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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2021년 3월 7일, 사순절 제3주]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1년 3월 7일, 사순절 제3주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사순절 제3주,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시간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 교독 시편 19:1~14절까지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함께 기도합니다. [안젤라 애쉬윈, Angela Ashwin]
(실시간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을 위한 기도문입니다)
주여, 이 자비의 날에
우리를 평온케 하시고 기도하게 하소서.
이 도전의 날에
우리를 주님 안에서 더 강건해지게 하소서.
이 공허한 날에 우리를 소유하소서.
이 기다림의 날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님의 십자가의 비밀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18~25절입니다. (성경)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특별 찬양 - 149장(주 달려 죽은 십자가)]
*. 말씀 선포: 십자가의 도(道)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사순절 제3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십자가의 도(道), The message about the cross,’ 십자가가 주는 메시지입니다. 십자가의 도(道, message)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오늘 본문에서, ‘지혜,’ ‘능력(표적),’ 그리고 ‘십자가’라는 세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별히 ‘십자가’라는 단어에 시선을 더 두어야 합니다. 지혜와 능력(표적)은 알 수 있지만, 십자가는 앎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능력(표적)과 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희생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복음(福音)의 새 세상(부활)이 열렸다는 것”이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지혜’와 ‘능력(표적)’은 지평 상 ‘십자가’와 결을 달리합니다. 지혜와 능력은 성부와 성자의 지평이고 (그래서 앎의 대상입니다), 십자가는 성령의 지평이 됩니다 (그래서 앎의 대상이 아닙니다). 결이 다르다 함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2. 시간
시간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있지만, 과거는 현재 속에 기억되고, 미래는 현재 속에 소망하는 ‘개념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간은 실상 늘 ‘현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설명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 사이’라는 개념적인 표현으로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찰나,’ ‘순간,’ 등의 단어가 있지만 입에 옮기는 순간 미래에서 과거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개념’에 사는 사람은 ‘과거와 미래’에 살고, ‘실재’에 사는 사람, 곧 개념을 넘어 사는 사람은 ‘현재’에 사는 법입니다.
실재 곧 현재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현재를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현재’라는 실재가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실재 곧 현재에 대한 이야기는 개념을 초월하든지, 혹은 비 개념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진리(眞理)는 실재(實在) 곧 현재(現在)의 영역에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앎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실재를 떠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팔복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처음 첫번째) 복을 실재 곧 현재로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머지 칠복을 알기 쉬운 개념으로, 곧 과거와 미래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살펴봅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설교였던 팔복(ref. 마태복음 5:1-9) 중에서 유일하게 첫번째 복만이 ‘현재형’으로 쓰여있습니다. 마태복음 5: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God blesses those people who depend only on him. They belong to the kingdom of heaven!)” 그 뒤로 모든 복은 조건부 미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4~9절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God blesses those people who grieve. They will find comfort!)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God blesses those people who are humble. The earth will belong to them!)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God blesses those people who want to obey him more than to eat or drink. They will be given what they want!)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God blesses those people who are merciful. They will be treated with mercy!)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God blesses those people whose hearts are pure. They will see him!)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God blesses those people who make peace. They will be called his children!)
왜 이렇게 시제가 틀릴까요? 예수님께서 ‘현재’ 곧 ‘실재’를 말씀하셨으나 이해하지 못하니, ‘미래’ 곧 ‘개념’으로 바꿔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비로소 듣는 이들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잘 알았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은 ‘실재’가 아니라 ‘개념’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뭐지?’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실재’에 가까운 말씀일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7:20-21절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는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시나요? 혹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11) /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4:21) /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누가복음 19:42) 등등의 말씀에서도 ‘실재’에 관한 성찰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 본문에서도, 말씀의 핵심이 되는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보다, 지혜와 능력(표적)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핵심은 십자가에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3. 지혜, 능력(표적) 그리고 십자가
오늘 본문 24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본문의 이해를 위해 이야기 한 토막 먼저 나눕니다. 아마 한 번쯤은 다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공주의 남편이 될까?
매우 아름다운 외동딸을 가진 왕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공주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의원을 부르고 온갖 수를 다 써 보았으나 공주의 병은 낫지 않았다. 왕은 최후 수단으로 공주의 병을 고치는 사람에게는 나라의 왕위를 물려준다는 방을 써 붙었다.
한편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삼형제는 아주 신기한 보물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요술 망원경을, 둘째는 요술 양탄자를, 그리고 셋째는 요술 사과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요술 망원경으로 이곳저곳 살피던 첫째가 공주님이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둘째가 형제들을 요술양탄자에 태우고 눈 깜짝할 사이에 궁궐에 도착했다. 셋째가 요술 사과를 공주에게 먹였다. 그러자 즉시 공주의 병이 씻은 듯 나았다.
임금님은 기뻤다. 그러나 삼형제 중 누구를 사윗감으로 택할지 고민에 빠졌다. 첫째는 요술 망원경이 없었더라면 공주가 병에 결렸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거라고 말했다. 둘째는 병에 걸린 걸 알았더라도 요술 양탄자가 없었더라면 이 멀리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셋째는 망원경이나 양탄자가 있어도 사과가 없었다면 어찌 공주님의 병을 고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왕은 고민 끝에 막내를 사위로 결정했다. 그 이유를 왕은 이렇게 말했다.
‘첫째, 둘째는 공주의 병을 고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보물을 가지고 있지만 셋째는 더 이상 자신의 보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공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바친 막내를 사위로 선택한다.’]
위의 이야기에서, 망원경과 양탄자는 같은 지평입니다 만은, 사과는 그 결을 달리 합니다. 없어지니 말입니다. 없어진다는 것, 자기 희생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라고 하는 것’(24)은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닙니다. 이해가 잘되죠? 이해가 잘 되는 것은 ‘실재’에 있어서는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입니다. 22-23절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아니,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하필 사형수의 사형 도구인 십자가에 못박히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겠습니까?
사형수의 사형 도구인 ‘십자가’에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매달리셨고, 그래서 부할, 곧 복음(福音)의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이 새 세상을 바울은 전파하였고, 이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전파에 의해서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구원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혜로(개념으로) 알 수 없는 것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4. 지혜, 능력(표적), 그리고 십자가-지평의 관점에서
사람은 세가지 지평을 갖고 있습니다. ‘지혜’와 ‘능력(표적)’ 그리고 ‘십자가’입니다. 위의 이야기를 빌리면 ‘망원경,’ ‘양탄자,’ 그리고 ‘사과’의 지평입니다. 사람으로 하면 ‘머리,’ ‘팔.다리,’ 그리고 ‘가슴’ 부분이 됩니다. 여러분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생각되는 것을 세 지평 속에서 말씀드립니다.
첫째, 지혜, 곧 망원경의 지평입니다. ‘머리’부분에 해당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온통 ‘프랙탈(fractal)’임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경 말씀으로는 요한복음 17:22절입니다. “…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프랙탈은 수학, 기하학 연구 분야 중 하나로서, 자기유사성을 갖는 기하학적 구조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어떤 도형의 작은 일부를 확대해 봤을 때 그 도형의 전체 모습이 똑같이 반복되는 도형에 관한 연구이다.”(위키백과에서)
[*. “프랙탈 이론은 1975년 망델브로 집합을 연구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로 많은 사례들이 발견되었다. 그 후 자연계가 통계적인 프랙탈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카오스 이론과 접목시켜서 자연을 모델링 하는 데에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된다. 특히 망델브로 집합의 경계면에서는 극도로 미세하게 값이 달라져도 발산하거나 수렴하게 되는데 초기 조건에 극히 민감한 결과를 갖는 시스템이라는 성격에 잘 부합된다.
고사리의 잎 윤곽이나 나무가 가지를 뻗는 양상, 리아스식 해안선의 모양 등 많은 것들이 자기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 이러한 프랙탈의 자기복제적인 특징들은 아주 간단한 법칙도 되먹임하면 복잡한 양상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 혼돈 이론을 묘사하는 도구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진화론상의 빈틈을 메꿔줄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즉, 생물이 나타내는 복잡한 구조가 반드시 기적적인 우연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위키-추가 설명)]
프랙탈(fractal)의 자기 유사성에 눈을 뜨게 되면, 모든 ‘비교’가 무의미하게 됩니다. 작고 큼의 경계가 사라져, 내가 가장 크기도 하고, 가장 작기도 합니다(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이다). 공간의 경계가 사라지니 여기이기도 하고 저기이기도 합니다(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해도 믿지 말라). 내가 너이기도 하고, 너가 나이기도 하고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시간의 구분이 사라지니 처음과 끝의 구분이 사라집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비교가 없다면 이해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지평으로 이해의 눈을 뜨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삼위(三位)이고, 그 지평에서 하나님 곧, 일체(一體)를 찾아보라는 의미입니다.
[*. 노자는 이렇게 통찰했습니다. 도덕경 42장에서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가 하나를 낳으며,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는다 그리고 셋에서 모든 만물이 나온다) 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삼생만물(三生萬物)이니, 모든 것이 삼위(의 일체)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모든 숫자는 1, 2, 그리고 3으로 되어 있어 이 셋을 조합한 것에 불과합니다. (4=1+3, 5=2+3, 6=2*3, 7=2*3+1, 8=2*3+2, 9=2*3+3)]
둘째, 능력(표적), 곧 양탄자의 지평입니다. ‘팔, 다리’부분에 해당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의 섭리(攝理)에 대하여 남겨주신 말씀입니다. 창세기 25:23입니다.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일러주는 하나님 섭리의 근본입니다. 큰 자는 내려와서 어린 자를 섬겨 큰 자가 되게 하고, 어린 자는 올라 섬김을 받아 큰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원리이니, 우리 몸의 건강도 지킬 수 있습니다. 복음(福音)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내려 오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 수승화강(水昇火降): “찬 기운은 올리고 따뜻한 기운은 내려라’를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 한다. 자연상태에서는 불의 성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쪽으로 흘러내린다. 이와 반대로 ‘머리는 시원하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건강법처럼 물과 같이 찬 기운은 올리고 불의 뜨거운 기운은 내리라는 것이 ‘수승화강’이다. 우리 몸 상체에 적용하면 ‘가슴은 서늘하게 아랫배는 따뜻하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몸은 가만히 두면 자연적으로 위쪽에는 열이 모이고 아래쪽에는 찬 기운이 뭉쳐져 병이 생기게 되므로, 뜨겁기 쉬운 위쪽에는 찬 기운을 보내야 하고 차기 쉬운 아래쪽에는 뜨거운 기운을 보내면 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여름에 따뜻한 보양식으로 배에 뜨거운 기운을 불어넣고 얼굴은 땀으로 식히는 음식문화가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대부분 머리가 아픈 것은 찬 것으로 인한 것이 없고, 배가 아픈 것은 열로 인한 것이 없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머리(가슴)는 차게 하고 발(아랫배)은 따뜻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수승화강’을 관통하는 원리는 ‘조화’이다. 찬 기운인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뜨거운 기운인 불이 위로 타오르면 두 기운이 서로 떨어져 화합을 하지 못하고 각각 분리 되어 대치하는 '부조화' 상태가 된다. 그러나 물이 위에 있어 끊임없이 아래로 향하고, 아래의 불 기운은 계속 위로 향하면 서로 섞이고 조화를 이루면서 만물이 유지되고 생명이 탄생되는 즉 음양이 조화된 상태가 되는 것이다.”(인터넷에서)]
야곱은 꿈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창세기 28:12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천사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해야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린 것입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듯이 우리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치료하고 치료받고, 보호하고 보호받고, 주고 받고, 웃고 울고, 만나고 이별하고, 올라가면 내려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때를 잘 찾아야합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수(水)일 때는 아래에서 오르고(승, 昇), 화(火)일 때는 위에서 내리고(강, 降) 한다면 건강한 삶을 이루어갈 것입니다.
수(水)나 화(火)는 지평으로 읽어야 합니다. 곧, 수(水)는 내려와 올라가는 자리입니다. 섬기는 자리입니다. 마태복음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화(火)는 올라가 내려오는 자리입니다. 섬김 받는 자리입니다. 마가복음 12:42-43,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습은 ‘프랙탈(fractal)’이고, 성경말씀을 빌리면, 요한복음 17:22절 말씀 “…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섭리하시는 방법은 ‘수승화강(水昇火降)’입니다. 성경말씀을 빌리면, 창세기 25:23입니다.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습을 깨닫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섭리도 성찰하며 살면 (세상 사람의 관점에서는)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바로, ‘십자가,’ 사과의 지평입니다.
셋째, 십자가, 곧 사과의 지평의 지평입니다. ‘가슴’부분에 해당되겠지요. 사과의 지평은 ‘자기-희생’을 요구합니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삶의 클라이맥스이지만, 이 부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ref. 마가복음 5:18, 귀신 들렸던 사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마태복음 16:24절 입니다.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망원경과 양탄자는 그 역할을 하면 족할 뿐입니다. 그러나 사과는 자신의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망원경과 양탄자는 ‘개념’입니다. ‘사과’만이 실재가 됩니다. 망원경과 양탄자는 남지만 사과는 없어집니다. 요한복음 12: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십자가, 사과의 지평, 그 이해를 위해 두 이야기를 나눕니다.
[*1. 거위를 살리는 방법
조선 세종왕조 시대 병조판서와 대제학까지 역임한 윤회(尹淮). 그가 젊은 시절의 일이다. 윤회는 시골길을 걷다가 날이 어두워져 여관에 묵게 되었다. 행색이 지저분한 그에게 주인은 투숙을 허락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그는 처마 밑에 앉아 있었다.
마당을 보니 주인집 아이가 구슬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실수로 구슬을 떨어뜨렸고, 구슬은 데구르르 굴러서 장독대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구슬이 안 나오네..." 아이는 곧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거위 한 마리가 구슬을 찾아내더니 꿀꺽 삼키는 게 아닌가.
얼마 후 여관집 안방은 난리가 났다. 귀중한 흑진주를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곧 여관 주인은 윤회를 의심했다. 그가 훔친 것이 틀림없다면서 다음날 관가에 고발하겠다고 윤회를 기둥에 꽁꽁 묶어 놓았다.
윤회는 침착한 말투로 자기 곁에 거위도 함께 묶어놓아 달라고 청했다. 다음 날, 윤회를 주인이 관가로 끌고 가려고 하자 그는 우선 거위 똥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주인이 그 말대로 하자 그 속에 흑진주가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 거위가 진주를 먹었다면 그렇다고 어젯밤에 얘기를 하지.." 주인은 무안하고 미안하여 오히려 타박을 했다.
그러자 윤회는 말했다. "만약 제가 어젯밤에 거위가 진주를 먹었다고 말했다면, 당신들은 분명 거위를 죽였을 겁니다. 하룻밤만 고생하면 거위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입이 간지러운 것을 참았지요."]
[*2. 고다이버 이야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영주 리어프릭의 어린 아내였던 고다이버는 농노들에게 너무 가혹한 세금을 물리는 남편에게 세금을 좀 낮추라고 간청했답니다. 그러나 냉혹한 영주는 그런 아내를 비웃으며 "만약 당신이 내일 아침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내 영지를 한바퀴 돈다면 세금을 내려주지." 라고 차갑게 대꾸했답니다. 고다이버는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머리칼로 알몸을 가린 채 말 위에 올라타고 영지를 돌았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주민들은 그녀의 고귀한 희생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일체 밖에 나가지 않고 창에 커튼을 친 채 그 누구도 영주의 부인을 내다보지 않기로 약속했답니다. 그 때 고다이버의 나이는 16세도 채 안 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두 이야기에서 윤회나 고다이버는 ‘자기-희생’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귀중한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표적)이신] 예수님께서는 ‘자기-희생’으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앎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It just happens!)입니다.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Consequently,) 부활입니다. 새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복음(福音)입니다.
5. 나가는 말
십자가의 도(道)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표적)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며, 이를 믿는 이들에게 ‘복음(福音)의 새 세상’이 임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와 능력(표적), 그리고 십자가의 지평을, 성경말씀을 통해 말씀드리면,
요한복음 17:22절 말씀입니다. “…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망원경, 프랙탈(fractal)도 함께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25:23절 말씀입니다.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나님의 섭리(攝理), 양탄자, 수승화강(水昇火降)도 함께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6:24절 말씀입니다.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 사과, 자기-희생도 함께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道)가 이 세 지평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24)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십자가에 달려 ‘자기-희생’을 이루었고, 복음(福音)의 새 세상, 하나님의 나라가 열렸습니다. [마침내, 망원경과 양탄자 그리고 사과로 인해, 병든 공주를 살렸습니다. 공주(혹은 왕자)와 결혼하시고 행복하시기를~ *^^*]
열린 복음(福音)의 새 세상, 하나님의 나라 온전히 누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찬송가 544장 (울어도 못하네)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찬송가 50장 3절 부르며 헌금합니다. (찬송가) /*. 헌금 기도합니다. (#.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 헌금 기도합니다.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가 269장 (그 참혹한 십자가에)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