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장
성전에서 가르치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시는 여호와 주님
(찬송 5장)
2023-4-4, 화
맥락과 의미
12장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는 그 주간의 화요일에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계속 가르치십니다. 성전의 기능을 회복하십니다. 앞으로, 새로운 성전인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을 들려주십니다. 당시 지도자들, 바리새인과 논쟁하시고, 사두개인과도 논쟁하시며 가르치십니다.
1. 포도원 비유(1-12절)
2. 논쟁 1: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13-18절)
3. 논쟁 2: 부활이 있음(19-27절)
4. 논쟁 3: 계명을 요약-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28-35절)
5.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하나님(36-37절)
6. 외식하는 바리새인, 전재산을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38-44절)
1. 포도원 비유(1-12절)
예수님께서 이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다른 나라에 왕위를 받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자기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빌려주고 떠났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냅니다. 주인은 다른 나라에 있으면서 농부들에게 포도를 수확한 것을 받기 위해 그분의 종들을 보냈습니다.
종들은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보내신 구약 선지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가나안 땅을 포도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백성이 그 땅에서 바르게 예배하고 서로 사랑하는 열매를 내는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분의 종인 선지자들을 보내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종들을 때리고 능욕했습니다. 즉, 수치스러운 일을 행하고 죽였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 백성은 그 아들이 포도원의 상속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땅을 자기들이 통째로 차지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아들을 잡아 죽여 포도원 밖으로 던졌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3일 후에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실 것을 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선악과를 따 먹었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해 아들 하나님을 죽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편 118:22-23을 인용하십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켜 한 말인 줄 알아챘습니다(12절).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진행합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를 기다리며 유월절에 부르던 찬송이었습니다. 그때가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도 이 시편을 불렀을 것입니다. 이 시편 찬송은 원래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승리하고 살아 돌아오는 왕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은 적에 의해 짓밟히고 죽듯이 고생한 왕을 말합니다.
이틀 전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과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편으로 찬양했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가복음 11:9, 시편 118:26). 제자들은 메시아=그리스도의 승리의 부분을 생각하고 찬송했습니다. 고난의 부분에 대해서는 쏙 빼먹었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찬송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십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준비하십니다. 사람들에게도 고난 받는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메시아=그리스도께서도 먼저 죽으시고, 부활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찬양을 받으실 것을 예언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처럼 주 예수님을 대적하지 맙시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피공로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동의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주님께 복종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삶을 결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포도원은 우리 교회, 가정, 직장입니다. 교회에서 잘 예배하고 말씀을 잘 배웁시다. 가정에서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선행의 열매를 맺읍시다. 힘을 다해 성도를 구체적으로 사랑합시다. 직장에서도, 시민사회에서도 말씀에 따라 사랑과 선행의 열매를 맺읍시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고난을 받습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이 작은 고난입니다. 애매하게 비난을 받아도 서로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없었던 일처럼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2. 논쟁 1: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13-18절)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헤롯당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도전합니다. 바리새인은 민족주의자입니다. 헤롯당은 로마에 친한 사두개인 그룹입니다.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함께 모여 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말합니다. “가이사(로마 황제의 호칭인 시저)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 세상의 질서 속에서, 정치적 질서에 순종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에게 순종할 때도 하나님에 대한 순종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국가도 자연도, 사람들도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 땅의 가정, 직장에서 사람에 대한 의무를 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합시다. 다른 관계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더욱 높입시다.
3. 논쟁 2: 부활이 있음(19-27절)
사두개인은 이 세상의 안락을 좋아하던 집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부활은 원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왔습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시험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구약 율법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라고 했습니다. 형님의 후사(씨)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한 집의 큰 형이 자녀를 두지 않고 죽었습니다. 둘째도, 셋째도, 형수와 결혼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일곱 형제가 다 한 여자와 결혼하고 죽었습니다. 부활 후에 누가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예수님은 간단히 대답하십니다. 천국에는 결혼이 없다고 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다.”(출애굽기 3:6)를 인용하여 말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 성도도 죽지 않고 부활합니다. 부활 이후 천국에서 모든 성도가 부부 이상의 친밀한 관계를 가집니다. 부활을 사모하며, 천국을 사모하며 이 땅을 살아갑시다.
4. 논쟁 3: 계명을 요약-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28-35절)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율법 중 어떤 것이 제일 큰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질문한 서기관이 잘 배우는 것을 보고 “네가 하나님 나라에 멀지 않도다.”(34절) 하시면서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배하는 것이 어떤 의무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도 온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즐거워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 마음이 뜨겁고 예배를 잘 드릴 때, 우리는 가족도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향한 경건이 있는 성도는 반드시 풍성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그 신앙이 나타납니다.
5.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하나님(36-37절)
이번에는 예수님이 먼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마태복음 22:41). 다윗이 성령님 안에서 말한 시편 110편을 인용하십니다.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우편에 앉으라.” 첫번째 주는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두 번째 “내 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올 메시아=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합니다. “다윗이 메시아=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느냐?”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혈통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며 사람입니다. 그런데 메시아는 또한 다윗의 주님, 여호와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신 메시아이심을 가르칩니다.
서기관들의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즐겁게 듣더라”(37절). 교만하고 고집이 센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말씀 배우기를 즐거워하는 착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며 사람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왕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께 고백하면서 그분의 다스림에 순종합시다.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합니다.
6. 외식하는 바리새인, 전재산을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38-44절)
예수님은 위선을 경계하십니다. 바리새인은 사람들 앞에서 긴 옷을 입고 자기의 경건을 자랑했습니다. 경건하다는 인정을 받아 시장에서 사람들의 인사를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과부의 재산을 빼앗습니다. 그러고도 사람들 앞에서는 길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위선을 아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살지 맙시다.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가르치실 때 가난한 과부가 두 고드란트를 헌금하는 것을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아주 적은 돈입니다. 그러나 그 헌금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많은 액수였습니다. 주님은 그 과부의 헌신을 알고 인정해주십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많이 헌금하지 못해도 우리의 재정 범위 안에서 힘껏 헌금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알아주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립시다.
그 순수한 마음의 헌신을 하나님은 알아주십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기에 많이 헌금하지 못해도 예수님은 알아주십니다. 헌금이나 다른 생활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행합시다.
믿고 복종할 일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과 같이 악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마귀와 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다스림을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질서를 따라 국가 질서에 순응하고 경제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충성심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향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주신 물질로 생활하고 즐기지만, 우리의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합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과는 다른 천국을 미리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인정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갑시다.
이 땅의 수고가 끝난 후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 영혼은 쉽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우리 몸이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 땅에서 살 것입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나라의 법을 지키고 불신자와 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를 위해 오늘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
<참고> 42절, 두 렙돈 = 한 고드란트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우리 돈으로 1,500원 정도입니다.
렙돈은 ‘렙’이라는 ‘돈’이 아닙니다. 그냥 ‘렙돈’입니다. 고대 시대부터 쓰던 가장 작은 화폐단위입니다. 렙돈은 ‘작다’는 뜻입니다. 지금 그리스에서도 ‘렙돈’이라는 화폐단위를 씁니다. 고드란트는 예수님 때 사용하던 로마 동전입니다.
2 렙돈=1 고드란트
4 고드란트=1 앗사리온
16 앗사리온= 1 데나리온(노동자 하루 품삯)
그래서 2 렙돈=1/64 데나리온
우리나라 노동자 하루 품삯을 100,000원으로 친다면
두 렙돈은 1,500원 조금 넘는 정도라 하겠습니다.
예수님 때 쓰던 렙돈 동전과 고드란트 동전의 모양은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