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과 없음을 얘기하던 중에 반유와 반무를 거쳐 반물질로 달음질치다가 끝내는 옆길로 새고 말았다 있음과 없음은 본바탕이 같다 본바탕이 같기 때문에 어울리고 그리하여 서로는 소통할 수가 있다 있음과 없음의 바탕이 다르다면 비록 한자리에 놓아두더라도 으레 물과 기름처럼 겉돌 것이다
유와 무 사이의 즉시卽是와 무와 유 사이에 있는 즉시의 뜻은 있음이 고스란히 없음이 되고 없음이 곧 있음이라 하여 같은 듯싶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가령 같은 즉시라 하더라도 주어主語와 목적어目的語에 따라 술부述部는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닌다 뭔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와 찾았을 때를 예例로 든다
엄마가 아기와 함께 놀고 있다가 느닷없이 아기를 둘러업는다 귀한 손님의 방문을 받고 손님 접대할 일이 생긴 것이다 밥 짓고 국 끓이고 반찬을 만드느라 업은 아기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손님맞이가 다 끝나고 설거지까지 모두 마친 뒤 문득 함께 놀던 아기 생각이 났다
'어! 우리 아기가 어디로 갔지?' 엄마는 당황하여 아기를 찾는다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다 말고 문을 박차고 길거리로 뛰쳐나간다 그녀는 실신 상태가 되어간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가야, 사랑하는 아가야! 제발 어서 돌아와 다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엄마 마음을 잘 모를 거야 뭐든 다 용서할테니 제발 돌아만 와라'
그때 마침 이웃집 할머니가 아기 엄마 손을 잡으며 걱정한다 '아이구 새댁, 이게 웬일이야?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등에 업고 있는 아기는 뭐고 새댁이 찾는 아기는 또 누구야! 응?' 할머니 말씀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아기를 업고 있으면서 찾았네' 아기는 넋이 나간 엄마 등에 업혀 여전히 쌔근쌔근 자고 있다
우리 속담에 이러한 말이 있다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고 도시락 들고 밥 굶고 열쇠를 들고 열쇠를 찾으며 스마트폰 들고 스마트폰을 찾는다 잃어버렸다고 여길 때는 있음에서 없음 사이의 즉시이고 잃어버린 적이 없음을 알았을 때는 없음에서 있음 사이의 즉시다 같은 즉시가 이리 다르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3×4와 4×3은 답이 크게 다르다' 같은 50°C에서 가열중이냐 식히고 있는 중이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차이점을 상정하게 된다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다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커지지만 지나간 소리는 점차 작아진다 가열중일 때의 50°C와 식힐 때의 50°C는 이처럼 다르다
이는 있음과 없음 사이의 '즉시'와 관계가 없는 예例긴 하지만 가령 물을 끓이고 있는 솥 안에 산 개구리를 넣는다고 치자 이때 물 온도가 80°C라면 개구리는 곧장 뛰쳐나올 것이다 그러나 가령 물 온도가 20°C라면 개구리는 솥 안에서 죽음을 맞는다 출발점과 도착점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느낌도 이처럼 다르다
'즉시'의 예가 가장 잘 표현된 경전이 다름아닌 '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줄여서 '반야심경' 이라 하고 더 줄이면 그냥 '심경'이다 색불이공色不異空과 공불이색空不異色에 이어 바로 색즉시공色卽是空과 함께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논리가 나온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햇살이 심경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신심명의 '유즉시무' 논리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가르침이고 신심명의 '무즉시유' 논리는 반야심경의 '공즉시색' 가르침이다 출발점 색色이 유有가 되고 도착점 공空은 무無가 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논리는 나의 60권째 저서인 <반야심경 여행>(도서출반 도반) 해당 항목에 그 해설이 나온다 심경은 실상과 물리학의 경전이다
자연적으로 이종異種 사이에는 짝짓기가 이루어질 수 없다 썽찬은 1,400여 년 전 신심명을 통해 있음과 없음이 어울릴 수 있음을 이처럼 한마디로 표현하였다 있음과 없음이 만약 이종이라면 모름지기 고집하고 지킬 필요가 없다 아무리 하나로 합하려 하더라도 본바탕이 다른 이종이니까 이 얼마나 멋진 시詩냐
그래서 나의 사사오송 번역과 함께 신심명 원문을 여기 다시 싣는다 있음이란 없음속에 어울려있고 없음이란 있음곁을 떠나지않네 행여만일 이와같지 아니하다면 모름지기 지켜야할 필요가없네 유즉시무有卽是無 무즉시유無卽是有 약불여차若不如此 필불수수必不須守
-----♡----- 우리절 석조부도 2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0호 사진 동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