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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가 귀족 스포츠의 대명사로 불리던 1975년,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대형 이변이 발생했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 결 승전에서 흑인 선수가 세계 랭킹 1위인 지미 코너스를 이기고 왕좌에 등극한 것이다.
영국 윔블던 주경기장에서 흑인 선수가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가 되던 시절에
우승 을 했으니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겠는가. 그 코트의 반란을 일으킨 선수가 바로 아서 애시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기도 한 그의 이력서는 길다.
윔 블던 대회에서 흑인 선수로는 최초로 정상에 올랐고 미국 오픈과 프랑스 오픈을 거머쥐었 다.
흑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선수이며,
무려 14년간이나 데이비스 컵 미국 대표선수로 출전해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흑인이라는 마이너리티의 설움을 극복 하고 수많은 약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아서 애시.
테니스의 월드 베스트였던 아서 애시의 코트 리더십을 분석해본다.
애시의 전략 : 정체성을 기억하라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애시는
운동장 관리인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자연스 럽게 테니스를 접하게 된다.
바로 집 옆에 네 개의 테니스 코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로서는 백인들의 스포츠로 알려진 테니스였지만 그러한 환경 덕에 일찍 라켓을 잡았다.
운 동은 물론 공부도 잘해 UCLA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것을 계기로
미국 데이비스컵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테니스 팬들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백인들의 전용 스포츠인 테니스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는 애시에게 흑인들의 따가운 눈 초리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약자를 대변하지 않고 강자에 빌붙어 성공하고 있다는 비판이 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활발했던 1960년대에 애시는 조용히 테니스 세계를 정복하는 데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시가 마이너리티의 설움을 얼마나 가슴 깊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사람들은 훗날 깨닫게 됐다.
애시의 정체성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제 테니스 대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무려 3년이 나 연속해서 입국비자를 퇴짜맞은 그는 또다시 4번째 입국비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매스컴 에 하소연할 만한 극단적인 인종차별이었지만 애시는 혼자만의 도전을 고집했다.
수많은 흑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은 오히려 그를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차별을 당하면서도 가려 는 의도가 무엇이냐, 자존심도 없냐면서 애시의 태도를 비아냥거렸다.
더구나 그가 남아프 리카공화국 보이콧 운동에 동참하기를 거부하자 비판은 극에 달했다.
그러한 논란을 뒤로 하고 애시는 대회에 참석했고 남자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은 애시의 진면목을 깨달았다. 그가 흑백 혼성 관중 앞에 서 시합하겠다고 집요하게 요구해 허락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많은 흑 인들이 마이너리티 애시의 승리를 눈물로 지켜보며 ‘시포(Sipho)’, 즉 ‘주님의 선물’ 이라는 별명을 외쳤다고 한다.
아서 애시는 테니스 종목에서 인종차별을 뛰어넘은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자 신이 겪었던 서러움을 해소하는 데 모든 정열을 바쳤다.
더 이상 같은 모습을 후손에게 유 산으로 물려줄 수는 없다는 결단에서였다.
테니스가 갖고 있던 상징성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친 인식을 바꾸는 데 도전했던 것이다.
1985년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을 올리던 바로 그 해에 애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 앞에서
아라파이드 퇴진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됐다. 1992년에는 미국의 아이티 점령 반대운 동을 하다가 또다시 체포됐다.
그 해 그는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 잡지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로 꼽혀 표지모델 이 됐다.
27년간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가장 먼저 만나 고 싶은 사람으로 아서 애시를 꼽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애시는 <<영광의 순간들(Days of Grace)>>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사람들이 나를 테니스 선수로만 기억한다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것 인가?
물론 그 반대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분야에서 편안하게 먹고 사는 데 연연하 는 사람들.
그들 모두 애시의 잣대에 의하면 실패한 사람들인 셈이다.
애시는 자신에게 주 어진 달란트를 좋은 가치를 위해 헌신한 리더였다.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가능케 한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평가한 리더였던 것이다.
애시의 원칙 : 스포츠맨 정신을 중 시하라 1980년대 테니스 코트에는 유명한 악동이 한 명 있었다.
세계 랭킹 상위권에 있으면서도 품위가 도저히 테니스 코트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장발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험 한 말을 토해내는 나스타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 번은 아서 애시가 그 악동과 경기를 치르게 됐다. 얄미울 정도로 두뇌 플레이를 잘하며 애시가 계속 앞서나가자 나스타제가 완전히 열을 받 았다.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지거리를 애시에게 퍼부어댔다.
“야, 너도 인간이냐? 용 기 있으면 대꾸 좀 해봐!” 하면서 신경을 자극했다.
물론 심판이 경고 벌점을 줬지만 그 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욕적인 말을 계속 퍼부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애시가 조용히 심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경기를 기 권하겠다’고 말했다.
심판은 물론 말렸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기권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스포츠맨입니다. 경기에 이기고 지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스포 츠맨 정신을 이 하나의 경기에서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와 대결하면 나는 명예를 잃을 것입니다.” 끝내 애시는 경기를 포기했고 물론 기권패로 종료됐다.
다음날 미국테니스협회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나스타제의 비열한 행동이 오히려 승리로 이어진다면 ‘스포츠맨십을 소멸시키고 말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 경기의 결과는 번복돼 오히려 나스타제는 징계를 받았고 승리는 애시의 것으로 인정됐다.
“성공은 여정이지 종착지가 아니다.
성공하려는 것이 성공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 아서 애시의 성공에 대한 철학이다.
성공을 향한 도전 자체를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땀과 눈물로 얼룩진 도전의 맛을 아는 사람만이 승리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너리티의 약점을 안고 살아간 애시의 경쟁 원칙은 자신의 가치관을 잃지 않는 냉정함 이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이미지를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했다.
임계점 에 다다르는 순간까지 역량을 함부로 발산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잠재력을 보호했다.
요즘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경영 초반에 이것저것 욕심을 보이는 경영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손을 뻗치면 충분히 기회를 선점할 것 같은 달콤한 유혹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러한 초반 시도로 뜻하지 않은 성공을 거두는 벤처기업이 간혹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도가 대부분 기업가 정신을 병들게 하고 시장을 흐려놓는다는 것 을 익히 경험하고 있다.
아서 애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때를 기다리라고 가르쳐준다. 역 량을 모으고 임계점에 다다르는 과정을 즐기라는 것이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인정받는 검증절차를 거친 후, 그제야 비로소 탄력 있게 영역을 확장시켜보라는 것이다.
애시의 태도 : 갈등과 대립 피하지 마라
중년에 접어들면서 애시의 리더십 무대는 범사회적으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마이너리티 청 소년에게 테니스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전국에 1천 개가 넘는 유소년 팀을 창설해 테니스 프로그램을 확대시켰다. 이 프로그램에 처음 참가한 사람이 바로 비너스 윌리엄스 와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다.
오늘날 두 자매가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석권하고 있는 배경에는 애시의 노력이 있었던 셈 이다.
또한 그는 흑인 스포츠를 가시화시키기 위해 흑인 스포츠 스타의 이야기를 <<영광의 상처(A Hard Road to Glory)>>라는
책으로 엮어 보급하고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3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 증세로 은퇴하고 수혈과정에서 에이즈에 걸린 불운의 스포츠 스타 였지만
그는 자신의 불행을 사회발전으로 전환시키는 데 도전했다.
대중의 관심이 자신의 에이즈에 쏠리자 이를 역이용해 대중에게 에이즈의 위험성을 홍보함으로써 세계 보건에도 크게 기여했다. 5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리더는 어떻게 살아야 하 는가’를 보여주었다. 갈등과 대립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한복판에 뛰어들어 문제해결 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갈등이 심화되면서 리더 역할을 수행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노사간의 갈 등과 세대간의 갈등이 있다. 지역간의 갈등이 식지 않으며, 조직 계층간의 갈등도 더욱 거 세지는 조짐이다.
이들 모두 리더가 지고 가야 할 짐이다. 이러한 난관에 봉착하면 경영자 들은 혼돈스러워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기업을 운영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 수 있다 .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바로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갈등과 대립을 아우 르면서 한마음 정신을 갖도록 이끄는 것이 리더의 미션이다.
테니스 코트의 리더인 아서 애시는 리더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미션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가르쳐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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