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목)
버스 127번, 구명역에서 지하철 2호선, 서면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좌천역에서 내렸다.
오늘 목적은 연등사(좌천동), 묘심사(수정4동)에 있는 전통사찰이다.
연등사는 좌천역과 부산진역 중간쯤 산 위에 있다. 좌천역이 조금 가까울 수도 있다.
좌천동도 아주 오랜만이다. 일신기독병원 가기 전에 정공단(부산시 기념물/임진왜란 때 순절한 부산첨사 정발 장군과 백성의 충정을 기리는 단)이 있다. 길을 따라 오르니 '부산진교회'가 나온다. 이 교회는 부산진구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가까운 곳, 범일2동에 부산진시장과 부산진지성이 있다. 교회 앞에 '부산진일신여학교'가 있다.
1905년 호주 선교사가 지은 학교이며 보수작업한 상태이다. 지금의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으로 알고 있다.
부산시 동구를 빛낸 독립운동가에 대한 것도 있지만 다음 기회에 이 주위를 돌아야겠다.
대통령 선거벽보, 멈추어서 보는 이도 드물다.
좌천동도 산동네이다. 예전에는 이런 계단도 없었다.
팔금산 연등사(八金山 燃燈寺) / 전통사찰
- 부산시 동구 좌천동
절에 대한 기록은 없다. 1860년대 무렵, 어느 승려가 이곳에 초암을 짓고 포교하였다고 한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사신 분들의 전언이라고 한다.
연등사엔 '부산시 문화재자료(제33호)인 석가영산회상도'가 있다.
1924년 화승 완호 낙현(玩虎洛現)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인터넷 검색)
화승 완호란 이름을 여기서도 만난다. 처음 만난 게 거제도였다.
도로를 접하고 절주위는 주택이 에워싸고 있다. 전각도 고작 2채인 것 같다.
건물 외에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방문한 오늘은 공사 중이다.
대웅전에 들어갔으나 내부를 찍지 않았다. 여신도 한 분이 내부를 정리 중이다.
불상을 촬영하여도 되는가 물어보니 본인은 담당자가 아니라서 답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냥 무시하고 찍어도 싸울 일은 없겠지만, 완곡히 거절하는 여신도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신자들은 불상을 존귀하게 여긴다. 사진을 찍는 일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연등사에 머문 시간은 고작 10분이 안 된다.
묘심사는 여기서 1.2km쯤. 네비게이선을 켜고 찾아나섰지만 이리저리 헤맸다.
봉생병원 주차 타워가 보인다. 영도 봉래산도 보인다.
연등사가 보일까? 절은 보이지 않지만 어디쯤인지 가늠은 할 수 있다.
낮은 봉우리에 봉우리보다 높은 아파트가 서 있다. 붉은 벽돌 3층 건물은 '부산성북교회'이다.
경남여자중학교 뒤편이다. (사진 좌측)
네비게이선을 끄고 다시 켰다. 방향 감각이 없다.
사진 왼편 유리 건물이 '동구청' 청사인 모양이다.
이 산이 '팔금산'인 모양이다. 이 산을 넘으면 안창마을일까? 아마 더 가야할 것이지만 근방은 맞겠다.
부산진구와 동구의 경계지에 있는 마을이니까. 거기 불쾌한 감정을 가진 전통사찰 '대명사' 집 이름이 '팔금산'이다.
계단, 이 정도 계단이면 젊은 사람도 숨이 찬다.
'황령산'이 보인다. 홀로 서 있는 건물은 문현동에 있는 '부산국제금융센타'이다.
경남여자중학교에서 산복도로로 올라왔다. 처음부터 산복도로로 왔으면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정4동 골목시장, 한산하다. 묘심사에 거의 다 왔다.
묘심사(妙心寺) / 전통사찰
- 부산시 동구 수정4동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 개창한 탓에 오랜 세월 일본 승려가 운영, 유지되었다.
해방 이후 한 기독교인에 팔렸다.
뜻 있는 몇몇 신도가 성보(聖寶)를 대성사(현재 묘심사)로 옮긴 게 1960년대 무렵이다.
당시 신도들은 서구 토성동에 있던 절에서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 범종과 종각 등 많은 성보를 가지고 왔다.
묘심사는 1888년 창건, 창건 시 '대성사'였다. 대처승 사찰이었으나 1960년대 '묘심사'란 사명으로 재창건.
묘심사는 원래 서구 토성동에 있던 사찰로 1912년 임제종 포교당으로 개창된 사찰이다.
전해오는 문헌에 따라 현재 보수동, 부민동, 초량 등으로 그 위치를 옮겼지만 토성동이 마지막 정착지임을 알 수 있다.
(인터넷 검색,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발췌하여 수정함.)
앞 글과 뒤 글이 다르다. 1888년 창건인지 1910년 창건인지 모르겠다.
1888년 대성사로 창건, 일본 대처승이 머물렀고, 해방 이후 기독교인에게 건물이 팔렸다.
뜻 있는 신자들이 이를 다시 사서 '묘심사'로 재창건.
묘심사는 1912년 토성동에서 임제종 포교당으로 창건, 보수동과 부민동, 초량 등으로 옮겨졌다.
마지막 정착지가 수정4동이다. //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는 필요없는 글이 너무 많다.
산복도로변에 묘심사가 있다. 숱하게 다녔으면서도 몰랐다. 그 당시엔 관심이 없었다.
묘심사 건너편은 수정4동 배수지로 작은 공원이 있다.
대웅전, 내부를 보지 않았다.
종각
특이한 불상이다. 아이를 앉고 있다. 불상에 대한 설명문은 없다.
종무소 겸 요사채로 쓰는 건물은 일반 주택이다.
삼성각
묘심사도 산동네에 터를 잡아서 그런가 공간이 좁다. 절 아래 경치도 볼만 하지만 다른 건물에 가려 볼 수 없다.
묘심사에서 금수사까지 1km남짓. 산복도로를 따라 걸으면 된다. 오후 4시경이니 시간은 충분하겠다.
금수사 위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금수사 앞이 버스 정류장이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부산의 경치를 즐긴다. 건물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북항대교(영도 ~ 남구 감만동)도 보인다.
가난한 산동네에 작은 사찰이 많다. 사찰 이름을 건 당골도 있을 것이다.
세상 구하겠다고 나선 저 사람들보다 이런 사찰이 어렵게 사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겠다.
파노마라 촬영, 사진 가운데 부산중학교(부산중학교..초량중학교...부산중학교)이다. 야구 명문이다.
계단, 보기만 하여도 숨이 찬다. 나도 이런 계단을 딛고 다녔다.
충혼탑이 보인다. 저 모퉁이를 돌면 중구 영주동이다.
도로에서 200m쯤 오르면 절 3곳이 나란히 있는 모양이다. 저 절에서 보는 경치는 좋겠다.
산복도로, 수정4동 방향이다.
선화여자중학교, 선화여자상업고등학교는 부산컴퓨터과학고등학교로 바꼈다.
선화여중 아래 부산고등학교와 부산중학교가 있다.
걷기 편하게 데크도 설치하였다.
구봉산 금수사(龜蜂山金水寺) / 전통사찰
- 부산시 동구 초량6동
1604년, 갑진년(선조 37년) 6월 강화 교섭을 위해 부산에 온 사명대사는 구계산 아래 이곳서 잠시 머물렀다.
이후 사명대사의 제자가 이곳에 초막을 짓고 '금수암'이라 하였다.
'한국불교 원효종'의 총본산이다.
2003년 입적한 원효종 종정 법홍이 이곳에 머물면서 원효대사의 유지와 종풍을 이었다.
원효대사의 종풍을 잇고, 사명대사와 인연이 있는 이곳은 호국영령을 위한 절이기도 하다.
(인터넷 검색, 정리함.)
경내 사적비가 있지만 읽을 수 없다.(내 실력으로)
예전엔 계단이 없이 시멘트 포장길이었을 것이다. 대리석으로 놓은 계단, 틀어지고 있다.
구봉산 옛 이름이 구계산이었던 모양이다.
사천왕문 입구에 승탑, 사적비, 원효대사 입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날렵하게 생겼다.
호국영각은 수리 중이다.
기미년 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과 안중근, 김좌진, 안창호, 윤봉길 등 애국독립지사 22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매년 추모 법회를 봉행하고 있다고 한다.(인터넷 검색)
종무소와 천불전
금수사 경내에서 본 경치
용왕당, 종무소 뒤편이다.
부처의 옷이 다르다. 이 글을 쓰면서 이 절이 원효종임을 알았다.
삼성전, 삼성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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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밑에 왜색 건물이 있다. 찻집이다. 상호가 <초량 1941>이다.
오늘 동구에 있는 전통사찰 3곳을 모두 돌았다. 가난한 산동네에 겨우 자리 잡은 절들이다.
부평시장에 가서 어묵을 사야 한다. 3km 조금 넘는다.
추억을 따라 걷기로 한다.
내 사진 한 장 남겨본다.
좌천동에서 산복도로 따라 초량6동까지 왔다.
예전 부산항 1부두부터 5부두까지 모두 없어지고 새롭게 변신 중이다. 호주 시드니항을 본떠서 관광지로 만들 계획.
공사하고 있는 공터가 보인다. 부산역과도 연결이 된다.
용두산공원 전망대가 보인다.
1970년 중반에 건립한 코모도호텔, 독보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고층 건물과 경쟁할 수 없다. 기와지붕은 그대로이다.
중구와 동구의 경계, 삼거리이다.
시온중앙교회, 내가 중학교 다닐 때 건축을 하였다. 아마 2년 걸렸을 것이다. 그 당시엔 시온교회였다.
재건축한 아파트 밑에 아주 오래된 아파트 2동이 보인다. 아마 1960대 부산에 처음으로 지어진 아파트일 거다.
몇 가구가 살고 있을까?
재개발하면 부자가 될까? 서울처럼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까?
부산은 인구가 다른 도시에 비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분양이 잘 될까?
1974년부터 살았던 집은 없어지고 다인빌이란 원룸이 들어섰다. 소켓공장 건물은 그대로이다.
내 고교 선배(나는 9회,그는 1회)는 아직도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집은 옛날 모습 그대로이다.
코모도호텔, 뒤편
멀리 해운대의 마천루들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해가 져서 사진은 더 찍지 않았다.
영주2동과 동광동5가 이웃이다. 옛날 건국상고와 건국중학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파트가 있다.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그 당시 이 동네가 난리(?) 났었다. 양정모 선수는 건국상고 출신.
메리놀병원을 지나 대청동으로. 우선 배가 고프니 18번왕당집에서 완당을 먹었다.
부평시장에 가서 어묵 3봉지는 전주 고모에게 보내고 2봉지를 배낭을 넣어서 가지고 왔다.
오늘 2만 2천 보를 걸었다. 15km쯤.
첫댓글 많이 걷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