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송의
황후로
남송의
초대
황제이자
조송의
제10대
황제인
송고종의
계후이다
무려
83세나
살아
남송의
황후들
중에서
가장
장수했다
오래
살았기에
남송의
황후로서는
특이하게
고종
효종
광종
영종
4대까지
생존하여
13대
황제인
영종의
법적인
증조
할머니가
되었으며
황후
태상황후
황태후
태황태후를
모두
경험했다
1114년
오근吳近의
딸로
개봉부에서
태어났다
10대초반
북송
외부에서는
1125년
요나라가
북송과
금나라의
협공으로
무너졌고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와의
약조를
어기자
분노한
금나라에
의해
개봉이
함락당하고
두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
끌려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씨는
14살에
선발되어
입궁하고
당시
강왕이었던
조구의
시녀가
되었으며
이후
재인을거쳐
귀비로
책봉되었다
1127년
강왕 조구가
강남
중국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송나라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나갔다
바로 조송의
제10대
황제이자
남송의초대
황제인
고종의
치세가
시작된
것이다
오씨는
고종을따라
금나라에
쫓기는
상황을
계속겪었다
그러다가
금나라와의
강화협정이
겨우
체결되었다
1142년
고종의
모후인
현인황후가
고종의
첫번째
황후였던
헌절황후가
1139년에
죽었다는
소식과함께
남송으로
돌아오면서
중궁이
오랫동안
비어있었다
조정에서는
고종에게
대신들이
황후책봉을
청하였고
현인황후
역시오씨를
추천하였다
결국1143년
고종은
귀비였던
오씨를
황후로정식
책봉하면서
오씨는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고종은
아들을
낳을수
없었고
더불어
1129년에
묘부와
유정언의
쿠데타로
강제퇴위
되었다가
복위하면서
유일한
아들인
원의태자
조부를
잃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오씨도
자식이
없었다
게다가
태종의
후손들도
정강의
변으로
끌려가는등
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결국
고종은
종실중에서
태조의
자손을
양자로삼아
제위를
돌려주기로
결정하였다
이때태조의
차남인
조덕방의
6세손
조백종
趙伯琮을
조신으로
개명시키고
양자로
삼았고
조백구
趙伯玖도
양자로삼고
조거로
개명시켰다
고종의
황후인
오씨는
고종의
양자들을
아끼며
자신의
자식들처럼
길렀고
이중조신을
황태자로
책봉
하였는데
조신이
바로남송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조송의
제11대
황제이자
남송의
제2대
황제인
효종이
된다
1162년
고종이
조신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이
되면서
오씨또한
태상
황후가되어
덕수궁으로
옮겨살았다
이때
효종에게서
수성
壽聖太上皇后
라는
존호를
받았다
건도 7년
1171년에는
수성명자
태상황후
壽聖明慈
太上皇后
라는
존호를
받았고
순희 2년
1175년에
수성제명
광자태상황후
壽聖齊明廣
慈太上皇后
라는
존호를
받았다
1185년에는
수성제명광자
비덕태상황후
聖壽齊明廣慈
備德太上皇后
라는 존호를
받았다.
순희 14년
1187년에는
태상황이던
고종이
세상을 떠나
오씨는
저절로
황태후가
되었다
이때 효종은
오씨에게
덕수궁을
떠나
대내로
돌아오도록
했지만
오씨는
덕수궁을
떠나지 못해
자신의
침전을
자복전으로
부르고
그곳에
거처하였다
순희16년
1189년
효종은
황태자인
조돈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이
되었다
이때문에
오씨는
아직
태황태후를
칭하지
않았고
광종
으로부터
수성
황태후라는
존호를
받았다
오씨는
소희4년
1193에
수성
壽聖
융자비
隆慈備
복황태후
福皇太后
라는
존호를
받았다
광종이
황제로
재위하는
동안
황후인
자의황후는
광종과효종
사이를
이간질했고
광종과
효종은
사이가점점
나빠졌다
결국
효종은
1194년에
세상을
떠났고
오씨는
태황태후가
되어
이시기에
잠시
수렴청정을
하였다
광종이
자의
황후에게
휘둘리고
정신
질환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부친의상을
주관하지
않자
대신들은
태황태후인
오씨에게
광종의
폐위를
건의하였다
오씨는
광종이
제정신이
아니며
황제로서의
업무조차
수행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고는
대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폐위를
결정한다
그러면서
남송의
재상이었던
조여우와
한탁주가
후계자
후보로
광종의
조카인
조병을
내세웠는데
황태후는
광종의
아들인
가왕
조확을
선택하였고
결국
조확을
황제로
즉위시켰다
1194년
광종이
퇴위하고
가왕조확이
즉위했다
바로조송의
제13대
황제이자
남송의
제4대 황제인
영종寧宗의
치세가
시작된다
오씨는
가왕의
부인이었던
한씨를
영종의
황후로
책봉시키고
수렴청정을
거두었다.
오씨는
광우光祐
라는
존호가
더해졌다
1195년
조여우와
한탁주가
대립하면서
한탁주는
조여우를
쫓아내고
경원의
당금을
일으켰다
한탁주는
헌성자열
황후의
외조카
였는데
광종의
퇴위와
영종의
즉위에
자신의
공적이
컸다고
판단하여
태후와
황후의
권세를믿고
권력을
휘둘러
경원의
당금을
일으킨
것이었다
오태후는
한탁주가
일으킨
경원의
당금을
목격하고
1197년에
세상을 떠나
헌성자
열황후로
추시
되었으며
고종의
무덤인
영사릉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