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미공예는 주철로 솥과 보습을 제작하는 공예기술이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한 본토와 교역이 불편했기 때문에 생활필수품을 대부분 자급자족 해 왔는데 덕수리 불미공예가 대표적인 것이다.
제주도내 각 가정마다 쓰이던 무쇠솥, 쟁기와 보습 등 농기구의 대부분을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에서 생산되어 왔고 이 과정에서 불미공예가 완성 되었다.
매년 10월중에 덕수리 마을에 불미공예 재현 공개행사가 열리고 있다.제주도 불미공예에 대한 기록은 귀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승해온 주물공예의 여러 형태와 문헌에서 드물게 보이는 농경 방식의 변천과 비교해 볼 때, 주물공예 역사도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그 까닭은 농기구와 주물공예 기술의 발달과정은 그 관련이 깊어서다. 제주도 주물공예의 형태는 그 규모와 방법에 따라서, 손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켜 쇠를 녹이거나 달구는 손풀무와 땅바닥에 장방형으로 골을 파서 중간에 굴대를 가로박고 그위에 골에 맞는 널빤지를 걸쳐 놓아 한쪽에 세 사람씩 서서 널빤지의 두 끝을 널뛰기하듯 디뎌가며 바람을 일으키는 '골풀무' 두 가지가 있었다.
손풀무는 다시 '똑닥불미'와 '토불미'로 구분한다. '똑딱불미'에서는 1∼2명이 시우쇠를 달군 후 매질하여 주로 칼이나 호미 등을 만든다. '토불미'에서는 '둑(용광로)'에서 녹인 쇳물을 미리 만들어진 '뎅이(器本)'에 부어넣으며 주로 솥·볏·보습 등을 만들어 왔다.
골풀무를 두고 '청탁불미'(또는 '디딤불미', '발판불미')라 한다. 그 규모와 만들어지는 제품은 '토불미'와 거의 같으나, 바람을 일으키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주물공예로 만들어지는 철제품은 그 제작과정에서 두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주로 솥·보습·볏 등을 만드는 것으로, 미리 만들어 놓은 '뎅이'에 무쇠를 녹인 쇳물을 부어넣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달궈낸 시우소에 매질을 가하여 칼 · 호미 · 낫 · 괭이 등을 만드는 것이다.
전자의 방법은 거의 '청탁불미'와 '토불미'에서. 후자의 것은 주로 똑딱불미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보습만은 전자의 방법으로 '똑딱불미'에서도 주조된 바가 없지 않았다.
이 때는 물론 몇 안 되는 보습을 주조할 경우로 '토불미'나 '청탁불미'에서 만드는 방법과 거의 다를 바 없지만, 그 규모는 매우 작다. 3∼4명이 공동으로 도간 하나에 무쇠를 넣어 녹여야 겨우 서너 개의 보습이 만들어지는 정도다.
이렇게 볼 때, 제주도의 주물공예는 가장 단순한 구조인 '똑딱불미'에서 '토불미', 그리고 발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켜 무쇠를 녹이는 '청탁불미'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짙다.
1945년 전후부터는 기계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변형된 '청탁불미'형태가 도입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으나, 그나마 무쇠솥 대신 양은솥이 사용되고, 쟁기 대신 경운기로 밭을 일구기 때문에, 제주도의 주물공예는 사양길로 들어섰다.
제주도에는 언제 어떠한 형태의 주물공예가 존재했을까?唐書 東夷傳》 '담라'조에는 서기 661년 초 제주도 농경방식이 가늠되는 기록이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땅에서 오곡은 자라나 땅을 일구는데 소를 사용하지 못하고 철치파(鐵齒杷)로 땅을 일구더라'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적은, 농경 발달 과정에서 볼 때, 한국 본토에서는 벌써 지증왕 3년(502)부터 고도 농경단계인 쟁기갈이가 시작되었지만, 제주도는 한국 본토에 비하여 무려 160여년이 지난 뒤까지도 호미나 괭이로 밭을 일구는 괭이갈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제주도의 주물공예는 661년 이전부터 괭이갈이에 알맞은 '똑딱불미' 형태의 주물공예가 가내수공업 형태로 곳곳에서 전승되어 왔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쟁기갈이에 알맞은 보습이나 볏을 주조하기 위한 고도의 풀무 형태인 '토불미'나 '창탁불미'는 훨씬 뒤에야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증언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분업화되고 산업화된 주물공예는 솥 · 보습 · 볏 등을 주조하는데 필요한 '뎅이'와 '둑'을 만들 수 있는 점흙이 나오는 서귀포시 구좌읍 덕천리 ·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등지에서 전승되어 왔다.
세부항목 지정번호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7호. 명칭 :덕수리 불미공예 지정(등록)일 :1986년 4월 10일 명예보유자 : 윤문수(1933년 4월 15일생) 소 재 지 :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