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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에서 떠날지어다
이사야 52:1~12
오늘 본문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귀환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귀환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도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크신 역사와 그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역과 그 사역의 열매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주권적이고 주도적인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구속받은 주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로 지친 자기 백성을 향하여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1절로부터 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너는 티끌을 털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여기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두 번이나 반복하여 “깰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이 둔해져 있고 연약해져 있고 소망을 다 잃어버린 마음 상태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오랜 바베론의 포로 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둔해졌고, 장래에 대한 소망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의 형편을 보면, 침울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두 번에 걸쳐 옷을 입으라는 말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힘을 낼지어다” 또 하나는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말입니다. 원문은 “네 힘을 낼지어다”가 아니고 “네 힘을 입을지어다”입니다. 그들은 힘이 다 떨어졌고 옷도 남루하고 초라하고 노예의 옷을 입고 어두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축제에 입는 화려하고 화사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축축 쳐져 있는 늘어진 어깨, 피곤하고 지친 표정을 거두고 생기 넘치는 표정과 힘찬 활동력을 가진 몸을 가지고 장롱 깊은 곳에 보자기로 꽁꽁 싸두고 다시는 입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축제의 화려하고 즐거운 옷을 꺼내서 입고 절기 때에 예루살렘에서 행복한 기쁨의 예배를 드리고, 결혼식의 축제 때에 춤을 출 때의 기쁨으로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어지는 명령어로 “티끌을 털어버릴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티끌이란 먼지요 죽음에 가까운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거의 죽은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 죽음과 같고 묘지에 묻힐 사람처럼 몸은 아직 살아있으나 마음은 이미 죽어 있는 상태에서 이제 티끌을 다 털어버리고 생기로 충만한 자가 되라고 명하십니다.
또한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라고 명령하십니다. 지금 그들은 마치 노예처럼 목에 줄이 묶여서 끌려다니며 이리 저리 끌려가서 노역하는 그러한 신세인데, 이제 스스로 그 목 줄을 풀어버리고 자유인으로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참으로 시온과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는 현재 초라하고 어둡고 소망 없고 죽음과 같고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처지여서 그 마음이 죽어 있고 소망이 없고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 있지만 이제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내고 노예의 더러워진 옷을 벗어던지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축제의 옷으로 갈아입고 얼굴에 기쁨을 띠고 몸에 활기를 띠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런 변화의 모습을 갖출 수 있습니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거기에 대하여 1절 후반절에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할례받지 아니한 자는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아닌 자들입니다. 부정한 자들도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기기에 부적당한 부정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다시는 예루살렘에 들어올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짓밟혔습니다. 성전의 기물들이 다 빼앗겼고 성전이 다 불타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부서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귀환자들이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백성 아닌 자들로 인하여 다시는 유린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주의 백성들은 기쁨과 활력을 되찾고 화사한 축제의 옷을 입고 영원히 기뻐하며 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귀환자들이 돌아와 세운 뒤에도 성전은 또 다시 더러워졌고 이방인들에 의하여 짓밟혔으니, 곧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세운 시리아 왕국의 에피파네스 4세가 성전에 들어와서 돼지피를 뿌리고 제사장들을 죽이고 쥬피터 신상을 세우고 경배를 요구하는 등 악행을 저지른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40년도 못 되어 로마 제국의 디도 장군이 로마 군대들을 끌고 와서 삼년을 포위하여 공격하다가 마침내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다 불태우고 모든 건물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그 후에 신약 시대에 로마 제국 각처에 번성하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또 다시 이교도들에 의하여 짓밟히고 주후 7세기부터 시작된 이슬람 제국의 공격에 의하여 지중해 연안의 많은 교회들이 불타고 무너졌습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시진핑 정권의 핍박 중에 많은 교회당들이 폭파를 당하였고 성도들은 이리 저리 흩어졌습니다. 이런 일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최종적인 마지막 때에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 의하여 그 일은 극대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우리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세상이 정화의 불에 태워지고 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성이 도래할 그 때에는 마귀도 적 그리스도도 악한 자들도 다 심판을 당하여 불못에 가둬지게 될 것입니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로워진 예루살렘 성에서 다시는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 거룩한 시온 성 예루살렘 성의 거룩한 대로에 악한 죄인도 짐승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구속받은 주의 백성들만 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입은 옷은 더러운 죄수복이 아니요 티끌이 잔뜩 묻은 옷도 아닙니다. 그들의 목에 드리웠던 줄은 더 풀리고 오히려 아름다운 면류관과 화려한 채색옷과 어린 양의 신부로서의 순결한 옷으로 단장하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기쁨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비록 이 지상에서 우리가 저 바벨론의 포로 생활하던 주의 백성들과 같이 어렵고 힘들고 지친 일들을 경험하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깰찌어다. 깰찌어다, 네 힘을 입고,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ㅓ다, 티끌을 털어버릴지어다.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용기를 내십시오. 위로와 소망으로 단장하십시오.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궁극적은 승리의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더욱 힘씁시다. 할렐루야.
두 번째로, 바벨론에 포로 생활하는 그들이 귀환되는 것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절로부터 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일므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여기서 이스라엘을 바벨론 나라로부터 다시 이끌어내는 것에는 대가를 바벨론에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간 자를 그 새 주인에게서 다시 구출하여 해방시킬 때에는 그 노예로 팔릴 때 그 값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낼 때에 애굽에게 이스라엘을 판 것이 아니니 자기 백성을 건져내는 일에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열 지파를 앗수르에 넘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 백성을 바벨론에 넘길 때에도 하나님께서 대가를 바벨론에게서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서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에 값없이 넘긴 것입니다. 아무런 값을 받은 것 없이 무료로 넘겼으니 그들을 다시 되찾을 때에도 아무런 값을 지불할 것 없이 자유롭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회복과 귀환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적인 결정에 전적으로 달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다의 회복에는 어떠한 방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것을 막을 자, 왜 그렇게 하느냐고 하나님께 따질 자가 없습니다.
더욱이 유다가 바벨론에서 노예 생활할 때에 그들을 관할하는 바벨론 감독자들은 떠들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하루 종일 더럽혔습니다. 5절에 그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라는 말에서 ‘떠들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얄랄’이라는 단어로서 ‘울부짖다, 소리치다’라는 말입니다. 그 바벨론 감독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그토록 조롱하면서 큰 소리로 모독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말씀을 미리 이사야 선지자들에게 예고하는 것은 그 해방의 날에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이가 바로 그들이 조롱하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유다 백성들이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록 우리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낮아짐과 비천히 여김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진대 우리를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실 때에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죄를 지었을 뿐이요 세상과 사람들에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들에게서, 세상에게서 다시 건져내실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변명할 것도 없습니다. 무엇인가 대가를 지불해줄 의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빚진 것이 없으니 우리를 그의 자유로운 주권으로 우리를 해방시키고 원래의 자리에 우리를 이끌어내실 것입니다. 이 일이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시고,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는 일에 그 주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에 온 세상에 큰 기쁨이 충만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7절로부터 1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큰 기쁨이 주의 백성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길을 무사히 건너고 뒤따르던 애굽 군대가 수장되어 구원받았을 때에 이스라엘 여인들이 춤추며 찬양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였습니다. 이처럼 바벨론에서 주의 백성들이 고레스의 유대인 해방령의 조서가 발표된 후에 기쁨이 충만하여 고토로 돌아올 때에도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이 단락을 보면 기뻐하는 네 사람이 나옵니다.
첫째로, 해방을 알리는 사자가 등장합니다. 7절에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라고 하였습니다. 이 해방의 메신저는 고레스의 해방 조서의 소식을 페르시아 전역의 유대인들에게 알리며 예루살렘으로 그 소식을 알리려고 뛰어서 높은 산을 넘어 달려갔습니다. 이 해방의 복된 소식은 곧 훗날 우리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해방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들을 가리킵니다. 할렐루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은 바로 전도자의 발인 줄 믿습니다. 마음이 심란합니까? 세상 일에 눌립니까? 일이 잘 안풀립니까? 복음지를 들고 나가 복음을 외치십시오. 가장 기쁜 소식, 가장 큰 해방과 구원의 소식,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로부터의 구원의 이 기쁜 소식, 참된 평화의 소식,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노라는 이 소식을 소리 높여 전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 심령도 기뻐지고 우리 문제들은 주님께서 대신 해결해주실 것이요 우리 마음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둘째로, 파수꾼들입니다. 8절에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파수꾼들은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성벽 위에서 파수하면서 누군가 기쁜 해방의 소식을 가져올 것을 늘 목매어 기다리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저 산을 넘어 기쁜 얼굴로 달려오며 해방되었다고 외치는 사자의 소리를 가장 먼저 듣고 너무 기뻐서 그 성을 향하여 나팔을 울리면서 마침내 해방되었다고 소리를 외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성전에서 늘 기도하며 기다리던 파수꾼들이 누가복음에 나오지 않습니까? 한 사람은 시므온이요 또 한 사람은 안나입니다. 그 두 사람이 그토록 기다리면서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의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는 음성을 들었더니 그는 마침 주님이 태어나서 성전에 결례를 행하러 왔던 중에 성령의 급한 지시를 받고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을 뵙고 자기 품에 안고서 기도하기를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누가복음 2:29~32)
고 찬양하였습니다. 안나도 오랫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과 기도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더니 마침내 아기 예수를 보고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이와 같은 분들이 영적인 파수꾼들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파수꾼들이 되어 주님이 장차 재림하실 그 날이 가까워갈 때에 주변 사람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면서 영적으로 살려내어 주님 맞이할 영적 준비를 시키는 복된 사명 감당하기 바랍니다.
셋째로는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입니다. 9절에,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자연 만물들도 주님의 해방의 큰 사역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황폐되었던 곳들이 이제 하나님의 역사로 주의 백성들이 돌아와서 찬양하며 경배할 때에 그 땅 역시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는 우리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 동안은 하나님께서 주무시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과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팔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라고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온 열방과 땅끝까지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가 참으로 크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보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주의 백성들이 돌아오고 주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거하시고자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옵니다.
11절로부터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과거 광야에서 성막 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 가운데 임하시고 그 성막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영광이 거한 것과 같이 그 백성에게 거하시려고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서 9장에서부터 11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지성소에서 떠나 문지방에 이르고 또 다시 성읍 가운데에서 올라가 성읍 동쪽산 감람산에 머물다가 완전히 떠나 가는 과정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 직후에 바벨론 제국의 침공으로 완전히 유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매 유다 왕국은 아무런 힘도 없이 무너져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벨론에서부터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서 과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막을 모시고 행진한 것처럼 당당하게 고토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왕의 귀환이 이루어지고 그의 백성들은 왕을 시위하는 자들로서 함께 귀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돌아오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 행하시고 뒤에서도 호위하시기 때문에 귀환자들은 두려워하거나 떨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 출애굽 때에는 황급하게 도망치듯 나왔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당당하고 느긋하게 하나님의 호위 아래 하나님의 제사장들로서 당당히 고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절에서 암시한 바 있듯이,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듯이, 주의 백성들은 성결해야 합니다. 또한 11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성막 가까이 섬기는 제사장과 같이 주의 백성들은 거룩한 제사장의 성결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다시는 수치를 당하고 주님의 나라를 잃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훗날 이루어질 완전한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실 것입니다. 왕의 놀라운 귀환이 훗날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지고 택하신 주의 백성들은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히 살게 됨으로써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이 이르기 전까지 지상에서부터 거룩한 영적 제사장으로서 주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전 제사장으로서 잘 살아갑시다. 그리할 때에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구원의 놀라운 일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전도자가 되고 영적 파수꾼이 되고 영적 제사장이 되어서 주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시는 그 날까지 맡겨진 영적 사명 온전히 감당하는 성도들이 다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