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도서관/최희철>
해운대 인문학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갔다가, 3층 종합자료실, 철학관련 서적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서게 되었다. 그곳에 꽂힌 책들을 보고 내가 아는 게 우주의 티끌보다도 작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깊이 보다 넓이를 주장해 온 나였는데 그 넓이 역시 나에겐 중과부적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하나, 100년을 더 살아도 다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책들, 더구나 요즈음은 읽어도 거의 들어오는 게 없는데 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니 내 생각이 개똥일 수밖에 없었구나. 문득 욕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난 금욕주의자와 욕망을 한껏 부풀리는 과욕주의자가 모두 실체론자로서 동일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생각하니 많은 책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욕망과 관련해서 내가 굳이 비아그라(?)까지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자위(自慰)를 했다. 그 많은 책들 앞에서 말이다.
첫댓글 백년을 살아서 책을 읽는다고 해도, 책이나 지식이 나오는 속도가 훨씬더 빠를걸요.
특수 이해촉진 시각과 확장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인터넷에 연결하면 쫒아갈 수는 있겠지만...
머리가 폭발하지 않을까요?
인간은 유한하게 살도록 설계되어 있고, 생존을 위해 욕심을 부리도록 태어났을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풍요롭고, 지식이 넘쳐나는 시기에는 안분지족과 무위자연의 미덕을 실천하심이...
압도하는 책 앞에서 아무 생각도 들지않고 태평하게 떡볶이 먹는 아해들이 얼마나 먾은지요.
"세상을 삼켜버릴 듯는 배고품"이라는 책을 읽을 기억이 있는데,
촛불로서 세상을 밝힐 수 있고,
시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니,
마음 하나 움직일 수 있는 시를 쓰겠다는 욕심이 더 건강에 유익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