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8-16
믿음은 모험이다 / 노경모 목사
‘믿음은 모험이다’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모험’이란 말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45세의 여성 산악인 오은선, 그녀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 사운데 높이가 8000m 이상 되는 14개의 산 정상을 올랐다는 말입니다. 정말로 대단하지요. 그녀는 이 산들을 오를 때 마다 모험을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산들을 오르다 죽었습니다.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오른 것입니다. 모험입니다.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 자기도 걷고 싶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합니다. 바다로 뛰어 내리는 것은 모험입니다. 바닷물에 빠져 죽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로드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뛰어 내리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배경을 말씀드립니다. 지금 이스라엘 땅에는 극심한 가뭄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에게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당시의 과부는 가장 어려운 계층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람의 도움의 대상이었고, 구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극심한 가뭄 가운데, 그것도 가장 가난한 과부의 집에 가서 유하라고 하시니 엘리야도 아주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르밧’이라는 마을로 갑니다. 그 때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마실 물과 떡 한 조각을 가져 오라고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대단합니다. 좌우 사정을 보고 요청을 해야지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극심한 가뭄이요 기근인데 그것도 가난한 과부에게 이런 요청을 하다니..
그 과부는 이렇게 요청을 하는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12절이지요.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정말로 귀막힌 안타까운 대답입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말합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과부는 아들과 함께 먹을 최후의 양식을 엘리야에 줍니다.
과연 과부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도저히 우리로서는 잘 이해가 안가는 행동을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이 과부의 행함을 통해서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이란 말을 참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는 다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개념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는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자,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은 하나님께 우선권을 두는 모험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가루와 약간의 기름으로 만드는 음식, 이것은 과부와 그 아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양식입니다. 그것을 엘리야는 자기에게 먼저 가져 오라는 명령합니다.
13절을 봅시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먼저’ 라는 말입니다. 이 양식은 과부와 그 아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마지막 음식인데 ‘나와 내 아들이 먹을 것인가? 아니면 엘리야의 말대로 먼저 엘리야에게 줄 것인가? 나와 내 아들이 이 음식을 먼저 먹지 않으면 죽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리야에게 먼저 준 것은 위험을 무릅쓴 모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우선권을 둔 모험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우선권에 대해서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8:21-22,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믿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간을 원하신다면 내가 아무리 바빠도 그 시간을 먼저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는 이유와 핑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과부는 음식을 만들어 먼저 엘리야에게 주지 못할 이유가 분명히 확실히 있었습니다. 나와 내 아들이 굶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이 이유를 달지 않고 먼저 엘리야에게 바쳤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너무 이유가 많습니다.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며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 우선권을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본문의 과부를 통해서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선적으로 시간을 투자합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선적으로 물질을 투자합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우선적으로 몸으로 봉사하고 섬깁시다.
바쁘고 피곤하고 시간이 없고 다른 중요한 일이 있고... 이유를 달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것들도 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우선권을 두는 것으로 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있나요? 그러지 못하고 있으면서 이 모든 좋은 일이 우리에게 더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주님의 말씀과는 맞지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들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야 선지자에게 먼저 최후의 음식을 바쳤을 때 과부는 가뭄과 기근을 이길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을 체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믿음은 하나님께 전부를 맡기는 모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전적인 위탁’, 또한 ‘전적인 헌신’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백 세 때 얻은 이삭은 아브라함의 전부였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있어서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은 그의 양식의 전부였습니다. 그것을 엘리야는 자기에게 바치라고 한 것입니다. 이 과부는 남김없이 그 전부를 엘리야에게 바쳤습니다.
'올인(all in)'이라는 말은 2003년에 만들어진 새로운 말, 신조어입니다. 포커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한판에 전부 거는 일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거기에 다 투자하는 것을 말하지요.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올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한 남자가 두 여자에게 양 다리를 걸치고 있으면 두 여자 모두에게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6:13에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니 하나님만 섬기라고 예수님께 교훈하십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우리의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37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50%가 아닙니다. 90%도 아닙니다. 99%도 아닙니다. 100%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에는 모험이 따릅니다. 내가 엘리야에게 ‘이 모든 것을 다 주면 우리는 굶어 죽게 되는데..’, ‘내가 백 세 때 얻은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면 나는 이제 대가 끊기게 되는데..’ 그러나 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하는 모험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이 것 저 것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주께서 원하신다 할 때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어린 새 나귀를 예수님께 바친 사람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주님의 뜻이 라면 100% 헌신합시다.
셋째,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으로 반응하는 모험입니다.
요즈음의 문제는 우리가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책을 통하여 여러 강의를 통해서 우리는 너무 많이 배우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많이 안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많이 알게 되면 실천이 부족하게 되는 경향이 참 많습니다. 행함이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론에는 강함입니다. 실천에 약하면 많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책을 내려 놓고 내가 과연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과연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습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반드시 순종이라는 말이 따라다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백 세 때 얻은 이삭을 실제로 하나님께 바치는 순종이 있었고, 노아는 다른 사람들이 조롱했지만 하나님의 명령대로 산에서 배를 만드는 순종이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실제로 마지막 남은 양식을 엘리야게 주었습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15절에.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순종으로 반응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순종에는 모험이 따릅니다.
‘요단 강물에 제사장이 먼저 발을 담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모험입니다.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데.. 가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를 물로 가득채운 후에 그 물을 하객들에게 갖다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모험입니다. 만일 그냥 맹물이면 우리들은 맞아 죽을 수 도 있는데.. 그러나 순종합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반응하는 모험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15-16절의 말씀을 무척 좋아 합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저도 좋아합니다. 과부의 집의 가루통과 기름 통에 항상 가득채우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모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께 우선권을 둡시다. 하나님께 전부를 맡깁시다. 하나님께 순종으로 반응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의 손길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