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가 있는 집
박경선
아침에 눈뜨면, 거실의 블라인드를 옆으로 옆으로 잡아당깁니다. 그러면, 정원이 온통 내다보이는 커다란 액자같은 통유리창틀 속에 가지를 척척 늘어뜨린 우람한 밤나무가 무궁화, 백일홍, 석류, 복숭아 등의 나무를 한 그루씩 거느리고 거기 서 있습니다. 자연이 그린 이 명화를 보고 있으면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거느리고 서 있는 엄마나무 같은 밤나무가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옵니다. 어쩌면, 편애하다보니 눈길을 잡아 끄는지도 모르지요. 사실, 저는, 거실 옆에 비껴 서있는 이 멋진 밤나무를 너무 좋아합니다.
밤나무를 심은 사람은 최 선생입니다. 그분이 처음 집을 지어 10년 살고 우리가 3대째 이 집을 사서 올 때부터 저 밤나무에 반하였습니다. 그때도 7월이라 우람한 몸통의 밤나무가 푸른 잎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 철철 흘러내리는 낭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이야 옛날 기와집을 개조하여 거실과 부엌을 내어 달아 허름했지만, 그 모든 불만을 덮어버리고 정원에서만 살 듯이 이 집을 샀습니다.
이 집을 산 그 해, 8월 말에 남편의 정년퇴임식을 정원에서 했습니다. 집 둘레는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둘러싸고, 넓은 마당에서는 싱그러운 초록 웃음을 내뿜는 잔디가 엎드려 손님을 반겼습니다. 그 해에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과 동네 어르신들과 친척들, 모두 백 명 정도 모셨는데 푸른 잎을 한껏 늘어뜨리며 밤송이를 매단 밤나무는 그날, 출장 뷔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넓은 품에 품어 그늘을 만들어주고, 사진작가 임선생은 그 모습을 렌즈 속으로 모셔와 예술 사진으로 찍어 내었습니다. 그래서 최선생이 살 때 매일신문에 ‘패션계의 거목이 사는 아름다운 집’으로 소개되었나 봅니다. 지금도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와 ‘나무가 많으니 좀 팔아라.’ 고도 하고, 부동산에서 와서 내어놓지도 않은 집을 팔아라고 애걸하기도 합니다.
6월 초여름, 집 뒷산 등산을 하고 내려오다가 우리 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울타리를 싸고 있는 소나무와 단풍나무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요. 그윽한 미색의 밤꽃수술이 흐드러지게 피어 푸른 잎에 감싸인 낭만을 철철 흘리는 밤나무 한 그루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대왕소나무가 조연(助演)으로 곁에 서 있어주어서 더 빛나 보였는지는 몰라도, 집 전체 분위기를 환상의 세계로 몰아갔습니다. 마치 미국의 부호 ‘빌게이츠’가 집 속에 숨겨두었다는 동굴 속을 나오면 그 끝에 우리 집 같은 감흥의 집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공상도 해봤습니다.
비단, 풍경 뿐이겠습니까? 밤나무는 6월에 노란꽃술을 다 털어 보내고 나면 8월 들면서부터 알밤을 키워 밤송이를 톡톡 떨구어줍니다. 우람한 덩치에 비해 밤송이는 작은 밤톨로 여물었지만 우리 마당에 살며 떨구어준 것이라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독에 모래를 한 가득 담고 그 속에 보물을 묻듯 알밤을 묻어 놓으면 요긴하게 쓰입니다. 시골집에 갑자기 손님이 오셨을 때도 고기 구운 화덕에 여열로 구워먹기 좋고, 가실 때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한 봉지씩 들려 보낼 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밤나무를 베어버려야 할 위기를 맞았습니다. 문제는 남편입니다. 아니,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잘못하면 밤송이에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 베어 버려야한다는 남편의 지론(持論) 때문입니다. 염려에 『나무를 찾아서』 라는 책을 20권이나 쓴 나무박사, 김대수 교육장을 초대하여 고견을 들어보았습니다.
“괜찮아요. 이때껏 살면서 벌에 쏘여 죽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밤송이에 다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집 분위기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품격이기도 하지요.”
전문가의 말씀 한 마디로 5년 째 버티어 왔는데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밤송이가 떨어질수록 남편은 밤나무를 악귀 보듯 투덜거림이 심해졌습니다.
제게는, 결혼식 폐백 (幣帛)때, 시어머니가 새아기에게 밤을 던져주며 복을 빌 듯이, 밤나무가 우리 집에 복을 빌어주는 나무라 여기는데, 대어놓고 베어버리자니 밤나무한테 미안하고, 재앙을 얻을까도 두렵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 손으로 심은 나무라면 저렇게 긴 세월을 자란 나무를 쉽게 베워버리자고 할 수 있겠어요. 앞으로 우리가 더 늙어지면 잔디 풀 뽑는 일이나 소나무 가지 쳐주는 일도 힘들고 해서 집을 팔아야 할 텐데, 그때 품격 있게 보이는 밤나무가 없다면 이 집의 품격은 어떨지요?”
그러다가 제가 발목을 삐어 깁스를 하고 시골집에 와보니 밤나무가 장난꾸러기 강아지처럼 잔디밭 위에 온통 장난을 해두었습니다. 밤송이도 툭툭 떨어뜨려놓고 잎도 한껏 흩어 어질러 놓았습니다.
‘아, 남편에게는 밤송이 핑계보다 저것을 치우는 일이 힘겨웠던 거였구나.“
남편이 몸 져 누울 생각을 하니, 그때 비로소 ‘바라보기’와 ‘겪어보기’의 차이점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저에게 밤나무는 사람들이 놀러와 리마인드 웨딩 놀이할 때 사진의 배경이 되어주는 관상용이었지만, 남편에게는 밤나무 가시에 찔려가며 혼자서 뒤치닥꺼리를 겪어내어야만 하는 애물단지였습니다.
첫사랑으로 하나가 된 남편인데도 저는 남편의 소중함을 너무 몰랐습니다. 철부지 아내의 의견을 ‘확’ 무시하지 않고 어르고 달래어온 남편의 인격도 잊고 살았습니다.
이제야, 밤나무 뒤에 서 있는 남편의 모습이 크고 또렷이 보입니다. 밤나무가 있는 멋진 집보다 건강한 남편이 있는 행복한 집을 지키고 싶습니다.
2019.9. 17. 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