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를 흐르는 두 강이 있어요. 그 두 강은 하나는 섬진 강이고 다른 하나는 영산강이예요.
섬진강은 그 시원이 전라북도 이기에 우리는 아이들과 전라남도, 그것도 담양에서 목포까지 흐르는 등산강 줄기를 따라 가보기로 했어요.
저 멀리 입구에서 내려 용소까지 올라갔어요. 아이들은 겁도 없이 또 구름다리로 오르자 했는데 추월산 입구까지 걸어야 될 생각의 마음이 급해진 저는 다음에 오면 구름다리에 가자. 했어요.
영산강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 전라남도 담양의 ‘가마골 용소(龍沼)’는 남도의 젖줄이라 불리는 영산강의 상징적인 시원지(始原地)입니다. 이 깊은 계곡에서 솟아난 물줄기는 담양호를 거쳐 광주, 나주, 무안, 목포에 이르기까지 약 115~150km의 거리를 흐르며 호남평야를 적시고 서해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영산강의 푸른 시작점인 '용소'와 거대한 강줄기에는 용과 관련된 애잔한 전설이 함께 전해 내려옵니다.
옛날 담양 고을에 새로 부임한 부사가 가마골의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내일 그곳으로 경치 구경을 가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날 밤, 부사의 꿈에 백발선인이 나타나 "내일은 내가 하늘로 승천하는 날이니 제발 가마골에 오지 말아주시오" 하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기세등등했던 부사는 선인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튿날 가마골로 행차했습니다. 부사 일행이 연못가에 이르러 비경을 감상하던 중, 갑자기 주변에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거대한 황룡 한 마리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러나 황룡은 부사 일행의 부정(不淨)한 기운 때문에 승천할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늘에 닿지 못한 채 계곡으로 떨어져 피를 토하며 죽었고, 이를 본 부사 역시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기절해 죽고 말았습니다.
이 전설 이후 용이 솟아올랐던 못을 '용소(龍沼)'라 불렀고, 용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 계곡이라 하여 일대를 '피잿골'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용소 주변의 거친 암반들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듯한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답니다.
음...여기가 그런 용소란 말이지?
담양 용소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남도 땅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비유되곤 합니다. 구전되는 이야기 속에서 영산강 줄기는 곧 '마음 착한 용'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이 간절했던 남도 사람들을 위해, 담양에서 깨어난 용은 광주를 적시고, 나주를 휘감아 돌며, 목포 바다에 이르는 긴 여정을 떠납니다. 용은 강줄기가 닿는 곳마다 주민들에게 풍요를 선물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달린 반짝이는 비늘을 하루에 하나씩 떼어 햇살과 물빛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합니다. 바다에 도달했을 때는 온몸의 비늘을 다 내어주어 벌거숭이가 되었지만, 덕분에 영산강 유역의 호남평야는 늘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말벌집을 짖었습니다. 말벌집의 모양이 닭발과 같다고 들고 다니는 녀석들.
신이 났습니다.
정말 말벌집은 종이 펄프로 같아요.
이날 얼마나 걸었는지 걸은 시간이 4시간이 훌쩍 넘었어요.
전 두 시간 반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ㅎ
어느 쪽으로든 항상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들입니다.
지쳐서 주저 앉았나 했더니...
제게 낙엽을 던지러 기다리고 있던 거였네요.
뭐 맞아 봐야 낙엽인지라...ㅋㅋ
그렇게 아이들과 용서해서 담양댐 담양 때문에 학교까지 오는 길을 걷고 자전거 탔습니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담양 일대를 돌고
구 학사까지 가서 자전거를 미리 그쪽에 갖다 두기로 했습니다.
안 그래도 5학년들의 체력에는 한 번에 용소에서부터 가는 것은 좀 무리일 것 같아서요.
신학사에서 출발하는 날.
아이들이 사라졌다 했더니
윤이 집으로 몰려가서
차 유리창을 보며 얼굴에 선크림을 팍팍...
준비됐니?
그럼 이제 출발.
우리가 가게 되는 길이 자전거 도로만 있지 않기 때문에 차들이 다니는 큰 도로에서도 연습을 해 봅니다.
전 이렇게 아이들이 나란히 둘 맞춰 가는 이 모습이 왜 이렇게 예뻐 보일까요?
오늘은 지도를 잘 보고 기억해서 온아가 앞장을 섭니다.
어찌 저찌 해서 담양 상설 시장에 도착.
지금부터 안전한 길이니까 뚝방국수까지 자유롭게 갑니다
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달려버리는 아이들.
아이들의 질주 본능!
담양 관방천에 국수집들이 모여서 유명한 '국수거리'가 된 이유는 옛날 이곳에 엄청나게 큰 대나무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에요.
왜 하필 국수였을까요?
옛날 담양 관방천 주변에는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나 빗자루 등을 파는 전국에서 가장 큰 대나무 시장(죽물시장)이 열렸어요. 심지어 어떤 기록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열렸다는 기록도 있어요. 아라비아 상인이 영산강을 타고 들어와 이 담양의 관방제림까지 왔다는 기록도 있답니다.
어쨌든 관방 제림에서 열린 죽세품시장에는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상인과 손님들이 모여들었어요. 이 사람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빨리 나오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국수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관방천 옆에는 아주 오래되고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관방제림'이라는 숲이 있어요. 관에서 제방을 만들고 거기에 나무를 심어 제방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오래된 푸조나무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하천을 바라보며 국수를 먹을 수 있어서 인기가 아주 많았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이 만들어지고
그 플라스틱을 이용해서 생필품들이 만들어지자 대나무 시장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던 국수집들이 '담양 국수거리'라는 멋진 관광지가 되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은 시원한 나무 그늘 평상에 앉아 맛있는 국수와 삶은 달걀을 먹으러 담양을 찾고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국수를 먹으러 뚝방 국수에 도착!
이제는 햇살을 받으며
태목리 구학사까지 달려갑니다.
아이들 공책 첨부!
첫댓글 나주 찜질방에서 일 안 밀리려고 씀. ㅎㅎ
그리고 애들은...웇놀이중. ㅋ
근데 아이들이 윷놀이를 할 줄 모른다는데서 충격! 오빠에게 열심히 배우고 있네요.
가을인줄 알면서도 가을을 못 느끼고 있었네요.
올려주신 사진 하나하나에 가을이 듬뿍 들어있네요.
내일 부턴 귀한 가을하늘,산과들, 바람을 그껴야 겠어요.
독일 촌동네 울집에 웬 담양 특산물이!! 0,.0a
독일 사람들이 이 세상 떠나면 평생 모아서 쌓아놓은 쓰레기 처리하니라 자식들이 싸우고지지고볶으면서 고생 바가지로 하는 거 자주 보아 온터라, 딸래미한테 쓰레기를 물려 주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집을 비울 나이가 되어서리 요즘 청소하고 버리는 중인데 이렁게 다 나오네...
이거 어떡하지, 버리자니 너무 새거고... 장쌤, 담에 소포에 넣어 보낼게여~~ ㅎㅎㅎ
아 하주현쌤 다음 주에 오시는 데 가져 가서 장쌤한테 부치라 할게여. ^^;;
오호~ 담양 촌놈이 저보다 출세했군요?
독일도 다 가보고. ㅋ
@장승규 出世, 세상에 나가봤다는 의미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
구런데 독일 구경은 하나도 못하고 제 방구석 뒷켠 어디에 매달려 있었어요. ㅎㅎㅎㅎ
선물 절대 금지인 저한테 이 하릴없는 촌놈을 데려온게 누군가 한참 생각해 보니...
범인은 제가 돌보는 한국 정원 '제3의 자연'을 만든 김승회 작가네요.
@최혜경 근데.... 제게도 효자손은 아직 필요없는디요.
그걸 제가 받아 뭐 우리집 뒤 대나무밭에 심어 제사지낼 것도 아니고.. 아직 뚱뚱해도 유연해서 등 뒤에 손이 닿습니다. 죽어 쌓아놓은 쓰레기로 고생할 자식은 없어도, 이미 있는 짐만으로도 15평 작은 집이 차고도 넘치나이다. 그 잔을 제게서 옮기옵소서.ㅋㅋ
하주현 선생 쓰라고 하거나 아니면 독일에서 제 3의 정원을 꾸미는 호미 대용으로 쓰면 어떨까요? ㅎㅎ
@장승규 ㅋㅋㅋ 몇 년씩 방구석에 보관했으니 이제 어디다 소거해도 될 듯해요.
담양에서 저걸 만든 분한테는 너무나 죄송한 일이지만서도...
이래서 제가 선물받으면 난감해 하능거...
구래도 먹어치우는 거는 좋아해여, 지난 번에 보내주신 양갱이 몇 주도 안 되서 다 먹어 버렸어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