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돌아와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공간속으로 빨려들어갔다가
정신없이 헤메다 간신히 빠져나온듯한 기분이다.
한달전부터 계획된 나홀로 기차여행으로 마음 설레였고,
반년만에, 일년만에, 또는 수십년만에 만나는 반가움으로 가슴벅찬 시간들이었다.
모임시간보다 두시간 일찍 도착한 나를 맞아준 녀석들은
뜻밖에도 고향에서 벌써 올라온 점우와 성준이 였고
봉태 가게가 있는 후암동 시장통에서 순대국과 동동주
한잔으로 우리 모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린 만나는순간부터 술이 고픈 녀석들이니까.
용수정 한정식집에 맨 먼저 도착한 우릴 바로 뒤따라온
친구는 역시 모범생인 육자와 옥남이였다.
총무인 성기가 5분전에 도착하여 비난만은 면할수 있었다. 사실 난 총무가 일분이라도 늦으면 혼내줄라 했거든.
그때부터 녀석들은 안 나타나고 회장님 전화만 울려댔다.
바빠서 못오고 차가밀려서 늦고 다와서 집을 못찾고
서울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잠시 총무가 복사해온 희미한 졸업사진에
이름붙여넣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천하에 둘도없는 희한한
퍼즐. 앞줄에 가운데 앉은 선생님이 누군지도 모르는가하면
지 자신도 몰라보는 친구한테는 뭐라 위로할 말이 없더라.
뒤늦게 도착한 기억의 천재 근화의 입에서 줄줄이 재잘 재잘 흘러나온 낯선이름들로 빈칸들이 거의 채워졌다.
광주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평근이와 애자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한쌍의 부부로 착각될정도였다.
음식이 들어오고 술이 들어 가면서 우리의 만남은 옛날속으로 아련해져 갔다. 듬성듬성 빈자리가 아쉬웠지만
우리를 만나는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으려니
이해를 해본다.
경희의 걸죽한 입담과 근화의 재잘거림이 분위기를 띄우기에 충분했었고 난 서서히 술독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모였는데 2차가 없겠느냐?
세계전쟁도 1차 2차로 나눠서하는데 술자리 노는자리에
2차가 없으면 서운하지. 그래서 찾아든곳이 노래방 비슷한
레스토랑. 술과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는데
기홍이는 레스토랑 여주인을 부루스 파트너로 독차지 했다.
금채가 다녀가고 성용이는 새벽두시에 나타나 체면치레 할려고 애썼다.
다음날 아침 나는 어김없는 점우의 목소리에 잠을 깼다.
“야 썩을 놈들아, 얼른 일어나야.”
아, 제발 저소리좀 들리지 않게 해주세요. 하느님 부처님 성모마리아 알라신이시여.
이불을 뒤집어 써보지만 대책이없다. 그러다 조용~ 얼마가 지났을까.
기홍이 목소리에 잠을깬 나는 서울애들은 집에가고 없고
광주애들 고향친구들은 벌써 떠나고 없음을 알아차렸다.
나만 남겨놓고 지들만 살것다고 다투어 서울을 빠져나간 애자 평근 점우 성준에게 이글을 통해 원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남은 친구들은 갈곳없는 기홍이 점숙이 그리고 나.
미사리에나 가서 점심겸 아침을 먹자는 점숙이의 제안에
전철을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성용이를 기사로 호출했고 미사리 카페촌 어느 횟집에서 조촐한 뒤풀이로 아쉬움을 달랠수 있었다.
우린 이렇게 새천년 첫해의 망년회를 성대하게 치렀다.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하면서 그래도 못내 아쉬운건 뭘까?
서울역에서 기홍이가 사준 군밤의 따뜻함 같은게 우리 동창의 마음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점숙이를 서울역에 두고
난 미끄러지듯 서울을 떠났다. 다들 잘 돌아갔겠지.
예전처럼 같은 모습을하고 또 그렇게들 살아 가겠지.
애들아, 고맙다. 회장님 총무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