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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나중을 지배하는 손
신명기11:12
(신 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시간 박물관』이란 책의 저자대표인 움베르토 에코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시간의 발견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가장 독특한 문화적 특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학자의 말대로 인간만이 시간의 흐름을 감지했고, 그 흐름을 잴 수 있는 도구를 발명해 냈습니다. 바로 시계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을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달력입니다. 그러면서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바로 생일, 무슨 띠, 몇 세기 같은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개나 돼지와 같은 동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어제, 오늘, 내일과 같은 시간의 매듭을 지을 줄 모릅니다. 물론 그 시간의 매듭들이 주는 의미도 찾을 줄 모릅니다. 그래서 동물의 세계에는 역사가 없습니다. 수천 년이 흘러도 역사가 남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문화를 발전시켜가지 못합니다. 천 년 전에 사는 모습이나 오늘 모습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천년 후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시간의 매듭을 만들고, 그 매듭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삽니다. 그 의미들이 쌓여서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흘러가면서 삶의 모습 곧 문화가 발전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간의 매듭을 잘 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발전에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시간의 매듭을 잘 짓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은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매듭을 잘 지으면 그 사람의 삶은 나날이 발전이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으셨나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실 때 모든 것에 의미와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어느 것 하나 의미와 목적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 중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시고 우리 각 사람에게 우리가 지향(指向)하여야 되는 목표를 주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참된 가치는 그 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고 높이는 것이라도 그 안에 예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올 한해를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힘쓰며 사셨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게 사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애를 썼다면 죄송한 표현입니다만 헛된 시간을 보낸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2017년은 우리가 되돌리려고 애를 써도 돌릴 수 없이 2018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의 결산을 잘 하고 이제 새해는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믿음이란 구원을 얻는 필수요소입니다만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도 믿음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고 또 믿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 주변에 의처증, 또는 의부증으로 믿어야할 대상이며 사랑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의심이 생겨 “저 인간이 오늘 밤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또 바람을 피우느라 그럴 거야”하며 온 밤을 새우며 미워하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불행을 가져다 줍니다.
오늘 말씀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에게나 기업을 주셨습니다. (시 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라고 말씀드리면 이 중에는 내게 주신 곳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고 여길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다라는 말입니다. 내게 주신 환경을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해 보십시오! 내가 서 있는 곳에 내 일터에, 내 가정에 하나님이 돌보아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초라해 보이고 약해 보이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저는 지난 1년간을 결산하라고 하면 행복했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금요일 저녁 제 아내에게 “당신은 올 한 해를 어떻게 결산했어요?”라고 하였더니 지체 없이 대답하길 “행복했지요!”그러는 겁니다. 왜 행복했을까요? 우리 가운데 활동하시고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늘 경험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1년간 거의 성전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삶이 제게는 얼마나 행복하였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게 주어진 환경을 행복하고 감사함으로 씨를 뿌리면 내년에 이것이 자라서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둘째는 겉사람이 벗어지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잠시도 우리에게 그 눈길을 돌리는 법이 없으십니다.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나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냥 관심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뤄지도록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것입니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가공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긁힘에 견디는 강도인 경도가 어떤 광물보다 높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다이아몬드는 오직 다이아몬드로만 가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윤곽을 잡은 다이아몬드 원석 표면에 많은 가공면을 내는 작업입니다. 요즘은 다이아몬드 하나에 57개의 가공면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 작업은 숙련된 기술자가 원형으로 만들어진 연마반(硏磨盤)에 맞물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갈고 또 갈며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내 속사람을 하늘의 아름다운 생명체로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쉬지 않고 내 겉사람을 닦아나가십니다. 주위 사람과 환경을 통하여 그렇게 다스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특징은 고후 5:17에서 언급한대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에서 표현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움을 향하여 변화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옛것과 새로운 피조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겉사람이 옛것이라면 속사람이 새로운 것입니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아직도 겉사람에 사로잡혀 세상에 보기 좋은 것에 매달려 그것을 이뤄보려고 동분서주(東奔西走)하였다면 이를 버려야 내 안에 담겨 있는 속사람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뜻대로, 내 판단대로, 내 감정대로 마무리하게 되면 그 마무리가 아름답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욕망, 그동안 쌓였던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 마무리가 추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관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갈 3:3을 보면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여 이제 육체로 마치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의 인도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을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욕망을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때 그 매듭은 추해집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 사는 근본적인 목적은 하늘에 생명체로 잘 다듬어져 빛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영혼이 육신의 겉 사람에서 벗어나는 것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조만간 그런 날이 다가 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마라나타(Maran ata)!’는 ‘우리 주여 오소서(Our Lord come 혹은 Our Lord has come)’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날마다 나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갰습니다.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이 잘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여러분들의 소망이 이뤄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바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성취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주관하여 주십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셨고 (시 107: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주시려고 하는데 이에 따른 믿음과 기도가 없으면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고전 2:9~10)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성령이 내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야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에게 사로잡히지 않는 정욕적인 기도는 헛된 것 뿐입니다.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해 보십시오! 성령은 그럴 때 내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또한 성령은 더러운 영혼에게는 활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나를 돌아보아 성령을 근심하게 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주께로 심령이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될 것입니다.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먼저 맞춰 보십시오! 이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분의 선하신 뜻에 나를 복종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고 구하는 것에 후히 되어 누르고 넘치도록 안겨 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이고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한 가능성으로 나의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올해는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결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를 찾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헌신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시고 더욱 힘써 예배에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욱 말씀에 마음을 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기도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응답됩니다.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지난날 내 기도를 헤아려 보십시오! 언제나 좋은 것으로 응답하셨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늘에 적금을 쌓아 놓는 것 같이 때가 되면 풍성한 은혜로 내게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올해 우리들교회 표어를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라고 정하였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는 환경에서 마르다에게 주님께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씀을 근거로 우리들교회가 아주 연약하여 도무지 일어날 기력도 없는 이때에 주님은 제게 말씀하시길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시는 주님을 절대 신뢰하고 믿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합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우리에게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살피시는 주님의 은혜가 새해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