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학습부진은 없다를 읽고..
“현재 우리의 학교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습부진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프게 와 닿았다.
배움에 곤란을 겪어 진정으로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학생이 아니라 선별과 배재의 논리로 만들어진 부진아들... 그들이 지금 우리 학교에도 있다.
그래서 나는 고민에 빠진다.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용어상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부진아 없애기, 일명 “부진아 0” 프로젝트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애초의 문제의식은 이러했다. 한 명의 학생도 소외시키지 않는 책임교육의 실현.. 지금의 학교조건에서 과연 가당키나 할 것인가? 그러나 혁신학교는 시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진아를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 아니 부진아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그 방법은 부진아를 만들어내지 않는 수업의 혁신과 배움에 곤란을 겪는 학생을 다차원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책임학습제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진도에 얽매이지 않고 그야말로 기본과 기초를 탄탄하게 하는 수업과 전원이 참여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독일의 교육처럼 알파벳을 배우는데 1년, 1과 20까지의 덧셈과 뺄셈을 1년동안 가르치는 교육) 교육과정과 수업의 혁신을 말한 것이다. 여기까지면 어느 정도 족할 것이다.
그런데 더 욕심을 낸다. 현재 엄연하게 존재하는 부진아와 이후 혹여 가정이나 사회적 요인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부진아는 어떻게 한담...
그래서 학습부진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구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지원시스템이 필요성이 더해진다. 상담교사, 부진아지도교사, 심리치료 등 다양한 지원프로그램 등등...
소위 혁신학교의 부진아제로라는 것의 실체다. 변명 같지만 색출해서 없애겠다는 결핍 패러다임에서 출발한 것은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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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부진아 없애기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그렇지만 기대감은? 어느정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이번 25~27일 서울혁신학교 워크숍에서 부진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주요한 꼭지로 다루어졌다. 모든 학교에서 정말이지 열심히 대책을 세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자족적인 면도 있었겠지만 나름 효과도 있다는 평가였다.)
그들 모두가 학습곤란의 요인이 학교보다는 학교밖에 있음을 토로했다. 그래서 최대한 대책도 종합적으로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늘 부진아는 줄지 않는다고 했다. 소위 사회계층적인 문제가 주요 원인이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따라 입학, 전학 등 부진아는 계속 늘어난다.)
학습곤란의 원인을 사회요인, 가정요인, 또는 학교 요인을 들었지만 그 밖에도 선천적 장애요인 등이 있고 대부분 한가지 원인이라기보다는 중층적으로 맞물려 일어날 때가 많다. 따라서 학습곤란의 주요 원인을 경쟁과 평가 중심의 학교 문화, 일제식 수업의 문제로 돌려서는 해결이 되질 않는다.
학교가 부진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은 너무 일면적이다. 그렇더라도 학교에 부진아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적어도 혁신학교는 이 시스템을 개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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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처럼 우린 부진아라는 말을 모르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말은 다 그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첫댓글 다른 것 다 놔두고 ‘부진아 없애기’ ‘부진아 0’ 프로젝트’라는 용어 자체를 당장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적극 공감합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을 마치 괴물이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끔찍한 대상으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느낌이 들어서 거부감이 생겨요. ‘프로젝트’라는 단어에서도 인간적이지 못한 기계적인 냄새가 나서 거부감이 들구요. 어쩌면 그런 관습적인 끔찍한 용어가 '우연의 희생자'이기도 한 아이들을 제도적으로 두 번 죽이는? 시스템으로 변이되어 그들에게 수치심이나 죄의식 혹은 마음의 상처를 입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을 평가하는 잣대부터 없애는 게 부진아를 없애는 가장 현실적이고 교육적인 방법 아닐까요. 계량화된 점수, 서열...거의 정형화, 코드화된 서술평가.... 어떻게 다양한 개체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기득권자들의 편리성과 이익, 이런 괴물스런 (교육)제도가 '부진아'를 낳는 근본 원인인 것 같습니다. 소로우의 말처럼 조금 느린 '사람'은 자기만의, 다른 '鼓手'의 북소리를 들으며 아주 느리게 걸어갈 뿐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