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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걸작 「주왕산(周王山)」의 37차 산행과 한문학 6수(首). 1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총4편 中에--
경북 청송군의 대표 명산인 주왕산(周王山)은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계곡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주왕산 국립공원의 용추협곡 등, 하늘을 가릴 정도로 웅장한 수직 기암절벽이 4km 이상 이어져 있어, 웅장한 스케일 면에서나 그 압도적인 아름다운 바위산의 모습이 미국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의 깊은 골짜기를 연상시킨다. 조선의 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골이 모두 돌로 이루어져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샘과 폭포도 지극히 아름답다”라고 칭송했다.
이어 주왕산 등산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들을 만날 수가 있다. 용추협곡에 있는 용추폭포와 용연폭포는 주왕산의 대표적인 폭포로, 맑은 물줄기와 주변 암벽이 조화를 이루어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또한 7,0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응회암이 침식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바위산인 청송 주왕산은, 압도적인 거대 암벽 사이를 걷는 하이킹으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왕산 자락에 자리한 대전사(大典寺)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주왕산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청송군 주왕산(周王山) 편에는 한문학 25수(首)를 총 3편으로 나누어 소개하겠다.
● 이번 청동(靑同) 산악회 37차 산행은 2026년 9월 6일(일욜)날에 시작했다. 오전 7시 30분까지 대구스타디움에 4명이 집결하여 중앙고속도로에 차를 올린 후, 군위 휴게소에서 나머지 2명과 합류한 후, 차량 2대로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청송IC에서 빠져나와 청송군 주왕산으로 곧장 달려갔다. 오늘은 적당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산행 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9시 20분에 주왕산 상의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9시 25분부터 주왕산 등반을 시작했다.
○ 청동회 주왕산 산행 안내
상의 주차장 ⇨ 대전사 ⇨ 용추협곡(용추‧절구‧용연폭포) ⇨ 후리메기삼거리 ⇨ 주왕산주봉 ⇨ 대전사 ⇨ 상의 주차장. 약11Km에 약 5시간 예정
여기 주왕산 등산 코스는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누어진다. ①보통 용연폭포까지 다녀오는 하급 코스는 편도 2.5Km로, 대개 유람차 온 여행객들이다. 그리고 ②오늘 우리 청동회 팀의 산행은 중급으로, 주왕산 주봉을 경유하는 약11Km에 약 5시간 정도 걸리는 산행 코스다. 협곡(峽谷)과 폭포를 구경하고 조용한 깊은 산속 계곡을 따라 걷다가, 가파른 주봉(721m)까지 등산하는 코스로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선호한다. ③상급 코스는 주왕산 최고봉인 가메봉(882m)을 경유하는 코스로 단순히 가메봉만 보고 오면 총13Km 정도이지만, 반면 주봉과 가메봉 큰골, 내원 마을터를 거쳐 크게 한바퀴 돌면 최소 15Km 이상에 시간도 최소 6~7시간 이상 걸린다. 고로 등산 안내도를 찬찬히 살펴보고 여러 산행길을 잘 선택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 한편 여기 주왕산은 국립공원답게 그 자연적인 경관이 가히 천하 절경이다. 처음 상의 주차장에서 걸어서 대전사(大典寺) 천년 사찰에 도착하여 아름다운 배경을 벗 삼아 사진도 찍고 구경을 했다. 이내 사찰 옆의 계곡 길을 따라 급수대에 이르렀고 조금 위쪽 계곡가에서 처음으로 휴식(간식타임)을 가진 후에 용추(龍湫)폭포에 이르렀다. 여기서 바로 윗쪽 절구폭포에 이르는 협곡(峽谷)은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가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자연이 만든 걸작이었다. 우리나라에 협곡(峽谷) 중에 이만한 비경을 갖춘 곳은 아마 없을 것 같은 독보적이었다. 조물주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용추(龍湫)란? 용이 하늘로 승천한 웅덩이를 뜻하며, 협곡은 급경사를 이루고, 암석이 양쪽으로 높이 서 있는 좁고 높은 골짜기를 말한다. 주왕산의 용추협곡은 약7천2백만년 전(중생대) 화산폭발로 분출한 화산재가 두껍게 쌓이고 굳어져서 만들어진 응회암이 오랜시간 동안 풍화 침식되어 형성되었다.
이 용추(龍湫) 협곡(峽谷)을 빠져나와 다시 약400m 정도 계속 올라가니 주왕산 최고로 크고 웅장한 폭포이자, 2단 폭포인 용연폭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휴식(간식타임)을 가진 후 후리메기 입구(삼거리)까지 되돌아와서 산길로 곧장 올라 고개를 넘으니 대체로 평탄한 계곡 물가가 나타났다. 숲속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 도착한 후리메기 삼거리를 거쳐 다음 칼등고개 갈림길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주봉까지는 경사가 제법 급한 산길이라 조금 힘들었다. 어느 산이건 산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등반길은 언제나 가파르다. 그래서 중간에 한번 쉬는 타임을 가지면서 무난히 등반을 하였다. 주봉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5분이었다. 이번 산행 코스 중에 주봉이 해발 최고점이라 여기부터 대전사까지는 내리막길이라서 쉬이 산행을 마무리했다. 내려오는 길에 설치한 전망대에서 바라본 첩첩 기암석의 주왕산 산세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이번 산행은 휴식시간(간식타임 4차례) 포함하여 총5시간 정도 걸렸다.
이어 주차장 인근 식당에서 닭백숙과 소량의 맥주와 소주 한 병씩을 시켜 한 잔씩 나누어 먹고 배부른 몸을 이끌고 인근 주산지 탐방을 하였다. 그리고 주산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청송IC를 거쳐 곧장 도착한 고속도로 청송휴게소에서 다시 만나, 티타임을 가지면서 다음 달을 기약하고 헤어져 대구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선 후, 저녁 7시 50분에 집에 도착했다. 장장 12시간 50분의 강행군이었으나,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은 참으로 가벼웠다. 너무나 아름다운 천혜의 절경에다, 찬란한 가을빛이 온누리를 잠식하기 시작한 9월의 어느 날, 바람 끝에 실려 온 선선한 기운이 꺼져가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내 생애 또 한편의 풋풋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돌아오는 벅찬 길에서, 가슴 한편이 몽글몽글해지는 여운이 길게 내려앉았다.
○ [주왕산(周王山)] 주왕산은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맥 낙동정맥에 위치한 해발 722.1m의 산으로,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화산지형이다. 주왕산과 그 일대는 해발고도 약 600~900m의 비교적 낮은 산지로, 서남부 지역은 지세가 완만하다. 주왕산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태행산[933.1m], 대둔산[905m], 금은광이[812m], 먹구등[846m], 명동재[875m], 동쪽에는 왕거암[907.4m], 가메봉[882m], 남쪽에는 무포산[716m], 무장산[940m]이 말발굽 형태의 독특한 능선을 이룬다. 예로부터 ‘주방산(周房山)’이라 불렸으며, 현재의 명칭은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 또는 신라 왕자 김주원(金周元)의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주왕산은 다양한 지질·지형 자원과 희귀식물 및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국민관광지, 명승,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으로 지정되며 학술적·자연경관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고문헌에는 현재의 주왕산이 주로 ‘주방산(周房山)’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왕산(周王山)’이라는 명칭은 『조선지형도(朝鮮地形圖)』에서 처음 확인된다. 웅장한 산세와 암벽이 마치 돌로 병풍을 친 듯하다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주왕산의 명칭 유래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한다. 하나는 중국 당나라 때 주도(周鍍)라는 인물이 자신을 ‘주왕’이라 칭하며 당나라 수도인 장안을 공격하다가 패한 뒤, 현재의 주왕산으로 도피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신라 왕자 김주원(金周元)이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후 은거한 산이라는 것이다. 주왕산의 산봉우리와 암굴 등에는 이처럼 주왕과 관련된 전설이 다수 전승되고 있다.
○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주왕산(周王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 관련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672년(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주왕의 설화에서 919년(태조 2)에 주왕(周王)의 아들 대전도군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조선 중기 실화(失火)로 전소된 뒤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2008년 보물로 지정된 보광전 이외에도 명부전(冥府殿) · 산령각(山靈閣) · 요사채 등이 있다. 명부전 안에 있는 지장삼존 및 시왕상은 2004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부속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 · 주왕암(周王庵) 등이 있다.
유물로는 보광전 앞의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 · 부도(浮屠) 등이 있으며, 현재의 사찰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흔적이 있는데, 이 우물은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원래 이 절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를 매일 냇가에서 길어다가 올리고는 하였다.
이를 귀찮아한 승려들은 조선 중기 앞뜰에 우물을 파서 그 물을 길어 청수로 사용한 뒤 화재가 나서 절이 불타버렸다. 그 뒤 성지도사가 와서 이 절의 지세가 배가 바다에 떠서 항해하는 부선형(浮船形) 혈(穴)인데, 여기에 우물을 파니 배 바닥에 구멍이 뚫어진 격이 되었기에 불이 나서 절이 타게 되었다면서 우물을 메우게 하였다고 한다.
○ [청송 주산지(注山池)] 주산지는 대기금을 극복하기 위해 1720년 8월 조선조 경종 때 착공하여 그 이듬해 10월에 완공되었다. 길이 200m, 너비 100m, 수심 8m인 아름다운 이 저수지는 완공 이후 지금까지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말라 밑바닥을 드러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저수지 속에는 최고 수령이 약 300년 된 양버들을 포함하여 총28그루가 자생하고 있는데 그 풍치가 매우 아름다워 주왕산의 대표적인 관광 자원으로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 주산지는 크지 않은 저수지이지만, 바닥 하부에 화산재가 엉겨 붙은 용결응회암이 있고 그 위로 비용결응회암과 퇴적암이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주산재 정상의 별바위부터 계곡을 따라 저수지까지 이어지는 주변 지역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 [주왕암과 주왕굴] 주왕암과 주왕굴은 산 이름의 유래가 된 '주왕(周王)'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신비로운 명소다. 본사인 대전사(大典寺)에서 계곡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암절벽 사이에 숨겨진 두 곳을 만날 수 있다. 주왕암(周王庵)은 대전사의 부속 암자로, 고려 시대(919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암자다. 문간채 역할을 하는 이층 누각인 가학루(駕鶴樓)가 멋스러우며, 이곳에 모셔진 나한의 영험함 덕분에 사시사철 참배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전설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이곳으로 숨어든 주왕(周王)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왕굴(周王窟)은 주왕암에서 좁은 협곡 계단을 따라 약 30m 정도 안으로 더 들어가면 나타나는 거대한 자연 동굴이다. 신라 마장군(馬將軍) 군대의 공격을 피해 주왕이 마지막으로 은거했던 천혜의 요새다. 주왕이 굴 입구로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가 마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는 애달픈 전설이 서려 있다. 현재 굴 내부에는 불교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웅장한 암벽 틈새로 흐르는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에 주왕산 트레킹 코스 중에서도 가장 깊은 여운을 주는 구간으로 꼽힌다.
● [아름다운 주왕산을 칭송하다] 이번 편에 소개하는 6편의 주왕산(周王山) 한시는 자연이 빚어낸 가장 웅장하고 기묘한 명산을 조선 문인들의 찬란한 필치로 그려진 천혜의 걸작이다. 거대한 천하의 요새인 주왕산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암벽들이 마치 거대한 병풍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유휘문(柳徽文 1773~1827)과 황여일(黃汝一 1566~1622)이 바라본 주왕산은 거칠고 험준한 산세 속에 신비로운 기상이 서린 곳이며,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장엄한 성벽과도 같다. 산바람이 거대한 바위 절벽을 때릴 때마다, 산 전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거대한 울림과 더불어 압도적인 기백을 뿜어낸다.
게다가 이 산의 골짜기마다 흐르는 기묘한 풍경은 천년의 전설을 품고 있다. 신필흠(申弼欽 1806~1866)의 기록에 따르면, 바위와 동굴들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과거 주왕(周王)의 전설이 고스란히 박제된 신비의 공간이다. 은밀하게 숨겨진 협곡과 기이하게 찢어진 암벽 틈새 사이로 안개가 피어오르면, 마치 인간 세계를 벗어나 신선이 노니는 선계(仙界)에 발을 디딘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장엄함 속에서 푸른 소나무(靑松)와 맑은 물이 빚어낸 극치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김창흡(金昌翕 1653~1722)과 심육(沈錥 1685~1753)이 찬미한 청송의 푸른 소나무들은 험준한 바위 틈새마다 뿌리를 내리고 철갑을 두른 듯 당당하게 서서 사시사철 변치 않는 푸른 절개를 자랑한다. 기암괴석의 붉고 흰 살결 위로 낙락장송의 푸른빛이 내려앉고, 그 아래로 구슬 같은 맑은 계곡물이 폭포가 되어 쏟아지는 모습은 천하의 어떤 화가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극치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요약건대 "주왕산은 하늘을 찌르는 장엄한 암벽의 기백(氣魄), 주왕의 전설이 숨 쉬는 신비로운 협곡(奇妙), 그리고 바위 위를 수놓은 푸른 소나무와 맑은 폭포(美學)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보는 이의 숨을 멎게 만드는 천하의 명산(名山)이다.“
⇨ 이번 「주왕산(周王山)」 한시 편에는 한문학 25수(首)를 총 3편으로 나누어 소개하겠다. 먼저 1편에선, 다음과 같이 총 6수(首)를 제시한다. ①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청송(靑松)」, ②심육(沈錥 1685~1753)의 「청송(靑松)」, ③유휘문(柳徽文 1773~1827)의 「주왕산(周王山)」, ④황여일(黃汝一 1566~1622)의 「주왕산(周王山)」, ⑤신필흠(申弼欽 1806~1866)의 「주왕산(周王山)」과 ⑥「병진년(1856년) 4월 주왕산을 유람한 기록(丙辰四月 遊周王山紀行)」 등, 차례대로 소개하겠다.
1) 다음 ‘侵’ 운목(통운)의 칠언절구 「청송(靑松)」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작품으로, 『삼연집(三淵集) 습유(拾遺)』 권11(卷之十一)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주왕산의 깊고 가파른 자연을 배경으로 신선 세계에 대한 동경과 불로장생의 염원, 그리고 이별의 슬픔을 초월하고자 하는 초연한 의지를 노래한 측기식 한시다.
○ 내용인즉, 이 시는 김창흡이 청송 지역(주왕산)을 유람하다가,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폭포와 소)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 눈앞에 펼쳐진 주왕산의 웅장한 자연 속에서 도교적인 고사(갈홍의 구루단사)를 이끌어내어 인간의 유한함(노화와 이별)을 극복하려는 태도가 돋보인다. 세속의 슬픈 이별을 신선 사상을 통해 정신적으로 승화시킨 고풍스럽고 담대 한 시다.
**「청송(靑松)」** 청송군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周王山峻落淵深 주왕산은 험준하고 떨어지는 못은 깊은데
句漏丹砂可化金 구루현의 단사(丹砂)는 금으로 바꿀 수 있겠네.
佇看童顔還故里 우두커니 바라보니 아이 같은 얼굴로 고향에 돌아올 터인데
肯因衰別各沾襟 늙어 이별한다 해서 어찌 구태여 각자 눈물로 옷깃을 적시랴.
[주1] 구루(句漏) : 중국 광시 장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베이류 시(北流市)에 있는 구루산(句漏山)과 그 일대의 옛 고을(구루현)을 가리키는 지명. 동양 고전에서 '구루'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 '신선 세계'와 '불로장생의 선약(丹砂)'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교적 시어(詩語)로 사용된다. 주왕산을 구루산에 비견했다. 중국 진(晉)나라 때의 유명한 도학자이자 의학자인 갈홍(葛洪, 283~343)이 스스로 남쪽 변방인 구루현(句漏縣)의 현령을 자청하여 그곳 구루산에 들어가 단사를 채굴하고 연단술을 수행한 끝에, 마침내 늙지 않는 신선이 되어 육체를 벗어던지고 승천(우화등선)했다고 전한다.
[주2] 단사(丹砂) : 과거 동양의 문화에서는 단순한 돌을 넘어 불로장생과 신비로운 변화를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물질이었다.
2) 다음 ‘齊’, ‘寒’, ‘刪’ 운목의 측기식 칠언절구 「청송(靑松)」 3수(首)는 조선후기 문신 저촌(樗村) 심육(沈錥 1685~1753)의 작품으로, 『저촌유고(樗村遺稿)』 권8(卷之八)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저자가 청송 주왕산에 다시 돌아온 청학(靑鶴)을 소재로 지은 한시와 서문이다. 이 작품은 오랜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서로운 새 ‘청학’이 청송 주왕산 학소대에 다시 깃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신비로움과 고결함을 찬미하며 세상의 때가 묻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 내용인즉, 서문(序文)에서는 시를 쓰게 된 배경을 밝혔다. 전쟁이나 사냥의 포화 소리 때문에 떠났던 신비로운 '청학'이 다시 청송 주왕산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현지 수령(정사숙)에게 직접 전해 듣고, 그 실재를 확신하며 감동하여 시를 지었음을 보여준다.
[제1수]에선, 청학이 돌아왔다는 소문과 그 영리함을 노래했다. 아무리 멀고 넓은 하늘을 날아다녀도 매년 봄마다 잊지 않고 청송의 보금자리를 찾아오는 신비로운 영물의 모습을 묘사했다.
[제2수]에선, 청학이 사는 주왕산 학소대의 고결한 풍경을 그렸다. 구름 위까지 솟아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 사는 청학은 하늘이 내린 길조(瑞物)이므로, 인간 세상의 흔한 새들과 비교하며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제3수]에선, 청학의 귀환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극대화했다. 천년 만에 돌아온 청학은 세상에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이며, 세속의 더러움(풍진)이 미치지 않는 저 높은 곳에서 고고하게 존재함을 찬양하며 마무리했다.
(ㄱ) **「청송(靑松)」** 서문(序文)
주왕산(周王山)에는 옛날부터 학소(鶴巢, 학의 둥지)가 있었는데, 포화 소리(사냥총 소리)에 놀라 오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속담에 전해지나 이 사실이 진짜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학이 다시 찾아와 늦봄에 이르러 새끼를 길러내고 가을이 지난 뒤에 돌아갔으며, 이듬해에 또 찾아왔다.
청송부사(靑松倅) 정사숙(鄭師叔)과 그 아들 세검(世儉)이 모두 이를 직접 눈으로 보고 나에게 매우 상세하게 말해주었으니 대개 거짓이 아니다.
정사숙이 말하기를 “그대가 너무 일찍 와서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네. 학의 깃털은 푸르고 검은색이며, 일반 들판의 학(백학)과 비교해 보면 비단 클 뿐만이 아닐세. 둥지를 튼 곳이 절대적으로 높아 사람이 기어 올라갈 수 없는 곳이라네”라고 했다.(周王山 舊有鶴巢 因砲驚 不來久矣 諺傳如 此 而亦未知其信有此事 自數年 鶴復來 春晩始至 引雛生成 秋後還去 明年又來 靑松倅鄭師叔及其子世儉 俱目見之 爲余道甚悉 盖不誣也 師叔曰 恨君之早來 不能見也 鶴衣靑黑 視野鶴 不啻大矣 所棲絶高 非人所可攀援云云)
(ㄴ) **「청송(靑松)」** 칠언절구 3수(首)
[제1수] ‘齊’ 운목, 측기식
見說東臺靑鶴棲 듣자 하니 동쪽 대(주왕산 학소대)에 청학이 깃들어
有時寥亮九臯啼 때때로 깊은 못가에서 울음소리 맑고 드높다네.
春來秋去長如許 봄에 왔다 가을에 가기를 늘 이와 같이 하니
海濶天高路不迷 바다 넓고 하늘 높아도 길을 잃지 않는구나.
[제2수] ‘寒’ 운목, 측기식
碧海茫茫世外寬 푸른 바다 아득하여 인간 세상 밖은 드넓은데
高臺一片出雲端 높은 대 한 조각은 구름 끝에 솟아 있네.
然瑞羽從天至𩗏 상서로운 깃털(청학)이 하늘로부터 바람 타고 내려왔으니
莫遣人將野鶴看 사람들이 흔한 들판의 학처럼 보게 하지 말라.
[제3수] ‘刪’ 운목, 측기식
鶴去千年今復還 학이 떠난 지 천년 만에 이제 다시 돌아오니
天將瑞物耀人間 하늘이 상서로운 영물을 보내 인간 세상을 빛내시는구나.
臺高自與風塵絶 대가 높아 스스로 인간 세상의 바람과 먼지(풍진)를 끊었으니
一羽雲霄不可攀 구름 위 날아오르는 깃털 하나조차 붙잡을 수 없네.
○ 이 글은 주왕산에 다시 돌아온 청학의 신비로움과 고결함 찬양, 세속을 초월한 세계에 대한 동경을 그렸다. 먼저 전통적으로 청학(靑鶴)은 태평성대나 신선 세계를 상징하는 영물이다. 포화(인간의 탐욕과 전쟁)로 떠났던 청학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세상이 다시 평화롭고 상서로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학이 사는 고고한 높은 대(臺)와 인간 세상의 더러운 '풍진(風塵)'을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인간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청학이 있기를 바람으로써, 그 순수함이 인간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3) 다음 ‘先’ 운목의 칠언절구 「주왕산(周王山)」은 조선후기 학자 호고와(好古窩) 유휘문(柳徽文 1773~1827)의 작품으로, 『호고와집(好古窩集)』 권2(卷之二) 남유록(南遊錄)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저자가 주왕산의 장엄한 바위 절경을 노래한 시로, 금강산과 주왕산(당시 별칭 대둔산)을 대비하며, 동해안을 따라 흐르는 백두대간의 웅장한 기운을 격찬한 명시다.
○ 내용인즉, 시인은 과거에 유람했던 천하명산 금강산의 '만 겹 봉우리(山疊萬)'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주왕산의 '천 개 바위 봉우리(石峯千)'를 대칭으로 배치했다. 이는 주왕산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에 뒤지지 않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찬사다. 그리고 셋째 구(句)와 넷째 구에서는 시야를 거시적으로 넓혔다. 우리나라의 중심 산줄기가 동해안을 따라 흘러내리며 거대한 기운을 분출하고 있는데, 하늘이 그 맥을 바탕으로 한반도 중간에 두 개의 거대한 신선 세계(금강산과 주왕산)를 빚어냈다고 감탄했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풍경을 예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자연의 창조적 섭리(天設)와 국토의 지리적 정기(正脉)를 꿰뚫어 보는 지적인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왕산(周王山)」** / 유휘문(柳徽文 1773~1827)
昔踏金剛山疊萬 예전에 금강산을 밟으니 만 겹으로 쌓여 있더니
今觀大遯石峯千 이제 대둔산(주왕산)을 보니 천 개의 돌 봉우리네.
也知正脉東溟上 정녕 알겠노라, 백두대간의 바른 줄기가 동해 위에 솟구쳐
天設中間兩洞天 하늘이 그 중간에 두 개의 신선 세계(洞天)를 만들어 놓았음을.
[주1] 대둔(大遯) : 청송 주왕산의 옛 별칭. 주왕산은 거대한 바위들이 둔탁하게 솟아 있다고 하여 대둔산(大迍山/大遯山)으로도 불렸다.
[주2] 정맥(正脉) : 여기서는 산맥의 거대한 주축, 즉 백두산에서 시작해 동해안을 따라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의 본줄기를 의미한다.
[주3] 동명(東溟) : 푸르고 어두운 깊은 바다, 즉 동해를 뜻함.
[주4] 동천(洞天) : '하늘과 통하는 신선의 고을'이라는 뜻으로, 산천 경치가 몹시 아름답고 수려한 곳을 비유한 말이다.
4) 다음 ‘庚’ 운목의 칠언절구 「주왕산(周王山)」은 조선중기 문신 해월헌(海月軒) 황여일(黃汝一 1566~1622)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해월집(海月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한시는 도가적 이상향을 찾는 설렘과 주왕산에 얽힌 역사적 전설(중국 당나라 때 주왕의 난)을 감각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작가가 영해(寧海) 부사로 재직하던 시절, 주왕산을 방문하여 그 수려한 경치와 전설에 감명받아 지은 글이다.
○ 내용인즉, 이 시의 주제는 주왕산의 신비로운 자연경관 예찬과 역사적 전설에 대한 회고를 묘사했다. 저자는 '황학선옹', '청부태수', '심진' 등 도가적(道敎的) 시어를 활용하여 주왕산을 탈속적인 공간으로 미화했다. 마지막 구절에서 주왕산의 이름에 걸맞은 역사적 인물(주왕, 촉제)의 한을 투영하여,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깊은 여운과 애상적 정서로 시를 마무리했다.
**「주왕산(周王山)」** / 황여일(黃汝一 1566~1622)
黃鶴仙翁越海至 황학을 탄 신선 같은 어른(귀한 손님)이 바다를 건너오고
靑鳧太守渡江迎 푸른 오리(신선의 신발)를 탄 태수는 강을 건너 맞이하네.
尋眞遠入周王洞 진리를 찾아(신선 세계를 찾아) 멀리 주왕굴로 들어가니
側耳猶聞蜀帝聲 귀 기울이면 지금도 촉나라 황제(두견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네.
[주1] 황학선옹(黃鶴仙翁) : '황학을 탄 신선 같은 노인'은 황여일이 맞이한 귀한 손님이나 명망 있는 지인을 비유한다.
[주2] 청부(靑鳧) : 푸른 오리를 뜻하며, 한나라 때 신선 왕교(王喬)가 오리를 타고 날아다녔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신선 같은 지방관의 행차'를 의미함. '태수'는 당시 영해 부사였던 황여일 자신을 가리킨다.
[주3] 심진(尋眞) : 참된 진리나 신선의 세계를 찾아 나선다는 도교적 표현이다. 복잡한 세속을 벗어나 깊고 깊은 주왕산의 계곡과 동굴(주왕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여정을 나타낸다.
[주4] 촉제(蜀帝) : 중국 촉나라의 망국 군주였던 두우(망제)를 뜻하며, 죽어서 두견새(소쩍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주왕산은 중국 당나라 때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신라로 도망쳐 숨어 살다 죽었다는 '주왕(周王)'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5) 다음 ‘刪’ 운목의 칠언절구 「주왕산(周王山)」은 조선말기 학자 천재(泉齋) 신필흠(申弼欽 1806~1866)의 작품으로, 『천재집(泉齋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청송군 주왕산의 거대한 기암괴석과 빼어난 풍광을 노래한 시다. 그는 주왕산의 돌 봉우리들이 마치 하늘의 손길로 깎아지른 듯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음에도, 영남(동남쪽) 사람들이 중국의 여산(廬山)만 알 뿐 정작 가까이에 있는 천하절경 주왕산을 알아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주왕산의 독특한 지형적 특징인 거대한 암봉과 기암괴석의 미학을 극대화하여 표현했다. 구름 뚫고 솟은 바위를 보며 조물주가 뼈를 깎는 노력(費盡皮膚)으로 빚어냈을 것이라 상상하는 전반부의 묘사가 매우 역동적이다. 후반부에서는 문화적 자부심과 아쉬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중국 중심의 역사 기록에 가려져 정작 조선의 문인들과 영남의 유람객들이 이 위대한 자연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멀리 있는 중국의 여산만 동경하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풍자했다. "우리 땅에 이미 이토록 위대한 명산이 있다"는 발견의 기쁨과 자부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왕산(周王山)」** 평기식 / 신필흠(申弼欽 1806~1866)
誰將全石出雲間 그 누가 거대한 통바위를 구름 사이에 솟구쳐 내었는가.
費盡皮膚化手刪 조물주가 살갗을 깎아내는 수고를 들여 손으로 다듬어 놓았네.
可惜隨刊虞史筆 안타깝게도 우나라 역사 기록에 실려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니
東南不識有廬山 우리 영남 사람들은 이곳에 여산 같은 명산이 있음을 알지 못하네.
[주1] 전석(全石) : 쪼개지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통바위나 암벽을 뜻함. 주왕산의 상징인 '기암(旗岩)'이나 거대한 암봉들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주2] 화수산(化手刪) : '화공(化工, 조물주)의 손으로 깎아내다'라는 뜻. 자연의 풍경이 인간의 솜씨를 초월하여, 마치 신이 공들여 조각한 예술품 같다는 말.
[주3] 우사필(虞史筆) : 중국 순임금 시절의 역사 기록이나 《서경(書經)》의 〈우서(虞書)〉를 의미합니다. 옛 고전의 명산 기록(예: 우공이 전국의 산천을 정리한 기록 등)에 주왕산이 빠져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주4] 여산(廬山) : 중국 장시성에 있는 천하의 명산. 시인 묵객들이 아름다운 산천을 비유할 때 쓰는 대명사다. 여기서는 주왕산이 여산에 버금갈 만큼 훌륭한 산임을 강조한 것이다.
6) 다음 ‘尤’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병진년(1856년) 4월 주왕산을 유람한 기록(丙辰四月 遊周王山紀行)」은 조선말기 학자 천재(泉齋) 신필흠(申弼欽 1806~1866)의 작품으로, 『천재집(泉齋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오랜만에 만난 벗과 함께 푸르른 늦은 봄날(음4월)에 주왕산(周王山)을 유람하며 느끼는 반가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평기식 한시다.
○ 내용인즉, 이 시의 주제는 노년의 벗과 함께하는 주왕산 유람의 즐거움과 풍류를 읊은 것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음력), 시인은 청송의 명산인 주왕산을 찾았다. 그곳에서 평소 그리워하던 소중한 벗을 만나 밤새 회포를 풀고, 이튿날 함께 산행을 시작하는 상황을 그렸다. [1구, 2구]는 노년(白頭)에 이른 두 벗이 오랜만에 재회한 극적인 기쁨을 담았다. 쌓여 있던 세상의 근심과 시름(千愁)이 벗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진다. [3구]에선, 평생 방 가득 책(書史)을 읽으며 지내온 문인의 시각이 드러난다. 글과 그림으로만 접했던 자연보다, 실제로 마주한 주왕산의 기암괴석과 계곡이 비교할 수 없이 경이롭다. 마지막 [4구]에선, 두 노학자가 아이처럼 웃으며 구름 속(碧雲幽)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세상의 명리와 집착을 벗어던지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탈속(脫俗)의 경지를 보여준다.
**「병진년 4월 주왕산을 유람한 기록(丙辰四月 遊周王山紀行)」**/ 신필흠(申弼欽)
良宵一晤敵千愁 좋은 밤에 한 번 만남이 천 가지 시름을 대적하고
靑眼相逢兩白頭 반가운 눈으로 서로 만나니 두 사람은 백발일세.
山水更奇書史外 산수가 훨씬 더 기이하니 책과 역사 밖의 산수인데
聯翩笑入碧雲幽 소매를 펄럭이며 웃으며 그윽한 푸른 구름속으로 들어가네.
[주1] 청안(靑眼) : 진나라 완적이 반가운 사람을 볼 때 검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사람을 반갑게 대하는 눈빛'을 뜻한다.
[주2] 연편(聯翩) : 새가 무리 지어 날거나 옷자락이 나란히 펄럭이는 모습으로, 벗과 다정하게 동행함을 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