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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28-37 (느부갓네살왕의 간증)
성경본문 : 다니엘 4: 8-37
28.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왕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열 두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쌔
30.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33.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36.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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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피영민 목사
(서론)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는 일입니다.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전도의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간증이란 우리의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부인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최소한 자신의 간증거리를 소유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와서 당신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냐고 질문할 때에 자신있게 증거할 수 있는 간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 4장을 통해서 구약시대에 가장 권세가 크고 능력이 많았던 느부갓네살 왕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간증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이 느부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왕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성전을 파괴시킨 왕입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삼아서 바벨론으로 데리고 간 왕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느부갓네살 왕은 대단히 권세가 큰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느부갓네살 왕에게 종종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서 2장을 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이 큰 꿈을 꾸게 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꿈은 황금신상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앞으로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계시로 보여 주신 꿈입니다.
또한 다니엘서 4장의 전반부에도 느부갓네살 왕이 2번째로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땅의 중앙에 있는 한 나무가 크게 성장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크게 자랐는지 그 키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았습니다. 나무의 잎사귀는 심히 아름답고도 매우 무성하였습니다. 심지어 열매조차도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 정도로 풍성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다니엘서 4장 11-12절은 이렇게 기록을 하였습니다.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무릇 혈기 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으리라”.
이때에 하늘에서 한 천사가 내려와서 갑자기 소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이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이상하게도 천사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어라! 앞으로 이 그루터기가 7년 동안 이슬을 먹게 될 것이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짐승처럼 지내게 하라!”. 이처럼 너무나도 신기한 꿈을 느부갓네살 왕은 꾸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늘날 참으로 많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깨어나면 곧 잊어버리고 아무리 기억을 하려고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은 꿈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은 깨어도 너무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시간이 흘러가도 절대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지금 느부갓네살이 꾼 꿈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였습니다. 이 꿈으로 인하여서 느북갓네살 왕의 마음에 큰 번민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왕은 바벨론에 있는 모든 술사들을 왕궁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특별히 꿈에 대하여 해석을 잘한다고 하는 유명한 해몽가들을 집합시켰습니다. 박수도 모으고 술객들도 다 모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꾼 꿈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올바른 해석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왕이 꾼 꿈에 대하여 명확하게 해석을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은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인간의 지혜와 명철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 꿈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만이 풀 수 있는 하늘의 신령한 비밀이었습니다.
꿈을 꾼 당사자인 느부갓네살 왕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을 생각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먼저 그 문제를 풀고자 하였습니다. 만약에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을 기억하고 그를 제일 먼저 찾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시간동안 고민하고 번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은 후에 느부갓네살 왕은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문제가 다가오면 먼저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통하여 그것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올바른 성도의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항상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느부갓네살 왕의 부름을 받은 다니엘은 그 꿈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다니엘은 매우 진실하게 꿈을 해석하여 왕에게 고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다니엘은 왕을 향하여 “왕이시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왕이시여, 그 큰 나무는 왕의 나라가 앞으로 번영하고 크게 번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번영이 극에 달할 때에 하나님께서 왕을 치실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들짐승처럼 처량한 신세가 되어서 7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을 마시게 될 것이고, 거칠고 딱딱한 바위에서 잠을 자게 될 것입니다. 왕권도 빼앗기고 들짐승처럼 방황하는 처량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어서 광야에서 7년 동안 기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이시여, 왕께서는 속히 죄를 깨닫고서 회개하시고 나라의 공의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꿈을 해석하면서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권면을 무시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지 않고 여전히 교만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1년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열 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니엘의 해석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오늘의 본문 다니엘서 4장 28절이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이 다니엘서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앙고백을 조서로 만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신앙고백을 조서로 만들어서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알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였습니다.
우리 성도의 신앙의 간증은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신앙간증을 할 때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자랑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설교만 하다가 내려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엄밀히 정의해서 신앙간증이 아닙니다.
올바른 신앙의 간증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요소가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믿기 전의 상황이 어떠했는가?,
둘째는 믿을 때의 경위가 어떠했는가?,
셋째는 믿고 난 후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넷째는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이 무엇인가? 하는 요소입니다.
이 4가지가 바로 신앙간증의 4대 요소입니다.
1. 믿기 전의 상황
느부갓네살 왕의 믿기 전의 상황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30-31절을 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의 믿기 이전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29절을 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왕궁의 지붕에서 거닐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때에 틀림없이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의 땅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이룩한 영광을 30절부터 본격적으로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여기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전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바베론의 찬란한 영광을 성취하였노라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이 느부갓네살의 표현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영광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체험하기 이전의 느부갓네살 왕의 모습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인생의 중심은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그가 품은 세계관의 중심에도 바로 자기 자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조금도 중요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느부갓네살 왕 자신만이 중심이 되어서 모든 일을 주관하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체험한 이후에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어리석게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음을 깨닫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37절을 보시면 “---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교만이 패망의 선봉임을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하였기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큰 소리를 잘 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옆에서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서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은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바로 느부갓네살 왕처럼 말입니다.
둘째로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몰랐습니다.
사실 느부갓네살 왕에게 모든 영광을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총명도 주시고 권세와 권력과 세상의 모든 영광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느부갓네살 왕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꿈을 꾸게 하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전혀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마음속에는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영광이 전적으로 자신의 공로라고 하는 자만심만이 팽배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누리고 있을 때에는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실패와 역경을 경험하게 되면 그러한 모든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지금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요 은혜임을 깨닫고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느부갓네살 왕은 거짓된 안정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궁과 도성안에 있으면 영원토록 안전할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는 왕권과 물질과 세상의 높은 권세와 권력을 소유함으로써 항상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권세와 권력과 물질과 부귀영화는 하나님께서 치시면 있다가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마는 허망한 것들입니다. 심지어 세상의 모든 물질이 그대로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들짐승처럼 바꾸어 버리시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의 마음을 순식간에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당당함에서 들에 있는 초라한 짐승의 마음으로 바꿔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 왕은 본문 33절의 말씀과도 같이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되었고 손톱은 새의 발톱과도 같은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믿었던 세상의 권세와 권력과 물질과 부귀영화는 거짓된 안정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영원한 안정을 보장해 줄 수가 없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영원한 안식처가 될 줄로 확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현세도 안전하고 내세도 안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살아도 축복을 받고 죽으면 더 큰 축복을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현세에도 많은 괴로움이 있고 죽으면 더 큰 고통이 뒤따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옥과 도박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십니까? 사람들이 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천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상관없이 천국은 엄연히 존재하는 곳입니다. 지옥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없다고 아무리 부정해도 살아서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법칙이요 섭리입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처음에는 이러한 진리를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광야의 고난을 통하여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을 믿게 된 경위
느부갓네살 왕은 이제 7년간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고난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소처럼 풀을 먹고 들의 이슬을 마시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되고 손톱은 새의 발톱처럼 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의사한테 과연 우리 인간이 이러한 병에 걸릴 수가 있는지에 대해서 문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영화나 책에서 보는 괴물과도 같이 사람이 흉측하게 변하는 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그런 모습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랑하는 아내도 떠나고 신하들도 무시하고 국민들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벨론이라는 최강대국의 절대 권력자로서 세상을 호령하던 그가 이제는 광인이 되어서 들에 유배되어지는 너무나 처량하고도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하여 풀무불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던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도 고백하기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실로 한 인간의 몸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느부갓네살 왕은 무려 7년 동안이나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느부갓네살 왕의 인생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본문 34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중에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이 최고의 방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 인생의 큰 문제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방황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러러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큰 문제라고 할지라도 1주일만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면서 기도해 보십시오.
반드시 살 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피할 길이 분명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총명함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왔노라고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고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3. 믿고 난 이후의 변화
이제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게 된 느부갓네살 왕에게는 대신관계에 있어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본문 34절을 보시면 “---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과거에 스스로를 왕으로 높이고 자랑하였던 느부갓네살 왕이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지극히 높으신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권세가 영원한 분이시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언어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태도에도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제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칭송하고 존경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을 통하여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었고 확실하게 경험하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언어와 모든 행동 양식에 있어서 그와 같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느부갓네살 왕은 대인관계와 대물관계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본문 36절을 보시면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또 지극히 큰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과거에 누렸던 영광과 권세보다 더 큰 영광과 권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총명을 다시 찾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물질과 권세와 권력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 느부갓네살 왕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세상의 큰 권세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왕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보다 더 큰 왕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같은 사실에 대하여 본문 37절은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라고 증거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위대한 신앙고백입니까!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진실하게 만나면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만나도 그것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내가 하나님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때에 대신관계, 대인관계, 대물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4. 신앙고백
오늘 본문 35절을 보시면 하나님을 경험한 느부갓네살 왕의 신앙고백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이 말씀처럼 느부갓네살 왕은 땅의 모든 거민과 하늘의 군사들을 자기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담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주권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으로 행하시는 일을 금할 존재도 없고 하나님을 향하여 꾸짖을 자도 없다고 느부갓네살 왕은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저는 신학공부를 참 오래 하였습니다. 석사과정 3년, 박사과정 5년, 대학교에서 15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어느덧 신학을 공부한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이 오랜 세월동안 성경과 신학을 공부한 제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간단한 한 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바로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제가 그동안 공부한 신학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당신이 7년 동안 들에서 짐승처럼 지내면서 배운 결론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틀림없이 그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의 주권자가 되십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한 담대한 신앙고백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7절의 말씀을 다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뜻은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은 다 의롭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깊이 경험한 이후에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의 주권자가 되시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은 전부 다 의로운 일임을 담대히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신앙고백을 조서로 만들어서 바벨론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이 듣도록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느부갓네살이 이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틀림없이 그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진리를 담대히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할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품고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이 직접 7년 동안이나 겪었던 고난을 간증하면서 고난을 통하여 더욱 더 큰 축복을 쏟아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권면하며 위로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운데에 고난을 통하여 연단하시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축복을 허락해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강조를 하였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
(결론)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담대한 신앙고백을 표현한 느부갓네살 왕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것도 결코 영원토록 안전하지 않다는 진리입니다.
제가 이번 여름 휴가 때에 미국에 있는 클리브랜드 오하이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정전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마침 운전을 하다가 기름이 다 떨어져서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으려고 했지만 정전이 되어서 기계가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주유소로 찾아갔지만 역시 그곳도 정전이 되어서 기계가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는 차가 기름이 다 떨어져서 집에도 가지 못하고 길에 정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차를 돌려서 목적지를 바꾸어 급히 집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있었던 클리브랜드뿐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정전이 발생하였습니다. 정전이 되니까 그 다음날부터 미국 전역에 난리가 났습니다. 백화점도 물이 안 나오니까 휴점을 하고 레스토랑은 냉장고의 음식이 전부 다 상하여서 휴업을 하였습니다. 거의 삼일 동안 미국 전역의 업무가 마비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지금 이 세상의 초강대국인 미국이라고 할지라도 정전이 되니까 꼼짝도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이 제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한순간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우리들에게 영원한 안전을 보장해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가 가장 안전한 장소에 거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그늘 밑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되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날마다 누리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세상의 시험과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조금도 요동하지 마시고 믿지 않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달라진 삶의 모습을 담대히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경험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과 고난을 통하여 더 큰 축복을 쏟아부어주시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대히 선포하시는 복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