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10(목)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 광주 경기에서 기아 선수들의 오른쪽 어깨에
검은 근조 리본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무슨 날인가 싶어 찾아보니 김상진 투수의 기일이었다.
97년 해태와 LG의 한국시리즈 5차전.
김상진의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그래서 한국시리즈는 해태의 우승, 김상진과 포수의 세레모니,
그때의 감동은 해태가 김상진을 통해서 영원한 강자가 될것임을 직감하게 만들었다.
장성호와 77년생 동갑, 1996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동기로, 살아있으면 장성호와 같이 지금쯤 기아의 쌍두마차가 되있을 것이다.
김상진선수가 그리 대단한 선수는 아니였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뭐 투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몇승을하고 방어율이 몇인지 그런 숫자가 중요하긴 합니다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4승 26패 2세이브...
김상진선수는 단순히 그가 남긴 저런 숫자에 의해서만 평가 받을 선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야구팬들에게 있어 영원한 불사조인 박철순선수도 그가 남긴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계신 분이지 않습니까?
팬들은 김상진선수가 남긴 숫자를 좋아했던게 아니고
앞으로 그가 보여줄 숫자를 좋아했던겁니다. 기대했던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연히 그가 보여줄주 알았던 그 숫자를 보지 못한 팬들이
그를 그리워 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입니다...
No.11 김상진...
그 해 가을 두 손을 하늘로 치켜 올리며 환호하는 모습으로 팬들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 될 것 입니다.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순간, 승리투수 김상진이 포효하고 있다.
1997년 한국시리즈 5차전 선발투수로 등판해, 9이닝 동안 2안타 1실점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의 기록도 세웠다. 그 뒤 큰활약이 기대되는 투수였지만, 98년말 위암말기(4기) 판정을 받았으며, 결국 99년 세상을 떠나 야구팬들을 안타깝게하고 말았다."
뭐니 뭐니 해도 타이거즈 팬들에게 가장 아쉬운 선수는 故 김상진.
1997년 LG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2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따내며 타이거즈의 새로운 에이스로 각광받던 유망주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0세. 김상진이 이대진과 함께 타이거즈 마운드의 '원투펀치'로 활약해줄 것으로 기대를 품지 않은 팬들은 거의 없었다. 뜻하지 않은 병마(위암)로 22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쳤다. 김상진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회자될 만큼 큰 아픔과 충격을 안겼다.
젊은 호랑이 김상진, 당신을 기억합니다
20살에 한국시리즈를 지배한 젊은 호랑이 김상진
▲ 22살 짧은 삶을 살다 간 젊은 호랑이 김상진
1997년 10월 25일 잠실야구장. LG 트윈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5차전이 열리고 있었다. 먼저 3승을 가져간 해태의 마운드에는 아직 신인 티도 채 가시지 않은 프로 2년차 20살의 앳된 투수 한 명이 올라와 있었다.
'잘하면 오늘은 해태를 잡을 수 있겠구나.' 벼랑 끝으로 몰린 LG 팬들에게 이대진보다는 덜 무서운 만만한(?) 투수가 올라온 것이다. 그러나 LG 팬들의 희망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20살의 어린 투수가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마운드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 젊은 호랑이는 7회가 지나고 8회가 지나도 지치지 않고 공을 뿌려댔다. 결국 해태의 6-1 승리로 경기는 끝이 났다. 해태는 한국시리즈에서만 무려 9번째 우승을 일궈냈다.
한국시리즈에서 9이닝 2안타 1실점 완투승을 따내며 해태의 우승을 결정지은 투수는 96년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한 김상진이었다. 20살의 김상진은 한국시리즈에서 생애 최고의 피칭을 한 것이다. 그날의 눈부신 호투는 많은 사람들에게 김상진이라는 젊은 호랑이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듬해 김상진은 비록 6승에 머물렀지만 3.8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미래 해태 마운드의 선발 투수로 한발 한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21살, 그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시즌을 마치고 김상진은 목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목에서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김상진은 목뼈 종양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상진은 위암말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
김상진은 마운드가 아니라 병마와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했다. 반드시 병을 이기고 마운드로 돌아가겠다는 김상진의 강한 의지 앞에 병마도 무릎을 꿇고 물러날 것만 같았다. 김상진에게 기적이 찾아와 줄 것만 같았다. 겨우 20살의 나이에 한국시리즈 선발이라는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고 완투승을 거둔 김상진이 아니었던가. 김상진은 반드시 마운드로 돌아와 줄 것만 같았다. 모두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김상진의 병은 완치될 상태의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암 덩어리가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젊은 청년이 삶의 마지막까지 와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병실을 찾은 방송국 카메라에 비친 김상진은 웃고 있었다. 농담을 하면서 인상을 쓰고 있지만 웃고 있었다.
왜 인상을 쓰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하고 있어야 아프지 않다"는 말을 하며 웃는 모습은 텔레비전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을 후벼 파고 깊은 상처를 냈다. 그의 몸은 지나치게 야위어 있었다.
그리고 1999년 6월 10일 언제라도 벌떡 일어나 마운드로 달려올 것만 같던 김상진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역투하는 모습으로 남은 채 저 하늘 끝 아주 높은 곳에 있는 자신만의 마운드를 찾아 떠나갔다.
김상진이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한 나이가 19세,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한국시리즈 완투를 해낸 나이는 약관 20세 그리고 3시즌 동안 24승 26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90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나이는 불과 22세였다.
김상진이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지나고 또 하루가 더 지났다. 해마다 6월 10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김상진을 기억해주고 그의 넋을 위로해 준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마 저 하늘 어딘가에서 김상진도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지는 않을까.
97년 한국시리즈 5차전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NfWnpOGjzTE&feature=rel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