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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거룩한 삶의 원리
이 장에서는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영위해야 할지를 밝히고 있다. 선택된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법도와 사회 규법에 대한 규례이다. 이러한 규례와 법도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행해야 할 것들이며,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곧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증거하는 것이다.
제사(5-8,21-25,30), 도덕적 의무(11-12,32), 재판(15,35), 상거래(35-36), 약자와 타국인에 대한 보호(9- 10,13- 14,33-34) 및 성도덕(19-20,29)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실생활에서의 주요 원리는 바로 언약공동체인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삶이 거룩하고, 정의와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원칙들을 여러 삶의 정황에 실천하여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바로 하나님의 품성이며, 그분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는 그들이 거룩하고, 의로우며, 자비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하나님을 향한 규례
1-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4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5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되도록 드리고 6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 삼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7 제 삼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되지 못하고 8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이곳에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대명제가 나타나 있다. 이 법정신은 오늘날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앙 공동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너는 거룩하라 나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이것은 언약의 백성들의 삶의 거룩성을 강조하는 말씀이며 하나님은 거룩하다는 말씀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거룩이라는 말이 분리하고, 정결하다는 의미인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분리된 백성이며,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 여러 민족들 가운데 오직 하나님께 구분되어 성별된 민족으로 우상숭배와 죄악, 부정으로부터 분리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정결법을 통하여 외적 정결과 내적 및 영적 순결을 추구하도록 명령하신다. 여기서 십계명의 두 계명을 언급하고 있다.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분부를 받고 있다. 대인관계 계명의 첫째가 부모를 경외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안식일 계명과 동등하게 언급된다(출 20:8-12; 신 5:12-16).
이는 부모를 공경하는 태도야말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사회적 도덕성의 근간이다.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가정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요일 4:20). 여기서 공경이라는 용어는 주로 하나님께 대해 쓰였지만, 자녀의 생애에 있어 부모의 높은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개념에서 쓰이는 말을 부모를 공경하는데 사용한 것을 보면,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요 하나님의 형상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자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고대 세계에서 부모의 노후에 대한 공양의 의무도 지닌 의미로도 설명된다.
특히 부친의 사망 후 어머니를 잘 공양하라는 것이 이 말씀에 대한 고대근동 배경의 일 면이다(Albertz, ZAW [1979],356-374),
안식일은 언약의 표로서 언약관계의 생명력을 신장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로서 모든 가족이 안식일을 성수하도록 명 령 받았다(출 20:8; 레 23:3;26:2), 이 안식일 계명은 창조의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표시이다(창 2:1-3; 출 16:23-30), 이는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으로 하나님의 창조, 휴식, 축복의 날로서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구원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재창조 곧 구속을 믿고 고백하는 날이다. 이 두 적극적 계명은 하나님과 부모의 권위에 대한 존경과 숭경의 명령이다.
헛것을 위하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의 첫 번째의 두 계명을 반복한 것이다(출 20:3.4.8), 여기서 헛것이란 아무 것도 아닌 무가치한 것인데, 즉 이것이 바로 우상이란 것이다. 즉 우상숭배의 결과를 잘 표현하는 말로 무의미 또는 무가치성을 말한다. 우상을 숭배하지도 말고 어떤 형상의 우상도 만들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으로 그분의 행위는 어떤 형상에 제한되거나 형상화휠 수 없었다(Childs, Book of Exodus, 409),
화목제 희생은 특별히 구약의 5대 제사와 별도로 여기서 언급된다. 이는 백성들이 특별히 유의해야 할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화목제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원제, 감사제, 그리고 서원제로 드려졌는데, 이것은 강제 규정의 제사가 아니므로 주의를 덜 기우릴 소지가 있었고, 이것은 특히 헌제자의 몫으로 공동 축제용으로 활용되었기에 특히 제물의 고기에 대한 회식 규정을 느슨하게 지킬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공동 축제는 이방인의 축제를 닮을 위험이 있었기에 이것에 대한 특별한 지시사항이 주어졌다.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나머지는 삼일 되는 날에 그것은 모두 불태워졌다. 이 화목제의 제물 중 감사제로 드린 것은 드리는 당일에 먹어야 했고 다음 날에는 불태워야 했고 자원제나 서원제는 이튿날까지 먹을 수 있었고 삼일 째 되는 날에는 불태워야 했다(레 7:15,16). 남은 고기는 가중한 것 이 되었고, 이것을 먹는 자는 제사의식의 거룩성을 범하는 자가 되었다.
이런 행위는 희생제물의 효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으며, 제물이 열납되지 못하게 했다. 이는 또한 제의를 더럽히는 것으로 언약 공동체에서 분리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반드시 그분께서 지정하신 방법과 자세로 드려야 열납되는 것임을 볼 수 있다. 신약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고 말씀하시 면서 신앙의 대신 및 대인 관계의 양면성을 강조한다.
이웃을 향한 규례
9- 18: 9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11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13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규정들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거룩성과 사랑은 서로 얽혀있다. 거룩함이란 상대방의 복지에 대한 적극적관심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러한 원칙을 실천하도록 분부를 받는다. 곡물을 벨 때 밭 모등이까지 다 거두거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고대 세계가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토지가 없는 가난한 자들이나 외국인들을 위한 인도적 규정이다. 그 당시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삶이 보장된 제도이다.
여기에서 율법의 위대한 사상인 법과 정의 즉 공의와 자비의 정신 중 자비가 잘 나타나 있다. 떨어진 곡식이나 모퉁이에 있는것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과일의 경우에도 그것을 따려고 할 때도 막대기가 닿지 않는 곳의 열매까지도 모두 따기 위해 나뭇가지를 흔들고 살피는 일을 금지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고대 세계에서 춘궁기나 어려운 때에는 생계가 막막한 자들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소유한 자들이 이들을 위해 자비를 베풀도록 명하신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난한 자들도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러한 규정은 안식년법과 희년법 규정들과 함께 이웃 사랑의 대표적 규정이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돌보심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예를 보아스가 룻을 위해 베푼 태도에서도 잘 나타나있다(룻 2:15-16).
이와 비슷한 규정이 신명기 24장 10-22절에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출애굽의 구원사에 기초해서 이러한 자선을 베풀도록 명하였다. 후대 랍비들은 밭 면적의 육십분의 일(1/60)에 해당하는 면적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남겨두는 최소한의 부분이 라고 말했다(m Pe'a 1.1- 2).
도적질과 거짓말을 금하라는 것은 제 8계명에 해당되는 타인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를 금지하고 인간의 보편적인 악인 거짓말을 경고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보편적 도덕률을 범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되고, 이웃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들로 인해 이웃에게 상처와 피해를 입히고 고통을 준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거짓은 사단에게서 기인되었고(요 8:44), 인간의 역사가 온갖 거짓으로 점철되었다.
여기서는 도적질과 거짓말을 같이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되는 것으로 이웃을 속이고 피해를 준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 맹세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하나님의 성호는H 인간에게 주신 구원과 축복의 칭호이기 때문에 이것을 함부로 거짓 맹세하는 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고 하는 이 말은 구멍을 뚫고 상처를 내는 의미가 있는데, 하나님의 거룩성과 인격에 흠을 내는 일이다. 이 문제는 주로 재산을 탈취하고 이것을 거짓 맹세로 취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이웃을 압제하고 늑탈하는 것은 폭력이나, 권위 및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웃의 것을 빼앗는 것을 말한다. 품삯을 아침까지 주지 않는 것은 노동자의 가족들을 위한 저녁과 아침 음식을 살 수 없게 하기 때문에 금한다. 이 때 노동자가 지불되지 않은 임금에 대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이런 어려웅올 가져온 것에 대해서 고용주는 책임이 있게 된다(신 24:14-15; 약 5:4; TDOT, 2:456).
귀먹은 자도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아야 할 정도로 신체적 약자들에 대한 율법의 정신을 설명한다.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지 말도록 규정한다(신 27:18).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생명을 높이 보시며 고난당하는 인간에 대한 자비가 어떠함을 보여 준다(출 22:21-27; 23:6; 신 24:17- 18; 27:19). 이런 인간에 대한 자세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기인됨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자세는 재판할 때에도 적용된다. 불의를 행치 말며 또한 가난한 자라고 지나치게 동정적으로 기울어진다든지 권력자라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 유리한 판결을 해서는 안 된다(출 23:3).
약자나 권세자나 어느 편에게도 이로운 방향의 선입견을 가진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타인을 험담하거나 중상 모략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은 유목 생활올 하였기 때문에 이러 저리 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BDB, 940). 고대사회에서는 부족간의 불화나 개인간의 시비로 인한 사법적 판단이 속히 내릴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일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신앙 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육적인 인간의 연약성이다.
예수님께서도 형제를 향해서 노하는 자는 살인한 것으로 경고하셨다(마 5:21- 22).
물론 형제가 잘못을 범했을 때는 책망하여야 하고, 경고하고 바로잡아야 한다(Kugel, HTR 80 [1987], 49-54,57-58; Manual of Discipline, 5:24- 6:1; Cairo Damascus Document, 9:2-8). 이러한 원칙은 신앙공동체의 원칙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들의 언약관계에서 의를 세워야 한다(THAT, 1:730). 신앙공동체의 내적 힘은 사법제도의 성실성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사회가 되도록 공동체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암 5:24).
원수와 이웃에 대한 황금률이 선포되는데, 원수를 갚지 말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의 핵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는 말씀이다(TDOT, 1:111).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 대강령이다(마 22:37- 40; 막 12:31; 눅 10:25- 37; 롬 13:8-10; 갈 5:14). 신약에서는 더 나아가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고한다(딤전 5:20). 또한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권고한다(사 63:4;렘 46:10;롬 2:19; 히 10:30).
일상 생활과 관련된 기타 규례
19- 37: 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 을 입지 말지며 20 무릇 아직 속량도 되지 못하고 해방도 되지 못하고 정혼한 씨종과 사람이 행음하면 두 사람이 형벌은 받으려니와 그들이 죽임을당치 아니할 것은 그 여인은 아직 해방되지 못하였음이라 21 그 남자는 그 속건 제물 곧 속건제 수양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어올 것이요 22 제사장은 그의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의 범한 죄의 사함을 받으리라 23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못한 것으로 아겨 먹지 말 것이요 24 제 사년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25 제 오년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26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 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 27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말며 28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나는 여호와니라 29 네 딸을 더럽혀 기생이 되게 말라 음풍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30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33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34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하나님 여호와니라 35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36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37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위의 규례에서는 혼합을 금하고 있다. 거룩이란 순결을 의미한다. 혼합이란 거룩성을 손상시킨다. 종류가 다른 짐승의 교합, 씨앗의 혼합파종, 그리고 혼합된 재료의 직조 동의 섞임을 금한다(신 22:9-11). 이것들은 의식적인 것들로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순리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Douglas, Purity and Danger, 53).
또한 이 방 종교를 혼합하지 말아야 한다는 영적 진리도 내포하고 있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의와 불법, 빛과 어두움, 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의 사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하겠느냐면서(고후 6:14-16)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신앙의 순수성과 순결성 지키도록 교훈하고 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이러한 규정은 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신 구세주의 속죄의 공로로 그 정신은 오늘날 유효하지만, 문자적인 준수의 의무는 없는 것이고 그렇게 강요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된다. 마치 오늘날 거의 모든 옷이 합성으로 된 것을 사용하고, 작물도 혼합 재배하는 소이와 같다.
고대 세계에서 노예는 주인의 소유이었다. 이스라엘의 노예는 고대근동의 노예신분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충분한 시민의 권리는 누리지 못했다(ZAW 89 [1977], 46). 이 여종과 그 주인의 행음의 처벌은 사형은 아니었으나, 속건제를 드려야 했다. 노예가 아닌 약혼녀의 경우 둘다 자의적으로 범행하였을 시는 모두 죽임을 당했고 여자가 불가항력으로 당한 때는 가해자인 남자만 죽임을 당했다(신 22:23- 7).
가나안에 정착 후 과수의 열매는 3년간은 할례를 받지 않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 먹어서는 안되고, 4년째의 것은 먼저 하나님께 거룩한 것으로 여겨져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했다. 그것은 여호와를 창송하는 가운데 드려졌다는 것이다. 5년째의 것은 먹을 수 있었다. 3년간의 성별을 통해 그 열매의 부정을 씻고, 그 이후에 성별된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제로 드렸다. 이스라엘의 삶의 모든 것은 거룩한 삶에로의 부르심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백성들이 성결의 법을 깨닫도록 했다. 이러한 규정의 기본개념은 하나님께서 토지의 주인이시며 이스라엘에게는 토지를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할 때 그분께서는 풍성한 수확을 보장한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피에 관한 금지규정은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고대근동세계의 지하신(chthonic deities)을 위한 제사는 제단이나 돌이 아닌 땅으로 흘려 스며들게 했다. 그래서 신들이 표면으로 나와서 예언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믿었다(ASTI 8[1972], 85). 피 째 먹지 말라는 것은 이러한 피의 제사를 원천적으로 막는 의미도 있다.
복술은 동물이나 연기가 올라가는 것, 혹은 금속의 모양이나 운동의 표시를 통하여 미래를 분간하는 것이다. 요셉도 잔을 사용하여 점 을 친 일이 있다(창 44:2,5,15). 일례로 잔에다 물을 붓고, 거기에 잉크를 부으면 어떤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을 읽으면서 장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술수는 은밀히 행하는 마술로써 눈을 통해 상대방에 최면을 걸어 넋을 흐리는 마법이라고도 했다(GHCL, 644).
고대 세계에서 머리는 생명력과 미의 상징이고, 문화적 및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어떤 민족에게는 머리나 수염을 특별한 방식으로 깎는 것은 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경우 그것은 슬픔의 표시였다(21:5; 신 14:1; 렘 16:6; 겔 44:20; 암 8:10). 오늘날 정통파 유대인들의 남자들이 머리나 수염을 각지 않음으로 이 규정을 지키고 있다. 어떤 경우 머리가를 둥글게 깎지 말 것 등은 고대 이교풍속으로서 선민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금지되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살을 베거나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고 했다. 이러한 것은 이교풍속이다.
고대 시대에 사람이 극한 가난으로 시달릴 때에는 딸을 창녀로 팔려는 유혹을 받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땅을 더럽힐 것이고, 많은 죄악을 불러들일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다(18:24-27; 신 23:17- 18; 암 2:7; 호 4:14; 겔 33:37-39).
안식일을 기억하고 성소를 공경하라는 말씀에서 주님께서 계시하신 대로 성소를 두려움과 경외하는 자세로 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정한 상태에 있는 자는 그 경내에 접근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이교적 습관이나 관행을 절대로 성소에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소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유지하고 율법에 의해서 요구된 헌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의식을 위해서 필수적인 제도였다.
가나안 풍습으로 선민 이스라엘은 이것들을 피해야 할 금기였다. 우상숭배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변질시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란한 행위는 전염성이 있기에 근절시켜야 했고, 안식일 신앙과 신접한 자를 멀리하며, 노인을 공경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다는 신이나 귀신을 찾아서 대화를 하거나 신탁을 구해서는 안되었다. 고대근동의 많은 민족들은 영매를 통해서 이러한 일을 많이 했다.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되었다(TDOT, 2:238).
이스라엘에서는 센 머리를 존경해야 하는데, 연장자들은 경험에 따른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노인들을 존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들 중 하나의 표현이다(잠 16:31; 20:29; 욥 29:7-10).
거룩함은 정의를 격려한다. 정의는 거룩한 사랑의 기초가 된다. 이 정의와 거룩의 연합은 감상적 사랑을 피하게 하고, 잔인하게 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이러한 원칙이 이스라엘의 여러 형태의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했다. 타국인을 사랑하라는 것은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객이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간의 공감되는 기초이다(25:14,17; 출 22:21; 신 23:16; 렘 22:3; 겔 45:8; 46: 18). 불의를 행하지 말라고 하는 권고(15절)는 이곳에서 재판이나 도량형 사용에는 공평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했다(신 25:13-16). 이중 저울과 추를 사용하는 것은 물건을 팔 때는 가벼운 것을 그리고 살 때는 무거운 것을 이용함으로써 가난한자들은 이중으로 착취를 받게 되 었다(암 8:5; 미 6:10- 11).
정의가 실천되기 위해서는 진리만을 말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법정에서 특히 그렇다. 증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데, 만약 거짓 맹세를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된다. 거짓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볍도와 규례에 대한 전적 순종을 강조한다. 선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의 핵심은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즉 출애굽의 구원사를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의 그들을 위한 구원과 은총을 회상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바의 거룩한 삶에 대한 부르심에 믿음이 기초해야 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본 장에서 일곱번(3-4,10,25,31,34,36); “나는 여호와니라”는 표현이 여덟 번(12, 14,16,18,28,30,32,37) 에 나온다. 이러한 반복적 언급은 이러한 규정들에 대한 신적 권위를 부여하며, 이러한 것들의 영속적인 준수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반복적 표현은 바로 이 법들의 준행 여부가 고대 이스라엘의 축복과 심판과 밀접히 관련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수직적 관계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적 행위는 수평적으로 동료인간에 대한 사회 도덕적 윤리와 병행한다는 것이다. 즉 희생제사 의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통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약에서 말하는 황금률이다.
구속사관
고대 이스라엘의 삶의 원리는 거룩 정의 및 자비이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는 동료 인간과 이웃에 대한 수평적 관계에서 구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이 거룩하고, 건전한 양식과 법도를 따라 행함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바로 하나님의 품성이며 그분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해 계시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했다.
예수님은 19장의 원칙을 황금률로서 표현하셨다(눅 10:27).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다(마 22:37-40; 막 12:20- 31; 녹 20:27- 28). 특히 두번째 원칙의 대상인 이웃은 도움이 필요되는 사람이라고 예수님은 재해석하셨다(마 5:43- 48; 녹 10:30- 36). 사도 베드로도 본 장의 원칙에서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5)에 권고한다.
여기서 거룩함이란 사랑으로 표현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벧전 1:22). 이러한 참된 사랑은 연합으로 이끌고(벧전 3:8), 항상 실제적 선행으로 나타난다(벧전 4:9). 이러한 사랑에 고무되어 신자들은 신앙공동체의 영예를 높여야 한다. 모든 악 살인 도적질과 악행을 피해야 한다(벧전 2:12; 4:15). 자신의 지위를 위해서 일하는 대신에, 신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 고난을 기꺼이 겪고자 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본을 보여주시어, 고난과 어려움을 인내하도록 도우신다(벧전 1:13- 14,17; 2:21-24).
이러한 사상은 야고보서에서도 그대로 설명된다: 핵심적인 윤리적 원칙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2:1 ,9).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여야 하고 타인을 속이거나 임금지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2: 1.9; 5:4). 사람의 혀가 엄청난 파괴를 행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혀를 제어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이러한 원칙을 따르는 자들은 중상하거나 악담을 말하지 않는다(약 4:11; 5:9). 야고보의 견지에서는 레위기 19장의 원칙은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목적의식으로 사는 삶의 지침서이다(1:8,27).
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거룩함으로 부르셨다고 했다(살전 4:7). 신자들은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살전 3;12)하라고 권고한다. 하나님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자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며 구원을 베푸신다(살전 5:23).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삶의 모본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