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ke Flanagan
이 사람이 '마이크 플래너갠'
그가 바로 두 텔레비젼 10부작 시리즈
'힐 하우스의 유령'(2018), '블라이 저택의 유령'(2020)을
감독하고 각본 각색을 한 사람이군요.
각각의 작품은 다른 소설에 근거한 것이었구요.
제가 먼저 본 것이 나중에 만들어진 '블라이 저택의 유령'이었습니다.
보면서 꽤 괜찮다는 생각을 했군요.
그리고 나서 이어서 본 것이
먼저 만들어진 '힐 하우스의 유령'인데...
이 작품을 보고는
감탄의 감탄을 하고 말았습니다.
몇 번을 봤는지 모르도록 계속 보고 있고.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다는 소설도 사서 읽었구요.
그런데 정말 신기했습니다.
어쩌면 원작 소설에서 그렇게 작은 부분만 취했을까?...싶어서.
굳이 같은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마이크 플래너갠이 완전히 다시 창조한 작품이 바로 '힐 하우스의 유령'입니다.
이 드라마에 비교하면
이어서 만들어진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의아해졌습니다.
같은 감독에
같은 프로듀서
같은 팀이
대본각색을 했을 것이고
만들었는데
왜 이리 다른 것이지?
나중에 만들어진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제가 다시 보기가 힘들거든요.
먼저 나온 '힐 하우스의 유령'은 수없이 보고 있는데...
무슨 차이일까???
같은 사람들이 만들었는데
전혀 다르니...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배경이 된 소설들을 사지 않아 읽지 않았는데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읽어보니
아무래도 그 소설들의 스토리를 많이 끌어다 쓴 모양입니다.
같은 작가의 여러 소설들을.
'힐 하우스의 유령'은 한 소설에서 아주 쬐끔을 끌어서
주로 창작을 했고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여러 소설에서 많이 끌어다 만든 모양.
대본을 각색하고 감독한 '마이크 플래너갠'의 힘이겠구나.
그가 창작한 것들이
그리 놀라운 것들이었고
그가 바로 다름을 만든
천재적인 사람.
왜 두번째 유령이야기를 만들면서는 그가 원작 소설들에 그리 많이 의존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왜 자신의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전처럼 많이 사용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생각이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요.
다른 누군가는 제가 낮게 평가하는 두번 째 작품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비교를 하고 있는 거지?
눈을 감고 생각을 해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이런 표현이 등장하네요.
남의 것을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
공연히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마이크, 네가 원작 소설들에 많은 비중을 두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겠냐?
그냥 처음 작품처럼
주로 네가 새로 쓰는 것이 더 좋았을 것같구만.
그러면서
우리 사는 것과 연결을 해보는 겁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들에 근거한 무엇에 의존하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
다른 사람들의 말
다른 사람들의 생각
다른 사람들의 판단
다른 사람들의 기대
다른 사람들의 칭찬
다른 사람들의 비난...
이런 것들에 얼마나 많은 비중을 두고 사는가?
내 스스로의 의견
내 스스로의 생각
내 스스로의 느낌
이런 것들에 얼마나 많이 촛점을 맞추며 사는가?
내 삶인데?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데?
왜 내가 그러지?
왜 내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나는 것들에 주의를 주로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누가 어떻든
왜 내 자신을 신뢰하지 않지?
왜 나 스스로를 추종하지 않지?
'힘'이라는 낱말이 떠오르네요.
생각은 물질이라고 했지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물질입니다.
내 힘이 강할 때는 무거운 물질의 영향을 쉽게 받지 않는군요.
그냥 받아 쳐내버릴 수가 있다.
하지만 내가 약하면
그리 못하는군요.
눌려
깔려
바닥에 뻗어버릴 수가 있구나.
역시
'힘'이네.
내부의 힘.
어떻게 강해지지?
무엇이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가?
아주 진부한 표현이 떠오릅니다.
시련.
고생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단박에 지혜를 얻고 강해지는 것은 아님을 아네요.
어떤 사람들은 더 사악해지고 나약해진다는 것을.
하지만 결국은 배우게 된다고 느낍니다.
수많은 고비를 넘기면서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면서
선과 악을 섭렵하면서
결국은
배우게 된다.
슬픔에 지쳐버리고
악함에도 지쳐버리고
약함에도 식상하고
어둠에 진력이 나는 때를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머물 수는 없다고 외치며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손을 불끈쥐며
어둠에서 돌아서는 때가 온다.
빛을 향하는 때.
그 때
허물을 벗는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다른 느낌을 갖는 사람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
흔들림이 덜한 사람
흔들리지 않는 사람.
어디 한 삶으로 이것이 될 것인가만
무수한 차원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존재의 경험을 통해
결국은
그런 경지에 도달하리라.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고
더 이상 쪼그라들지 않고
일어서는 사람.
미소 짓는 사람.
시련이 우리를 그리 만드는 것.
왜?
시련을 거듭하면서
결국은 우리가 지혜를 얻기 때문에
놓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놓을 힘을 얻기 때문에.
지혜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진짜 강한 사람은
부드러울 수 있고
너그러울 수 있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고.
바깥보다
내부를 보게 되고.
글이 이리 흐르네...
방금 '힐 하우스의 유령' 다시보기를 마쳤거든요.
역시 대단한 작품.
'마이크 플래너갠'의 작품이라면 믿고 보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
하지만 그가 자신의 창조성을 한껏 발휘하는 작품을
보고 싶습니다.
사실 누구라도 그리해야 하지요.
스스로의 창조성을
한껏
발휘해야 한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구요.
오후 두시...
한 낮인데 벌써 어둑하고 비가 쏟아집니다.
이런 날
이런 생각을 하는군요.
생각하기
좋은 날인가 봅니다!
첫댓글 다른 차가 지나가도록
양보 한 건 아닐까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