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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대구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두류공원은 약 118만㎡의 드넓은 면적을 자랑하며, 성당못의 그림 같은 풍경과 문화예술회관의 품격 있는 자태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삶과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야외음악당, 야구장, 수영장 등 다양한 시설은 연중 끊임없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으며, 대구를 대표하는 도심 속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주변에는 주택과 아파트, 병원과 시장이 어우러져 생활의 편리함을 더하고, 버스와 지하철 1·2호선이 가까워 누구나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대구광역시청 이전 계획과 전국 최초 ‘국가도시공원’ 지정 추진은 두류공원을 단순한 공원을 넘어 자연과 문화를 아우르는 국가적 명소로 거듭나게 할 원대한 꿈의 시작이다.
1981년, 대구가 경상북도에서 독립해 직할시로 승격되던 그때, 시민들의 열망은 새로운 도시의 미래를 향한 뜨거운 갈망으로 타올랐다. 1982년 제2대 직할시장으로 부임한 이상희 시장은 이 희망을 품에 안고, 가뭄 극복을 위한 상수원 개발, 대동·대서로(현 달구벌대로) 확충, 팔공산 순환도로 신설, 신천대로 착공 등 대구의 뼈대를 세우는 대형 사업들을 과감히 추진했다. 그 중심에 두류공원이 있었다. 성당못과 문화예술회관을 축으로 한 이곳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과 문화를 잇는 대구의 새로운 상징으로 태어났다.
필자는 임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당시 두류공원 조성에 헌신한 이분들의 노고와 열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동료, 선배들의 생생한 증언과 현장의 숨결을 통해, 그분들이 얼마나 치밀한 계획과 헌신으로 이 공간을 빚어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은 그 시절의 노력을 사실에 근거해 기록하고,
두류공원이 오늘날 어떻게 시민들의 품에서 빛나는지를 되새기고자 한다. 이는 결코 한 사람의 미화가 아니라, 한 시대의 꿈과 열정이 담긴 공간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밝힌다.
2. 두류공원의 산 이름과 주요 시설
두류공원은 세 개의 낮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83타워가 있는 산을 두류산(頭流山)이라 하는데, ‘두류’라는 명칭은 산세가 둥글고 부드럽게 펼쳐진 모습을 뜻하는 ‘두리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대구문화예술회관 뒤편의 산은 금봉산(金鳳山)으로 해발 139m의 낮은 산이다. ‘금봉’은 ‘금(金) 봉황(鳳凰)’을 의미하며, 고려 중기에 한 부호가 세운 절 이름을 ‘금봉사’라 한 데서 그 산 이름이 유래했다. 현재 금봉산에는 금용사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가톨릭병원 건너편에 있는 산은 장등산(長登山)으로, ‘장등’은 ‘길게 오르다’ 혹은 ‘높게 오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두류공원 내 주요 시설은 크게 문화·체육·휴식 공간으로 나뉜다. 성당못은 부용정과 산책로로 조성되어 휴식과 경관 감상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금봉산 구역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 야외음악당, 2·28기념탑, 대구관광정보센터, 두류도서관이 있으며, 체육시설로는 유니버시아드 테니스장, 두류야구장, 다목적운동장, 두류수영장, 인라인스케이트장, 골프연습장, 두류유도관 등이 있다. 또한 옛 야구장 부지는 시민광장으로 리모델링되어 ‘2·28자유광장’으로 명명되었고, 부근에는 애국지사와 문학가를 기리는 인물 동산과 여러 조각물이 세워졌다. 기타 시설로는 분수대, 벽천폭포, 금용사, 대성사 등이 있다.
두류산 정상부에는 83타워와 이월드가 자리한다. 83타워는 전통 건축양식을 본뜬 팔각형 탑신 구조로 높이는 총 202m(탑신 153m+철탑 49m)이며, 지상 83층·지하 1층 규모다. 실제 운영되는 층수는 약 10여 개이며, 76·77·78·83층에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내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아이스링크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월드는 83타워를 중심으로 한 종합 테마공원으로, 1992년에 완공된 당시 대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원래 ‘우방랜드’로 운영되었으나, 이후 이랜드그룹이 인수하여 현재의 ‘이월드’로 바뀌었다.
3. 두류공원의 대대적인 공원화 사업
1970년대부터 대구시는 '근대화와 산업 발전의 선봉장'으로서 수도, 도로, 녹지 등 도시 인프라 구축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두류공원은 1970년에 조성 계획이 세워지고, 1977년 공원으로 지정된 후, 1980년대 초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취로사업을 통해 도로와 두류축구장 등 기반 시설을 마련하며 본격적인 공원의 기틀을 다졌다.
1982년 이상희 대구직할시장이 부임하면서 두류공원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분은 두류네거리에서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에 느티나무, 플라타너스, 벚꽃나무를 심어 시민들이 사랑하는 그늘진 산책로를 조성했다. 또한 금봉산 북쪽의 개인 소유 부지를 매입해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며, 시청 전 직원이 담당제를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며 설득에 나섰다. 시장은 하루에도 한 번 이상 현장을 방문해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독려하며, 시민과 함께하는 공원 조성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4. 성당못 조성
성당못은 고려 시대부터 대구 지역 농업용 저수지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 왔다. 『대구읍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옛 못자리는 조선 중엽 판서 채씨 집터였는데, 풍수지리에서 왕이 태어날 명당이라 하여 집을 짓지 못하고 저수지로 만들었다는 설화도 전한다. ‘성당’이라는 명칭은 원래 이 일대가 성댕이 또는 상댕이라 불리다가, 1910년대에 성덩동으로 불리면서 마을 이름을 따 성당못이 되었다.
1970년대 초 인근에는 대구 도축장이 들어서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도축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 부산물, 악취 등이 무단 방류되어 인근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도로와 소방 인프라 부족, 빈번한 침수로 주민들의 생활환경은 열악하였다. 이에 1982년 이상희 시장은 도축장을 중리동으로 이전시키고 본격적인 정비 작업에 착수하였다. 오폐수 차단과 수질 개선, 연결 도로 및 주차장 신설, 배수로 정비, 조경수 식재, 부용정(芙蓉亭)과 분수 조성, 가장자리 녹지 조성 등 포괄적인 공사가 이어졌다.
못 둘레 산책로는 765m, 성당못 전체 순수 면적은 약 42,000㎡(12,700평)로 조정되었다. 초기 호안공사로 못 70%는 매립되었지만, 남은 공간은 시민 친화적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주변에는 매화, 이팝나무, 층층나무, 배롱나무, 자귀나무 등 향토 수종이 많이 심어져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 못 안에는 세 개의 섬이 있다. 부용정이 위치한 거북섬, 안개분수로 포인트를 이루는 학섬, 그리고 야간 조명과 분수쇼로 유명한 분수섬이다. 성당못 서쪽의 반도섬(半島池)은 한반도를 형상화해, 가운데 작은 섬은 대구의 위치를 상징하고 있다.
부용정(芙蓉亭) 건축은 전통 한옥 양식의 목조 누각으로, 2층 구조에 기와 지붕을 이었으며, 호수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부용(芙蓉)의 이름은 못 주변에 피는 연꽃(목련꽃의 일종)을 상징한다.
부용정으로 이어지는 석조 다리 ‘삼선교(三仙橋)’는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靑雲橋)를 본떠 설계되었다. 불국사 청운교가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잇는 ‘무지개 다리’로 상징되는 반면, 삼선교는 ‘세 신선(三仙)’을 의미하며 신화적이고 자연스러운 여유를 담고 있다. 성당못 위를 지나 부용정(섬 위 정자)으로 연결되는 이 다리는 일상에서 휴식과 명상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이상희 시장의 비전처럼 시민과 함께하는 공공 공간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80년대 성당못 조성 과정에는 흥미로운 비화(祕話)도 전해진다. 시장(市長)은 일부 섬에 약초와 산삼을 심고 ‘착한 사람이 가면 보이지만 나쁜 사람은 벼락을 맞는다’는 전설을 퍼뜨리게 했다. 녹음기를 설치해 매일 새벽과 밤에 대금 소리가 울리게 하고, 음력 3월 보름에는 소복 차림의 여인이 나타나 춤을 추는 연출까지 계획하여 성당못을 신비로운 전설의 공간으로 만들려 했다. 그러나 그분이 경북도지사로 전보되면서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1984년에는 대구MBC가 방송 차량을 동원해 두류공원과 성당못 재정비 현장을 생중계했다. 당시 시청 김광수 녹지담당관, 김규택 문화공보담당관, 도재호 기획담당관이 시설과 조경 현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이상희 시장은 향후 전국체전 대비를 위한 축구장 전면 개보수, 인조잔디구장, 두류수영장 등 대규모 사업 계획을 직접 설명하였다. 당시 두류공원 일대는 전국체전 준비를 앞두고 대공사 분위기로 활기를 띠었다.




5. 대구문화예술회관 건립 비화(祕話)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첫걸음은 1982년 문화예술인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직할시 승격 이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던 시기에 예술인들이 시장실을 찾아와 전시실과 사무실, 사랑방 개념의 3층 건물을 지어 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상희 시장은 “사랑방 개념의 건물이 직할시 위상에 맞지 않고 장래성도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규모가 작아 도시에 짐만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얼마 후 시장은 망원경을 가지고 직원과 함께 앞산 정상에 올라 시내를 관망하다 두류공원 한 곳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수소문해 본 결과 그곳에는 당시 대구MBC 한준우 사장의 선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장은 직접 이장(移葬)을 부탁했으나 처음에는 조상에 대한 불경이라며 단호히 거절당했다. 이후 대구 발전을 위한 필요성을 거듭 설명한 결과, 보름 후 “조상께 용서를 빌겠다”며 승낙을 받아내어 비로소 문화예술회관 건립 장소가 가능하게 되었다.
부지가 확정되자 일부 예술인들은 뜻밖에도 반대 의사를 표했다. 공연장 규모에 대해서도 “큰 홀이 필요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상희 시장은 장기적 시각에서 5,000평이 넘는 공연장을 제안했다.
회관 건설은 1982년 3월 기본계획 수립으로 시작해 1983년 8월 착공했으며, 설계는 건축가 후당 김인호(1932~1988)가 맡았다. 김인호는 경북 김천 출신으로 대구체육관, 대구시민회관 등 대구의 대표 건축물뿐 아니라 잠실야구장, 대전 충무체육관 등 전국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을 설계한 인물이다.
착공 당시 김인호 건축가는 현장에 설치된 대형 상황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계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회관 전시동 중앙에 있는 정문은 일직선으로 하여 성당못과 앞산을 함께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공연장은 무용 ‘승무’의 고깔을 형상화했고, 전시동은 농악(農樂) 상모(象毛)의 선을 닮은 육각형으로 했다. 육각 형태는 합리성과 기능성을 상징하며, 대구시화(大邱市花)인 목련이 지닌 순결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의 건립이 진행되는 동안 이상희 시장은 경상북도지사로 전출되어 과정을 계속 지켜보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이후 10여 년간 재정적·기술적 난관과 지역사회 갈등을 극복한 끝에, 1990년 5월 문화예술회관이 대극장 1,090석과 소극장 320석, 현대식 전시실, 사무실, 휴게실 등을 갖춘 팔공홀의 완공과 함께 문을 열었다. 이어 1991년에는 미술관이, 1993년에는 예련관이 차례로 개관하며, 당시로서는 한강 이남 최고의 전문 문화예술회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1997년부터 인근에 지하철이 개통되고, 공원 내 무성한 수목과 호수, 다양한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품격 있는 문화의 전당으로 손색이 없게 되었고, 2018년에는 1년간의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최첨단 공연장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이제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발전해 온 문화예술회관은 예술과 문화 활동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시민들에게는 문화 향유와 휴식의 공간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1984년 6월, 대구 두류수영장 건립 당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수영장 선수 숙소 앞에 400년 수령의 배롱나무 한 그루가 새롭게 자리 잡았다. 이 나무는 원래 합천댐 수몰 지역에 있던 것으로, 현지 육로 이동이 불가능하여 미군 헬리콥터로 88올림픽도로까지 공중 운송되었다. 당시 이상희 대구직할시장은 경상남도지사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이식 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깊은 사연이 담긴 배롱나무는 비문에 기록되어, 오늘날 두류수영장과 두류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6. 대변혁으로 거듭난 오늘날의 두류공원
2000년대 초, 디지털 시대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대구시는 문화, 체육, 관광의 혁신으로 시민 삶에 생기 넘치는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변화의 심장부에서 두류공원은 도심 속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품격 있는 쉼터로 거듭나며 대구의 대표 명소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역대 시장들의 헌신으로 일궈낸 이곳의 발전 여정을 간략히 되짚어본다.
1993년, 이의익 시장은 대구문화예술회관 1차 완공, 두류야구장 확장, 테니스장 신설로 두류공원을 스포츠와 문화의 중심지로 이끌었다. 1994년 전국체전의 성공적 개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행사는 대구를 전국적인 스포츠 도시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의익 시장의 리더십 아래 두류공원 일대 시설 정비와 행사 운영이 중점적으로 추진 되었다.
1995년 문희갑 광역시장은 6년간 애국지사와 문학가를 기리는 인물동산과 조각상을 세워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담은 공간으로 조성했다. 2000년 9월, 2만 7천 명을 품을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코오롱야외음악당이 문을 열며 공공-민간 협력의 모범 사례로 찬사를 받았다. 이곳은 주말이면 시민들의 웃음과 휴식이 어우러지는 명실상부한 여가의 성지가 되었다.

대구수목원의 완공은 시민들에게 자연 속 힐링과 배움의 기회를 선사했고, 1999년 도심 한복판에 들어선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헬리콥터로 이식한 소나무들과 함께 선조들의 자주정신을 생생히 되살렸다. 이 공원은 2017년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쾌거를 이루며 그 역사적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 2003년에는 값진 도심지에 2·28기념중앙공원을 세워 젊은이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후세에 전하며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념했다.
조해녕 시장(2002~2006년)은 ‘푸른 대구 만들기 시민운동본부’를 설립, 시민과 기업, 행정이 하나 되어 녹지와 생태하천 복원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도시환경 개선과 시민참여형 녹색정책에 초점을 둔 점이 특징이었다. 이 시기 2·28기념광장(2024. 7.3, ‘2·28자유광장’으로 표지물 제막식 개최와 공식 명칭 사용)이 조성되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김범일 시장(2006~2014년)은 공원 확장, 생태 복원, 문화 융합의 세 축을 중심으로 녹색사업을 펼쳐 대구의 녹지율을 20% 이상 끌어올렸고, 두류공원을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그린 컬처 존’으로 탈바꿈시켰다. 2006년 잔디광장에서 처음 시작한 ‘대구치맥페스티벌’ 행사에 전국에서 10만여 명이 참가하여 ‘지역 특산 홍보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권영진 시장(2014~2022년)은 녹지, 문화, 체육, 관광을 아우르는 사업으로 두류공원의 위상을 전국적인 문화 중심지로 격상시켰다. 2019년에는 성당못 인근에 24,779㎡ 규모의 대구대표도시숲이 조성되기 시작해 2024년 8월, 산림청의 ‘아름다운 도시숲 50선’에 두류공원과 달성공원 도시숲이 선정되어 그 뛰어난 자연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전국에 각인시켰다.
2019년, 두류공원 내 대구광역시립두류도서관은 건물과 주변 경관까지 전면 리모델링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 이상희 전 시장이 평생 소중히 간직해 온 7만 2천여 권의 장서를 기증받아 조성된 ‘범사이상희문고’는 권영진 시장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완공되어, 학생과 지식인은 물론 공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에게까지 열린 지식의 보고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어 홍준표 시장(2022년 7월~2025년 4월) 재임 시에도 두류공원 일대에서는 광복절 경축음악회, 시민행복콘서트, 치맥페스티벌 등 대규모 음악회와 경연대회, 축제 행사가 열려 시민들에게 친근한 명소로 계속 이어졌다. 행사 기간에는 국내외 방문객들로 성황을 이루었고, 다양한 공연과 프로그램은 시민과 관람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이제 오늘날 두류공원은 과거와 현재, 자연과 문화를 잇는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서 시민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며, 대구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의 상징으로 빛나고 있다.
7. 성당못 두리길의 안내 체계 개선 제안 성당못 두리길 안내문 개체
두류공원은 대구광역시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으로, 매일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그중에서도 성당못은 사진 촬영과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히지만, 현재 서남쪽 도로변 산책로 입구에 설치된 안내문은 성당못의 유래와 간략한 도면만을 담고 있어 한계가 있다. 이 안내문으로서는 성당못의 조성 배경, 정자와 돌다리의 이름, 그리고 이곳이 품고 있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또한 지역 주민들의 추억과 정체성이 깃든 공간으로, 모든 방문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성당못 넘어 두류공원 전체를 보면, 금봉산여울길, 인물동산, 코오롱야외음악당 등은 뛰어난 경관적·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회관이나 체육시설을 찾는 외부 방문객들은 이러한 명소들의 존재나 상호 연결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금봉산 숲길과 등산로에는 산길 안내문과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어 등산객들에게는 건강 증진과 정신적 힐링을 선사하고 있지만 성당못 주변에도 공원 전체를 아우르는 상세한 종합안내문을 설치하여 모든 방문객들에게 공원의 역사, 생태, 그리고 문화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안내문은 성당못 주변의 주요 지점 최소 3~4곳에 설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각 안내문은 공원의 전반적인 구성, 주요 명소의 위치, 그리고 각 장소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담아야 한다. 또한, 다국어(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안내를 포함하여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고, QR 코드를 활용해 디지털 지도나 추가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수목 표찰 설치로 생태 학습 기회 제공
성당못 주변의 토종 나무와 꽃에 이름표를 설치하고, 각 수종의 생태적 특징, 계절별 변화 등을 간략히 설명하는 표찰을 추가한다면, 어린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는 이러한 표찰이 환경 교육의 장으로 작용할 것이며, 관광객들에게는 생태적 가치를 알리는 매개체가 되어 공원을 재방문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두류공원은 향후 생태, 문화, 교육이 조화를 이루는 ‘국가도시정원’으로 거듭나,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감동을 선사하며 대구의 대표 랜드마크로 자리 잡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8. 맺는말
1982년 이상희 시장이 부임해 약 3년간 재직하는 동안 두류공원은 큰 변화가 있었다. 예술•문화의 본거지 이외에도 성당못 정비, 두류종합수영장과 축구장 전면 재보수, 대규모 공원화 사업은 당시 ‘천지개벽’이라 불릴 만큼 획기적이었다. 그리하여 40여 년이 흐른 지금, 공원 곳곳의 수목은 울창하게 자라 하늘을 덮고, 계절마다 꽃이 차례로 피어 시민들에게 쉼과 감동을 주고 있다.
이상희 전 시장은 한 방송 대담에서 “버리고 버려도 꿈 하나 남는다면,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원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두류공원은 바로 그 숭고한 꿈이 이루어진 현장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문희갑 시장을 비롯한 역대 시장들과 대구시 공무원, 관계자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나무를 심고 푸른 도시를 가꾸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들어서면, 그분들의 이름이 새겨진 거목들이 대구의 발자취를 되새기게 되고 대구가 간직한 숭고한 유산과 미래로 이어질 생명의 상징으로, 시민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전한다.
2025년 9월 19일, 대구시행정동우회 김대묵 회장은 동우회원들을 버스로 인솔하여 달성군에서 평생 고향을 지키고 있는 문희갑 전(前) 시장의 전통 마을을 찾았다. 문희갑 시장께서는 옛 동료들을 반기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다.
“대구가 푸른 도시로 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동우회원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야로 가꾸었고 전 시민들이 보호하고 사랑한 덕분입니다”
맞는 말씀이다. 우리 모두가 무더운 분지 대도시를 푸르게 만들기 위에 밤낮 뛰었기 때문이며, 역대 모든 시장, 구청장도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며칠 전, 성당못 두리길과 금봉산 정상, 두류여울길, 문화예술회관, 야외공연장을 다녀왔다. 초저녁 시원한 바람 속에서 많은 시민들이 가족•친구들과 함께 웃고, 걷고, 달리며, 잔디밭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에게 나는 ‘행복’이라는 말을 전하고, 또 한마디 덧붙였다.
“이 나무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두류공원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오늘 이 시간, 필자는 많은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고, 여러분과의 소중한 인연을 늘 간직하며, 부족한 글을 삼가 마무리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대구문화 - 높은 곳에서 조망하라(2010년 3월호. Vol 292)
∙푸른 대구 이야기(2006.2.6, 지은이 이정웅 도서출판 그루)
∙대구문화예술회관 건립 비화(2014.8.25, 매일신문 최미화 논설실장)
∙대구를 구상하다(2012.6.22, TBC), 금요스페셜(1985년, MBC)
∙대구행정동우 통권 제15호(2020년 11월) 외 자료 다수
∙ChatGPT, Grok, 인터넷 등
<참고>
위 글은 25년도에 발간한 대구행정동우회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이유는 언젠가 그 책자가 멸실되었을 감안하여 옮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