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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 분들의 피드백을 참고하여 수정해보았습니다.
- #붙여서 소제목 붙임
- 소제목은 앞으로 나올 문제의식
- 데이팅앱과 배달앱이 뒤섞여 나오는 부분 재배치
- 저의 사례로 전부 수정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내용들- 외모 언급, 연봉 이야기 등- 이 있는데 그것들을 아예 빼기는 어려워서 어떤 수준까지는 넣었습니다.)
마침 브런치북 프로젝트도 응모를 받더라구요.
겸사겸사 넣어보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수정하셔서 브런치북으로도 올려두심 어떨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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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보통의 하루
베키(가명, 여, 32세)는 9시 50분에 일어난다. 9시 30분부터 일어나려 애를 썼지만 20분을 더 잤다. 오늘도 택시를 타고 출근할 참이다. 이른바 '황제 출근'이다. 택시는 '타다'와 '카카오택시' 두 개의 앱을 동시에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피크 시간에는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두 앱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행히 택시가 잡혔다.
#1. 서울중심주의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핸드폰으로 급한 일을 처리한다. 모바일로 슬랙(메신저)이나 노션(문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이나 각종 시트를 보는 것은 너무도 익숙한 일이다. 베키의 본가는 경기도이다.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서, 양질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 늘 서울에 가야 했기 때문에 베키는 대중교통에서 인생의 1/3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삶을 살았다.
작년부터 드디어 자취를 시작하였으나 꿈에 그리던 그런 독립은 아니었다. 베키 또래 회사원들은 주로 오피스텔이나 신축 빌라에 사는 반면 베키는 관악구에 있는 35년 된 다세대 주택 투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좀 더 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베키는 주거지에 월 100 가까이 쓰고 싶지 않았다. 마침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월세 가격이 더 올랐던 시점이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청년들에게 돈 아껴 쓰라고 일침을 가해 인기를 끄는 한 유튜버는 주거비용은 월 소득의 15%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현재 베키의 주거지가 그에 딱 맞는다. 고소득자로 분류되어 각종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는 베키가 사는 곳은 35년 된 다세대 주택인 것이 맞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강남에 있는 회사를 다니기 위해 서울로 이사를 왔건만 회사가 성수로 이사를 가버렸다. 결론적으로 회사는 다시 멀어졌다. 그렇지만 지긋지긋한 그놈의 강남을 떠난 것만큼은 좋았다.
강남은 없는 것이 없고 교통이 좋고 깔끔했다. 그렇지만 그만큼 거리의 특색이 없었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들 뿐이었다. 베키는 지난 4년간 총 3개의 회사를 다녔는데 각각 선릉역, 삼성역, 역삼역에 있었다. 회사들은 대부분 공유 오피스에 입주해 있었다. 공유 오피스 역시 '위워크', '스파크플러스', '패스트파이브'까지를 모두 거쳐봤다. 공유 오피스 특유의 모난 것 하나 없이 모두 다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특색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에 비해 성수는 오래된 건물과 핫한 가게들로 볼거리가 많고, 건물들이 낮아 산책하기에도 좋았다.
#2. 가짜노동
쾌적하고 널찍한 오피스. 폐쇄적이고 나름 선망받는 업계. 언젠가 꿈꾸던 바로 그 포지션에 종사한다는 뿌듯함을 남몰래 가지고 있으면서도 베키는 요즘 일에 의미 부여하기가 어려웠다. 베키는 그간 스타트업에서 HR을 해왔고 그중에서도 주로 채용 업무를 해왔다. 지금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벤처 캐피털)에서 포트폴리오사를 돕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채용도 돕고 행사도 열고 PR도 한다.
'IT', '창업자', '투자'라는 키워드를 베키는 동경한다. 계속 그 세계에 속해있고 싶었고 그래서 속해 있었다. 그러나 베키는 어쩌면 자신이 하는 일이 '가짜 노동'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논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름 아래 입으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입으로 일하는 사람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베키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국내 굴지의 바이오 기업에 다니는 친구도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특정 대학 출신만 뽑겠다고 고집할 이유가 있나'라고 했고, 10년 가까이 현업에서 일하며 제일 큰 광고 에이전시에 다니는 동료도 '몇 달을 밤새워가며 만들고 있지만 무엇을 위한 보고서인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3. 성장을 가장한 자기 착취
물론 처음부터 베키가 이렇게 삐딱했던 것은 아니었다. 베키도 한때는 성장 꿈나무였다. 더 더 더 성장해야 한다는 일명 '성장라이팅'에 호되게 당해 빡세게 일하던 때가 베키에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새벽 3시까지 무슨 일을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베키의 첫 직장 대표는 너무도 깐깐하여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구매할 것인지, 햄버거를 구매할 것인지도 3가지의 논거를 대 정리해 주기를 원했다. 베키는 이게 300만 원 받아 가면서 할 일인지 진심으로 의문이 일었다.
20년도부터 21년도까지 스타트업계에 돈이 엄청나게 풀렸고, 스타트업붐이 일었다. 베키는 그 기류에 운 좋게 탑승하였다. 덕분에 이직할 때마다 연봉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한 번에 두 자리를 바꾼 적도 있었다. '자율출퇴근'이다 '무제한 휴가'이다 하는 파격적인 근무 환경들이 제시되었고, '스톡옵션'으로 회사의 성장과 나의 보상을 일치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다. 베키는 인사팀이었기 때문에 그 선전을 앞장서서 했다.
회사 때문만은 아니지만 몸은 그에 비례하여 안 좋아졌다. 새벽에도 휴일에도 휴가 기간에도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슬랙' 알림과 조금만 놓쳐도 수 십 개 쌓여있는 메시지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오른쪽 귀가 정말로 아파왔다. 베키는 링거를 맞아가면서도 누워서 일을 했고, 휴가지에서도 일을 수습하느라 쩔쩔 맨 적도 있었다.
베키의 분투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베키도 서울대 나왔어요?"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을 정도로 회사 동료들은 거의 최상위권 대학 졸업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자신은 그렇게 좋은 학교 안 나왔다고 구구절절 해명해야만 했다. 게다가 누구 하나 자랑하듯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미국 MBA를 할머니 돈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누구 집 거실이 대리석이고 널찍한 테라스가 있다는 사실을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소비주의
한 번은 동료가 회사에서 신는 슬리퍼마저 샤넬인 것을 보고, 베키는 샤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 샤넬...?" 시작했던 생각은 "A는 슬리퍼도 샤넬인데 가방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로 이어져 "아니, 내가 샤넬 사면 왜 안되는데?"까지 가게 되었다. 각잡고 찾아보니 샤넬 가방은 1,200만 원 가까이했다. (남초커뮤니티에서 여성의 사치를 비난하며 300만 원이 넘는 샤넬백을 공격하던데 300만 원 샤넬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베키는 쉽사리 단념하지 않았다. 월 300만 원씩 갚아나가면 된다는 나름 '합리적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다 베키는 다행히 막판에 극적으로 정신을 차렸다. 자신에게 적정한 수준의 브랜드인 '미우미우' 가방과 지갑을 사는 것으로 타협했다. 샤넬백은 당근마켓에서 세컨핸드(중고)로 구입했다. 애석하게도 지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술 먹고 잃어버렸고, 두 개의 가방은 현재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베키는 그 뒤로 명품을 사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그 안에서의 페미니즘
그 사이 전화가 왔다. 호기심에 개인정보를 기입해 본 결혼정보회사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개인정보를 지워달라고 해도 끈질기게 연락이 왔다. 한 번은 전화로 상담을 해 본 적이 있다. 결정사 직원은 베키에게 직업, 연봉, 출신 대학을 물었다. 원하는 조건은 무엇인지도 물었다. 베키는 조건은 별로 안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대기업 다니는 분 안 만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네. 그런 거 상관없고요. 저는 잘생긴 사람 만나고 싶어요. 잘생긴 사람은 없나요? 잘생긴 사람은 못 만나나요?" 상담원은 당황한 듯 얼버무렸다.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연봉 1억 못생긴 여자 VS 연봉 5,000 예쁜 여자'라면 당연히 '닥후'라던데 그게 아직도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명제란 말인가. 베키는 나도 '돈 많이 벌어서' '어리고 잘생긴 남자' 만나고 싶다고 속으로 광광거렸다.
#플랫폼 소비
말이 나와 하는 말인데 베키는 데이팅 어플도 여러 개 깔아봤다. 자신의 가치관을 몇 백 자 이상 써야 하는 진지한 소개팅 어플부터 '브로큰 피플' 많기로 소문이 흉흉한 틴더까지. 별도의 가입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어플도 호기심에 가입해 본 적이 있다. 남자는 소득증명서 또는 전문직만 가입이 가능하고 여자는 그들로부터 승인을 받아야지만 가입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아무나 만나지 않는댘ㅋㅋㅋㅋ 스카이 피플이랰ㅋㅋㅋㅋ"라고 비웃었던 게 3년 전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 반 호기심 반에 가입을 해본 적이 있다.
마침 요즘 신원 확실한 30대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어느 정도 진지하다는 어플에서 알림이 왔다. 그 어플의 시스템은 남자를 '능력남'과 '매력남'으로 분류해서 소개해줬다. 베키가 원한 분류도 아니었으나 '능력남'은 베키보다 연봉이 낮았고 '매력남'은 기준이 모호했다. 베키는 바로 어플을 지웠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베키는 퇴근을 하며 배달 플랫폼을 통해 음식을 미리 주문해 놓았다. 집에 가자마자 바로 맵고 짠 음식을 양껏 시켜 먹고 눕는 게 베키의 요즘 낙이다. 어떨 때는 하루에 세네 번 까지도 배달을 시켰다. 분식집 라면까지 배달을 시킨 적도 종종 있었다.
아까 밝혔듯 베키의 집은 관악구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관악구의 1인 가구 비율은 압도적으로 많다. 그 환경에서 탄생한 또 다른 비즈니스는 바로 '공동 구매 배달 플랫폼'이다. 베키는 두잇이라는 어플을 매일같이 쓰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묶음 배달을 하여 비용을 줄이는 '혁신적인' 플랫폼이다. 더 많은 상품을 더 싸게 더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마법 같은 혁신 말이다. 이 가격에 배달까지 해주니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가도 남은 음식과 남겨진 플라스틱 용기를 볼 때마다 묘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베키가 배달 플랫폼을 거의 매일같이 사용하면서 동시에 죄책감을 가지기 시작한 건 한창 코로나로 전 직원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던 2021년 때부터였다. 그때의 광경은 약간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매일같이 배달 음식을 시켰고, 식비 제한 없던 회사 방침과 근로자들의 스트레스가 결합하여 늘 음식이 남아도는 지경에 처했다. 매일같이 거의 통째로 버려지던 음식물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볼 때마다 무언가가 께름칙했다.
#정신건강, 상담, 명상, 뇌과학
퇴근도 택시로 했다. 그렇게라도 회사를 다닐 수 있다면 다니라는 임상심리 전문가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도 베키는 술도 안 먹고, 남자도 '쉽게' 만나지 않는 자신에 안도했다. 베키가 다녔던 정신과 의사는 요즘 '많은 여성 분들이 어플을 통해 만남을 가지는데 정신건강에 유해하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다른 그 어떤 이유보다 데이팅 어플이 게임처럼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베키는 동의했다. 무한히 내릴 수 있는 스크롤처럼 끊임없이 나타나는 상대들, 쉽고 빠르게 내릴 수 있는 결정 방식, 보상처럼 주어지는 리워드들. 실제로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었던 동료들의 현타를 익히 들어왔다. 그에 비하면 배달 플랫폼을 덜 유해했다. 비록 베키는 1년 동안 15kg이 쪘지만 말이다.
집으로 가는 길. 자신이 다녔던 회사들이 혁신이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이다 말하지만 실은 그냥 물건을 많이 팔아 이윤을 남겨야만 한다는 사실이, 핵심 인력에게는 억대 연봉과 스톡옵션이 주어지지만 계약직에게는 점심 식대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베키는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당연히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아직도 매일같이 다이어트 관련한 유튜브를 본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의 총량을 증진시키는 게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개선해서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거죠." 한 창업가의 말이다. "나는 행복 추구에 관심이 없습니다. 긍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에도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나는 진실을 찾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진실은 때때로 행복이 아니라 그 반대쪽에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나의 임무는 모든 사람을 조금 덜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 작가의 말이다. 베키는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오늘도 갈팡질팡하다 잠이 들었다.
첫댓글 글 잘 읽었어요. 제가 몰랐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아서 유익했고, 유쾌하게 써내려가서 좋았어요.
중간중간 고민의 흔적이 있어서 더 좋았어요. 글에서 베키의 고민이 조금 더 담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제가 있으니까 이야기의 흐름, 그 단락의 부족한 부분=채울 부분이 보여서 좋네요. 백배 퇴고왕 등극 ㅎㅎㅎ
와, 단행본 프롤로그같아요 뒤에 나올 소제목별로 깊은 이야기들이 기대됩니다. 퇴고왕 백배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