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돌아오는 길, 바람을 품다
여행에는 끝이 있지만, 여행이 남기는 마음에는 끝이 없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안데스의 산줄기가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나를 품어 주었던 설산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초원은 여전히 바람을 키우고 있었다. 들꽃들은 처음 만났던 날처럼 고개를 흔들고 있었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는 이미 떠나오기 전의 내가 아니었다.
여행은 풍경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일이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설산을 보고, 초원을 걷고, 팬플루트의 선율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는 지금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이다.
광장에서 먼저 손을 내밀던 여인.
말없이 팬플루트를 연주하던 노인.
들꽃 한 송이를 수줍게 건네던 소녀.
그들의 이름은 끝내 알지 못했다. 다시 만날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
여행이란 참 묘하다.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평생의 기억이 되기도 하고, 몇 장의 사진보다 한 번의 미소가 더 오래 남기도 한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보지만,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누군가가 건네준 따뜻함이다.
안데스 사람들은 바람을 닮아 있었다.
바람은 어느 꽃이 더 아름다운지 묻지 않는다. 어느 나라에서 피었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모든 꽃을 고르게 스치고, 모든 생명에게 같은 하늘의 냄새를 전해 준다. 그들의 미소 또한 그랬다. 국적도 언어도 묻지 않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갔다.
문득 우리 삶도 바람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조건을 먼저 살핀다. 나이와 직업을 묻고, 이해득실을 따지며, 관계의 거리를 재려고 한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계산을 하지 않았다.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웃고, 먼저 마음을 열었다. 그것만으로도 낯선 사람은 이웃이 되었고, 짧은 만남은 오래 남는 인연이 되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자 안데스의 능선이 구름 사이로 서서히 멀어졌다.
그 순간 문득 **‘엘 콘도르 파사’**의 선율이 다시 마음속에서 흘러나왔다. 콘도르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지만, 그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향해 날아간다.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선율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마지막 설산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안데스는 내 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을 흔들고, 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길은 끝나지만, 그 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은 오래도록 삶을 흔들어 놓는다.
돌아와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나는 다시 안데스의 초원을 떠올릴 것이다. 팬플루트의 맑은 선율이 산등성이를 넘어오고, 들꽃은 햇살 속에서 조용히 흔들리며,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환한 미소로 손을 내밀던 그 순간을.
그날 내가 안데스에서 가져온 것은 기념품 하나가 아니었다. 사람을 믿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여행이란 결국, 세상을 돌아보는 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시 찾아오는 길이라는 사실을, 안데스의 바람은 오래도록 내 삶 속에서 조용히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