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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에 앞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번 여행에 동참하지 못한 동기들이 느낄 아쉬움, 나아가서는 이런 기회를 놓친데서 오는 분노를 다소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해 끓어 오르는 감정을 자제하자고 다짐했다.
왜나하면 지금까지 참석했던 우리들 여행중 단연 최고요 압권이었다고 감히 단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문경용 부회장까지 전원 정확히 시간을 지켰다. departure just on-time.
압구정동을 출발한 버스가 죽전을 거쳐 본궤도에 오르자 김영수 회장 인사말, 김학래 여행반장의 총체적 브리핑으로 도입부가 시작됐다. 아침 대용식으로 말랑말랑한 떡과 귤, 이영란 교수가 준비한 예의 홍삼액 두포씩이 골고루 나눠졌다.
이것 말고도 이교수는 집에서 특별히 주문제작한 (黑)깨강정을 가져와 막간의 입맛을 돋구었으니 그냥 헛다리로 자리만 차지하는 홍일점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했다.
우리들의 친애하는 찍사 김병욱 감사의 학창 시절 에피소드부터 얘기가 풀려 나갔다.
그는 고교생 때 낚시를 좋아해서 가끔 출조를 나갔다고 한다. 하루는 지금의 부천, 옛 이름으로는 복숭아가 유명했던 소사로 향했다. 우리 때는 校外활동을 하며 교복은 안 걸쳐도 모표가 달린 교모는 쓰곤했다.
소사의 어느 저수지에 당도해 낚시대를 펼쳐 놓고 앉아 있자니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그득하고 약간 험상궂게 생긴 동네 건달들이 어슬렁어슬렁 접근했다.
담배를 꼰아 물고 연기를 푹푹 내뿜던 이들은 ‘이필주’라는 자기네 친구가 서울의 명문고교에 진학한 것을 동네의 영광으로 생각해 왔던 터라 마침 외지에서 온 낚시꾼의 모표가 같은 것을 보고 나름 재러 닥아 갔던 것이다.
양손을 허리춤에 턱 걸치고 “야! 너 필주 알어?” 라고 던지는 질문에 잔뜩 쫄은 김釣士는 “담배 필줄 아느냐”는 말로 착각하고 “필줄 모르는데요…”라고 했겄다. 그랬더니 이 건달들이 저들끼리 눈을 희번득거리면서 “이새끼 가짜 아냐?” 하더란다.
그건 그렇고 이번 여행의 마스코트는 이대우 차기 회장의 외손자 신명윤 군이었다.
눈섶이 진하고 약간 코믹하게 생긴 유치원 2년차의 이 녀석이 1박2일 동안 서서히 낯을 익혀 가면서 뭇 할배와 할매들의 간장을 완전히 녹였다. 정 궁금하거든 연말 송년회 자리에 특별 초치해 실물을 볼 기회를 가지시라.
비빔밥 그릇을 받아 든 이 꼬마가 밥을 조금 덜어 양을 조절하고 매운 고추장, 고사리, 버섯은 옆 할배 그릇에 집어 낸 다음 야무지게 싹싹 비벼 맛을 보더니 할배 그릇에 덜어 냈던 고추장을 두세차례에 걸쳐 도로 찍어가 간을 맛추고 나서야 입에 넣었다.
밥을 좀 많이 덜었던 모양이다. 그릇이 비자 이리저리 숟가락을 흔들어대며 “밥 좀 더 줘!”라고 소리 질렀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이 제 새끼 밥 잘먹는 장면인 것 같다.
무릉계곡 등산로 초입의 무릉회관에서 첫 오찬이 그것이었다. 메뉴가 ‘할머니뼈다구해장국’과 함께 처음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기겁한다는 ‘산채비빔밥’. 도축한 게 아니고 생으로(alive) 비볐다니. 정갈하고 맛갈스러웠다.
여기 배석한 더덕구이와 도토리묵. 어쩌면 요렇게 양념을 알맞게 발라 적당한 불기를 쐰 더덕구이가 있을까. 천둥산 박달재 아낙이 서방님 허리춤에 채워 줬던 도토리묵은 ‘저리 가라’다.
‘배석’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언젠가 법원 취재하고 온 후배기자가 헐레벌떡 하는 말이 “아 글쎄 재판장이 박우동인데요 배석이 박국수더라구요”해서 배꼽을 잡은 적이 있다.
명윤이는 제 간식으로 챙겨온 치즈슬라이스를 조금씩 쪼개 할매들에게 나눠 주면서 재롱을 떠는가 하면,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이 어린이는 모든 할배, 할매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죽겠어서 앞당겨 모체로부터 분리된 시기가 연말이었던 터라 당초 출산 예정일인 다음해 1월로 출생신고를 했다는데 이는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김병욱 찍사의 사진에서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만 무릉계곡 雙瀑의 深淵은 검푸른 빛을 띄었다.
왕복 세시간 가량의 하산을 마칠 즈음 부슬부슬 비가 뿌렸고 곧이어 벌어질 만찬장의 소주잔을 더욱 흥겨운 무드로 이끌 것을 예고했다.
바닷가 식당 ‘선창’은 주인이 직접 낚아 올린 우럭, 광어, 오징어 등 7~8종의 다양한 자연산 생선을 푸짐하게 차려 냈다.
숙소로 잡은 여성수련원은 침대방 온돌방이 혼재돼 있어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제비뽑기로 방 배정을 마쳤다.
넓고 깨끗한 객실에 창밖 송림과 바다를 내다보는 샤워룸의 월풀이 끝내줬다. 젊었을 때 같앴으면 여기서 별짓 다 했을 것이다.
수련원 구내식당 조찬은 황태해장국. 황태가 비싸선지 황태도강이긴 한데도 따끈하면서 시원했고 (이래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두 없다니까…” : 편집자 주) 가자미졸임, 브로컬리, 초장, 맛김, 계란찜, 김치가 자칫 부실해질 수도 있는 집단급식소의 약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다.
메인게임이 벌어진 익일 날씨 언제 그랬냐싶게 쾌청. 바닷가를 거니는 하루 종일 청명한 햇살과 상쾌한 바람을 선사했다.
보드워크를 걸어 추암 촛대바위로 향했다. TV 방송 시작할 때 애국가와 함께 나오는 영상의 그 촛대바위다. 단체 기념촬영은 갤러리에 수록돼 있다.
아침을 충분히 들었음에도 바닷바람을 쐬며 웃고 떠들고 나니까 또 출출해진다. 점심은 3대에 걸쳐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권가.
바삭한 통닭구이가 일품이다. 바람을 살살 불어 넣으면서 튀겨 낸다는 설비는 외국에서 고안된 것이라고 하는데 퍽퍽살도 전혀 퍽퍽하지 않고 쫄깃쫄깃하기만 하다.
물과 비빔의 냉면은 면발과 육수, 고명이 우래옥이나 오장동 냉면집에 비해 손색이 없고, 거기서 멀지 않은 양양 시내의 ‘단양면옥’과 자웅을 겨룰만하다
이 지역 문화원장을 지내기도 한 냉면권가 권사장은 연신 “우리 총재님!”을 부르면서 서빙을 한다.
우리를 자기 지역으로 초청한 엄낙용 총재의 저력을 알아 봤다. 가는 식당마다 VIP 대접이다. 동해에 가 산지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그간 깊이 뿌리내렸음을 감지했다.
오후 일정은 ‘논골담길’ 산책, 등대 탐방, 묵호항 건어물시장 둘러보기, 망상해수욕장 산책으로 잡혔다. ‘논골담길’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민들이 살아온 비탈진 동네 골목길에 洋風으로 꾸민 커피집들이 오밀조밀 들어 섰다.
드디어 마지막 만찬. 최후의 만찬보다는 어감이 좋다.
특히 안방마담들을 배려한 엄총재의 추천은 바다를 바라보며 실내악이 흐르는 이탈리안 리스토란테 ‘피아노’. 피자를 주축으로 한 이태리음식, 와인으로 마무리 입가심.
이 식당 주인은 나폴리 본토에 가서 피자 굽는 기술을 배워 왔고 피자 화덕은 이태리 유명 화덕을 가져와 시리얼넘버가 붙은 것이라고 한다. 페킹덕을 굽는 치엔취더의 화덕같은 격이겠지.
이름은 다 욀 수가 없으나 샐러드와 여러 음식 맛이 듣던 바와 같이 훌륭하고 가장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피자의 토핑과 부드러운 도우의 식감.
이 식당 앞에서는 ‘사(4)발(足)이’라고 불리는 4륜 오토바이를 30분간 2만원에 빌려 준다. 피서객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석양의 모래밭을 종횡무진 질주했다.
귀경하는 버스 안에서 한태규 대사는 명윤이의 사랑을 독차지한 비결을 네가지 교훈으로 정리했다.
계곡을 오르면서 명윤이가 힘들어 하는 기색을 보이길래 손을 잡아 줬더니 좋아 하더라. 즉 “어려움에 처한 자 손을 잡아 주라!”
사실 무릉계곡 쌍폭까지의 왕복코스가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는 무리다. 아이가 목말라 해서 들고 갔던 500ml짜리 삼다수 통을 입에 대줬다. 여기서 한점 더 보탰다. 즉 두 번째 비슷한 내용이지만 “목마른 자에게 물을 줘라”
세 번째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발언의 양을 50대 50으로 대등하게 조절하라”는 것이다. 외교관 초년병 때 배운 법칙인데 발언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것은 실패한 회담이라는 것. 자기는 명윤이와 얘기를 알맞게 주고 받았단다.
또 하나는 생각이 안난다. 이 글을 읽고 수정보완해 주기 바란다.
바위에서 운동화가 미끌어져 조인트를 깔뻔한 명윤이를 발견하고 하산길에 손을 붙잡고 내려와 오줌까지 뉘게 해주고 조부모에게 반납한 이춘삼 기자 쌔빠지게 고생하고도 외면받은 이유가 있었다.
명윤이 손을 열심히 잡아 주고 비빔밥 그릇에서 집어낸 고사리, 버섯 등속을 다 먹어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점과 관련해 한가지 실책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에서 거지반 내려 올 때쯤 이 아이의 다리가 풀리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힘들어?”라고 물으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어쩔 것인가? “자 이제 다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달래니까 이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아빠는 이럴 때 안아 주는데…” 그러는 거였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는 안거나 업어줄만큼은 안됐다.
한태규가 잡아준 건 올라갈 때여서 그래도 힘이 있었던 반면 나는 내려올 때라서 힘이 소진됐고 결국 그만 내가 덤태기를 썼던 것이다. 다 쑨 죽에 코 빠뜨린 격.
나는 그래서 배웠다. 역시 줄을 잘 서야 하고, 타이밍을 잘 맞춰야 된다고.
이번 여행을 요약, 요점정리하자면 기분좋은 멤버들, 맛있는 식사, 편안한 잠자리 - 이 세가지일 것이다. 충분한 휴식과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는 일정은 말할 나위가 없다.
좋은 친구들 하고 동문수학하니까 좋긴 좋더라. 엄총재 부부의 세심한 배려가 새삼 고맙다.
여행 종반에 “내년에 또 오고 싶다” “동기회 여행을 연 3회로 늘리자” “아니 그보다 더 자주…” 라는 절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보충자료
무릉회관 산채비빔밥 033-534-9990
선창 해산물요리 033-531-5861
냉면권가 냉면, 통닭구이 033-533-9911
피아노 화덕피자, Italian cuisine 033-534-3666
한국여성수련원 033-530-4356
특히 냉면권가에 가게 되면 엄총재 이름을 꼭 팔도록.
첫댓글 재밌고 즐거운 여행들 하셨네요. 좋은 추억 거리 가득 담이 오시고 ...
역시 춘삼형의 글솜씨는 명불허전이로고...!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즐거웠던 그날의 기억들이, 여행의 1박2일 이상으로 새록새록 하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