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과 나누는 우정 (이미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 성공으로 이끈다. 믿음의 중요성)」 -- 닐 도날드 윌쉬 지음 --
「나는 너희에게 오직 천사만을 보내주었다. 나는 너희에게 오직 기적만을 주었다. 」– 본문 중에서 –
◈ Q : 어떻게 해야 제가 당신에게 어떤 것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
○ A : 그것이 이미 자기 것임을 깨닫는 것으로, 너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이미 너희 것임을 깨닫는 것으로,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내가 답하리란 것을 깨닫는 것으로, 그러니 청함은 불필요하다.
자신이 이미 그것을 갖고 있음을 너희가 모르기 때문에 너는 자신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믿음이 그토록 큰 힘을 갖는 이유가 그것이다.
만일 너희의 모든 필요가 항상 채워지리라고 믿는다면, 원리상 너희는 어떤 필요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것이 진리이니, 그것은 너희 체험이 되고, 따라서 너희의 믿음은 "정당화" 될 것이다.
너희는 그냥 자신의 인식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참된 선각자는 기대의 공간 밖에서 산다. 그는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이미 자신이 모든 것을 갖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특정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 전체의 어떤 부분이든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는 그 모두가 완벽하다는 것, 삶이란 완벽이 자신을 완전히 연출해내는 것임을 안다.
이런 세상에서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다. 어떤 것과 관련해서든 자각(Awareness)에는 희망, 믿음, 앎이라는 세 단계가 있다. 너희가 뭔가에 대해 "희망"을 가질 때, 너희는 그것이 사실이거나 일어나길 바란다. 하지만 너희는 그 말의 어떤 의미에서도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
너희가 뭔가에 대해 "믿음"을 가질 때, 너희는 그것이 사실이거나 일어나리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확신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믿음에 반대되는 요소가 너희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 한, 너희는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한다.
너희가 뭔가에 대해 "앎"을 가질 때, 너희는 그것이 사실이거나 일어나리라고 확신한다. 너희는 그 말의 모든 의미에서 확신하고 있다. 그리하여 설령 그 앎에 반대되는 요소가 너희 현실에 나타난다 해도 너희는 계속해서 확신한다.
너희는 있는 그대로를 알기에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특정한 일이 벌어지리란 것이 아니라 완벽한 일이 벌어지라 한 것이고, 너희가 좋아하는(prefer) 일이 아니라 완벽한(perfect) 일이 벌어지리란 것이다.
너희가 깨달음으로 나아갈수록 이 둘은 하나가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너희는 일어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좋아한다. 그 사건을 완벽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너희의 선호다. "놔두어라, 신이 알아서 하도록" 이란 것이 이런 것이다.
선각자는 언제나 일어나는 일을 좋아한다. 너희 역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좋아할 때,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의도를 가져라. 하지만 기대를 갖지 말고, 당연히 필요도 갖지 마라. 특정한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한쪽을 더 좋아하지도 마라.
네 집착(執着)을 선호(選好)로 승화시키고, 네 선호(選好)를 받아들임(수용, Acceptance)으로 승화시켜라. 이것이 평화에 이르는 길이고,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
싦의 열쇠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원하는 것이다. 악운 따위는 없고,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우연의 일치 같은 것은 없고,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
특히 완벽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그것은 너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굉장한 것이 있다는 확실한 표식이다. 감사는 가장 빠른 치유 형태다. 저항하는 것은 지속된다. 반면에 감사할 때, 그것은 너희를 도울 수 있다. 본래 그것이 하기로 되어 있던대로.
나는 너희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오직 천사(天使)만을 보내 주었노라고. 이제 나는 덧붙일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오직 기적(奇蹟)만을 주었노라고.
삶 자체처럼 삶의 사건들 모두가 기적(奇蹟)이다. 삶은 '참된 자신'을 깨닫고, 체험하고, 공표하고, 선언하고, 실현하며, '참된 자신' 이 될 수 있는 완벽한 도구와 환경과 조건들을 우리 영혼에 제공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판단하지도 비난하지도 말고, 자신의 적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삶의 모든 순간과 환경들을 보물로, 완벽한 창조자가 주는 완벽한 선물로 받아들여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특정 결과를 필요로 하는 것은 집착을 갖고 있는 것이고, 그냥 특정 결과를 바라기만 하는 것은 선호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선호까지도 갖지 않는다면, 너희는 받아들임을 가진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더라도 너희가 그것을 의도할 수는 있다. 사실 선호를 지닌다는 것은 우주에게 양자택일의 결과들이 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신은 그런 상황을 상상하지 못하니 신은 선호를 갖지 않는다.
너희가 자신의 결말들울 선택하게 하고,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고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 내 의도이다. 그리고 너희 역사는 너희가 무엇을 의도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런데 너희가 의도한 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다. 우리 사이에 분리란 없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는 없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은 많지만, 너희가 영혼의 수준에서 의도하는 것은 언제나 너희의 현재 진화상태를 꼭 그대로 반영하는 결말을 낳아 너희더러 '자신이 누군지' 를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또한 다음 번 최고 상태로 나아가는 운동을 촉진하기에 꼭 맞는 결말이어서 너희가 '되고자 하는 자신'이 될 수 있게 해준다. 삶의 목적은 너희가 지금껏 '자신' 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힌 해석으로 너희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임을 잊지 마라.
육신 차원의 너는 자신이 특정한 어떤 결과를 불러내고 있다고 믿지만, 영혼 차원의 너는 다른 결과를 불러내고 있다. 그래서 "기대없이 살라" 고 했던 것이다. 모든 조건, 모든 상황에서, 또 어떤 결말을 마주하더라도 "완벽을 보라" 고 했던 까닭 역시 이것이다.
그렇다면 너희가 좀 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초의식(Super conscious)과 의식(Conscious), 잠재의식(Subconscious)이라는 체험의 세 수준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 보기로 하자.
초의식의 수준은 자신이 하는 일을 충분히 자각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알고 그것을 창조하는 그런 체험의 자리이다. 이것은 영혼 수준이다. 너희 대다수는 자신의 초의식 의도가 무엇인지 의식하면서 자각하지 못한다.
의식 수준은 자신이 하는 일을 어느 정도 자각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알고 창조하는 체험의 자리이다. 너희가 얼마나 많이 자각하는가는 너희의 "의식수준" 에 달려 있다. 이것은 물질 수준이다.
영적인 길에 헌신할 때, 너희는 끊임없이 자신의 의식을 끌어올리길 추구하거나 그 존재함을 아는 더 큰 실체를 포괄하고 감쌀 정도로 자신의 물질 체험을 확대하길 추구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잠재의식 수준은 자신의 현실을 모르거나, 그것을 의식하면서 창조할 수 없는 체험의 자리이다. 너희는 잠재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 다시 말해 그 까닭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사실조자 거의 자각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저질의 체험은 아니니, 그런 식으로 판단하지 마라. 그것은 일종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희 머리를 자라게 하거나, 너희 눈을 깜박이게 하거나, 심장을 뛰게 하거나, 아니면 즉석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가 삶의 어떤 부분들을 자동으로 창조하기로 선택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그 문제에서 자신을 원인자(原因者)가 아니라 삶의 "결과물"로 여길 수 있고, 자신을 희생자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자각하지 않기로 선택했는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 수준과 초의식 수준, 무의식 수준에 동시애 같은 의도를 갖는 삼위일체의 의식을 초월의식(super-consciousness)이라 부른다. 너희 중 일부는 그것을 "그리스도 의식" 이나 "승화된 의식" 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것은 '완전히 통합된 의식' 이다.
이 자리에 있을 때 너희는 완전하개 창조할 수 있다. 의식의 세 수준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었기에 너희는 "그 모두를 함께 묶었다" 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모든 것에서 그러하듯, 여기서도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기 마련이니, 실제로 그것은 그냥 함께 묶는 이상이다.
초월의식은 초의식과 의식, 무의식의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그것들이 전부 섞이고 나서 그것들을 능가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순수한 있음(Beingness) 속으로 옮아갈 수 있다. 이 있음이 너희 내면에 존재하는 창조의 궁극 근원이다.
너희는 더 많은 것들을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너희는 자동으로 상황이 잘 풀리리라 전재한다. 너희는 그것이 잘 처리되리란 것을 자동으로 안다. 문제를 만났을 때도 너희는 그것이 자신에게 이미 해결되었음을 자동으로 이해한다. 그야말로 자동적으로~,
너희는 이런 결말들을 잠재의식적으로 만들어냈다. 얼핏 보기에는 네쪽에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상황이 자동으로 벌어지기 시작하고 삶이 알아서 굴러가기 시작한다. 네가 상황을 따라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네게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의식적인 노력 없이 일어난다. '참된 자신' 에 대한 자기패배적이고 자기부정적인 생각과 자신이 될 수 있고,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잠재의식적으로 습득되었듯이, 너희가 그것들을 풀어버리는 것 또한 잠재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너희는 그런 관념들을 자신이 언제 어떻게 집어들었는지 모르니, 그것들을 언제 어떻게 내려놓았는지도 모를 것이다. 너희가 보기에는 삶이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바뀌고, 너희가 의식하면서 하는 생각과 그 생각이 너희 현실에서 드러나는 것 사이의 시간 간격이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니, 그렇게 되면 너희는 즉석에서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 위 글에서 우리는 생각의 습관이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자동적으로 잠재의식에 의해서 내 삶과 인생을 창조하고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내 마음의 상황을 내 뜻대로 빚어내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의 습관, 원하는 삶의 결과들을 의식적으로 상상하며 반복적으로 누적시킬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내가 원하는 내 삶의 꿈과 희망이 원하는 대로 결실을 맺도록 끊임없는 원하고 희망하는 상상의 꿈을 그려내시며 성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