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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김달진문학상 / 고두현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 고두현
늘 뒤따라오던 길이 나를 앞질러 가기 시작한다.
지나온 길은 직선 아니면 곡선
주저앉아 목 놓고 눈 감아도
이 길 아니면 저 길, 그랬던 길이
어느 날부터 여러 갈래 여러 각도로
내 앞을 질러간다.
아침엔 꿈틀대는 리본처럼 푸르게
저녁엔 칭칭대는 붕대처럼 하얗게
들판 지나 사막 지나 두 팔 벌리고
골짜기와 암벽 지나 성긴 돌 틈까지
물가에 비친 나뭇가지 따라 흔들리다가
바다 바깥 먼 항로를 마구 내달리다가
어느 날 낯빛을 바꾸면서 이 길이 맞느냐고
남 얘기하듯, 천연덕스레 내 얼굴을 바라보며
갈래갈래 절레절레
오래된 습관처럼 뒤따라오던 길이 갑자기
앞질러 가기 시작하다 잊은 듯
돌아서서 나에게 길을 묻는 낯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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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김달진문학상'에 경남 출신 김수복·고두현 시인
함양 출신 김수복 시인 ‘의자의 봄날’ 삶·풍경의 모습 4행 서정시에 담아내 남해 출신 고두현 시인 ‘오래된 길이…’ 새로운 길 모색하는 ...
올해로 제35회를 맞은 김달진문학상에 경남 출신의 두 시인이 선정됐다. 함양 출신 김수복 시인과 남해 출신 고두현 시인이 그 주인공이다.
고두현 시인의 수상작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여우난골, 2024)는 오래된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적 성찰이 중심이 된 작품이다. 오형엽 심사위원은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특징은 운율의 장치를 활용해 낭송의 효과를 최대한 살림으로써 시의 근원적 본질이자 전통인 노래성을 회복하고 있다”고 평했다.
고두현 시인은 “수상 소식을 듣고 김달진 시인의 ‘샘물’을 생각했다. 숲속 샘물을 둥근 지구와 우주의 섬으로 치환하는 감각이 놀랍고도 경쾌했다. 31세 푸른 청년의 감각이 이렇게 깊고 넓은 것은 남다른 수행을 통해 상즉상입의 원리를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시인을 따라 숲속 작은 샘물을 오래 들여다 보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고 시인은 1963년 남해 출생으로 1982년 경남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후 시동인 ‘갯물’ ‘한마시대’ 등에서 활동했다.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고 2005년 제10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2022년 제13회 김만중문학상 유배문학특별상, 2023년 제21회 유심작품상을 수상했다.