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테스는 몬테주마 2세를 궁전 안에 감금해두고서,
마치 왕은 포로로 잡히지 않았으며 '스페인 대사'는 손님에 지나지 않는 척 가장했다.
아즈텍 제국의 통치조직은 극도로 중앙집권적이었으며,
이런 전재미문의 사태는 이 조직을 마비시켰다.
몬테주마 2세는 자신이 여전히 제국을 지배하는 척 행동했으며,
아즈텍으 엘리트들은 계속해서 그의 명을 따랐다.
즉 코르테스의 명을 따른 셈이엇다. 이런 상황은 여러 달 계속되엇으며,
그 동안 코르테스는 몬테주마 2세와 그의 하인들을 심문하고 다양한 현지 언어를 구사하도록 통역자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스페인인으로 구성된 소규모 탐사대를 사방으로 파견했다.
아즈텍 제국과 제국이 통치하는 다양한 부족들 사람들, 도시들에 대해 미리 알아두기 위해서였다.
아즈텍 엘리트들은 결국 코르테스와 몬테주마 2세에게 반기를 들고
새 황제를 선출한 뒤, 테노치티틀란에서 스페인인들을 몰아냈다.
하지만 이제 제국으 조직에는 수많은 균열이 생겼다.
코르테스는 그동안 얻는 지식을 이용해 그 균열을 더욱 크게 벌리고,
제국이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는 제국의 많은 피지배 민족들을 설득해,
그의 편에서서 아즈텍의 엘리트 지배층에게 대항하도록 부추겼다.
피지배 민족들은 심각한 착오를 지질렀다.
이들은 아즈텍을 증오했지만, 스페인에 대해서도 카리브해의 인종학살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이들은 스페인의 도움을 받으면 아즈텍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스페인인들이 지배권을 장악하리란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만일 코르테스나 몇 백 되지 않는 그의 부하들이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반란에 가담한 민족들은 코르테스에게 수십만 명의 현지인 군대를 제공했으며,
그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테노치티틀란을 포위하고 정복했다.
이 단계에서 점점 더 많은 스페인 군인들과 정착자들이 멕시코에 도착하기 시작햇다.
일부는 쿠바에서, 나머지는 스페인에서 들어왔다.
현지인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코르테스가 베라쿠루스항에 상륙한 지 1세기 만에,
아메리카의 원주민 수는 90퍼센트 가량 줄었다
주로 침략자들과 함께 유입된 생소한 질병 탓이었다.
생존자들은 아즈텍보다 훨씬 극악하고 탐욕스러우며 인종차별적인 정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코르테스가 멕시코에 상륙한 지 10년 후, 피사로는 잉카 제국 연안에 도착했다.
그가 데러간 군대는 코르테스보다 훨씬 더 적어 원정대원의 숫자는 168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피사로는 지난 침략에서 얻는 지식과 경험으로 큰 이점을 누렸다.
그에 비해 잉카는 아즈텍의 운명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피시로는 코르테스를 모방했다.
그는 스스로 스페인 왕의 평화사절이라고 선언하고, 잉카의 지배자 아타후알파를 초대했다.
그러고는 외교 접견 자리에서 그를 납치했다.
피사로는 마비된 제국을 현지 동맹자들의 도움을 받아 정복해나갔다.
만일 잉카 제국의 피지배 민족들이 맥시코 주민들의 운명을 알았더라면,
침략자들과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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