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돌아 한양도성/정동윤
슬프게도 가을은 자꾸 닳아집니다
아직도 서울엔 단풍이 남아있고
가로수 낙엽도 다 쓸어버리지 않아
거리는 꽤 푸근하고 넉넉하게 보입니다
11월의 친구와 함께 한 나들이는
성북동 돌아 한양도성 청와대 뒷길.
다소 쌀쌀한 느낌으로 변한 날씨에
전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 5번 출구,
10시 5 분 전에 만나 곧장 출발했죠
우리가 만나기로 한 그곳에
미리와 있는 친구는 절대 지각을
모르며 나 또한 지각을 싫어합니다
누구를 만날 때는 항상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떠오릅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역을 나와
나폴레옹 제과점을 지나 성북로로
곧장 나아갔죠
오늘은
최순우 옛집 ☞간송미술관☞수연산방
☞ 심우장☞북정마을☞ 한양도성☞
말바위전망대☞숙정문☞ 촛대바위☞
만세동방 약수터☞백악정☞칠궁 뒷길
☞청와대 앞 무궁화공원☞해공 신익희
기념관 골목☞용금옥(추어탕)☞
서울신문사 지하에서 십전대보탕 마시고
나와 시청역에서 헤어졌죠
분당서 이곳까지 오려면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을 친구는
스타벅스 매장을 보자 카톡으로 받은
선물이 있다며 커피 마시고 가잔다.
케이크 두 조각, 커피 두 잔, 베이글 빵,
우린 반 년 만에 만난 급한 회포를
느긋하게 풀었다. 바쁘게 움직이거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그동안 우린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서울의 산책을 즐기다
나의 파나마 일정으로
6개월가량 쉬었지만 가을에
다시 나선 산책이라 무척 반가웠지요
가을의 한복판을 얘기하며 걷다가
최순우 옛집 골목을 놓쳤고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였지요
'나의 문화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박사가 롤 모델로 삼은 이가 바로
최순우 관장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혜곡 최순우 선생은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름답다" 라고
하시며 한국 문화 예술의 미를
널리 알리는데 평생 애쓰셨던 제4대
국립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이시다.
이곳은 혜곡 선생이 1976년부터
말년을 보낸 집이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라는 명저를 지으신 곳이며
2002년 시민 성금으로 지켜 낸
'시민문화유산 1호'의 가옥이다
그의 지론은 한국 미술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다우며
미술품에 잔재주를 부리면 한국 미술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이 집은 ㄱㄴ을 ㅁ모양으로
모아 짓고 뒤뜰도 만들어
꽤 소박하고 정겨운 한옥 집이다
그러나 그 시절 판잣집 즐비한
북정마을에 비하면
얼마나 고급스러운 집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집을 나와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처음이라는 친구에게 위치 확인차.
봄 가을에 무료 개관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내부 수리란 간판이
몇 년째 걸려있는 듯하다.
전형필(1906~1962)은
조선 최고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문화재가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산과 젊음을 바칩니다.
간송 미술관은
1938년 전형필 선생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 미술관이지요.
큰 길로 나와 조금 올라가면
라틴 십자가 형의
천주교 성직 수도회 건물이 보이고
조금 올라가면 같은 쪽에
'수연산방'인 이태준 가옥이 있다.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살던 집.
이태준의 산문, 정지용의 운문이라는
당시 문단의 평이다
이태준은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마침 내 시가 실린 문학인 신문에
이태준 단편 복덕방도 실려 있어서
그 신문 면을 들고 와 친구에게
시간 나면 읽어보라고 주었다.
이튿날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는
친구의 카톡을 받았다.
또 골목길 따라 올라가면
길상사도 갈 수 있지만 오늘은 생략.
건너편에 이종석 별장도 있지만
번거로운 절차가 싫어서
곧장 심우장으로 올라갔다
1933년 55세 되던 해 만해
한용운 선생은 벽산 스님이 기증한
지금의 성북동 집터에 심우장이라는
택호의 집을 짓고 입적할 때까지
여기서 여생을 보냈다.
집을 지을 때 선생을 돕던 인사들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터를 잡을 것을 종용하였으나, 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다고 하여
끝내 동북방향으로
집을 틀어 버리고 말았다
불꽃처럼 살다간 나혜석과 최린
그리고 만해의 뒷이야기를 짧게 해 주었다
심우장을 한 바퀴 둘러보며
'님의 침묵'과 '알 수 없어요'라는
대표 시가 입속에 맴돌지만
끝내 내뱉지는 않았다
'배워서 남 주자'에서 '배워서 필요한
사람에게 주자'로 마음이 바뀌어
요즘은 나의 흥을 자제한다.
그리고 북정마을을 통과하여
한양도성 아래로 걸었다
북정마을은 한 때 피나민들이
북적북적하였다고 마을 이름을
발음이 비슷한 북정마을로 지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북악의 한양도성 바깥을 따라
말바위 쉼터로 가는 길은 삼청각을
보면서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가
쉼터로 올라가는 합성목재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몇 년 전엔 이곳에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출입증을 받았으나
청와대가 비워진 이후는
그런 절차도 사라졌다
성 북쪽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악의 다른 능선 팔각정 아래 산세도
깊고 깊은 가을로 가득 차 있다
숙정문으로 가는 길은
산성 안으로 들어와서 걷는다
도시의 보도블록이
산길에 깔려있는 점은 좀 아쉽다.
정사각형 보도블록을 보면서
요즘의 수준과 다른 점을 느낀다
지금의 풍요로움으로 그 때의 졸속을
견주면 되지 않겠지만 이젠 좀 더
자연친화적인 순성길을 조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숙정문에 닿았다
한양의 4대문 중 북문으로
양주와 고양으로 출입하는 문이다.
1413년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
숙정문을 통행하는 것은 지맥을 손상시킨다고 상소 후 한때 폐쇄.
음양오행 중 물을 상징하므로
가뭄 시 개방하였다가
1968년부터 40여 년 출입 금지 후에
2006년 4월부터 일반인에게 개방 하였다
여기서 도성을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면
창의문이 나오고 인왕산으로 갈 수
있으나 우리는 청와대를 택하여
촛대바위 쉼터 가는 길로 진입하였다
최근에 개방하였기에 새로운 풍경이고
경복궁과 광화문 대로가 한눈에
보이는 명소인 청와대 전망대도 있다
촛대바위 쉼터에서 목을 축이며
커피점에서 가져온 케이크을 나누었다
구름 낀 가을 하늘엔 찬 기운이 감돌아
벗었던 잠바를 다시 입으며
만세동방 약수터로 나아갔다.
바위를 타고 흘러나온 약수지만
요즘은 음료 금지다.
'만세동방 성수남극'이라는 한자가
바위에 적혀있다.
만세를 산 동방삭이 처럼 나라님도
오래 살라는 기원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통문,
대통령이 드나들던 문이었을까
이곳부터 대통령 관저의 일부였을까
합성목재 품질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이고 규모 있게 만들어졌으며 바위들도 아래로 굴러가지 못하게 철줄로 꽁꽁 묶어 두었다
한양을 남쪽으로 바라보는
최고의 관망 장소였다.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 대로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산이 마주 보인다.
지붕 없는 정자, 그저 쉼터이지만
이름만은 백악정이다.
이곳을 끝으로 가을의 서울 산책은
마무리하고 칠궁 방향으로 내려와
김상헌 시비가 있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장소인
궁정동 무궁화 공원을 거쳐
해공 신익희 집 골목을 돌아
양금옥, 추어탕 집에서 늦은 점심에
막걸리 한 잔 들이켰다.
그냥 가기엔 아쉬움이 남아
서울신문사 지하의
전통찻집에서 차를 주문하였다
차를 시키면 밤과 구운 은행알,
해바라기씨, 건포도를 함께 내어준다.
이 지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는 분을 만나 인사하고 왔는데
그분이 오셔서 찻값을 치르고 가셨다.
우린 미래의 장황한 꿈을 나누며
건과에 십전대보탕을 마시고
12월을 기약하며 찻집을 나왔다.
가을 산/정동윤
가을을 만나러
먼 길 떠나지 않으리
먼 곳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는데
여기를 두고
어찌 먼 길 떠날까.
첫댓글 그동안 무척 바빠서
카페에 방문하지 못했는데
세상에나 이렇게 많은 작품을 두셨군요
월간 시 12월에 수록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