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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 여행 스크랩 오래된 미래 -2012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전승공예 전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177 14.08.08 08: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을바람에 낙엽 잎이 떨어지기 무섭게 매서운 추위의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눈이 내리며 기온이 많이 떨어져 쌀쌀했던 날씨였지만 매서운 추위를 따뜻한 열정으로 물들었던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요, 그것은 바로 2012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전승공예:전 '오래된 미래'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호법 50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전시회는 전승공예품이 전시되었으며, 이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합동 공개 시연 행사가 열렸습니다.

 

 

 

 

전시회 층별에서는 보유자의 공개시연과 더불어 의(衣), 식(食), 주(住), 미(美)의 주제로 만든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지 기대하며, 먼저 '의(衣)를 입다'라는 주제의 전시장을 둘러보았습니다.

 

 

 

▲ 「오래된 미래 -2012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전승공예 전」의(衣)_입다 中

 

 

 

1. 의(衣)_입다

 

정갈하게 놓인 공예품을 바라보니,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땀 한 땀의 정성과 멋이 살아있는 공예품을 살펴보면, 갓일, 망건장, 한산모시짜기, 누비장, 침선장, 바디장, 염색장, 화혜장, 자수장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이 중 몇 가지 전통공예작품에 대해 살펴볼까요?

 

 

 

 ▲ 자수장 | 수놓기

 

 

옛 부터 손끝이 매웠던 우리 어머니들은 수를 놓았습니다. 여러 가지 색실을 바늘에 꿰어 베에 새기는 자수는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야 했던 아낙들이 즐겼던 천위의 산책이고, 수틀은 그들의 해방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수는 손끝으로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가슴으로 놓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 망건장 | 망건 만들기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었던 조선시대에 긴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이 '망건'입니다. 망건은 상투를 튼 머리에 갓을 쓰기 전에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머리띠이며, 주로 말총으로 만들지만 가늘고 부드러운 코끼리의 꼬리털인 곱소리나 사람의 머리카락으로도 만듭니다.

 

2. 식(食)_먹다

 

 

 ▲ 「오래된 미래 -2012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전승공예 전」식(食)_먹다 中

 

 

다음 전시장으로 이동하여 식과 관련된 공예품 관람하였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옛 부터 음식을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소반장, 사기장, 옹기장, 유기장이 전시되었습니다.

 

 

 

 ▲옹기장                                                            ▲유기장 놋쇠장

 

예부터 "장은 모든 음식 맛의 으뜸이라"라 했고 그래서 "장맛이 독맛이다."라고 해서 우리는 옹기의 가치와 그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유약을 입히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 질그릇과,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번조해 광택이 나고 단단한 오지그릇을 모두 '옹기'라 합니다. 고작 도공의 손가락으로 그어 낸 난초가 장식의 전부지만 옹기는 발효와 숙성, 저장을 위한 '숨 쉬는 그릇'이며 뛰어난 방부성 발효성 정화 능력을 지녔습니다.

놋그릇은 은은한 광택과 온후한 멋 그리고 소리까지 청아한 탓에 우리 어른들이 가장 애용했던 그릇입니다. 구리와 주석과 아연 니켈을 섞어 만든 '놋쇠' 또는 '방짜놋쇠'는 단단하고 견고하며 보온성이 뛰어나고 소리 또한 아주 청량합니다. 특히 놋쇠를 여러 명이 돌아가며 불에 달구고 망치로 쳐 그릇의 형태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짜 유기는 휘거나 잘 깨지지 않으며 변색되지 않을 뿐 아니라 쓸수록 윤기가 납니다.

 

3.주(住)_살다

 

 

▲ 「오래된 미래 -2012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전승공예 전」주(住)_살다 中

 

 

'주(住)_살다'는 주제에 전시된 전시장에는 소목장, 두석장, 완초장, 채상장, 칠장, 염장, 제와장, 대목장, 석장, 번와장, 궁시장, 낙죽장, 벼루장, 배첩장, 윤도장, 금속활자장, 한지장, 악기장, 주철장이 전시되었습니다. 전승공예품은 화려한 문양과 어우러진 은은하며 고담한 멋을 내고 있었는데요, 공예품을 바라보는 내내 그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 소목장 | 가구 만들기

 

 

꾸밈이 없고 자연스럽게 나무의 무늬 결을 살리며 최소한으로 장식한 소박한 아름다움은 우리가구의 특징입니다. 사랑방에는 선비의 청풍 같은 기개와 청빈을 상징하는 단아한 가구를, 안방에는 소박하고 순수하고 실용적인 반닫이와 경대를 들였습니다. 또 뒤주의 든든함은 종갓집 맏며느리를 닮았습니다. 이렇게 나무를 다뤄 세간을 만드는 사람들을 목수 또는 목공·목장이라 합니다.

 

 

 

▲ 두석장 ( 나비장석앞바탕 자물쇠, 백동화장품함)

 

'따로 또 같이' 라는 말은 아마 두석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두석은 큰 의미로 '장석'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소목장이 만드는 세간이나 문짝 등 건축의 세부를 이어주고 보강하거나 걸고 닫을 수 있는 자물쇠나 경첩 등 금속장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장석 중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놋쇠장석을 만드는 장인을 따로 두석장이라 합니다.

 

 

4. 미(美)_를 내다

 

 

▲ 「오래된 미래 -2012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전승공예 전」주(住)_살다 中 나전장

 

 

마지막 '미(美)_를 내다' 전시관에서는 나전장, 화각장, 옥장, 매듭장, 입사장, 장도장, 각자장, 목조각, 불화장, 단청장, 금박장, 백동연죽장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영롱한 무지개 빛깔을 내는 조개나 소라 껍제기를 붙여 장식하는 나전장과 아름다운 광채와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속성을 지닌 금은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금박장은 금을 종이처럼 얇게 늘이어 금박을 만들어 옷감 뒤에 무늬를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2012년 11월 14일~ 12월 2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시회에서는 매일 6회씩 각각의 종목별로 기능 보유자 합동 공개 시연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중 저는 두석장 박문열 기능 보유자와 목조각 전기만, 소목장 박명배, 유기 김수영 보유자 선생님의 시연행사를 보았습니다.

 

 

 

<두석장 박문열>

 

 

 

먼저 두석장 박문열 보유자 선생님의 시연행사를 보았습니다.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놋쇠장석에 무늬를 녹여 자물쇠와 경첩의 금속장식을 만드는 장인을 두석장이라고 합니다. 장석은 경첩, 들쇠, 앞바탕에 여러 모양의 문양을 새기는 것을 말합니다. 날 정 하나로 문양을 하나씩 찍어 파 내려가는 것이 특징인 두석장은 때리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자물쇠 원리에 대해 놀라기도 하면서 감상하였습니다.

 

 

 

 

박문열 보유자 선생님은 1950년 10월 13일 경주시 황성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65년 15세에 용산에 있는 <삼흥주물공장>에 들어갔고 17살에는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공장>주물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생계가 어려워 1968년 누나의 소개로 윤희복이 운영하는 장석공방에 들어가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고가구의 보수업을 익혔고 3년 뒤 한남동에 고가구 수리업을 겸하는 자신의 공방을 내게 됩니다. 그러나 가게에 화재가 났고 모두 전소되어 윤희복 선생의 아들이 운영하는 <광명당>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수년 후에 어렵게 다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손으로 만든 장석과 기계로 만든 장석은 마감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해,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며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1987년부터는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여 특별상을 수상했고 이후 주의의 권유로 자물쇠를 출품하기 위해 경남 진주 <태정박물관>에 가서 자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때 기억해 둔 것을 서울로 돌아와 작업하여 10일 만에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엔 전통적인 비밀 자물쇠를 종류별로 한 벌씩 제작하여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여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2000년 7월 22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보유자로 인정받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것을 알리고 그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쉬지 않고 6시간 동안 기술을 알려주신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마음과 노력이 합해져 오늘날 멋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목조각 전기만>

 

 

 

3층으로 내려가 목조각 전기만 보유자 선생님의 시연행사를 관람하였습니다. 조용히 목조각상을 만들고 계신 모습이 참 인상 깊었는데요, 차분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조각하는 모습이 경건하게 느껴졌습니다. 전기만 보유자 선생님은 1929년 10월 25일 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6·25전쟁 때 월남하여 군에서 복무했다. 광복 후 해주에서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목조각이 더 천성에 맞았다고 합니다. 군대제대 후 목조각으로 관광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일을 잠시 했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무형문화재 불화장인 석정스님을 만나게 되었고 조선시대 목불이나 좋으니 공부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고, 1967년 제1회 동아공예대전에서 입선하게 되었습니다. 1968년 전국 기능경기대회 목공예부분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2001년 12월 21일 중요무형문화재 목 조각장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소목장 박명배>

 

 

 

소목장 박명배 보유자 선생님은 1950년 6월 12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기술 익히는 것을 권유했던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서울로 올라와 18세에 서라벌 예술대학(지금의 중앙대학교) 공예학과 최회권 교수가 운영하는 공예미술연구소에 취직을 하면서 소목일을 접하였습니다.

 

 

 

 

이후 40여 년간 한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전통 가구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매진하였고, 그 장인정신과 솜씨가 알려져 청와대 영부인실 및 운현궁 등에 박명배의 작품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로마교화청박물관 내 한국관 가구뿐 아니라 LA한국문화원, 워싱턴한국문화원, 베를린한국문화원 등에 전통가구도 만들게 되었고, 1989년 동아공예대전에 목리반을 출품하여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 의거리를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12년 4월 22일 중요무형문화재 소목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1994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반에서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유기장 김수영>

 

 

김수영 보유자 선생님은 제1대 기능보유자 김근수 선생님의 아들입니다. 20대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와 40여 년 동안 유기업에 종사하면서 기능을 계승하였습니다. 부질작업, 가질 작업, 땜 작업 등 유기제작과정의 탁월한 기량과 이론적 지식을 인정받아 2008년 8월5일 중요무형문화재 유기장 주물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으며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유기장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볼 수 있었는데요, 흙으로 굽기 전의 그릇 만드는 과정을 직접 시연해 주셨습니다. 대체로 유기제작의 기법에는 쇳물을 녹여서 촛대 ·향로 ·화로 와 더불어 그릇의 형태를 이루는 주물유기(통쇠), 놋쇠를 메로 쳐서 대야 ·양푼 ·식기 ·수저 외에 징 ·꽹과리 등을 만드는 방짜(方字)유기가 있습니다. 또 주물과 방짜를 병행하는 반방짜유기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감독하신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전시는 지난 50여 년 동안 우리가 전통공예를 어떻게 대하고 읽어왔는가를 곰곰이 새겨보며 돌아보는 동시에 앞을 보고자 한다. 미래의 우리전통, 100년 뒤 우리 후손들이 역사에 기록하고 무형 문화재로 지정할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의 전통'은 과연 어떤 것일 지 상상해보기로 하자. 오늘, 지금은 내일의 전통이며 역사다. 우리가 남길 미래의 전통은 어떤 것일까."

흐르는 물과 같은 전통이 변화가 목적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전통공예"를 목적으로 이를 이어나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뜻깊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전통공예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더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곁에서 가까이 지켜보고 싶은 우리의 전통을 보살피고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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