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영화 후기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이현지
하얀 설경으로 가득찬 포스터, ‘눈사태’의 예고, 처음엔 블록버스터급 재난영화인 줄 알았다. ‘사상 초유의 눈보라 속에서 탈출하는 가족과 그 속에서 꽃피우는 눈물겨운 가족애’, 이런 뻔한 내용을 상상하면서도 어쩐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면 한국형 재난영화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탓일까? 어쨌든 영화가 시작되고나서 곧 깨달았다. 이 영화는 내 예상과는 “전혀”다른 성격의 영화라는 것을.
기존의 영화들이 기승전결의 스토리라인과 함께 웃음과 감동포인트를 명확하게 짚어주는데 주력했다면, 이 영화는 이 모든 것을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 무지하게도 불친절한 영화였다. 고구마 답답이 같은 전개에 중간 중간 사이다가 먹고싶을 정도였는데,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내가 느낀 감정의 이유가 이 영화가 합리모델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영화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스키휴가를 떠난 첫 날, 토마스네 가족이 사진기사의 권유에 못이겨 가족 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사모님, 남편분께 머리를 맞대보세요!” 짜맞춘듯한 전세계 사진기사님들의 단골멘트에 머리를 맞대어보는 부부의 모습, 각도를 잘못 맞춘 탓일까. ‘탁’하는 소리와 함께 부부의 헬멧이 부딪힌다. 어쩌면 앞으로 부부사이에 일어나게 될 갈등을 암시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합리 프로세스를 거부하는 영화답게, 영화 시작 후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토마스 가족에게 블록버스터급 재난을 가져다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두 시간짜리 영화를 이끌고 나갈 주요 사건이 기승전결 없이 처음부터 등장한다는 것에서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런지 더욱 궁금증을 유발했다.
평화로운 식사시간, 갑자기 발생한 눈사태에 모두가 공포에 질리고 아버지 토마스는 본능에 이끌려 혼자만 도망을 가게 된다. 아내 에바는 홀로 자리에 남아 아이들을 지키고, 다행스럽게도 눈사태는 스키장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눈먼지였음이 밝혀지며 모두가 안전했지만, 이 때부터 가족의 균열이 시작된다. 아내 에바는 남편의 행동에 크게 실망을 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에바도 어떻게든 그를 이해해 보고싶어서 이 상황을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며 합리화 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먼저 언급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토마스의 모습에 화가 난 그녀는 결국,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의 ‘잘못’을 저격하게 된다.

결국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인정하는 토마스. 아마 그 역시도 그동안 태연한 척 했어도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에 분명 속은 착잡했을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무너지며 아이처럼 우는 그의 모습에서 애잔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 장면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그 마음이 짜증으로 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이 장면에서 배우분의 찌질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다!)

영화는 이 사건을 통해 그의 ‘잘못(본능대로 행동한 것)’이 정말 잘못인 것 일까? 라는 물음을 던진다. 에바가 리조트에서 만난 여자와 함께 했던 식사자리를 떠올려보자. 눈사태 사건 이후, 토마스 부부는 리조트에서 만난 스웨덴 여자와 그녀의 이탈리아 출신 남자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다. 이 때, 에바는 남편이 눈사태 때 홀로 도망친 일을 인정하길 바라며 이 사건을 언급한다. 그런데 반대 편에 앉은 스웨덴 여자는 웬일인지 같은 여자임에도 에바에게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날 에바와 그녀는 리조트에서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 삶에는 남편과 아이 외에도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요.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라는 것에서만 내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순 없잖아요?”
그녀는 우선순위가 에바와는 전혀 다른 여성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여자의 불륜 행위나 지나치게 자유로운 모습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마따나, 존재의 이유는 하나 혹은 두 개에서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에바는 어제의 사건에서 토마스에게 아버지, 남편,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그는 그 순간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에바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합리모델’ 속에서 토마스를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토마스가 여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토마스는 현재의 ‘가족’이라는 제도 내에서 ‘아버지’라는 역할을 맡았을 뿐, 결국에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하나의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토마스를 희생양 삼아 테이큰의 리암 니슨이 될 수 없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토마스의 친구 매츠 역시 그의 행동이 ‘순간적인 반응’이었다면서 그의 다른 면들, 이를테면 그가 그동안 가족들에게 보여준 사랑과 같은 부분을 감안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본능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실제 마음은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바탕의 눈물파티 끝에 가족은 다시 리프트에 오른다. 눈보라 속에서 또 한번의 블록버스터가 연출이 되고, 이번에는 토마스가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장면은 생략되었지만 아마도 부부가 아이들을 위해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눈사태 이후 떨어진 아버지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시키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일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스키여행 마지막 날, 무너졌던 가족의 평화는 가까스로 회복되어간다.
영화가 끝날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또 다른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위태롭게 운전하는 버스에 가장 큰 불안감을 느낀 것은 에바. 눈사태 사건을 겪어서였을까, 그녀는 기사를 다그쳐서 버스를 세우도록 하고 가장 먼저 버스에서 내린다. 혹자는 이 부분을 그녀 역시 본능대로 행동한 것이라며 ‘반전’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사실 나는 아직도 이 장면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일단 상황 자체가 눈사태처럼 ‘불가항력’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그녀가 모두를 남겨두고 혼자 탈출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버스 사건은 눈사태와는 달리 예측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토마스든 에바든 충분히 자신의 본능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영화는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앞으로 생기게 될 ‘불가항력’적인 일들을 모른 채, 함께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모습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이후, 이들에게 어떠한 포스마쥬어(불가항력)가 다가올지 모르지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각자의 포스마쥬어를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것. 에바가 토마스가 먼저 인정해주길 바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