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한강’에 빠지다 / 정희연
집 앞에 교보 문고가 있다. 주말이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여느 때처럼 진열대에 놓인 책을 살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책에 담긴 다양한 시선과 새로운 지식이 창밖의 풍경처럼 서서히 흐른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마주하며 적응하는 순간이다. 책을 넘기며 순간순간 숨을 고른다.
매장이 넓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많아 눈치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인문, 소설, 에세이, 경제, 경영 등 베스트셀러를 주제별로 모은 코너를 훑어본다. 우리 지역 출신 작가인 ‘한강’의 자리도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희랍어 시간』 등 다수가 있다. 5·18 민주화 운동, 제주 4·3 사건을 비롯해 폭력, 고통, 상실, 상처 등을 다루어 몇 장 읽다가 그만두었다. 현실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날들이 많다 보니, 굳이 책에서까지 그런 무거운 감정을 꺼내기가 싫었다. 광주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5·18 민주화 운동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그 아픔과 상처를 다룬 글과 영상을 많이 접했다. 아픈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슴 아픈 이야기에 에너지를 쏟아 가며 머릿속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5·18, 4·3 사건 모두 지역을 넘어, 우리나라 역사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긴 이야기다. 그쯤에서 한강과 연을 끊었다.
“2024년 노벨 문학상에 소설가 한강이 선정되었다.” 카톡이 불났다. 여기저기서 수상을 알리는 문자가 도착했다. 한국 작가로 최초다. 잠시 심장이 멎었다. 내 눈을, 내 귀를, 내 가슴을 의심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결론을 내렸다.
“한강의 문장은 우리가 흉내 낼 수가 없어요. 왜 흉내 낼 수 없냐 하면 굉장히 서정적이고 여린 상처를 입은 영혼의 실존이랄까, 그런 것들을 실감나게 묘사해 내고 있어요.” (목포MBC뉴스 2024.10.11,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한강 부친, 한승원 작가 인터뷰.)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이제 우리한텐 몸이 없으니 만나기 위해서 그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을 텐데 하지만 몸 없이 누나를 어떻게 만날까, 몸 없는 누나를 어떻게 알아볼까”
“너무나 압도적인 고통이고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느끼는 것이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내가 지금 살아있으니까 내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과 그런 것들을 빌려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죠.”(KBS TV 책, 2016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을 만나다, 인터뷰 중.)
한강을 본다. 극도로 차분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준비된 것이 아닌 내면에서 나오는 일상의 언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세상은 그를 알아봤다. 그런데 나는 그를 밀어냈다. 그녀의 글과 말을 보고 들으려 하지 않았다. 상처와 고통을 외면했다. 다시 교보 문고에 들렸다. 한강의 자리가 사라졌다. 몇 주전 내부 리모델링을 하면서 없앤 모양이다. 책도 모두 동이 났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앞서지 못했으니 어디 한두 가지뿐이겠는가, 누군가는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고, 또 다른 누구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열등감은 늘 상처로 남았다. "왜 나는 저렇게 잘하는 게 없을까?"라는 질문을 늘 해 왔다. 억압의 역설처럼 머리에서 지우려 할수록 더 선명해졌다.
그녀는 폭력, 고통, 상실, 상처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곳으로부터 나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다. 거기서 나온 나는 그대로 머물러 있고, 그녀는 오히려 당차다. 니체는 인생의 고통이나 상처가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하며, 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라고 권했다.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결국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며, 상처를 직면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이 곧 치유의 본질일 수 있다고 했는데. 한강이 니체를 만났던 걸까?
수상 소식을 듣고 기쁨에 앞서, 왜 내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자책했다. 상처와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까, 그녀의 감정을 읽지 못한 나를 봤다. 그녀는 상을 받으며 기쁨을 누리기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죽음을 생각하며 나보다 타인의 고통은 먼저 읽었다. "잔치를 벌이고 기뻐할 수 있겠냐" 죽음과 아픔을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그녀다.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다. 그녀를 만나려 책을 주문했고 11월 1일 그녀를 본다. 한강에 흠뻑 빠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