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K 토요 칼럼 ( 25. 5. 24 )
제1차 오일쇼크 해결은 박정희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빛나는 업적이다
☆ 1.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적 영 웅이다
대통령 박정희는 재임 18년 6개월의 통치기간을 그의 휘호 대로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쳤다.
제2차 대전후 카다피나 무바라크 마르코스 등 장기 독재자는 자신의 치부와 권력 남용으로 조국에는 빈곤과 파멸을 남겼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에 부귀와 영광을 남겼다.
제2차 대전의 승전 국가 대통령 루스벨트와 수상 처칠은 승전 하나만으로 영웅이라 부른다.
박정희 대통령의 일생을 조국에 바쳐 약소 빈국을 강대 부국으로 만든 것이 전쟁 영웅보다 못한 것이 무엇 있으랴!
싱가포르의 30년간의 장기 집권자 리콴유는 그의 조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 싱가포르의 국부로 존경받고 있지만 싱가포르라는는 나라는 세계 최대급 부국이지만 섬나라 소국이다,
세게 석학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중국의 덩샤오펑이나 터키의 아타튀르크와는 비교되지 않을 비전을 가지고 국가건설을 했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6개윌간의 재임기간에 이룩한 공적으로는 새마을 운동, 보릿고개 타파를 시작으로
고속도로 건설, 문화창달, 부국강병 국가건설, 산림개발, 국토개발, 과학기술빌 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수출 제일주의 그리고
조선 일등국 건설, 기술인력 양성, 핵개발, 원전건설, 방산육성, 중화학 단지건설 등등을 꼽아 박정희 대통령믈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여기에 추가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73년1월 중화학 선언으로 수출목표 100억 불에 대하여 200억 불을 달성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1,000불의 목표에 대하여 1,630불을 달성하는 기적을 만들었기 때문에 세계적 영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화학 선언은 그의 최고의 최후의 정책으로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결정적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안계셨으면 오늘날의 세계 5위의 영국과 프랑스를 앞서는 공업강국도 없으며,
1인당 국민소득도 3만 6천불이 되어 5030 회원 국가로서 공산 1,2위 국인 러시아와 중국을 앞서고 일본을 배워 일본을 따라잡는 쾌거도 없는 것이다.
필자는 오늘 박정희 대통령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또 하의 보충자료의 오일쇼크 해결을 소개합니다.
☆ 2. 제1차 오일쇼크 해결과 중
동 진출
(가) 세계 제1차 석유파동 발생
73년 10월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잃었던 땅을 되찾으려고 이스라엘을 침공했지만 결과는 이집트의 패전이었다. 이를 제4차 중동전쟁이라 부른다.
이 전쟁으로 중동 산유국 10개국이 전쟁에 가담하여 석유를 무기화하는 제1차 오일 쇼크를 발발시켰다.
전 세계가 석유파동에 휘말려 들어가서 세계경제는 공황 속으로 빠져 들었다.
서방의 Major Oil이 가지고 있던 석유생산과 판매를 빼앗아 국유화시켜 자신들의 소유로 하고 공급제한과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나) 산유국의 대한국 삭감통고
73년에 10월 한국에는 ㅣ) 석유공사 2) 호남정유 3) 경인에너지 3개 정유공장이 있었으나 전부 Major와 합작이었으며 윈유공급은 메저 Oil의 책임사항이었다.
한국은 친미 국가라고 해서 비우호국가로 분류되어 유공은 Gulf를 통하여 30% , 호남정유는 Caltex를 통하여 10%. 경인은 Union을 통하여 22%, 전체적으로 22%의 삭감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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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로서는 최대의 위기가 온 것이다. 석유를 금이라고 여기고 귀하게 다루고 있을 때 22% 감량이라고 하는 것은 청천벽력이었다.
원유공급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않으면 민생이 어렵게 되고 정국마저 위태로워질 지경이었다
73년은 유신 선포를 한 다음 해이고 중화학 선언을 한 해였다. 이 위기를 잘 해결치 않으면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정부는 긴급 대비책으로 10 %의 소비절약 대책을 만들어 실시에 들어갔다
대낮 소등철저 및 한 등 끄기 운동 등 10개 항에 달했다.
만약 이것으로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택시운행 제한, 발전소 감량운전, 방송 시간제한, 신호등을 제외한 가로등 소등까지 고려하는 후속조치도 있었다.
중동국가와는 일자 면식도 없고 메이저로부터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말을 건네 볼 데가 없었다
다) 감량 해결의 묘안 발생
석유에 관한 한 값진 idea를 주는 호남정유의 SK Hahn 기술이사를 불렀다.
메이저가 지금 힘은 없어졌지만 어제까지 몇백만 배렐을 가지고 놀던 사람들인데 그들이 떨어 트리는 이삭만 줍더라도 모으면 몇십만 바렐은 충분히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Major에 가서 구걸 행위를 하는 도리밖에 없으며 대통령실이 나서되 석유와 major를 아는 기술계가 조속 방미해야 된다고 했다.
필자가 이내용을 보고서로 만들고 오수석은 김정렴 실장에게 보고 드리고 오수석은 실장 배석 하에 대통령께 보고 드렸다.
대통령은 "당장"" 미국 출장
가라는 명령이 떨이 졌다. 치사하게 구걸이 뭐냐? 관둬라가! 아니었다
오 수석은 예! 알았습니다 하고는
모래 김광모 비서관과 같이 떠나겠습니다 하고 나왔다고 했다.
저는 밤새 대통령 친서 안을 만들었으나 영어로 번역할 틈이 없었다. 대통령 친서에 서명도 받지를 못했다.
라.) 대통령 친서와 교섭결과
Pittsburg에 있는 Gulf Oil 본사부터 방문했다.
회의실에는 Dorsey 회장과 원유담당 Goodman 부사장등을 비롯하여 5명의 중역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수석이 박정희 대통령 친서는 지참했지만 번역할 틈이 없었다고 execuse를 구하고 Konglish로 설명했다. 한글 원본의 친서는 따로 건넸다.
(치사 사본 유첨)
Dorsey 회장은 박정희의 친서내용을 듣고 대통령께 안부를 전해 달라는 밀과 함께 Goodman 원유 담당 부시장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오수석은 Dorsey 회장을 껴안더니 옆에 있는 친구 Goodman 부사장과도 포옹했다
이런 식으로 LA에 있는 호정의 Caltex의 Tucker 사장과 Miller 부사장 그리고 SF에 있는 경인의 Union Oil의 Parker사장과 Thompson 부사장등 모두를 닷새 동안에 방문하였다
이리하여 방문결과는 감량 전랑을 거의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귀국길 비행기 내에 시 보고서를 써서 서울 비행장에 내리자 오수석은 직행으로 대기 중이신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서 보고 드렸다.
대통령은 한마다 말씀 "수고했네!" 하시면서 "힘 있는 싸인"을 해주셨다 (보고서 사본 제시 가)
마) 박정희의 중동진출과 개척
정부는 다음과 같은 보고서상의 건의 사항을 실행에 옮겼다.
가) 각료급으로 구성된
에너지 절약대책 위원회를
설치할 것
나) 중동산 유국과 외교적
교섭을 추진할 것
나) 항의 중동국가와의 외교적 교섭에 대하여는 박정희는 한국 외교상 최고 거물인 최규하특보(총리)를 중동특사로 임명하여 사우디에 파견하여 외교교섭을 시작토록 하였다.
모두들 놀랬다. 최규하 라니! 했다. 박정희의 특명이었다. 사우디와 물꼬가 트였다.
한국은 사우디의 선심을 얻기 위하여 국방부에서 태권도교관 파견, 탄약 및 군수품 지윈, 병기제작 기술에 대한 지원부터 추진하였다.
한국 건설 회사들의 돌관 작업과 야간에도 작업을 하는 횃불작업은 사우디 왕의 신임을 얻어 계속적으로 일감을 따냈다.
이 당시에 시범공고에서 배출된 기능사들이 중동에 파견되어 실력을 발휘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는 도로와 송수송유관 건설 주택공사 그리고 즈
베일 항만 공사 수주 등이 잇달았혔다.
한국은 중동진출로 한국이 윈유구입에 소비되는 금액 이상으로 Oil Money를 벌어 드렸다.
이상이 실무 담당자가 밝히는 오일쇼크 해결과 중동진출의 비사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