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와 봄밤
장옥관
돼지가 생각나는 봄밤이다 돼지감자가 땅속에서 굵어 가는 봄밤이다 시커먼 돼지들이 벚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는
봄밤이다 하이힐을 신은 돼지
뻣뻣한 털로 나무 밑동을 자꾸 비벼대는 봄밤이다
미나리꽝엔 미나리가 쑥쑥 자라고
달은 오줌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여린 꽃잎은 돼지의 콧잔등을 때리고
깻잎머리 한 여중생들이 놀이터에서 침을 퉤퉤 뱉다가 돼지를 만나는 봄밤이다 봄밤에는 돼지가 자란다
천 마리 만 마리 돼지들이 골목을 쑤시다가
캄캄한 하수구로 흘러드는 봄밤
풀어놓은 돼지들을 모두 잡아 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띄우고 싶은 봄밤이다
얼음토굴에서 곡기를 끊고 수행하던 기간은 끝났다. 저마다 화두를 풀고 한 소식 얻어 하산한다. 붓다가 고행을 멈추고 수자타에게 받았던 것처럼 미음 같은 봄비를 달게 삼킨다. 생선가시처럼 하늘을 찌르던 나무에 푸른 비늘이 돋는다. 잠 깬 다람쥐 궁둥이에 살이 오르고, 반달곰이 쓰러진 나무둥치 체중계에 오른다. 봄은 몸의 계절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몸 부푼다. 몸 부풀면 맘도 부풀어 천만 마리 돼지들은 꿀꿀꿀 꽃이 된다. 벚꽃 풍선 한 잎에 매달린 돼지들이 둥둥 떠오른다.
-반칠환 시 해설집 {당신의 짐이 당신의 날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