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채워야 할 기름” 満たすべき油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예수님 공생애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무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마태복음 24장부터 25장 끝까지에 걸쳐서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24장 1절부터 44절까지는 장차 일어날 일들을,
24장 45절~51절까지는 악한 종에 대한 비유를,
그리고 오늘 살펴볼 말씀인 25장 1절~13절에서는 열 처녀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항상 말씀 드리듯이 복음서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셨는지, 그리고 비유인 경우에는 그 등장인물이 누구인지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를 보면 말씀이 24장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24장 3절~4절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절~4절
“3.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イエスがオリーブ山で座っておられると、弟子たちがひそかにみもとに来て言った。「お話しください。いつ、そのようなことが起こるのですか。あなたが来
られ、世が終わる時のしるしは、どのようなものですか。」
そこで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人に惑わされないように気をつけなさい。
이렇게 해서 말씀이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도 이 맥락에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역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생애 기간 중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대상을 크게 나누어 보면,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같은 기득권층, 예수님께 나온 일반 백성들,
그리고 제자들,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만, 대상이 백성들이거나 또는 바리새인, 제사장들의 경우에는 난해한 비유로
설명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제자들만을 상대로 말씀하실 때를 보면 대단히 이해하기가 쉽게,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해주듯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참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으로 등장인물이죠. 오늘 말씀은 비유이기 때문에 이 속에 등장인물들이 있습니다만, 이는 우선 신랑, 열 처녀, 그리고 또 하나가
등장하는데 이는 나중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혼인잔치라고 한다면 마지막 때를 상징하지요. 그리고 혼인잔치라고 한다면 주로 신랑과 신부를 이야기하게 되는데
오늘은 신부가 아닌 열 처녀라고 하십니다. 이는 말씀의 초점, 그러니까 오늘 말씀의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주제는 즐거운 잔치가 아니라,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만약에 신부라고 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연히 참여하겠지만, 신부라고 하시지 않고 굳이 ‘처녀들’이라고 하신 것에는 이와 같은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차차 아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과거의 이스라엘 지역 결혼문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만, 시간관계상 어려운 것은 생략하도록 하고, 가능한 한 심플하게
말씀 드리도록 해 보겠습니다.
자, 그럼 일단 등장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신랑입니다. 신랑은 ‘혼인잔치’라고 하는 큰 잔치를 위해 오는 귀빈.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손님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지요.
그리고 열 처녀들은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이제 머지 않아 찾아올 신랑을 맞으러 나가야 하는
중요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결혼식 때의 신부 들러리(ブライズメイド)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 처녀 중에서 다섯 명은 미련한 자요, 나머지 다섯 명은 슬기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미련한 자와
슬기 있는 자들이 취한 행동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하겠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3절~4절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절~4절
“3.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愚かな娘たちは、ともしびは持っていたが、油を持って来ていなかった。
賢い娘たちは自分のともしびと一緒に、入れ物に油を入れて持っていた。
미련한 자는 등을 가졌지만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슬기 있는 자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서 등과 함께 가져 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미련한 자가 든 등에 기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뒤에 보면 나옵니다만, 미련한 자는 그 등에 들어갈 만큼의
적은 양의 기름만 가지고 갔고, 슬기 있는 자들은 등에 기름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기름을 다른 그릇에 담아서 넉넉하게 가지고 갔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가로등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만, 준비를 하러 나갈 때 처녀들이 등을 켰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에 이 때가
밤이었다면 등을 켰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등을 킨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들고만 갔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아직 어두워지기
전이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자, 열 처녀 모두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이제 신랑이 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니, 도대체 이 신랑이라고
하는 양반이 오다가 길을 잃었는지 아니면 자기 집에서 무슨 행사가 길어지는지, 도무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요즘 같았더라면 당장 전화를
걸어서 지금 어디 쯤이냐, 언제쯤 도착할 예정이냐 등등 물어볼 수나 있지만 당시는 가로등도 없는 마당에 그럴 수야 있나요. 그저
꼼짝없이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정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긴장도 했겠지요. 조금 늦을 수도 있겠지. 이제 금방 올
거야……그런데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이제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위는 어두컴컴해지고 계속 긴장하고 있었기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요. 그래서 이 열 처녀가 어떻게 되었대요?
마태복음 25장 5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花婿が来るのが遅くなったので、娘たちはみな眠くなり寝入ってしまった。
기다리다 못해 이제 안 오니까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준비하느라고 아침 일찍부터 난리를 쳤겠지요. 다른 분들도 그러셨겠지만
저도 기록을 보니까 결혼식 당일에는 다 준비하고 새벽 5시 반에 숙소를 출발했더라구요. 그렇다면 대략 한 새벽 4시 정도에는
일어났다는 말이 되잖아요? 뭐, 그렇다고 꼭 결혼 당사자만 그런가요? 가족 친지분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온몸이 피곤한데 미련한 자나 슬기 있는 자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제 자기들도 모르게 깊이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지요.
아이구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마태복음 25장 6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ところが夜中になって、『さあ、花婿だ。迎えに出なさい』と叫ぶ声がした。
밤중에 갑자기 어디선가 소리가 납니다. 이 소리가 바로 세 번째 등장인물입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오더니 신랑이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맞으러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는 미련한 자가 아니라 슬기 있는 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예상을 했었더라면 졸지 않았겠지요. 그렇잖아요? 아니,
지금 중요한 날인데, 신랑이 올 줄 알았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자다 깬 얼굴을 하고 나가겠어요?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까지 안
졸았겠지요. 그런데 슬기 있는 자들도 잠을 잤다는 것은 그들도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신랑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이제 난리가 났습니다. 서둘러 잠을 깨고는 날이 어두우니까 준비한 등불을 켜고 나갑니다. 자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태복음 25장 8절~10절
“8.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愚かな娘たちは賢い娘たちに言った。『私たちのともしびが消えそうなので、あなたがたの油を分けてください。』
しかし、賢い娘たちは答えた。『いいえ、分けてあげるにはとても足りません。それより、店に行って自分の分を買ってください。』
そこで娘たちが買いに行くと、その間に花婿が来た。用意ができていた娘たちは彼と一緒に婚礼の祝宴に入り、戸が閉じられた。
이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부탁을 하지요. 지금 자기들이 등 안에 기름을 넣어왔기에 불을 붙이긴 했지만 그래도 기름이
부족해서 꺼져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나누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랬더니 슬기 있는 자들이 말하기를, 지금 자기들 쓰기에도
모자랄 것 같으니, 그러지 말고 어서 가서 사오라고 합니다.
아니, 지금 가로등도 없고 전화도 없는데, 그 밤중에 영업하고 있는 편의점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마도 정신 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간신히 기름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다시 돌아왔지만, 그러면 뭘 합니까. 이미 신랑은 도착해서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맞이하고, 모두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는 문이 닫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1절~12절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その後で残りの娘たちも来て、『ご主人様、ご主人様、開けてください』と言った。
しかし、主人は答えた。『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私はあなたがたを知りません。』
당연히 알지 못하겠지요. 신랑이 도착했을 때에 그들은 기름 사러 갔었잖아요. 얼굴을 봤어야 들여보내든지 하겠지만, 당신들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처럼 차가운 말을 듣고, 결국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참 허무하지 않습니까. 아침부터 이게 무슨
고생이에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아침부터,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피부관리다 뭐다 해서 오랫동안 그 날을 위해 준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합니까. 이미 잔치는 시작되었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즐거운 잔치에 들어갈 수 없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마태복음 25장 1절~12절까지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미련한 자와 슬기 있는 자의 구분이 이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만, 세상적으로 보면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자, 행사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행사 진행 매뉴얼이 신부 들러리 역할을 맡은 열 처녀들에게 내려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예정된 시간까지 지정된 장소에서 기다렸다가 신랑이 도착하면 지체 없이 곧바로 나가서 맞이할 것. 해가 저물고 주변이 어두울
때에는 각자 불이 켜진 등을 손에 들고 나갈 것. 그리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할 것. 이게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처녀 열 명 중 다섯 명씩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그룹 처녀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매뉴얼에 이렇게 적혀 있으니까 등불을 준비해야지.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니 밤늦게 올 것도 대비해서 기름도 넉넉하게 준비해야겠다. 참
단순하죠?
한편 B그룹 처녀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매뉴얼에 이렇게 적혀 있으니 들고 나갈 등은 준비해야겠지. 기름? 에이, 그거야 등 안에
넣어두면 되잖아. 여분의 기름 같은 건 필요 없어.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여기서 신랑 집까지의 거리는 얼마고, 신랑이 당일에
시댁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마치고 이리로 출발한다고 하면, 여기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략 오후 정도. 아무리 늦더라도 초저녁이면 충분해.
지금이 겨울이라면 또 모를까 요즘은 아직 초저녁이라도 환하니까, 굳이 등을 켤 필요가 없잖아. 밝을 때 켜봤자 티도 안 난다니까.
그러니까 괜히 무겁게 기름을 많이 넣지 않아도 돼. 그리고 최악의 경우 기름이 필요하다면 A그룹 애들한테 빌리면 되지 뭐. 쟤네들 좀
봐. 미련하게 하란다고 기름을 저렇게 많이 준비했잖아. 머리가 나쁘면 평생 고생이라니까. 기름이 적어서 불안해? 괜찮아. 걱정하지마.
나만 믿으라구.
만약에 이랬다면 어떨까요. 물론 우리는 이미 답을 아니까 쉽습니다만, 세상적으로 보면 A그룹과 B그룹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세상적으로
보면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A그룹보다도, 이것저것 정보를 수잡하고 요령 있게 준비한 B그룹 처녀들이 더 지혜롭다는 평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잖아요? 세상을 좀 요령 있게 살아야지요. 하란다고 시키는 대로 다 하면 그게 미련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어떻습니까. 세상적으로 보면 미련하게 보였던 A그룹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반면에 세상적으로 보면 지혜롭고 요령 있는
것처럼 보였던 B그룹은 아예 문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죠.
마태복음 25장 13절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ですから、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その日、その時を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ら。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열 처녀에게 내려졌을 명령, 매뉴얼이란 무엇일까.
둘째로, 열 처녀의 희비를 엇갈리게 만든 기름이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셋째로, 깨어있으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세 가지를 오늘은 반드시 이해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깨닫게 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열 처녀에게 내려졌을 명령, 매뉴얼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당연히 성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질문입니다. 이렇게 두꺼운 성경, 이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만, 이를 간단하게
줄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あなたは心を尽くし、いのちを尽くし、知性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これが、重要な第一の戒めです。
『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第二の戒めも、それと同じように重要です。
この二つの戒めに律法と預言者の全体がかかっているのです。」
여기서 특히 40절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40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この二つの戒めに律法と預言者の全体がかかっているのです。」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변화산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17장 1절~3절
“1.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それから六日目に、イエスはペテロとヤコブとその兄弟ヨハネだけを連れて、高い山に登られた。
すると、弟子たちの目の前でその御姿が変わった。顔は太陽のように輝き、衣は光のように白くなった。
そして、見よ、モーセとエリヤが彼らの前に現れて、イエスと語り合っていた。
모세는 율법의 상징이요 엘리야는 선지자의 상징입니다. 즉 이 두 사람은 그야말로 성경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에
예수님께서 계셨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あなたは心を尽くし、いのちを尽くし、知性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라는 계명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라는 이 두 계명이 곧 성경 전체와도 같다,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매뉴얼인 이 성경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이를 실제로 보여주신 분이 바로 다름아닌
예수님이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기름은 무엇이냐 하는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슬기 있는 자들은 기름을 넉넉하게 가지고 갔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겸손과 순종이요, 또 하나는 주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날 그 열 처녀들에게 내려진 사명은 장차 도착할 신랑을 기다리다가 맞이하는 일이었습니다. 낮에 와야만 맞이하고 밤에 오면 맞이하지
안아도 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닙니다. 낮에 도착하든 밤에 도착하든 새벽에 도착하든, 언제든지 도착하기만 하면
신랑을 나가서 맞이하는 것,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낮에 오시든 밤에 오시든, 언제든지 오십시오.
주님께서 원하실 때에 오십시오. 저의 생각이나 저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생각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섬기겠습니다. 이것이
기름을 넉넉하게 채우는 겸손과 순종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름이라고 하는 것이 주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얼마나 우리 삶
속에서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범사에 예배하고 찬송하고 감사하는 삶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웃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 사랑일까요.
여러분께서는 요즘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계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어떤 분은 이렇게 대답하실지도 모르겠지요. 아이구, 요즘은 저 먹고
사느라고 바빠서 이웃 사랑을 실천할 시간이 없어요. ㅎㅎ
이웃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것일까요?
이도 역시 우리의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매뉴얼인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45절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悪い者に手向かっ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の右の頬を打つ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
あなたを告訴して下着を取ろうとする者には、上着も取らせなさい。
あなたに一ミリオン行くように強いる者がいれば、一緒に二ミリオン行きなさい。
求める者には与えなさい。借りようとする者に背を向けてはいけません。
『あなたの隣人を愛し、あなたの敵を憎め』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自分の敵を愛し、自分を迫害する者のために祈りなさい。
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の子どもになるためです。父はご自分の太陽を悪人にも善人にも昇らせ、正しい者にも正しくない者にも雨を降らせてくださるからです。
여러분, 이 구절 좋아하십니까? 어쩌면 이 구절을 읽으시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하이구. 그래. 성경은 맨날 손해 보면서
살라고 하고 그런 얘기 밖에 없어. 어떻게 사람이 맨날 인내심 테스트 하면 살라는 거야? 그런 생각 들지 않으세요?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사실 이 글 내용을 보면 우리에게 그렇게 어려운 것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큰
돈을 쓰라는 것도 아니고 큰 희생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손해보고, 조금 내주고 조금 자존심 세우지 말아라……그
정도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해주시는 건가요? 그렇게 좀 손해 보면서 살면 다투지 않아도 되니까? 속이 편하니까?
여러분, 성경은 윤리책이나 실용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조금 손해보고 이웃을 사랑하면, 주님께서 30배 60배 100배 되는 축복으로
갚아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주님 앞에 드리는 등불에 기름을 채워 넣는 일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깨어있으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련한 자도 슬기 있는 자도 신랑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잠이 든 슬기
있는 자들도 잘못했다고 말씀하고 계신 건가요?
여러분,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잠을 자야지요. 어떻게 항상 깨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잠을 잔다는 것은 단순히 수면을 취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신앙적으로는 세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신앙이 있다고 해서 1년 365일 교회
안에서만 있어야 하나요?
그것은 하나님도 그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안식일에 대한 계명을 주시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출애굽기 20장 8절~10절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安息日を覚えて、これを聖なるものとせよ。
六日間働いて、あなたのすべての仕事をせよ。
七日目は、あなたの神、主の安息である。あなたはいかなる仕事も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も、あなたの息子や娘も、それにあなたの男奴隷
や女奴隷、家畜、またあなたの町囲みの中にいる寄留者も。
엿새 동안은 믿음을 갖고 세상에서 열심히 우리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여기서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은, 슬기 있는 자들이
했던 것처럼, 신랑이 낮에 오든 밤에 오든, 그 때 넉넉한 기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믿음과 말씀과 행함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기름을 들고 나갈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점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련한 자들은 슬기 있는 자들에게 기름을 빌리려 했으나 거절 당했다고 하지요. 여러분, 우리가 쌓아온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다른 사람한테 빌려줄 수 있나요? 좀 다른 예로 말씀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운전 면허증을 조금 잘라서 면허가 없는
사람한테 주면, 그 사람은 조금 잘라준 면허만큼 운전할 수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날에는 하물며 자신의 부모나 자식이라 하더라도 믿음으로 채운 기름은 나누어 줄 수도 없고 빌려줄 수도 없습니다. 모두
자기가 자기 힘으로 채워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4절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も用心していなさい。人の子は思いがけない時に来るのです。
누가복음 12장 40절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あなたがたも用心していなさい。人の子は、思いがけない時に来るのです。」
요한계시록 22장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見よ、わたしはすぐに来る。この書の預言のことばを守る者は幸いである。」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見よ、わたしはすぐに来る。それぞれの行いに応じて報いるために、わたしは報いを携えて来る。
요한계시록 22장 20절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これらのことを証しする方が言われる。「しかり、わたしはすぐに来る。」アーメン。主イエスよ、来てください。
주님이 언제 오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하루 뒤, 한 달 뒤, 1년 뒤, 5년 뒤, 10년 뒤에 오실 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오늘 지금 이 예배가 끝나기 전에 오실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릅니다만, 그러나 반드시 오십니다. 속히
오신다고 주님께서는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밤중에 갑자기 신랑이 도착했다는 소리로 인하여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날도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52절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聞きなさい。私はあなたがたに奥義を告げましょう。私たちはみな眠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みな変えられます。
終わりのラッパとともに、たちまち、一瞬のうちに変えられます。ラッパが鳴ると、死者は朽ちないものによみがえり、私たちは変えられ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 나팔소리가 나며 모든 것이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반드시 오십니다. 그리고 곧 오십니다. 우리 모두, 믿음과 말씀과 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몸 같이 사랑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 기름을 가득 채워서,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오늘 말씀에 나오는 슬기 있는 처녀들처럼 기쁨과 감사와 찬송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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