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과학고에서 열린 무지개자연체험교실에 참가한 한 학생이 박주가리 열매를 쳐다보고 있다. [황정옥 기자]
실습에 앞서 경기과학고 전영호 교장의 강의가 시작됐다. ‘식물의 겨울나기’라는 주제로 다양한 사진을 보여준 뒤 설명이 이어졌다. 강의에 쓰인 모든 자료 사진은 전 교장이 직접 현장에 가서 찍은 것들이다. 식물 주변의 환경과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곁들여지면서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했다.“은행나무 열매에서 왜 역겨운 냄새가 날까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랍니다. 은행나무 껍질이 피부에 닿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혹시 아는 사람 있으면 발표해 봐요.”
“피부에 염증이 생기고 가려워요.”
“그럼 겨울이 되면 낙엽이 왜 떨어질까요.”
“나무가 서 있는 땅 주변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요.”
“겨울에는 수분이 많이 없어서 잎을 떨어뜨려 수분 소비를 줄이는 거죠.”
전 교장과 학생들 사이에 문답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정답을 맞힌 학생에게는 기념품이 상으로 돌아갔다.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은 실험실로 옮겨갔다. 초·중학생이 각각 두 실험실로 나뉘어 가 이날 배운 식물들의 겨울눈 관찰을 시작했다. 면도칼로 버들강아지·개나리·백목련 등의 겨울눈을 잘라 본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질렀다.
박시현(수원 서원초 6)양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꽃눈·잎눈을 직접 잘라 속을 보니 신기하다”며 “버들강아지 씨눈을 잘랐는데 겉모습과 같이 털로 쌓여있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옆 실험대의 황태현(김포 장기초 3)군은 체험기록지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털을 이용해 바람을 타고 씨앗을 퍼뜨리는 ‘박주가리’나 끝이 구부러진 가시로 동물의 털에 달라 붙어 먼 곳까지 이동하는 ‘도꼬마리’ 등을 그리는 중이다. 황군은 “식물마다 겨울 나기법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신기해했다.
지난해 참가자 중 5명 과학고 가기도
도꼬마리, 개나리 등의 씨눈·잎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과 관찰 모습. [황정옥 기자]
이날 모인 40여 명의 학생들은 10월에 선발된 무지개자연체험단원들이다. 전 교장이 인근지역 각 초·중학교에 공문을 띄워 희망자를 선발했다. 주로 저소득층 가정 자녀나 과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다.1년 단위로 이뤄지는 이 방과후교실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교육청 장학사였던 전 교장이 다니던 교회 학생 몇 명을 모아 자연체험교육을 했던 게 시초다. 이후 전 교장은 뜻을 같이한 교사들을 모아 무지개자연체험 동호회를 만들었다. 체험교실은 현재 동호회 교사 17명, 참여학생 70명 규모로 커졌다. 올해부터는 경기과학고 학생 70명이 1대 1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전 교장은 “30년간 자연탐사활동을 해오면서 쌓은 노하우와 자료들을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며 “일선 학교에선 시험점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실질적인 탐구활동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에 흥미를 느끼던 학생들도 이론수업에서 끝나면 결국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과학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실질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탐구활동을 계속하면 교육 효과도 높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이 지속되면서 성과도 나타났다. 지난해 체험교실에 꾸준히 참여하던 학생 5명이 과학고에 합격한 것이다.
이현숙(38·김포시 장기동)씨는 “아이가 개구리 해부나 잠자리 생태 관찰 등 학교에서 쉽게 해볼 수 없는 체험을 많이 해 좋아한다”며 “여기서 한번 체험해본 내용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는 아이 말에 참여시키기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해중(45·군포시 궁내동)씨는 “일반 체험 학습보다 세분화돼 있고 심화된 실습을 할 수 있어 좋다”며 “실습뿐 아니라 경기과학고 학생이나 교사들과의 대화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박채영(수원 서호중 1)양은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실험을 많이 했는데 중학교에선 그럴 시간이 없다”며 “과학은 실제 실험을 해야 이해가 더 잘 된다는 생각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