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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1, 2, 두 코스 남겨두고
아쉬움으로 마무리했던 제주 올레,
예상치 못했던 일로 숙소가 생겨 다시 찾았다.
그리고 나선 길 1코스,
시흥초등학교, 제주 올레 시발점이다.
정문 앞 작은 안내판에는
좌측으로 150미터 가면 1코스 시작점이 있다고
방향을 알려준다.
왼쪽으로 조금 더 가는 길,
교사지나 오른쪽 높은 곳에
말미오름, 두산봉이 자리잡고있다.
제주 올레, 편한대로 코스를 잡다보니
오히려 그 시작점에 마지막으로 서게된다.
백 여 년 전, 정의군에 속하던 곳으로
목사가 부임하면 맨 처음
이 곳에서 순시를 시작하여
종달리에서 마쳤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시흥리(始興里)'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힘센 장정들이 많아 '심돌(力乭)마을'이라 불렀다 한다.
2월을 지나는 계절,
온통 푸른물결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당근, 월동무우가 밭에서 수확을 기다리며
육지와 다른 제주의 기온을 대변한다.
말미오름 가파른 사면,
지층이 맨살처럼 드러났다.
인간은 도무지 살아낼수 없는 시간이
간간히 드러났다.
마그마가 물을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화산재를 분출하는데
그 화산재가 켜켜이 쌓여 이룬 층이다.
2월도 중순에 다다른 대지에 푸른 잎을 보는,
뭍에 살던 사람의 눈길이 의아하다
밭을 지난 바다 너머로
나즈막히 누운 섬이 우도다.
오름에 오르기 전,
제주 올레 안내소가 올레꾼을 마주보며 서있다.
아직 9시에 못미쳤는데도
벌써 사람이 나와서 자리잡고 있다.
오른쪽 방향으로
오름이 시작된다.
순방향으로 시작하는,
거꾸로 돌며 마무리하는
각오와 감회가 천정에 나부낀다.
올레길에서 만나게되는 구조물이다.
안쪽으로 말목장이 있다는 표시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근린체육시설이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수선화가 꽃망울을 맺고있다.
길을 보면,
이렇게 구불구불한 흙길을 보면
끝없이 걷고 싶어진다.
봉우리 바로 아래
이번엔 철로 설치된 구조물을 지난다.
몸집이 큰 산이라는 뜻의 말미의 한자표기 두산,
또는 말을 놓아 먹이던 곳 이라는 뜻의 몰미오름의 한자 표기 마산,
머리를 뜻하는 멀미오름의 한자표기인 두산으로 표기된다.
정상에서는 동부바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펼쳐지는 제주도 푸른 밭과
주변 오름의 사철나무들이 만든 짙푸름이
이 계절 뭍에서 만나는 스산함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온 몸에 닿는 바람이 매섭지 않다면
계절을 망각해도 좋을듯 하다.
능선을 따라내 려가는 길이
소나무 사이로 이어진다.
해발 126.5미터,
정상부 전망대가 앞에 보인다.
양끝으로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경지정리가 되지않은 다각형 밭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밑에서 올려다 보이던
화산재지층 위 능선에 목책이 설치되어있다.
능선을 내려선 솔밭,
말라버린 솔잎이 떨어져 내린 갈색 위로
솔방울이 뒹굴고 있다.
사람이 밟은 탓일까,
길이 만들어진 비탈 사이가 패였다.
말미오름을 내려선다.
널판지를 이어놓은 다리 왼쪽에
제주에서 보기드문 연못이 보인다.
사자의 안식처 아래를 지나는 이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저 스쳐지나는 풍경일뿐.
억새가 하얗게 꽃술을 피워올렸지만
봄, 여름, 가을의 알록달록한 채색을 대신하기엔 버겁다.
초가를 이는 이엉을 만드는 띠가
오름에 가득하다.
요즘 시절이야 거의 필요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생활에 꼭 필요한 재료였을터다.
어떤 쓰임으로 이용되었는지
대궁이 모두 잘려나갔다.
세 계절을 푸른빛으로 물들였던 초지가
매서운 바람에 갈빛으로 변했다.
취사 및 흡연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보인다.
거기에 덧붙여
띠(새)를 채취해서는 안된다는 문구가 보인다.
주변풍경을 파노라마로 담았다.
계절을 아우르는,
마음으로 스며드는 풍경이다.
적당한 비탈이 있어
박스나 비닐을 바닥에 깔고 발을 굴러 두 다리를 들면
저절로 미끄러져 내려갈 듯하다.
새 알을 닮았다 하여 알오름이라고도 부르는
해발 143.5미터 말산메 정상이다.
바다를 향해 나란히 선 말미오름과 비슷한 조망으로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제주 올레 리본이 꽂혀있다
정상에 설치된 석물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알오름을 내려서는 길,
바다쪽으로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올레 마지막 21코스,
막바지에 오르게 되는 지미봉이다
기이한 운명,
제주 올레의 마지막 봉우리와
첫 봉우리가 지척이다.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다는,
그래서 끝에 다다르면 시작에 이른다.
역시 소유할 수 없는 풍경,
내 마음에 담아둔다.
오름을 내려선 올레는
숲을 지나
들로, 밭으로 이어진다.
동부지역에 많은 이들이 찾는 오름이 많다.
중앙에 보이는 오름이
다랑쉬와 아끈다랑쉬 오름이다.
정방향으로 걸었으니
5킬로미터를 걸어온 셈이다.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져
밭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지미봉이 보이고
바다너머 우도는 내려선만큼 숨으려한다.
용눈이오름로에 닿으며
찻길을 따라 종달리 마을로 들어선다.
일주동로와 만나는 종달1 교차로다.
신호등, 가로등, 전봇대,
기둥을 잇는 전선들이 어지럽다.
그 어느 기둥 옆 동백나무가
보기 드물게 무성하게 꽃을 달고 서있다.
종달로로 접어든다.
지난 5월 20, 21코스를 돌 때
종달초등학교에서 버스를 내려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돌담은 세월이 가도 그 자리에 있을것 같다.
돌담을 허문다면
그 많은 돌들을 치울수 없을테니.
백년초가 빨간 열매를 꽃처럼 매달고 있다.
세련되지 않은 건물들이
지나는 나그네를 잠시 홀린다.
그 땐 그랬지.
잠시 그 시절로 잠겨든다.
카페 간판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1코스 3분의 1지점이지만
힘든 코스는 끝났으니 당근주스 한 잔 하며 쉬어가란다.
헐벗은 나무 아래 의자가 놓여있다.
여름이면 무성한 잎으로 해를 가렸겠지만
지금은 햇빛이 아쉬운 때,
아낌없이 햇살을 받아들인다.
나무 뒤 푸른 밭과 갈대밭이
종달리 소금밭이다
특히 제주에서 자주 보는 송덕비가
이 곳에도 훤히 트인 곳에 서있다.
옛날에는 지척에 바다를 두었지만
갯바위에서 소금을 만들다보니 소량 생산밖에 못하였다.
부족한 소금을 육지에서 수입하는 실정이었다.
편하게 이어지는 길,
턱이 없는, 경사가 없는 4.6킬로미터 휠체어구간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조사해보니
이 곳 종달리가 소금생산의 최적지로 확인되었다.
조선 선조대에 마을 유지를 육지로 보내 제염술을 배워
소금 생산을 시작한 곳이다.
한 때 46곳의 소금밭에서
가마에 바다물을 끓여 연간 89,052근, 53톤의 소금을 생산했었다.
이 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조정에 진상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었다.
이후 교통이 발달, 육지 소금을 들여오면서
방조제를 쌓고 간척지를 조성하여 논을 만들었다.
1990년 대 쌀이 남아돌자 휴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바다 안쪽 방파제 뒤로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저수지가 보인다.
종달리 바다다.
종달리 바다 건너 우도가
본섬과 연결된듯 이어진 모습이다.
봄소식은 제주 유채와 함께 온다는데
그 노랑물결 속에 잠시 젖어든다.
풍성한듯 보이지만
사진을 이용한 트릭이다.
여객선 따라 새우깡을 쫓는 줄 알았던 갈매기가
모래사장 앞 바다에 자맥질을 하고있다.
해변을 파노라마로 담았다.
성산일출봉, 우도, 지미봉은 담겼지만
앞쪽 왜곡은 감수해야한다.
올레 진행방향,
성산일출봉 고개를 들고있다.
쉼터 정자에서 담은 풍경이다.
조수에 따라 드러났다 사라지는 여가
낮아지며 우도까지 닿아 있을게다.
낮게 웅크린 우도,
소머리오름이 고개를 쳐든듯 본섬을 건너다본다.
한국전쟁 중 백마고지 전투에서
고지를 차지한 적의 기관총 진지 세 곳에서 뿜는 화력으로
난공불락이었다.
부하 둘과 함께 육탄으로 돌진하여 파괴하고 산화한
지역출신 전쟁영웅을 기리는 '강승우로'로 명명한 길이다.
잠시 돌아본 종달리 바다와 지미봉.
시흥리의 수호신 영등 하르방이다.
250년 전, 마을안에 도깨비불이 자주 보이고
원인모를 화재가 잦았다.
풍수지리상 화기를 마을이 맞는 형국이라
바닷가에 석상을 세웠더니 도깨비불과 화재가 없어졌다.
이 석상을 영등 하루방이라고 불렀다.
주민들이 관리를 소홀히한 어느 날
석상이 쓰러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마을이 소란스러웠다..
다시 석상을 세우자 마을이 평안해졌다.
그 후 마을에서는 석상을 잘 보존하였는데
잘 보이지 않는 외진곳에 있었는데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2011년 현 위치로 옮겼다.
어선을 품에 안아 다독이는 어머니처럼
송난포구가 달려드는 파도를 달랜다.
방파제 끝 구조물이
수중, 수상레저를 즐길수 있는 제주 오션파크다.
바다 물빛에 마음도 잠시 풀어놓는다.
잠깐 옆으로 돌아가 올라본 연대,
별장과 봉군 등 18명이 배치되었던 곳으로 설명하고있다.
최근 보수한 듯 상태가 깨끗하다.
봉화를 피우던 구덩이가 보인다.
올라가는 길이 닫혀있다.
연대가 과거 군사적 통신수단이었듯
잠시 쉬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안부전화를 전해보라는
연락의 언덕 오소포연대 쉼팡이다.
막상 연대로 들어가는 입구 정낭은
세 개가 다 걸쳐져 있다.
즉 멀리 외출중이니 출입을 막는다는 뜻이다
점점이 떠있는 돌들이
물새가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로 잠겨드는 우도가
왼쪽 끝에 빨간 등대로 그 끝을 표시하고 있다.
멀리 오른쪽에는 성산항방파제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바다를 돌아 뻗어나간 모퉁이가 보인다.
해수욕장 모래가 잠겨든 바다에
비취빛으로 투영된다.
모퉁이를 돌자
성산일출봉이 또 다른 모습으로 들어온다.
종달리와 시흥리 지나 오조리에서 성산을 잇는,
갑문을 연결한 다리, 갑문교를 건넜다.
성산항 가는 길,
수산물판매장이 있어 잠깐 들어서니
건어물과 특산품 은갈치, 고등어, 옥돔을 팔고있다.
갈림길 표지석에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가 의아스럽다.
성산항여객터미널에서 장흥가는 배 편이 있긴하지만
이용객이 얼마나 될까?
주로 우도를 오가는 관광객이 이용할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렇다면 맞는 인사는 아닐듯 하다.
올레는 성산포항이 아닌
우측으로 길을 꺽어진다.
성산포항 뒷편 성산포항공영주차장이
은 면적 위에 3층으로 자리잡고있다.
아직까지 신축사공중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길은 오른쪽으로 꺽어져
억새사이로 난 흙길을 올라간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서니
성산일출봉이 뒷면 바다로 떨어지는 단애를 드러낸다.
바다 건너 우도는 더 가까이 다가서고
기정위에 자리잡은 호텔 뒷면으로 난 길을 지나
호텔소유 토지를 지나는데
빨갛게 써놓은 안내문이 이해하기 어렵다.
사유지라 시설물이용과 사진촬영은
투숙객에 한한다는 내용이다.
차라리 길을 내어주지 말던지,
잠깐 빌려지나는 길이지만 불쾌한 느낌은 어쩔수없다.
성산일출봉 끝으로 조그만 바위가
홀로 섬을 만들었다.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봉우리 비탈은
초지로 계절을 바꿔 옷을 갈아입는다.
성산리 마을제단이 굳게 닫혀있다.
본단에 포신과
별단에 용왕신을 모시고있다.
포신은 전염병이나 재앙으로부터 수호하고,
용왕신은 삶의 터전인 바다의 안녕을 기원한다.
내부에는 똑같은 제단 두 개가 놓여있다.
거센 바닷바람을 피할수 없는
바다를 접한 벼랑 위
풀밭에 바짝 엎드려 보라색 예쁜 꽃을 피웠다.
주변은 아직 숙살된 시신이 널부러졌는데
벌써 씨방을 한껏 부풀려 매달고있다.
길건너 잘 지은 한옥과
현대식으로 지어진 카페가 보인다.
영업을 하지않는듯 굳게 닫혀있다.
바다 위 쉼터에 옹기종기 놓인 돌의자가
잠시 발길을 잡는다.
탁자형 네모난 돌에는
바다와 성산일출봉을 주제로 한
시인 이생진의 시가 쓰여있다.
성산리 마을에서 조성한 '시의 바다' 쉼터다.
충남 서산 태생으로 섬을 좋아해
천곳 이 넘는 섬을 다녔지만 특히 제주를 사랑했다는
시인 이생진의 '시비 거리'에 조성되었다.
벼랑아래, 접근할수 없지만
파도는 여전히 부딪혀 흠집을 내 침식한다.
성산, 오조지질트레일 방향안내판이다.
목책난간을 따라 기정길을 걷고싶었는데
끝 목책이 갈라지는 곳에서
그 너머는 유료관람지인 성산일출봉 지구안이다 .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 섬이었으나
모래와 자갈이 쌓이며 본섬과 연결되었다.
바다와 맞닿은 삼 면은 해류에 의해 침식되면서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되었고
거대한 분화구 위에 99개의 바위 봉우리가 빙 둘러서있다.
그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고 해서 성산,
제주의 경관좋은 열 곳,
영주십경의 첫째 성산출일(城山出日) 볼 수 있어 성산일출봉이라 부른다.
분화구 속은 넓은 초지로 형성되어
예전에는 성산리 주민들의 연료와 초가를 이는 띠의 채초지로 이용되어 왔다.
또한 매년 불을 놓아 방목지로도 사용하여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 띠 등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성산일출봉 봉오리가 백개였다면
제주에도 호랑이, 사자 같은 맹수가 날 것인데,
하나가 모자라기 때문에맹수가 나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평일이지만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한산하다.
코로나 19 영향은
사람들을 가두고 묶고 막아놓았다.
매표소 앞쪽 구멍뚫린 멋대로인 돌들이
일렬로 놓여있다.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에 선정된
기념받침돌 위에 표지석이 올려져있다.
살짝 올레길을 벗어나
일출봉 동암사로 올라선다.
동암사 주불, 만월해수관세음보살상이다.
경내를 벗어나니
일출봉방향으로 정낭이 걸려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일출봉이
이름만큼 견고하고 경이롭다.
다시 올레를 찾아 따라 걷는다.
말을 육지로 실어 보냈던 포구라 하여
수마포로 불리던 곳이다.
해안에는 일제말 일본군이 파놓은
스물 세개의 동굴진지가 남아있다.
일출봉이 파도를 막는 형국의
자연포구가 눈에 들어온다.
본섬과 이어지도록
해류가 실어온 모래가 쌓인 해안이 길게 이어진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다양하다.
신비로움은 더해간다.
해변에 놓인 표지석,
우리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제주 4·3 성산읍 지역 양민 학살터',
성산읍민 사백여명을 비롯한
인근 구좌읍, 표선면, 남원읍의 양민들을 학살했던 현장이다.
모래해안으로 물때에 따라 길이 열리던 곳이
1940년 도로를 개설하며 완벽하게 본섬과 연결되었다.
이렇게 열린 길 이름이 '터진목'이다.
이곳에도 터진목 제주 4·3유적지에
제주 4·3 성산읍 희생자위령비가
추모공원에 조성되어있다.
제주 올레 1코스가 광치기여,
광치기해변에 닿으며
15.1킬로미터의 장정을 마무리 되려한다.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일출을 담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용암이 바다로 스며들어 식으면서 굳어진
검붉은 너럭바위 지형,
썰물에 드러나는 녹조낀 화산석이 장관이다.
12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녹조와 바다를 낀 성산일출봉이
속살을 드러낸다.
2코스 표지석 앞에 서며
끝이 아닌 또 다른 미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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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같은 제주 같은 성산을 지난해에 다녀왔습니다만 차장님께서 보여주는 것과 비교하면 지는 딴디 다녀온 것 갔슈.....^^
제주도를 몇번 다녀와도 생소한 것 처럼
차장님 덕분에 구석 구석을 구경하네요
산호혼식때 딸 둘을 데리고
제주도에 갔다가 한라산 중허리에서
3월 초인데도 갑자기 눈보라가 치고 변덕스런 날씨로
줄줄히 교통사고가 나고
차들이 빙그르돌고 죽는 줄 알았던 악몽과 같은
추억 잊을 수가 없는 제주도입니다
차장님은 편안하게
잘 지내신 것 같고 우리까지 덩달아 구경 잘했네요
푸른 당근 밭이랑 여름 같은 느낌이...
꼼꼼하게 사진에 상황을 첨부해서 올리시는 정성이 놀랍습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