강하면서도 소박한 소규모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네 곳 모두 사무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다운타운에 위치했던 터라 지역색이 뚜렷했고 네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들이 이래저래 우리와 혹은 그들끼리 친구 관계로 얽혀 있어 개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일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는 농담으로 우리와 클라이언트들이 정신과 의사와 이들에게 돈을 주고 모든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환자의 관계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건축가에게 자신의 집 설계를 의뢰하고 나면 설계를 위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모두 털어놔야 하니까. 서로 친밀감이 쌓이면서 작업은 더욱 즐거웠는데 특히 이 네 곳은 클라이언트와 마음이 맞아 설계는 물론 가구와 소품, 벽에 거는 그림까지 우리가 모두 코디네이션했고 일부 가구는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또한 이 네 곳은 모두 오래된 건물이라 작업은 까다로웠지만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사실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는 건축가는 고고학자와도 같다. 철거를 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수없이 만나게 되는데 많은 경우 현장에서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므로 건축가는 오랜 시간 폐허 같은 먼지 구덩이에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교환한다.
maison 이력을 보니 컬럼비아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를 열기 전까지 뉴욕은 물론 네덜란드에서도 3년 정도 일을 했는데 그곳까지 간 이유는? 조민석 워낙 여행을 좋아한다. 일 때문에도 여러 나라를 다니지만 네덜란드행은 다른 문화권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러 택한 길이었다.
maison 지금은 전업해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친형인 조윤석(상상력 개발 연구소 소장)도 건축을 전공했고 아버지도 건축가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두 사람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조민석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버지가 하는 일을 어깨너머로 보면서부터다. 하지만 형이나 아버지 누구도 권유한 적은 없었다. 그전엔 미술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 건축은 미술과 마찬가지로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면서 동시에 스케일이 큰 종합적인 일이라는 데에 끌렸다. 원래 좀 개인적인 사람이다 보니 작업 과정에서 혼자 몰두해야 하는 미술에 비해 많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maison 대한민국 건축 대전 특선을 비롯해 일본 신건축 국제 도시 주거 현상 공모 1등 당선, 미국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 우수상, 미국 젊은 건축가상 등 수상 경력이 매우 화려하다. 조민석 꾸준히 많은 작업을 해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소규모의 작은 주택에서 거대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많은 작업을 해왔고 그 작업들이 여러 곳에서 전시되고 또 많은 매체에 소개된 덕분인 것 같다.
maison 건축 혹은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조민석 먼저 특정한 프로젝트에 관해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것. 이 세상은 이미 흥미롭게 디자인되었거나 또는 디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의 과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디자이너가 나서지 말아야 할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디자이너로서 새로움의 ‘발명’보다는 이미 있는 조건들의 ‘발견’을 통해 선택, 삭제, 편집하는 것이 더욱 지혜롭고 유용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부연하자면 이미 있는 달을 복제, 모사하는 것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에 관심이 있다. 물론 드물게 가끔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가리킬 달이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때는 그럴싸한 가짜 혹성이라도 발명해서 띄워 놓아야겠지만.
maison 이제껏 설계한 작품들을 보면 하나가 아닌 두 개의 크레디트를 갖고 있는 게 많다. 공동 작업을 추구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조민석 따지고 보면 모든 건축 프로젝트는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다른 회사와 컨소시엄을 이루는 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오히려 혼자서 건물 설계를 모두 해보겠다는 게 유별난 일이 아닐까. 나의 회사는 정규군이 아닌 소규모 게릴라식 조직이었기 때문에 공동 작업이 더욱 필요했고 이러한 작업 방식 덕분에 적은 자본으로도 서울, 뉴욕을 오가며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maison 즐겨 쓰는 소재나 컬러는? 조민석 자연적인 소재나 인공적인 소재, 컬러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좋아한다.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전체’를 만드는지에 관한 것이다.
maison 몇몇 작업에서 유기적인 형태와 독특한 재료 선택에 심혈을 기울인 것을 엿볼 수 있는데 디자인의 특징을 꼽는다면? 조민석 규정짓지 않고 열어 놓고 싶다. 해면 조직처럼 무작위로 누구든지 어느 방향에서도 접근, 흡입 가능하며 무한한 가짓수의 독해가 가능한 메마르지 않은 풍성한 작업이었으면 좋겠다.
maison 좋아하는 건축가는? 조민석 김수근과 렘 쿨하스. 김수근은 안타깝게도 생전에 못 뵈어서 더욱 신화 속의 인물처럼 좋아한다. 그리고 렘 쿨하스는 3년 동안 함께 일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8년째 즐겁게 알고 지내는, 나에게는 큰 스승이지만 동시에 쿨한 친구 같기도 한 사람이다.
maison 건축가로서 장점을 꼽으라면? 조민석 지금까지 세 개의 대륙에서 살아오면서 생존 방식으로 익힌 ‘유연성’이 나의 건축에도 장점으로 이용되었으면 좋겠다. ‘A 또는 B’의 사고 방식에서 전환한 ‘A 그리고 B’의 사고 방식이 내가 지닌 유연성의 근간이다. 이러한 사고는 모순돼 보이는 많은 것들을 공존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내가 가지고 있는 모순들의 크기에 비례한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폭이 작업에서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는 나의 장점이라기보다는 장점에 관한 현재의 희망 사항이다.
maison 이제껏 작업했던 공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조민석 아직까지 변변하게 내세우고 싶은 것이 없다. 오히려 계획안으로 그치고 지어지지 못한 것들에 더 애착이 간다. 또한 현재 한국에 지어지고 있는 건물들에 기대한다.
maison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조민석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에서 설계한 헤이리의 ‘픽셀 하우스’와 가아 건축과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가 공동 작업한 ‘딸기 테마 파크’가 현재 공사 중이고 매스 스터디스에서 설계한 청담동 ‘예치과’가 이제 곧 문을 연다. 그리고 4월 중순에는 뉴욕 모마(Museum of Modern Art)와 자매 미술관인 PS1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YAP(Young Architects Program)’ 설계 경기에 참여해야 한다. 해마다 젊은 건축가 다섯 팀을 초청해 경연을 펼치는 이 행사는 올해 다섯 번째로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가 참가 요청을 받았다. 주제는 올 여름 내내 PS1 미술관의 옥외 전시장에서 펼쳐질 ‘웜 업(Warm Up)’이라는 이름의 테크노 뮤직 파티를 위한 옥외 구조물에 관한 것이다. 레이브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세계적인 디제이들이 9주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음악을 들려주는데 보통 5천 명에서 7천 명까지 모이는 큰 행사다. 채택이 되든 안 되든 초청된 다섯 팀의 설계안은 모마에서 행사 기간 중 전시회를 갖는다. 또 6월에는 맨해튼의 건축 전문 갤러리인 밴 앨런 인스티튜트에서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와 이화 여대 김광수 교수가 함께 작업한 ‘충무로 활력 연구소’가 ‘공공 공간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이라는 주제의 전시에 참여하게 된다.
maison 앞으로 10년 안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조민석 이제껏 작업했던 공간 중 마음에 드는 게 있냐는 앞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몇 가지를 해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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