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8일 일기.
일터가 늘었습니다.
말끝마다 일터가 '좁다, 좁다'를 외쳤는데, 안집이 비면서 내게 쓰랍니다.
그래서 일터가 늘어났습니다.
일터 문을 나와 서른 걸음쯤 걸어 골목 안 대문을 열고 드나드는, 곧 집 밖으로 나갔다 들어와야 합니다.
한여름에는 웃통 벗고 지내다가 옷 하나 걸쳐야 하고 비 내리면 우산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넓이로 치면 서너 배는 넓어집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내가 이 집에 오기 전에 일터와 안집 사이에 있던 문을 막아 벽을 세운 곳을 다시 뚫어 문을
낼 수도 있으나, 마당을 지나 사랑채 드나들듯 지내야겠습니다.
며칠 청소하러 드나들면서 몇 배 더 움직임을 느낍니다.
좁은 일터에서 편리를 좇아 뭐든 손만 뻗으면 닿는 자리에 두고 살았는데, 아직 짐을 옮기지
않은 안집에서 뭐 하나 하려면 도구 찾아 이리저리 걷습니다.
그러다 문득, 뭐든 손만 뻗으면 닿는 자리 말고, 몸을 일으켜 몇 걸음이라도 움직이도록 편리
말고 멀리를 좇아 살자는 생각이 듭니다.
편리 말고 멀리.
일터 침대에서 일어나 다섯 걸음 걸으면 책상이 있습니다.
폭 90cm 길이 180cm 상은 다 치우면 침상도 될 수 있고, 그림 그리면 일상, 밥 먹을 땐
밥상입니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언제나 한두 걸음 상 앞에 있습니다.
물감이나 도구들도 상을 둘러 손 뻗으면 닿는 자리에 있고 의자도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멀리!
쓸모를 찾아 몇 걸음 걸으며 숨을 돌리다가, 도구를 멀리 두어 자율신경으로 쉬는 얕은 숨 말고 깊은숨을 쉴, 틈을 내잔 생각이 번쩍 일어납니다.
두세 사람만 들어와도 꽉 차 빈틈없던 일터가 이제 열 사람이 들어와 뒹굴어도 넉넉하게 넓어졌습니다.
일터가 늘어난 만큼 그림 그릴 일도 늘겠습니다.
일터가 좁아 그림을 그려 둘 자리가 없어 안 그린다는 핑계 하나 사라졌습니다.
2024년 1월 28일에 덧붙인 일기.
일터가 늘어난 지 다섯 달, 곧 반년을 맞습니다.
아직 두 집 살림하는 느낌이지만, 제법 자리를 잡아갑니다.
늘어난 안집을 밥 지어 먹는 부엌과 전시장으로 씁니다.
있는지도 모르게 쌓여있던 그림들 먼지를 털고 이리저리 꾸며 걸어 두고 세워 놓으니 꽤 그럴싸한 전시장입니다.
마당에 앵두나무 꽃피고 수선화 올라올 때쯤이면, 그림 보러 오시기 좋겠습니다.
오늘 당장 오셔도 문은 열리지만, 좀 쌀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