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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침탈의 실상 스크랩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7)
天風道人 추천 0 조회 39 13.08.21 16: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7)
 
안창범 교수
Ⅲ. 공리주의의 모순과 삼신일체의 사상

1. 공리주의란 어떤 사상인가?

공리주의(功利主義 : Utilitarianism)는 영국 고전경험론의 창시자 베이콘(Francis Bacon : 1561-1626)에 의해 이미 그러한 경향이 보였으나, 흄(David Hume : 1711-1776)과 벤담(Jeremy Bentham : 1748-1832)에 이르러 그 이론이 거의 체계화되었다.

흄은 인간의 성질 가운데 덕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을 모두 골라내어 왜 덕(德)으로 간주하는가의 이유를 고찰한 결과 그것은 사람들에게 쾌락(快樂)을 주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모든 덕성 가운데서 인애(仁愛 : benevolence)와 정의(正義 : Justice)를 사회적 덕성 가운데 제일로 들었다. 그 이유를 행위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행복과 기쁨을 주고 사회의 안녕 질서유지에 기여하는 등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벤담은 1789년에 간행한 그의 저서 『도덕 및 입법의 제원리에 관한 서론(道德 및 立法의 諸原理에 관한 序論) ;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에서 “공리(功利)라 함은 사람들에게 이익(利益)?편익(便益)?쾌락(快樂)?복리(福利)?행복(幸福)을 증진시키고, 손해(損害)?고통(苦痛)?재해(災害)?불행(不幸)의 발생을 방지해주는 모든 행위의 특성을 지칭한다”하고, 개인의 행위이건, 정부의 시책이건, 그것들이 사회의 이익 곧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이 있으면, 공리의 원칙에 부합되는 것이고,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으면 이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벤담은 또 공리의 원리 외에 자기선택의 원리(自己選擇의 原理 ; the self - preference principle)라는 것을 제시했다. 자기선택의 원리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하는 모든 행위에 있어서 그가 처한 순간과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최대한으로 자신의 최대 행복에 도움이 될 행동방식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벤담의 두 가지 원리 곧 공리주의 원리(최대행복의 원리P와 자기선택의 원리에 입각하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을 추구하는 것이 오늘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및 자본주의의 원리가 되고, 정치?경제의 목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공리주의에는 어떠한 모순이 있고, 거기에 대한 대체사상은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2. 행복주의의 모순과 삼신일체의 사상

공리주의는 최대의 즐거움과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행복주의(eudaemonesm)는 공리주의의 기본철학이다. 그러면 행복주의는 어떠한 사상인가? 행복주의란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선(善)이고,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즐거움과 행복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행복이라면 인격의 완성보다도 물질적 사회생활의 풍요와 쾌감 내지 쾌락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곧 행복주의의 목적은 인격완성보다 쾌락을 즐기는 것이며, 성인군자(聖人君子)가 되거나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보다 돈과 재화가 많은 부호(富豪)가 되는 것이며, 윤리도덕이 건전한 도덕사회 건설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부국사회건설이다.

그래서 공리주의 사상에는 인격도야를 위한 특별한 수행방법이 없다. 이로 인해 사회가 풍요해질수록 사람들은 쾌락생활에 빠질 우려가 많고, 윤리도덕이 해이되어 사회는 더욱더 타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천지인일체(天地人一體) 사상인 삼신일체(三神一體) 사상은 형이상학(形而上學) 내지 형이하학(形而下學)의 모든 사상과 학문을 포용하고 그 일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삼신일체는 어느 하나만을 지향하지 않고 상대관계를 모두 포용하고 그 균형을 지향한다. 그래서 인격교육은 지덕체(智德體) 내지 지인용(智仁勇)과 지정의(知情意)의 균형교육과 아울러 조식법(調息法)?지감법(止感法)?금촉법(禁觸法)을 동시에 수련하여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의 인격완성을 목표로 하고, 학교교육은 정신교육과 인문사회교육 그리고 과학기술교육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지향하거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균형있게 교육하고 그 완전을 지향한다. 그래서 사회는 물질적 풍요와 아울러 윤리도덕이 건전한 홍익인간 광명세계를 지향하게 된다.

3. 개인주의의 모순과 삼신일체의 사상

벤담이 주장한 자기선택의 원리는 개인주의이다. 개인주의는 국가나 사회 등 전체보다는 개인의 가치와 의의를 더욱 중요시하고 우선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즉 개인주의는 개인에 대한 국가의 우월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는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권위주의를 부정하고 개인의 권리?가치?자유를 보장하고 옹호하는 기능을 한다.

반면에 개인주의에 의하면 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외적(外敵)의 방어, 국내의 치안유지 등 야경국가(夜警國家)에 지나지 않게 된다. 곧 개인주의에 의하면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최대로 보장되고, 국가의 역할과 기능은 최소로 제한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소유권 보장과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른 약육강식을 국가권력이 보장하는 격이 되고,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의 현상은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된다.

개인주의의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등장한 개념이 복지국가와 사회국가 내지 행정국가 개념이며 사회보장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근로의 의무를 보장하는 등 노동 경제정책을 국가적으로 강화하고 시행하고 있으나 오늘날도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과 노사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대체사상은 어떠한 사상인가의 문제이다.

삼신일체(三神一體)는 천지인일체(天地人一體)를 의미한다. 이를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면, 천지인일체는 상중하(上中下)의 일체, 대중소(大中小)의 일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삼신일체의 논리에 의하면, 빈부귀천(貧富貴賤)이 따로 없고, 사용자와 노동자가 따로 없다. 곧 이들은 일체인 것이다. 사용자가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사용자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용자도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자 같이 임금을 받고, 노동자도 때로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사용자의 역할과 책임을 지고 회사경영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기쁨과 괴로움을 사용자와 노동자가 함께 누려야 한다는 사상이 삼신일체 사상인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사용자는 노동자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노동자는 사용자의 책임과 고통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노사간의 갈등도 없어지고,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도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 아닌가 한다.

Ⅳ. 실용주의의 모순과 삼신일체의 사상

1. 실용주의란 어떤 사상인가?

실용주의는 프래그마티즘(Pragmatism)의 번역어로서 미국의 철학자 퍼어스(C. S. Peirce ; 1839-1914)와 제임스(W. James ; 1842-1910) 등에 의해 창시되고, 듀이(J. Dewey ; 1859-1952)에 이르러 좀더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새로운 철학사조이다.

프래그마티즘의 연원을 찾아 올라가면, 그 어원이 실행?실험?사무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Pragmata에 있듯이, 프래그마티즘은 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자의 사상에 이미 보이고, 영국의 흄(D. Hume)과 독일의 칸트(I. Kant)의 사상에 이르러 분명히 나타난다.

퍼어스는 특히 칸트의 실천이성(實踐理性) 우위의 영향을 받아 경험본위와 결과주의를 주장한다. 즉 원인보다도 결과를, 사유보다도 행위를 훨씬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퍼어스의 뒤를 이은 제임스 역시 원리나 필연성보다도 결과?성과?사실 등을 더 중요시한다. 따라서 진리도 선험적 보편타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실천이나 실험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제임스가 주장하는 프래그마티즘은 과학지상주의(科學至上主義) 입장이다. 듀이는 퍼어스와 제임스의 입장을 종합하고, 때로는 절충하여 철학분야뿐만 아니라, 윤리?교육?예술?정치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듀이의 프래그마티즘은 이를 요약하여 도구주의(instrumentlism) 또는 실험주의(experimentalism)라 부른다. 진리?이론?관념?개념 등의 정신내용은 현실적 활동의 도구라는 것이다. 도구(道具)는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좋은 결과는 좋은 도구를 써야만 얻어진다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해 말하면, 프래그마티즘은 정신생활보다도 물질생활을 더 선호하고, 원인보다도 결과(성과)를 더욱 중요시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2. 성과주의의 모순과 삼신일체의 사상

성과주의는 원인이나 동기보다도 오늘의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곧, 오늘의 성과가 훌륭하면 과거의 비행같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시행착오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집착하지도 말고 거기에 대해 크게 비난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논리같이 들린다. 그러나 사회가 이기화될 때, 사람들은 그러한 이론을 제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성과주의는 제 비행을 은폐하는 논리로 응용된다.

곧 과거에 돈을 벌 때, 밀수를 했건, 살인을 했건, 강도질을 했건, 오늘날 부자가 되어 국가사회에 공을 세우고, 국민을 잘 살게 했다면, 과거를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국가권력을 잡아 국가경제를 부흥시키고, 국민을 잘 살게 했다면, 과거에 친일행위를 했건, 반역행위를 했건, 쿠데타를 했건, 크게 문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밀수를 하고 부도를 내어 국가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하더라도 언제인가 성공하여 국가사회에 기여하게 되면 오늘의 죄는 모두 면제될 수 있다는 사고를 가지게 된다. 곧 실패하면 역적이요, 성공하면 애국자가 된다는 논리이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를 국민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친일파의 돈이든, 반역자의 돈이든, 강도의 돈이든, 도적의 돈이든, 곧 부당한 돈이라도 많이 받고 부자만 되게 해주면 된다는 논리인 것이다. 『논어(論語)』에 “불의한 부귀영화는 나에게 든 구름과 같으니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어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느니라” 한 그 말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이를 법적으로 해석하면 온 국민은 장물죄(臟物罪)를 범해도 좋다는 것이다. 장물죄란 도덕적 법률적으로 위배되는 사물 곧 부당한 물건(예컨대, 절도한 물건)을 알선?취득?보관?양여?판매 등의 행위를 한 범죄를 말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국민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의 모두 장물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우리나라에는 죄를 안 지은 사람이 없고, 전체국민이 썩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국가와 사회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

도구주의(道具主義)는 진리?이론?관념?개념 등 정신활동이 좋아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으로 성과주의보다는 한층 진보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도구주의의 정신활동은 결과를 목적으로 하며, 정신활동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구주의 역시 어느 한족에만 치우친 사상으로서 성과주의와 다름없는 사상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요약해 말하면, 성과주의와 도구주의는 원인보다도 결과를 더 중요시하고, 정신적인 가치보다도 물질적인 가치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정신교육보다도 과학기술교육을, 윤리교육보다도 경제사회교육을 더 치중케 된다. 곧 선량하고 진실한 사람보다도 재치있는 수단꾼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므로써 성과주의 사회는 겉으로는 명랑하고 풍요롭게 보이나 속으로는 사기 음해 모략 협잡 공갈 등 병든 사회가 된다. 곧 성과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가져오고, 드디어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사회를 초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종교도 철학도 사상도 없는 무법천지가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에 반하여 삼신일체는 천지인일체(天地人一體)이다. 천(天)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측면을 의미하고, 지(地)는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측면을 의미하며, 인(人)은 그 중도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삼신일체의 논리에 의하면, 물질적인 측면면을 선호하고, 정신적인 측면을 무시하지 않으며, 반대로 정신적인 측면만을 중요시하고 물질적인 측면을 무시하지 않는다. 곧 삼신일체는 정신적인 측면과 물질적인 측면 그리고 중도적인 측면 등 모두를 중요시한다. 실용주의 같이 어느 하나의 측면만을 선호하거나 중요시하지 않는다. 전체의 완전과 균형을 추구한다. 정신지상주의인가 하면, 과학지상주의이고, 사회과학지상주의이다.

또한 천일(天一)?지일(地一)?인일(人一)의 삼신일체(三神一體)는 과거?현재?미래의 일체를 의미한다. 곧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모두 중요시한다. 과거는 현재를 낳고 현재는 미래를 낳으며, 원인이 과정을, 과정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인과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삼신일체는 원인과 동기, 과정과 진행, 결과와 성과를 모두 중요시한다. 모두가 완전하여 거기에 어떠한 흠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삼신일체는 성과주의나 도구주의의 모순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3. 세계화 내지 국익주의의 모순과 삼신일체 사상

실용주의(實用主義)는 경제지상주의로서 공리주의 내지 기독교의 세계주의 사상과 결부될 때,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국익주의(國益主義;국가이기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세계화는 모든 국가와 민족이 국경과 민족적 장벽을 초월하여 세계일가를 형성하고 하나로 통합하여 다 같이 행복을 누리고 평등하게 살자는 것이다.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하는 인종차별을 없애고,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 이데올로기도 하나로 통합되어야 하며, 불교 유교 회교 기독교 등 종교도 하나로 통합되고, 모든 생활관습과 문화도 하나로 통합되어 오로지 세계는 하나라는 일가를 형성하여 모든 민족이 다함께 같이 살자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경제는 자유시장경제, 종교는 기독교, 문화는 서구문화, 언어는 영어(미어)로 통일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시장을 개방하고 관세장벽을 해제하여 공산품과 농산물 그리고 생필품 등 물질적 교류를 같은 조건하에 서로 나누고, 관광과 스포츠, 영화와 오락 등 문화적 교류를 똑같은 조건하에 함께 이행하면서 즐기자는 것이다. 얼핏 생각할 때, 실로 세계화는 참으로 훌륭한 사상 같이 보인다.

그러나 세계화의 결함을 지적하면, 첫째, 세계화는 민족주의의 반대개념으로서 민족적 주체의식과 독립의식을 부정하여 이를 해이시키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는 부정과 비리가 만연할 수밖에 없고, 어느 개인이 국가의 재산을 팔아먹어도 국민은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둘째, 세계화는 각 민족의 문화와 사상과 전통을 무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인체에 비유하면, 오장육부의 역할과 기능이 원래 각각 다르고 달라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모두가 똑같은 역할과 기능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발상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체의 기능은 마비되어 사람은 죽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각 민족의 문화와 사상과 전통을 무시할 경우, 세계문화는 마비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국익주의는 세계화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즉 모든 국가는 제 능력에 따랄 국가적 민족적 이익을 추구하자는 사상이다. 그런데 국가마다 영토의 크기와 자연조건이 다르고, 과학기술의 발전정도에 따라 생산비에 굉장한 차이가 있다. 민족도 한대민족?열대민족?온대민족에 따라 왜소한 민족이 있는가 하면 건장한 민족이 잇고, 적극적인 민족이 있는가 하면 소극적인 민족이 있다. 이에 따라 문화적 전통과 사상에 있어서도 굉장한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세계화와 국익주의를 아울러 생각해보자. 똑같은 조건하에 모든 국가와 민족이 자유 경쟁하면서 제 나라와 제 민족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세계경제는 강대국에 유리하고, 약소국에 불리하게 진행될 것이다. 예컨대, 약소국은 자유시장경제를 취하는데, 강대국은 보호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약소국은 핵무기 개발을 억제 당하고, 강대국은 핵무기 개발을 자유스럽게 해도 약소국은 거기에 대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결국 국제사회는 무한경쟁 속에 약육강식의 사회가 될 것이다. 곧 약소국과 약소민족은 강대국의 밥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것은 한갓 권모술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서 약소국의 국민은 세계화 바람에 민족의식과 애국심이 해이되어 유흥과 관광을 위한 해외여행과 호의호식을 위한 외제 수입, 비상시를 위한 해외재산도피 등으로 외화누출이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약소국과 약소민족의 자금은 강대국과 강대민족에게로 급속히 몰리어 강대국과 강대민족은 더욱더 호황을 누리게 되고, 약소국과 약소민족은 더욱더 빈곤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약소국의 산업과 광산, 항만과 철도, 관광도서(觀光島嶼)와 임야(林野) 등 국가기간 산업과 영토는 강대국의 자본가에게 팔리어 결국 약소국가와 약소민족은 완전히 해체되어 지구상에서 그 이름이 없어지고, 문화와 사상도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화와 국익주의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화와 국익주의의 이면에는 세계지배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를 생각하면, 국익주의 정책을 취하는 미국이 세계화를 주장함은 일종의 사기극인 속임수라 할 수 있고, 미국은 신판 제국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약소국가는 극히 경계해야 할 국가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화는 과학기술과 자본의 세계화를 의미하는가 하면, 국익주의는 거기에 대한 대가(代價)를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약소국은 한 때 강대국의 과학기술과 공산품 그리고 농산물과 생필품을 수입하여 국가 경제를 부유케 할 수 있으나, 드디어 그 대가를 지불하지 못할 때, 강대국(IMF)의 지배를 받게 되거나, 광산 항만 도서(島嶼) 등을 강대국에조차(租借)하거나 부도처리 곧 채무로 차압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는 서구화 내지 기독교화를 의미하므로 약소국의 문화와 사상은 서구화 내지 기독교화되어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그 국가는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세계화와 국익주의 이면에는 그러한 위험이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삼신일체의 天一은 한대민족, 地一은 열대민족, 人一은 온대민족을 의미한다. 따라서 삼신일체는 만민일체(萬民一體) 사상이며, 세계동포주의(世界同胞主義) 사상이다. 곧 지구상의 인류는 삼신일체 하나님의 가호에 의해서 태어나고 자란 형제이며 동포로서 세계의 자본과 부(富)를 강대국이 독점할 것이 아니라 약소국과 고루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약소민족의 괴로움이 강대민족의 괴로움이며, 강대민족의 즐거움이 약소민족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삼신일체 사상은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가족주의의 일체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삼신일체사상은 국익주의와 세계화의 모순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이론을 성립시킨다.



Ⅴ. 끝을 맺으면서

1. 세계평화의 길



본서에서 전개한 이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오늘날 세계분쟁과 사회악의 근본원인은 세계 각 민족(국민)의 민족적 전통 내지 신분과 신앙의 부적합에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앙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세계의 모든 국가와 민족은 아무리 원시적인 종교라 하더라도 제 나라 제 민족의 종교를 신앙하고, 제 나라 제 민족의 국조신(國祖神) 내지 호국신(護國神)을 숭배함과 동시에 온 인류와 더불어 온 생명체가 숭배해야 하는 하늘님(하나님)과 제 가족에 국한된 조상신을 다 함께 숭배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곧 황인종은 황인종의 종교를 신앙해야 하고, 백인종은 백인종의 종교를 신앙해야 하며, 흑인종은 흑인종의 종교를 신앙함과 동시에 거기에 더하여 온 인류가 공동으로 섬기는 보편타당한 하늘님과 제 가족에 국한된 조상신을 함께 숭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도인은 힌두교를, 유대인은 유대교를, 영국인은 성공회를, 일본인은 신도(神道)를, 한국인은 신선도(단군교)를 신앙함과 동시에 온 인류가 섬기고 숭배해야 할 하늘님과 제 가족에 국한된 조상신을 숭배해야 하고, 다른 민족의 종교를 수입하거나 신앙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좋으나 궂으나 제 부모조상을 섬기듯, 제 민족의 사상을 지니고, 제 민족의 국조신(國祖神) 내지 호국신(護國神)을 숭배함과 동시에 하늘님과 조상신을 숭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 나라와 제 민족의 사상과 문화의 발전을 위해 다른 민족의 사상과 문화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고, 그 좋은 점을 취할 수는 있으나, 제 민족의 신앙과 대체하기 위해 다른 민족의 신앙을 수입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곧 다른 민족의 민족신 숭배와 성인 숭배 내지 교조 숭배까지 수입한다면, 그로 인해 얻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민족혼을 송두리체 잃게 되어 국가는 멸망하고 그 민족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전쟁과 부정부패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다른 민족의 종교를 신앙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러한 민족은 불원간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예언할 수 있다.

둘째, 기독교?이슬람교?불교?유교?도교?창가학회?원불교?대종교 등 모든 종교 당국은 제 나라에서 제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까지 제 종교를 수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민족에 대한 정신적 사상적 침략행위이기 때문이다.

부득이 어느 종교가 다른 나라로 전파될 경우, 교육적으로 가치있는 경전내용만을 수출하고, 여호와, 예수, 알라, 마호멧, 석가모니, 공자, 노자, 단군, 증산 등 민족신 숭배와 성인숭배 내지 교조숭배 등 숭배행위를 수출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도 민족과 인류의 복지에 있는 것이며, 귀신숭배와 성인숭배 내지 교조숭배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 종교의 교조 동상 내지 성인의 동상을 만들어 다른 나라의 땅에서, 다른 나라의 건물중앙에 안치하여, 다른 민족(국민)에게 숭배하게 함은 종교창설의 근본목적에 위배되고, 종교창설자가 바라는 바도 아니며, 더욱이 다른 민족의 호국신 내지 민족신의 권한을 무시하고 침략하는 행위로서 다른 민족에 대한 정신적 신앙침략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숭배의 대상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 세우고 다른 민족에게 숭배하게 함은 절대 금물인 것이다.

셋째, 장차 외국학자들이 우리민족의 사상과 종교를 연구하고, 우리민족의 신선도가 외국으로 전파될 것이 예상된다. 이 경우, 신선도의 신앙대상인 삼신(三神) 신앙은 어떻게 수출되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삼신(三神)이란 일반적으로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우리민족의 삼성(三聖)인 한인천제와 한웅천황과 한검단군을 의미하기도 하며, 우주신인 한늘님(한인), 한울님(한웅), 한얼님(한검)을 의미하기도 하고, 한늘님인 천신(天神)과 호국신인 지신(地神)과 조상신인 인신(人神)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경우 후자의 삼신신앙은 상호보완관계임을 본서의 제2편에서 상설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이던 삼신(三神)을 제 민족의 입장에서 해석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하여야 하고, 한인천제와 한웅천황과 한검단군의 삼성(三聖) 숭배는 우리민족에 국한된 신앙이며, 다른 민족까지 숭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민족의 삼성숭배까지 해외로 수출한다면, 그것은 오늘날 기성종교의 신앙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모순인 것이다. 후일 신선도를 외국으로 전도하는 사람은 명심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밖에 신선도의 경전인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은 그 내용에 국명?민족명?지명?인명 등이 일절 없고, 그밖에 어느 민족과도 관련된 내용이 없다. 곧, 본 경전의 내용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 경전은 그대로 다른 민족에 전파되어도 하등의 모순이 없다고 생각된다.

이상과 같이 본서에서 논한 바는 우리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우리사회 갱생(更生)의 길이며, 동시에 세계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세계평화의 길이라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언제인가는 그렇게 인정할 때가 오리라 확신한다.

돌아 보건대, 30대 중반까지 농업과 노동을 하던 만학도가 이 책을 개정 보완하면서 다시없는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책에 대한 반응도 좋거니와 불원간 우리민족에게 광명과 행운이 온다는 사실이 예상되고, 우리민족이 세계의 중심 민족이 되면서 세계의 석학들이 우리나라로 집중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독자들의 가족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면서 본 연구의 보급을 위해 많은 협조 있기를 부탁한다.

2. 신앙인에 대한 질의

결론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몇 가지 요약하여 질의한다. 신앙인의 진지한 반성이 있기를 기대한다.

1. (換父易祖) : 예컨대, 세계에서 가장 애국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유대교 당국은 제 민족에게 제 민족의 여호와神 하나만을 숭배하게 하고, 다른 민족의 神이거나 조상(성인)을 절대 숭배하지 못하게 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 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神과 다른 민족의 조상만을 숭배하도록 선전하고, 우리민족의 조상숭배를 무시하거나 금지한다. 이에 대하여 우리 나라의 신앙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2. (靈肉不一致敎育) : 유대교 당국은 교당 내에서 제 민족에게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고,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외래종교 당국은 교당 내에서 우리민족에게 다른 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않고, 심지어 억압하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3. (聖地와 聖民) : 유대교 당국은 제 민족에게 제 나라를 신앙의 성지라 가르치고, 제 민족을 세계의 중심민족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 가르친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오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에게 다른 나라를 신앙의 聖地라 가르치면서 우리 나라를 성지라 아니한다. 그리고 다른 민족을 聖民이라 하면서 우리민족을 성민이라 아니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4. (外來宗敎人의 信仰的 地位) : 외래종교인들도 법적 씨족적으로는 틀림없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적으로 한국인이라 할 수 있는가? 외국인이 아닌가? 이러한 비평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5. (外來宗敎人의 非愛國的 非民族的 性格) : 예컨대, 전쟁시 예수가 유대군대를 이끌고, 공자가 지나(支那) 군대를 이끌어 우리나라를 침략한다면,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과 주자학자들이 거기에 대항해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그 군대에 가담하여 우리 나라를 공격할 것인가? 이 때 자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6. (植民地 敎育과의 類似性)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우리민족의 고유종교를 유사종교니 사이비종교니 하면서 탄압하고, 한인?한웅?한검의 삼성을 모신 구월산(九月山)의 삼성사(三聖祠)를 헐어버렸다. 아울러 우리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억압하고 금지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 나라의 외래종교 당국 역시 우리 민족의 고유종교를 사이비종교 같이 무시하고, 한인?한웅?한검의 삼성을 섬기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떤 외래종교 당국은 우리민족의 단군성전 건립을 반대하고, 그 신자들은 단군좌상의 목을 자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신화라 부정하고, 우리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아니한다. 이와 같이 외래종교 당국의 종교정책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과 극히 유사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7. (民族의 同質性 回復) : 민족 통일의 지연과 각종 사회문제의 근본원인은 동족간의 이질성에도 있다. 그러므로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질성 회복을 위해 외래종교 신앙을 버리고 고유종교를 신앙할 의도는 없는가?

8. (새로운 宗敎의 硏究와 開拓) : 차세대의 과업은 민족문제와 종교문제, 세계문제와 환경문제, 윤리문제와 가치관 문제 등의 해결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종교는 과학적 합리적 포용적이어야 하고, 자연적 우주적이어야 하며, 윤리적 창조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기성 외래종교의 성격이 그러한가의 문제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종교를 연구하고 개척할 의도는 없는지? 내 개인의 안락보다도 전 민족과 온 인류를 위해 봉사할 의도는 없는지? 신앙인의 영적 세계에 대해 질의하면서 진지한 반성을 촉구한다.

3. 기독교측의 오해와 단군산 철거주장

우리 나라의 기독교인 중 일부 목자와 신도들이 불교 사찰을 방화하고 불상을 파괴하더니 근래에는 제 민족의 국조 단군왕검의 좌상을 파괴하고 철거를 주장한다. 그 이유를 보면,

첫째, 단군은 신화적인 가상 인물이며,

둘째, 단군숭배는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에 위배되고,

셋째, 단군숭배는 우상숭배이며,

넷째, 단군숭배는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군왕검의 좌상 파괴와 철거를 마치 애국행위같이 주장한다. 이제 그 행동과 주장의 모순에 대해 간단히 비판한다.

첫째, 단군왕검은 신화적 가상 인물인가? 아니면, 역사적 실존 인물인가? 하는 문제이다.

1) 우리 민족의 상고사에 대한 기록으로 신화같이 기록된 일연(一然) 스님의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있는가 하면, 실재 사실로서 기록된 안함노(安含老)와 원동중(元董仲)의 삼성기(三聖紀), 이암(李?)의 단군세기(檀君世紀), 북애(北崖)의 규원사화(揆園史話), 대야발(大野勃)의 단기고사(檀奇古史) 등의 사서(史書)가 있다.

원동중의 삼성기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6000년 전, 환국(桓國)의 말에 중앙 아시아 천산(天山) 환국(桓國) 서자부(庶子部)에 있던 한웅천황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으로 이동하여 개천입교(開天立敎)하고, 원주민인 웅족(熊族)과 호족(虎族) 중 웅족(熊族)의 여인(女人)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탄생하였다. 곧, 원동중의 『삼성기』에는 단군왕검을 역사적 실재 인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일연의『삼국유사』에는 한웅천황의 전거주지(前居住地)인 천산(天山)을 천(天)으로, 서자부(庶子部)를 서자(庶子)로,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웅호(熊虎)로 간략히 축소하여 우화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한웅천황은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아들로, 웅족의 여인은 곰으로, 단군왕검은 천자(天子)와 동물의 중간자로 오해받게 되어 우리 민족의 상고사가 신화로 취급되고, 단군왕검은 신화적인 인물로 격하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로 해석하면, 단군왕검은 천산족인 한웅천황과 백두산족인 웅족(熊族)의 혼인으로 태어난 역사적 실재 인물인 것이다.

2)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인 신선도는 단군왕검 이전, 한웅천황에 의해 성립되었다. 이에 대한 저술로서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 있고, 불원간 『한국고유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이 출판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에 대하여 심의를 거치고, 여러 학회지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바 있다. 그것은 일부 학계에서 필자의 연구를 인정하고, 한웅천황을 역사적 실재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웅천황보다 후대 인물인 단군왕검을 신화적 가상 인물로 격하시킴은 모순인 것이다.

3) 실증사학계는 우리나라에서의 청동기 사용은 B.C. 10세기 이상을 올라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빙자하여 기독교측은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부정하고 단군왕검을 신화적인 인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최근 고조선의 도읍지였던 평양 일대에서 청동창과 청동칼 등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의 청동기가 대량 출토되었고, 단군릉을 발굴하여 그 실재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실존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주:본서 제一편, Ⅴ의 1. “우리민족의 상고사 부정론 극복”참조.].

이상과 같이 볼 때, 단군왕검은 신화적인 가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제 종교의 보급을 위해 단군왕검을 신화적인 인물로 격화시킨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국조를 부정하고, 제 민족의 존재를 눈으로 보면서 제 민족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측은 깊이 자성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둘째, 단군숭배는 기독교의 유일신(唯一神) 신앙(信仰)에 위배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유일신 신앙이란 오직 하나의 신(神)만을 신앙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유대교와 여호와신 하나만을 신앙한다. 그 성립동기를 보면, 유일신 신앙은 유대민족의 다신신앙(多神信仰)에서 오는 민족분열을 방지하고, 민족통합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므로 유일신 신앙은 유대민족에 국한된 신앙이며, 유일신 신앙을 다른 민족에게까지 적용함은 논리의 비약이며 바이블 해석의 오류인 것이다. 오히려 유일신 신앙을 다른 민족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그것은 어느 민족이든 오로지 제 민족의 하느님과 제 민족의 종교만을 신앙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인으로서 유대민족의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를 숭배하고 기독교를 신앙함은 유일신 신앙에 위배되고, 단군숭배는 우리민족의 신앙으로서 유대민족의 유일신 신앙과 무관한 것이다[주:본서 제二편 Ⅰ의 1. “유일신 신앙의 원의”참조.].

셋째, 단군숭배는 우상숭배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상이란 돌멩이나 쇠붙이 또는 나무토막을 재료로 몸체는 사람이면서 머리는 괴물같거나, 아니면 몸체는 괴물이면서 머리는 사람같이 만든 기괴한 형상의 신물(神物)을 지칭한다. 곧 우상은 실재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가공된 기형의 신물(神物)을 지칭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군왕검은 역사적 실재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단군왕검은 우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지칭하는 우상은 일반적 의미의 우상과 다르다. 곧 기독교에서의 우상은 여호와 하느님 외의 모든 신앙 대상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의 우상숭배 금지는 유일신 신앙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유일신 신앙은 유대민족의 분열을 방지하고 통합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유대민족이 아니라 한민족이다. 그러므로 단군숭배를 유대민족의 신앙인 우상숭배 금지에 포함시킴은 논리의 비약이며 바이블 해석의 오류인 것이다.

넷째, 단군산 파괴가 애국행위인가? 아니며, 민족혼 파괴행위인가? 하는 문제이다.

기독교인들은 단군상 파괴를 마치 애국행위같이 주장한다. 애국행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민족의 경우,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잃어버린 고유사상과 민족적 구심점을 찾아 자주적 제정신을 차리도록 하는 것이 제1차적인 애국행위하라면, 구호행위와 의료행위, 문명퇴치활동과 출판사업 등은 제2차적인 애국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 당국은 제2차적인 애국행위만을 하면서 제1차적인 애국행위를 거부한다. 심지어 신도들에게 유대민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치면서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일절 가르치지 않고, 고대사를 신화로, 고유종교를 미신으로 취급한다. 또한 유대민족의 예수와 마리아만을 섬기게 하면서 우리민족의 국조인 단군왕검의 좌상을 파괴하고 철거를 주장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당국의 주장과 행동은 그 속에 어떤 음모와 계획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절대 애국행위라고 볼 수 없고, 민족혼 파괴행위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종교정책은 빵과 옷과 약품을 주면서 민족혼을 혼란하게 하거나 뺏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신도들은 과학적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기독교 당국과 목자들의 교시에 맹종하는 습관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단군숭배는 비교육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기독교측은 단군왕검을 실증할 수 없는 인물이며 우상이므로 단군숭배는 비교육적이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과거사를 회고해 보면, 인류는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산천초목 등 자연현상과 실증할 수 없는 정령을 숭배하면서 오늘날의 문명을 개척했다. 기독교인들도 실증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과 아담과 이브의 존재를 신앙하고, 가 본적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실증할 수도 없는 천당과 지옥의 존재를 믿고 기독교를 신앙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비교육적이라 할 수 있는가? 그와 같이 단군의 존재를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단군숭배를 비교육적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섯째, 우리민족의 국조(國祖)는 누구인가?

국조란 어느 민족의 여러 왕조(王朝) 가운데 최초 왕조의 태조(太祖)를 지칭한다. 우리민족이 세운 최초의 왕조는 일반적으로 고조선(古朝鮮)이라 믿는다. 그러나 좀더 깊게 연구해 보면,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왕조는 고조선이 아니라, 중앙 아시아 천산(天山)을 중심으로 한인천제(桓仁天帝)가 세운 환국(桓國)이며, 그 다음이 백두산 천지 곧 신시에 세웠다가 청구(靑邱)로 옮긴 한웅천황의 배달국(倍達國)이다. 배달국 다음이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古朝鮮)이다.

기록에 의하면, 환국은 그 도위(道位)가 7세를 전하고, 그 역년은 3301년 또는 63182년이라 하니 어느 말이 옳은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한 유물과 유적도 다소 발견되었다. 배달국은 그 황위(皇位)가 18세를 전하고, 그 역년은 1565년이다. 태조인 한웅천황은 최해월 선생이 말하는 선천개벽(先天開闢)의 시조로서 우리민족의 정신적 지주이다. 이에 대한 기록이 있고, 유물과 유적도 대량 출토되었다. 이러한 기록과 유물유적, 국도(國都)의 위치와 선천개벽을 감안하면, 한웅천황이 세운 배달국을 우리민족의 최초 왕조로 보아야 옳으며, 한웅천황을 국조로 섬겨야 함이 지당하다고 생각된다.[주:본서 제一편, Ⅴ의 1. “우리민족의 상고사 부정론 극복”참조.]

그러나 우리민족은 고려 제24대 원종이 원(元)에 입조(入朝)한 1264부터 1945년 해방까지 약 680년 동안 다른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받으면서 제 민족의 역사교육과 사상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더욱이 해방 이후에는 일제시대 식민사학(植民史學)에 의해 왜곡된 역사교육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민족은 과반수 이상이 외래종교를 신앙함으로써 육체는 한국 사람이면서 정신은 외국 사람인 영육불일치(靈肉不一致)의 인간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오늘날 한웅천황은 우리민족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단군왕검마저 신화적인 존재니 역사적인 실재 인물이니 하는 논쟁이 벌어지면서 단군왕검의 좌상파괴라는 지극히 불경스러운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금부터는 이상의 사실을 깨닫고 단군왕검의 좌상을 파괴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 거족적으로 단군왕검의 동상(銅像)과 아울러 한웅천황의 동상건립(銅像建立)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것이며, 민족혼 회복의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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