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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분, 이번에 이거 하나 풀려져서 가세요. 나를 좀 내버려둬. 여러분이 다른 사람도 괴롭히지만 가장 괴롭히는게 나 에요. 선악 속에 살아온 기준이 나를 묶고 있고, 그런 것들이 생각 속에 잡혀 있는 만큼은 나를 내 버려두지 못해요. 거긴 기껏해 봤자 선악의 기준 속에 맞는 것이고 잘하는 것이고 좋은 것이고 반대 기준도 있다는 것을 그대로 고통당하고 있는데 몰라. 더 중요한 것은 그럴 수 있어요. 그것 속에 답이 없으면 살아가는 삶속에 그대로 드러내고 계시거든요. 하나님이 각 사람 속에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아멘. 여러분 이게 영적인 사실이에요. 이게 복음의 실재에요.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가끔 가다 은혜 받지만 아니에요. 그 분은 계속 은혜를 주고 계세요. 그런데 왜 우리는 가끔이에요? 은혜의 때가 나타 날수 밖에 없는, 차기까지의 과정은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흔들어 주시고 깨트려 주시고 인생의 고난, 고난의 때에 은혜를 받게 되는 겁니다. 나는 우리 박범태 목사님을 처음 보니까, 같은 박 씨인데 성격이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박씩의 특이한 기질이 있는데 다른 것이 이 분이 참 자신을 많이 만들었더라고요. 항상 텐션이 있어요. 사람들을 말로도 제스처 좋아요. 안 좋아요? 좋더라고요. 나는 그런것 못하 거든요. 이 분은 그렇게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든 만큼은 항상 그래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안 되고 남도 안 돼. 지금 10년 넘었잖아요. 나는 범태 목사님을 보면서도 모든 부분 속에 하신 것도 그렇지만 하나님, 참 멋지세요. 진짜 멋지세요. 정말 하나님만 완전 하십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박목사님을 볼때 언제가 제일 좋은 줄 아세요? 우울증 걸렸을 때. 그때가 가장 제정신 차린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이 분은 반대로 자신을 만든 만큼 업시키고, 반대 기준으로 나오는 거야. 평상시에 나타나던 범태 목사님 모습으로는 그렇게 자신을 만든 만큼 더 깊은 반대 세계가 있었는데 그것이 어느 날 드러나니까,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 그러고 있더라고, 절대 사람들 앞에 그런 사람으로 보여지면 안 되는 사람이 그런 사람으로 보여 질수 밖에 없는 모습, 밥 먹자마자 교회로 갔다라고 하더라고요. 이 분이 교회 가서 기도 할 사람이에요? 텐션 때문에 안 되거든. 어디에도 답이 없는데 어떡할 거여. 이후에 만남 속에 조금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나눔을 할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진짜 힘든데 말씀이 어떻게 사실적으로 들리는 줄 모르겠다고, 아멘 안 해주시네. 참 신기해. 왜 똑같은 말씀인데 왜 고난 속에서 더 사실 적으로 들립니까? 따라서 합시다. 고난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번에 집회 오셔서 찬송 인도하시면서 첫 번째 맨트가 뭐에요? 어떤 집회때 보다 참 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보니까 기분이 업된것도 없더라고.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것도 없고, 그 자체가 내려 놔진 만큼은 그 만큼 여유가 생긴 거예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제가 그랬습니다. 이렇게 은혜 받아 가시는 분이니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물론 수고 하는 사람이 많이 하죠. 참, 그래서 삶이 중요하고요. 삶이 없으면 구원이 없어요. 그래서 어제도 어떤 분과 교제 하면서 그러더라고요. 죽음, 구원의 완성이라고 하시는데요. 내가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그게 우리가 온전히 믿음으로 받아들여집니까? 받고 못 받고 우리 수준의 믿음이에요. 상관없이 사실이니까. 죽음은 뭡니까. 구원의 완성이에요.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들의 죽음은 육신적으로 슬프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최고의 할렐루야의 날입니다. 왜? 내 개인의 인생 속에 당신의 구원의 인생을 완성 시킨 날이니까. 내가 그 질문을 하는 의미는 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이 먼저 떠나보내니까, 은혜 주신 만큼 한쪽에 믿어지는 은혜 때문에 인정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진 부분이 있는데 안 된 만큼은 육신 속에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또 나눠 보고 싶은 거야. 아니까. 편안하게 이해하고. 그러나 누구도 자기 수준 속에 은혜를 받아가는 만큼, 부름 받은 보인은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고 앞에 대한 그것을 생각 할 필요가 없고 가장 축복된 부르심이다. 중요한 것은 가족 중에 이렇게 부름 받은 이후의 사람들은 가족으로 살아오면서 누가 육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구원 때문에 태어났고 살아가는 가족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이건 말할 필요가 없죠. 안된만큼은 묶고 묶여가는 관계 속에서 애증 관계가 가족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애증 쪽으로만 생각 하면 원수에요. 빨리 끝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끝내 버리면 반대 기준이 튀어 올라와요. 묶임이. 그때는 서서히 증오의 감정은 없어졌기 때문에 없었던 그 세계 자체가 없던 게 아니라, 이제는 건드려지지 않기 때문에 가라앉게 되요. 그럼 그 세계는 반대 ‘애’ 쪽이 올라와요. 그때는 서서히 살아만 있어도 이렇게 나와요. 이게 인간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육신 속에 좋고 나쁨 진짜 답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미 하나님이 은혜 주신 만큼은 불구하고, 다른 가족 보다 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 과정이다. 아마 이 부분은 평생도 앞으로도 계속 은혜 주실 것이다. 그럼 그 과정 속에 육신은 다른거 없어요. 생각 날때 마다 괴로우니까 생각을 자꾸만 피하게 되요. 잊으려고. 그 말을 하더라고, 맞다 나도 보니까 인생을 살아온 과정을 보니까 진짜 어려운 것들은 지나고 보니까 잊혀 졌더라. 그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때문에 잊혀 졌을까? 이게 사실 맞는 건데, 그런데 구원과 상관없이 살다 보면 육신은 살기 위해서, 왜. 이게 남아 있으면 내가 못 견뎌요. 살수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자꾸만 잊는 거예요. 나도 진짜 어려웠던거, 기억이 지워졌어. 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몰라도 내 육신은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 최면 심리 하는 사람들 이렇게 했을 때 다 나옵니다. 그 말은 없는것 처럼 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살기 위한 몸부림이에요. 그래서 해결 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는 헤맨 것 밖에 없는데 어? 풀어져 있어. 왜? 동에서 서가 옮겨진 것처럼 옮겨졌기 때문에, 내가 푼게 아니라, 풀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했어. 그런데 풀려져 있어.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마귀는 우리의 그런 잘못된 그런 영적 혼돈이거든요. 그게 혼돈 속에 속임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마귀는 두가지 다 해요. 뺐어 가지만, 좋은것 가지고 속이는 것을 깨달으시길 축원 합니다. 그런데 마귀의 속임은 이것 속에 답이 없는데 교활한 천사로, 마귀의 속임은 복음만 가리우게 하는 거예요. 이 세상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의 광채를 비취게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마귀가 참 신기하죠. 못 듣게 해요. 들어도 정말로 중요한 것만 그냥 통과, 신기해요. 정말로 구원, 이 진리만 나타 날수 없도록, 이 길을 가려요. 진짜 영적 문제 심각 한 사람은 말씀 시작하면 눈을 감아요. 끝나면 눈을 언제 그랬냐는 듯 딱 떠요. 그건 심한 사람이고, 이렇게 들으면서 내 기준대로 들어요. 그러한 세계 속에 빛을 비추는 복음만 가리우게 하는. 내가 오죽 하면 조금씩이라도 그 은혜를 받아 가시면 그것은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만 생명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은 세계적 변화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와 상관없이 살아지는 변화가 삶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고 나타나는 것을 통해서 이렇게 되어져야해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마태복음 4장에 그리스도의 일을 시작하시면서 세 가지 마귀에게 받은 시험이 뭐냐 다 주는 시험이에요. 떡주는 시험. 떡이 뭐냐 밥. 두 번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천사가 받들 것이다. 이런 인생이 우리 인생에 나타난다? 훨훨 날아요. 어떤 사람 땅에 발이 안 닫는것 같아. 얼마나 좋으면. 이걸 성경에 표현은 떡먹는 시험은 육신의 정욕. 천사가 받드는 것은 안 목의 정욕. 세 번째 시험이 뭐에요? 세상 영광, 다 보여지는 영광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은 이 보여지는 이것을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그림자에요. 자연 만물에 하나님에 신성이 나타나요. 창조의 능력이 와 닿기 때문에 감동을 받는 거예요. 그건 그림자에요. 마귀는 세상 영광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 버려요. 그럼 이 모든 것을 주겠다.
내가 오전에 말씀 드렸나? 이이경 살인자 30대 인데, 얼굴이 멀쩡해서.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도. 좋은 사람 만나져도 자기만 나쁜 사람 만드는 게 아니라, 저 사람 까지 나 쁜 사람 되게 만들었잖아. 진짜 인생은 속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 속에 인생을 그런 면만 보면 세상만큼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없어요. 오죽 하면 염세주의자들이 나오겠습니까. 세상을 조롱하며 사는 거예요. 허무주의, 인생을 증오하며 사는 거예요. 한쪽만 보면 맞아요. 그런 세상에 뭐 그런 미련을 두고 사세요? 몰라도 정도 차이지 인생이 다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왜사냐, 구원 때문에 사는 겁니다. 구원이 보입니까? 안 보여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가치요 영생이요 이것이 인생의 참된 목적이라는 것이 나는 알든 모르든 이 은혜를 조금씩이라도 받아 가면 살아져요. 이미 가치가 삶으로, 이것이 참된 축복이, 축복인줄 모르고 축복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걸 제가 저도 느끼지만 부족한 저를 통해서 함께 은혜 받아가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그걸 보게 되는 겁니다. 우리 나타 난거 그렇게 바껴진게 뭐가 있습니까. 우리가 바껴져요. 참 감사하죠. 그런 만큼 맞아요. 평생 과정인데 왜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점점 문제가 되지 않아요. 여러분 이걸 가지고 논하고, 믿음 생활도 이것 갖고 싸우고 그런거 하지 마세요. 왜 믿는 사람이 자꾸만 정치 운동해요? 그런거 하지 마세요. 그게 애국 아니에요. 애국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과 뜻대로 구원의 영광을 잘 이루어가는것이 진정한 애국입니다. 세상이 압니까? 모르잖아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인생들이 모르잖아요. 왜 우리를 부르셨어요? 우리를 직분 맡은 자로,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은혜를 받아 오면서도 사람들은 자꾸만 정치하면서 어느 파를 만들려고 하거든요. 우파야 좌파야, 진보야 보수야, 그럼 하나님은 우파에요 좌파에요? 하나님은 아니잖아. 여러분 정말 우파는 애국 때문에 하는 거라면 좌파는 애국하는게 아닙니까? 그럼 서로 싸움 박질 하는 거 밖에 없어요. 나도 애국 하고 저도 애국하는데 서로 싸움 박질 할 것밖에 뭐가 있어. 그걸 믿음인줄 알고 한단 말이야. 하나님의 뜻을 거기에다 맞춰서, 이게 얼마나 종교 이원론적 삶이에요. 그게 너무나 불편하게 만드는 거예요. 너만 그렇게 믿어. 그런데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기만 하는 게 아니라 끌어 들이려고, 만들어 가려고 해요. 그 자체가 기준이에요. 각 사람 속에 하나님이 하시잖아.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어야지. 나는 제일 궁금한 것이 노아와 노아 식구 외에 싹 죽었으면 끝났어야 되잖아. 홍수로 다 끝냈으면 끝났어야하는데 똑같더라고. 이게 세상이에요. 인간이 하는 짓은 항상 그런 짓이에요. 왜 허용 하셨어요? 구원 때문에, 구원만 가려지면 믿다 보면 살다 보면 이렇게 살고 있는데 몰라. 그런데 그 사람들은 더 열 내요. 더 맞는것 같기 때문에, 더 그것이 이 나라와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치고 환장하는 거야. 가만히 두는데도 자신은 가만히 안 있어. 옆에 사람에게 얘기 합시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신년집회 10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