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름
정 장 표
여름날 참외가 익을 때면 오래전에 세상을 뜨신 할아버지가 무척 그리워진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참외 중에 할아버지의 망태 속 참외만큼 맛있는 참외는 먹어본 적이 없다.
참외가 익기 시작하면, 밭일을 마치시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할아버지의 망태 속에는 온갖 채소와 함께 잘 익은 노란 골참외가 늘 몇 개씩 들어 있었다. 금방 길러온 차가운 샘물을 소래기에 가득 붓고, 그 위에 갓 따온 노란 참외를 둥둥 띄워 차게 한 후, 부엌칼로 쓱쓱 깎아 먹으면, 사각사각하고 꿀맛 같은 그 맛은, 말 그대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어린 시절 여름철에 흔히 하던 과일서리는 그야말로 짜릿하고 스릴이 넘쳐났다. 그런데 나는 포도서리를 하다가 아주 크게 당황한 적이 있었다. 우리 동네 근방 에는 웬만한 과일밭은 다 있었으나, 포도밭은 없었는데, 어느 날 어떤 친구가 좀 멀리 떨어진 마을에 포도밭이 있다는 정보를 갖고 왔기에 그날 밤에 다함께 처음으로 포도서리를 하러갔다.
그런데 포도송이를 그냥 손으로 따면 되는 줄 알고 아무준비도 없이 가서는 포도송이를 따는데, 막무가내로 아무리 당겨도 그 줄기가 워낙 질겨 도저히 따지지가 않아서, 모두들 웅성웅성 거리면서 시간을 지체하다가 그만 주인한테 들켜, 모두들 잽싸게 도망쳐 간신히 주인을 따돌리고 한데 모여 보니, 따온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유독 한 친구가 겨우 한 송이를 따 왔기에 무슨 수로 땄느냐고 물으니, 줄기를 이빨로 물어뜯었다고 하였다. 이에 모두들 크게 한바탕 웃고는 한 송이이나마 여럿이서 나눠 먹었던 일이 마치 엊그제 일 같다.
그 당시만 해도 과일서리는 아이들의 순박한 장난으로 치부해버리고, 들켜도 크게 한번 혼쭐만 내고는 은근슬쩍 너그러이 용서해주곤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여름하면 퍼뜩 떠오르는 또 하나가 고향 앞 강변의 모래사장이다. 그 모래사장은 폭이 꽤 넓은데다 한여름 불볕더위 일 때는 불덩어리로 변한다. 그 어린시절 여름철에는 모두가 맨발 이었으므로, 한낮 뙤약볕이 내리쪼일 때면 너무나도 뜨거워 그냥은 도저히 못 걸어가고, 고무신에 강물을 담아 양손에 들고 뛰어가다가 발을 잠깐 담가 식힌 후 다시 또 뛰어가기도하고, 또는 책가방 같은 것을 모래바닥에 내려 놓고 그 위에 잠깐 올라서서 발을 좀 식힌 후 뛰어가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같은 모래사장을 걸을 수 없었다. 그때 뜨거운 모래사장을 하도 많이 걸은 탓인지, 아직까지 내발은 무좀으로 인한 큰 고통은 겪지 않고 있다.
그 어린 시절 여름날은 왜 그리도 신나는 일들이 많았던지, 눈 깜짝할 사이에 방학은 금방 지나가버리고, 개학날이 다가오면 늘 무척이나 아쉽기만 하였다. 온몸은 새카맣게 그을려도, 마음은 한없이 즐겁기만 하던 그 여름날로 다시 돌아가 보는 꿈을 오늘도 한번 꾸어본다.
2014. 6. 21.
첫댓글 그 옛날 추억들이 떠올라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어린시절의 추억거리는 어느계절 보다도 여름에 많을 것입니다. 물장구치고 개구리잡던 생각을 떠오르게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부족함이 너무많아 부끄럽스니다
여름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