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8(화)_사29.1-14_아리엘이여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주의 은혜로 새아침을 열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샬롬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더러워진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주의 양식을 먹어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주께서 슬프다(ה֚וֹי)고 하십니다. 아리엘'은 다윗이 진을 쳤던 성읍, 곧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사자(The Lion of God)'라는 뜻의 '아리엘'로 삼으셨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그 아리엘을 향해 화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주를 가까이하겠다’ 말하고, 입술로는 ‘주를 공경한다’ 고백하지만, 실상은 세상의 포도주에 취해 비틀거리며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이미 죽어 있었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해마다 절기를 지키며 제물을 바쳤습니다. 성전 제단 아리엘이 있으니 절대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입으로만, 입술로만 하나님을 찾는 공허하고 형식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예루살렘이 무너진다면, 교만했던 백성들의 목소리는 땅의 먼지 속으로 흩어지듯 낮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오랜 신앙생활과 종교적 행위를 자랑하더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생명력을 잃은 유다 백성들과 같습니다.
아리엘, 즉 '하나님의 사자(The Lion of God)'라 불리던 그들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이사야 29장 13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그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은 어떻게 다를까요?
여호와의 말씀, 즉 하나님의 계명은 시온에서 나와 우리가 그 길을 걷고 행하도록 이끄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반면에 사람의 계명은 생명력은 사라진 채 외형적인 종교 행위만 남게 만드는 인간의 전통과 가르침일 뿐입니다.
당시 선지자들과 선견자들은 하나님이 아닌 애굽이 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봉인된 책처럼 읽히지도, 깨달아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 보지 못했고, 술 취한 사람처럼 무감각해졌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그들에게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깊이 잠드는 영을 부으셨기에, 형식적인 종교 행위에 중독된 채 영적 마비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과 마음을 원하시지만, 그들은 위선적인 행위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말로 찬양하는 것 같았으나 그 마음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깊이 잠드는 영에 사로잡힌 신앙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아 세상에서 아무런 생명력도,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교회가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전통과 사람의 계명에 사로잡혀 신앙의 본질을 놓친다면, 자기 자신의 삶은 물론 우리가 속한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본문 11절은 하나님의 모든 계시가 그들에게 '봉한 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글을 아는 자가 자신의 지식과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보려 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최고의 인공지능(AI)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뜻과 하나님의 계시는 결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것은 영에 속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에, 인간의 지성으로 조합해 낸 답변은 하늘의 계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글을 모르는 자는 주의 뜻을 살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글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며 자신의 느낌과 감정, 주관적인 체험만을 확신하며 설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역시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이 아닙니다.
결국 세상에 취해 있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말씀을 듣는 자, 읽는 자, 그리고 지키는 자’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사 40:6). 우리는 더 이상 눈멀고 귀먹은 자가 아닙니다(사 35:5). 겸손히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해 주님 안에 거하고자 몸부림치는 주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만 세상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사 66:2, 5). (WBC)
우리 하나님은 놀라운 일,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만든 전통이나 프로그램화된 범주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종교는 너무나 자주 우리를 익숙한 전통 안에 가두려 합니다. 측량할 수 없이 크신 주님을 인간의 틀에 끌어들이고, 우리의 언어로 제한하며, 하나님을 우리 뜻에 종속시키려 합니다. (WBC).
하지만 우리 주님은 출애굽의 기적처럼, 바벨론에서의 구원처럼, 그분의 크신 기적 안에서 우리를 참되게 자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비로소 닫혀 있던 하늘의 계시가 우리에게 밝히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닫히고 봉인되어 읽히지도 깨달아지지도 않는 삶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날마다 그 놀라운 뜻을 삶의 현장에서 계시하시는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의묵상.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삐삐가 들어왔고, 스물 다섯살이 되었을 때 핸드폰과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25년이 지나 이제 AI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 중 그 누구도 AI를 능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AI는 하나님의 계시를 헤아릴 수 있는가? 답은 ‘없다’ 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AI는 육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식이 많고, 뛰어난 기계라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뜻은 전혀 알지 못한다. 반면, 사람은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세상을 좋아해서 세상으로 가버린 우린, 사실 영적인 피조물이다. 우린 영의 세계를 통달한다. 육을 버리면 영을 얻는다. AI를 넘고서도 한참 넘어서는 영의 존재가 사람이다. 나와 우리 더함교회 가족이 오늘 이 영적 삶을 살기 원한다. 주의 발치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 그의 말씀을 듣기 원한다.
묵상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새날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영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땅을 것을 쫓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말씀 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