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의 추억
“여보, 좀 와 봐요. 함박눈이 와요!”
섣달 어느날, 거실 커튼을 열던 아내가 나를 환하게 불렀다. 그러잖아도 찌뿌둥한 몸을 비비적 거리고 있던 참에 반가운 소리였다. “눈이 온다고?”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갔다. 펑펑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발은 소담스러웠고 점점 세차 졌다. 순식간에 아파트 옥외 주차장 주차선을 덮더니 하얀 눈밭을 이루었다. 세상이 온통 하얘져 갔다. 활강하는 눈발 사이로 잊고 지낸 기억들이, 가슴 깊숙이 묻어 둔 추억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우리 가족들은 겨울이 시작되면 붕어빵 가게를 곧잘 들락거렸다. 나도 아내도 밖에 나갔다 올 때는 곧잘 손에 붕어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빈손으로 집에 들어오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아파트 입구의 붕어빵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 성향을 아는 주인아주머니는 재고를 주지 않고 늘 새 붕어를 구워 주었다.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서서 새 빵이 다 구워질 때까지 굽는 과정을 지켜보며 추위를 참았다. 아주머니는 두 개로 짝을 이룬 주물로 된 붕어의 배를 열고 익숙하게 밀가루 반죽을 찰랑하게 부었다. 반쯤 익혔다가 팥소를 짜넣는 손놀림이 비호같이 빨랐다. 까만 주물 붕어를 뱅뱅 뒤집을 때마다 붕어가 익어갔다. 마침내 철거덕 소리를 내며 붕어 틀이 배를 열면 노릇노릇 구워진 붕어빵이 한 마리씩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입안에 군침부터 돌았다.
천 원짜리 한 두 장이면 따끈한 붕어빵 한 봉지를 살 수 있었고, 온 식구가 한두 개씩 나눠먹으며 행복해하던 때가 있었다. 겨울철 간식의 대명사로, 때로는 끼니로 때워지던 붕어빵. 그런데 요즘은 물가고에 덩달아 몸값이 뛰면서 붕어빵을 ‘제철 생선’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겨울철 생선인 도미, 명태가 울다 갈 일이다.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물가와 팍팍해진 생활 형편 탓인지 거리에 흔했던 붕어빵 가게마저 귀해졌다.
붕어빵의 원조는 풀빵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끼니와 허기를 달래주던 서민들의 먹거리였다. TV에서 추운 겨울날의 고단한 서민의 삶을 전할 땐 풀빵 장수가 단골처럼 등장했다. 빵을 굽는 틀의 모양새에 따라 빵 모양이 바뀌면서 이름도 다양하게 진화되었다. 이름도 서러운 풀빵에서 국화빵이 되고, 붕어빵이 되고, 잉어빵이 되었다.
한때는 가난을 상징한 민초들의 거리 간식이었던 붕어빵이 이젠 찾아다녀야 할 정도로 귀하신 몸이 되었다.
온 나라의 온갖 먹을 것들이 지천에 깔려 있는 요즘, 입맛도 풍경도 모두가 달라졌다. 매콤 달콤 새콤한 맛들의 조합을 따지고 눈으로 보는 비주얼과 음식의 궁합까지 보는 미식의 세상에서 붕어빵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생김새가 어떻든, 눈 오는 겨울엔 붕어빵 만한 간식이 어디 있겠나. 속에 든 것이 팥이면 어떻고, 슈크림이면 어떻고, 바닐라, 초코면 어때? 붕어빵은 다 맛있을 테니까. 나는 붕어빵을 사려고 아파트 광장에 쌓인 눈밭을 나섰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