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배우기 / 박선애
내일은 우리 학교 배구 동아리가 이웃 학교와 친선 경기를 하러 간다. 사촌 형님네가 양파 심느라 바빠 고구마 캘 시기를 놓쳤다길래 도와 주기로 한 약속을 오후로 미루고 응원하러 갈 생각이다. 선수 출신의 체육 선생님께 제대로 배우는 데다 워낙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 아홉 명 중 다섯이나 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놓칠 수가 없다. 내가 못하는 일이라 더욱 멋있어 보인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운동 잘하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나를 가장 기죽게 만드는 것도 운동이었다.
워낙 몸치라 운동이고 춤이고 몸으로 하는 것은 즐기지도 않고 잘 익히지도 못한다.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일 때다. 나는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가 같이 배우자고 했다. 어느 날 저녁 그 아이 오빠의 크고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운동장으로 갔다.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잡아 주니, 그 친구는 비틀비틀하면서도 금방 혼자서 나아간다. 나는 그때는 꼭 타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또 넘어질까 봐 겁도 나서 몇 번 해 보고는 포기해 버렸다.
대학교에 다닐 때, 동아리 회원들끼리 자전거 여행을 갔다. 모두 참석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자전거를 못 타는 나는 친구 뒷자리 신세를 졌다. 나 때문에 힘들게 페달을 밟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몹시 불편한 여행이었다. 나도 자전거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할 때였다. 집에 오지 않는 토요일 오후, 하숙방에만 있는 것이 심심해서 학교에 가 보니 아이들이 와서 놀고 있었다. 그 중에 자전거 타는 학생이 있어서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 아이가 뒤에서 잡아 주니, 제법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든든히 잡고 있다고 믿었던 아이가 앞에서 부르는 것이었다. 놀라서 멈추니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넘어졌다. 바큇살에 다리가 눌리고 찢겨 꽤 큰 상처가 났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 보고 싶은 꿈을 접었다.
10여 년 전 50대에 들어선 언니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신이 나서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 주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고 용기를 냈다. 먼저 자전거가 있어야 하는데 사 놓고 못 배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망설였다. 솔직히 탈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를 별로 안 했다. 집 앞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낡고 작은 자전거가 잠기지도 않은 채 며칠째 있었다. 버려진 걸로 판단하고 주워다가 연습하려고 관사로 가져갔다.
학교 안에 있는 관사에서 운동장으로 가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매끈하고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가 내려갈 수 있는 그곳을 연습장으로 정했다. 언니가 가르쳐 준 대로 안장을 낮춰서 발을 땅에 댄 채 자전거를 밀고 다녔다. 탄다고 할 수 없고 자전거와 함께 걷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자꾸 무릎이 손잡이에 닿아서 불편했다. 아무리 작은 자전거지만 내 길지 않은 다리가 왜 걸리는지 의문이었다. 그날도 출근하기 전에 연습하고 있었다. 할머니 일하러 나가시면 바로 오느라 항상 일등으로 등교하는 민욱이가 기척도 없이 와서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민욱아, 자전거 타기 어렵다. 좀 가르쳐 줄래?“라고 했다. 대답도 없이 다가오더니 자전거 핸들을 180도 돌려 놓는 것이었다. 세상에, 나는 ㄷ자를 돌려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손잡이를 내 쪽에서 볼 때 ┏┒이렇게 놓는 줄 알았는데 ┖┛이 맞는 것이었다. 차에 실으면서 돌아간 줄도 모르고 그걸로 낑낑대고 있었으니 보기에 얼마나 한심했을까. 큰 덩치로 제일 뒷자리에 바위처럼 앉아서 친구들과 놀거나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고 수업도 함께하지 못하는 민욱이가 그때만은 잘못을 딱 짚어서 가르쳐 준 훌륭한 선생이었다.
민욱이 덕분에 학습에 속도가 붙었다. 이제 안장에 앉아서 한 발을 페달 위에 살짝 올렸다가 넘어질 것 같으면 다시 땅을 디뎠다. 다음 단계는 두 발을 그렇게 했다. 땅을 딛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고 중심이 잡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이들과 직원들이 다 집에 가고 나면, 평평한 본관 앞에서 페달을 밟아서 앞으로 나가는 연습을 했다.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간다. 드디어 운동장으로 진출했다. 제법 길게 멈추지 않고 달리는 데 성공했다. 시도 때도 없이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출근 전, 퇴근 후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시간에도 자전거를 끌고 운동장으로 갔다. 서툴지만 열심히 타는 나를 아이들이 응원해 줬다.
그 후에 근무한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45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운동 삼아 걸어 다니다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아직은 서툴러서 사람이 가까이 온다든지 횡단보도가 나오면 내려서 기다리거나 끌고 갔다. 그 출퇴근 길이 자전거 실력을 쑥 키워 주었다.
마침 똘똘한 웅이가 친구 세 명과 함께 영산강 자전거길을 종주하고, 내친 김에 1박2일로 금강 자전거길까지 다녀온 이야기를 글로 써 냈다. 그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낙동강과 남한강 길까지 마쳐야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부러웠다. 나도 맛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영산강 자전거길로 나갔다. 강과 들판과 곡식과 풀과 꽃과 물무늬와 하늘과 바람과 마을과 나무 등 저절로 감탄이 나오게 하는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했다. 새로운 세계였다. 내 힘에 맞춰 한 시간도 채 달리지 못하고 돌아와도 자전거를 탈 줄 아는 내가 참 대견했다. 주변에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했던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꼭 배우라고 권한다.
지금은 이사해서 자전거길과 더 멀어진 데다 다리가 불편해서 쉬었더니, 자전거는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홀쭉한 바퀴로 간신히 서 있다. 가까운 날에 자전거를 손봐서 나가 봐야겠다. 이번에는 몽탄대교가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