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무척이나 답답했다.
시골 텃밭이 걱정이 되는데도 서울에서 머물자니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농사철을 자꾸만 놓치기 때문이다.
재배작물은 흙이 오랜 가뭄으로 밭작물의 피해가 상당하다고 한다.
메말라서 시들고 죽어가는데도 잡초는 오히려 더 잘 자라서 씨앗을 영글며, 씨앗을 쏟아내고 있는 때다.
재배기술 부족과 바쁘다는 핑계와 구실로 작물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내가 죽인 나무와 풀의 숫자가 얼마쯤 될까 하면서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50여 개쯤으로 예상했는데 160개를 넘어섰다.
시골 장, 서울 양재동 꽃시장, 성남 모란시장, 보령, 서천 등지의 농장에서 사다가 심었던 식물이 많았다는 증거다.
아쉽게도 어머니 병원 입원 이유로 몇 년간 텃밭을 돌보지 않았던 탓이다.
텃밭은 도로 풀밭이 되었으며, 풀한테 생존경쟁엑서 진 어린 묘목이나 키 작은 화초들은 금세 사라졌다.
내가 아는 식물 이름은 몇 개쯤 될까?
내가 다른 곳에서 보았던 식물 이름은 60개를 넘겼다.
텃밭에 남은 나무와 화초, 잡초 이름은 240개를 넘어섰다.
여기에 내가 죽인 170종의 이름을 보탰다.
서울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적어도 이쯤이나 되니 현지에 내려가서 눈으로 직접 보면 더욱 많을 게다.
앞으로도 조사하면 내가 아는 식물 이름은 총 500개나 될 듯싶다.
나는 촌태생이었다.
어린시절에는 대전에서,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았는데도 식물 이름을 제법 안다는 뜻도 되겠다. 식물도감 등을 펼치면 더 많이 적을 것 같다.
텃밭 농사를 짓는 나.
텃밭 속에 작물뿐만 아니라 잡목 잡초 등240여 종이나 함께 있으니 나는 엉터리 농사꾼이다.
내 명함에는 '풀씨농장'이란 상호가 있다. 이게 부끄러워서 남한테 명함을 건네주기를 꺼려했다.
어제 밤에 텃밭 속에 있는식물 이름을 확인하고는 나는 빙그레 웃었다.
'풀씨농장'답게 풀이 가듣찼으니, 씁쓸한 웃음이다.
그간 나는 딱딱한 공문 언어와 영어, 사회언어에 길들여지면서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도 잊어버렸다.
농업과 무관한 직장 생활을 살다가 퇴직한 뒤에서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로 내려가 몇 년간 살았다. 시골 문화에 길들여지면서 농촌생활과 연관된 말도 기억하기 시작했다.
2.
문학카페에서도 한자어를 지나치게 많이 쓴다는 느낌이다.
우리말인 '웃음'은 한자어인 '미소'로, '꽃냄새'는 '향기'로 쓴다.
'미소', '향기'는 한자말이다. '미소, 향기'를 한글로 썼어도 본질은 한자말이다.
'점심밥을 먹은 후'는 '점심밥을 먹은 뒤'로 쓰면 좋은 것이다.
한자어가 토종 우리말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결과다.
어디 이뿐이랴?
영어와 영어 약자도 넘친다.
쉰 살까지 영어공부를 했던 나도 모르는 약자가 수두룩하다.
퇴직한 뒤 만 9개월인 지금은 더욱 내가 어둔해졌다. 어려운 말과 뜻을 알 수 없는 말과 글이 넘친다.
우리말을 어색하게 변질하는 신문, TVㅣ 으뜸일 것 같다.
2017. 6. 14. 오늘 아침 조간신문 제1면을 훑어보니 온통 한자어말과 요상한 외래어로 가득 차 있었다.
한자어를 한글로 썼지만 본질은 한자단어이고, 우리말은 한자어 뒤에 붙는 토씨(조사)에 불과했다.
신문기자들이 한자어를 정말로 많이 쓴다는 사실에 이제는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유식한 사람들이 많고,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하나의 예다.
'어대홍'과 '대결원'.
자유한국당 당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리나 보다.
'어대홍'은 '어차피 대표는 홍준표'이고, '대결원'은 '대표는 결국 원유철'이란다.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정말로 유식한 사람들일다? 이런 유식은 비웃음만 산다.
어디 이 기관뿐이랴?
국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도 크게 한몫한다.
퇴직한 뒤 만 9년이 넘어 10년째로 접어드는 지금은 나는 어둔한 사람이 되었다.
하도 안 써서 사라지는 우리말을 제대로 모르고, 신세대들이 쓰는 신조어조차도 어둔하기에...
시골에서는 TV는 밤 아홉시 55분의 일기예보 때에만 잠깐 본다.
다음날 농사 짓는데 필요한 날씨 상태를 알아야 하기에.
신문 없고, 컴퓨터도 없는 산골에서 세상 등지고 살다가 서울 오면 나는 잠깐이라도 머저리가 된다.
어려운 말이 넘쳐나기에...
3.
내가 아는 단어는 몇 개쯤 될까?
5만 개는 되지 않을까 추정한 때도 있었다.
여기네는 영어 등 외국 단어도 포함한 숫자이다.
이 가운데 내가 아는 진짜 우리말은 몇 개나 될까?
요즘 사이버 카페에서 많은 단어를 본다.
현란한 한자어, 외국어, 외래어, 신조어, 요상한 말 장난에 우리 토속어는 자꾸만 밀렸다.
지난해 봄과 여름철에는 고향 산소를 이장하면서 비석 십여 개를 한 군데로 집중시켰다.
나는 빗돌의 한자를 읽을 재간이 없다. 한자옥편을 펴들지 않는 한 나한테는 빗돌에 새긴 문자는 그냥 그림에 불과했다. 이해불능의 그림문자.
나는 1956년에 우리글(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뒤로 60년 째 책을 본다.
제발 좀 쉬운 우리말과 우리글로 문화생활을 했으면 싶다.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서 큰딸내외가 영어와 인도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내가 인도사위한테 물었다.
'지금 나한테 욕하는 거여? 나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겠네.'
인도사위가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큰 눈만 꺼먹거렸다.
'지금 나를 흉 보는 거여?'라고 내가 덧붙였다.
'에이, 아버지도... 쉽게끔 말해요. 이 사람 알아듣지 못해요.'
라면서 큰딸이 나를 살짝 꼬집었다.
글 줄이자.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기 쉬운 우리글(한글)로 바르게 많이 써야겠다.'
사라져가는 생활의 말도 되살려서 쓰고 싶다.
하나의 예다.'
농촌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내가 아는 식물 이름은 450 ~500개. 이보다 더 많이 알아야겠다.
어디 식물뿐이랴? 샐활과 문화 곳곳에 들어있는 말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나한테 힘이 들었던 몇 년간의 일도 얼추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여행 다니며, 이런저런 곳의 삶도 눈여겨 보아야겠다.
주머니가 자꾸만 가벼워지고, 무릎도 아프고 등허리도 굽어지는데도 억지라도 길 떠나고 싶다.
'세상사는 이야기'가 더욱 맛이 들기를 바라며...
2017. 6. 14. 수요일.
지난해 8뤌 말에 거둬들인 호박를 부엌칼로 껍질 벗기다가 손가락 한 개를 살짝 베었더니만 컴퓨터 자판기를 누르는 게 영 서툴다. 오탈자가 많이 생긴다.
글 다듬자고 남한테 말하기도 지친다.
나도 숱하게 틀리기에...
첫댓글 우리말 사랑 강조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고유한 우리말을 다듬어서 써야겠지요.
문학카페이기에 더욱 우리말과 우리글을 깔끔하게 써야겠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잘보고 느끼며 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